네 시체를 묻어라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연우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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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사건을 겪은 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가마슈의 팀.
올리비에를 여전히 믿고 있는 가브리의 편지를 매일 받는 와중에, 휴양차 지내는 곳에서는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된다.

가마슈 시리즈가 전형적인 코지 미스테리가 아니구나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이야기.
모렝 형사와 24시간 통화하는 장면이 어찌나 드라마틱하고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던지...

루스 자도는 여전히 최고의 캐릭터이고, 너무나도 모범적인 노인이라 본받고 싶다. :)
보부아르와 티격태격하며 대화할 때도 그랬지만, 결정적인 절망속에 있을 때 곁에 있어주는 든든한 사람.

- 친애하는 아르망
기운을 좀 차렸기를 바라요. 우리 모두 경감님 이야기를 자주 해요. 또 당신이 조만간 찾아 주길 바라고 있어요. 루스가 당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렌 마리를 데려오래요. 하지만 당신에게 안부 전하라고 했어요. 꺼지라는 말도 했지만. - 31

- “나는 장님인가 보네, 못 찾겠더군.”
가마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지도를 만들 때 빠졌나 보더군요.”
“그럼, 사람들은 그 마을을 어떻게 찾아가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타나는가 보죠.”
“보는 눈이 없었으나 이제는 보인다?” 에밀이 인용했다. “자네같이 길 잃은 자에게만 나타나는 모양이지?” - 39

- 퀘벡 시는 마치 이제야 영국계들이 내내 거기 있었다는 사실에 눈을 뜬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우리가 있다는 걸 여태 모를 수가 있지?” 엘리자베스 어깨 너머로 기사를 읽고 있던 위니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도 같은 아픔을 느꼈다. 용의자나 위협적인 존재로 비방을 당하는 일, 심지어 적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예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아 왔다는 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218

- “간신히 비스트로에 왔군.” 그녀는 클라라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품위가 죽으러 오는 곳이지.”
“품위뿐이 아니죠.” 보부아르가 대꾸했다.
루스가 껄껄 웃었다. “시체를 또 찾았나?”
“전 시체를 찾으러 다니진 않습니다. 일 말고도 제 삶이 있거든요.”
“이런, 벌써 지겹군.” 시인의 말이었다. “들을 만한 말을 좀 해 봐.”
보부아르는 너그러이 참겠다는 듯 루스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럴 줄 알았지.“ 그녀는 그의 맥주를 집어 들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이게 무슨 술이야. 좀 제대로 된 걸 마실 수 없어? 하보크! 이 양반한테 스카치를 갖다 줘.“
”망할 노인네.“ 보부아르가 중얼거렸다.
”입은 살았군. 아주 좋아.“ - 234

- 그러나 에밀은 다른 것도 알고 있었다. 가마슈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 누구도 그럴 수 없었다. - 301

- 가마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자신의 일을 그토록 매혹적이고 또한 어렵게 만드는 점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친절한 동시에 잔인하고, 깊은 연민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렇게 끔찍할 수 있는지. 살인자를 찾아내는 일은 물적 증거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였다. 상호 모순적이고 때로는 자신의 본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 340

-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음 주 일요일이 장례식이야. 참석할거야.“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두 사람은 몇 걸음 더 나아갔다. ”성당에 가겠다고?“
”아니. 장례 행렬에 설 거야.“
그녀는 그의 옆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단호한 얼굴, 꾹 다문 입술, 뇌졸중이었다는 흔적은 말아 쥔 오른손뿐이었다. 피곤하거나 무리했을 때 나타나는 가벼운 떨림과.
”내가 뭘 하면 되는지 말해 줘.“
”옆에 있어 줘.“
”언제나 옆에 있어. 몽 쾨르.“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었고 왼쪽 눈썹 위로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살아 있었다. - 520

- 그는 2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마지막에만 조금 절뚝였을 뿐이었다. 거수경례와 예포 의식이 끝날 때까지 얼굴은 정면을 향했고 눈빛은 단호했다. 그는 그때가 되어서야 눈을 꼭 감고 고통에 찬 얼굴을 하늘로 들었다. 더 이상 가두어 둘 수 없는 개인적인 고통의 순간이었다. 오른손을 꼭 쥔 채.
그것은 비탄의 상징이 되었다. 그 이미지는 모든 뉴스 프로그램에 사용되었고 모든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 521

- 영웅적.
가마슈는 앙리를 뒤에 달고 천천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글쎄, 가마슈는 에밀이 모르는 사실 하나를 알았다. 그는 동영상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왜 만들었는지도 알았다. 자신을 나쁘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 너무 좋게. 너무도 좋게 만들어서 그를 지금 사로잡는 이 기분을 맛보라고. 사기꾼, 기만자가 된 기분,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한 추켜세움이었다. 네 명의 경찰청 형사가 죽었는데 가마슈는 영웅적이었다.
이 일을 꾸민 사람이 누구든 자신을 잘 알았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어떤 대가를 이끌어 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수치심. - 526

2022. aug.

#네시체를묻어라 #루이즈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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