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2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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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냉소가 가득 할 수가 있을까.
가까스로 삶을 이어 가야겠다 라고 결정한 저자의 마음이 느껴졌다.

- 글쓰기에서 정치적, 윤리적, 미적 기준은 무엇일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단지 공과의 문제일까. 성폭력 가해자의 시는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할까? 글쓴이는 자기가 쓴 그대로 살아야 하나? 혹은 글쓴이와 글은 별개일 수밖에 없는가. (...) 글쓴이의 품성과 재능에 대한 논쟁은 확언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러한 논란 자체가 모순아닐까. ˝내가 먹는 것이 나다 (i am what i eat), 내가 행하는 것이 바로 나다 (I am what I do).˝라는 진리처럼. 나는 ˝글은 곧 글쓴이다 I am what i wrote 혹은 all that me.˝라고 생각한다. 아니, 글만큼 그 사람 자체인 것도 없다. - 10

- 모든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 사회의 정치, 경제, 담론의 일부이자 그 산물이다. 또한 고전, 클래식, 정전 개념은 가부장제 역사의 산물이다. 수천 년간 지식과 언어를 독점해 온 그들만의 세계에서 ‘아버지‘를 만들고, 그 계보 안에 자신을 배치하려는 권력욕이다. 벤야민은 백번 옳았다. ˝역사 기술과 읽기는 기본적으로 감정이입이다. 역사의 승자와의 동일시이다.˝ 승리와 성공을 욕망하는 이들은 자신을 과거의 계승자라고 믿는다. 그러나 민초의 역사는 기존의 역사를 해체하려고 한다. 고전에 대한 집착이나 읽기 스트레스는 이 계승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 11

- 독자 역시 최소한의 비슷한 경험, 진저리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인간의 변화는 진저리를 동반한다. 독서에는 반드시 몸의 반응이 따른다. 가벼운 바람도 있고 통곡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들이 여성학 책을 읽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 59

- 지금 우리의 문제는 이것이다. ˝하면 된다˝ 하면 무엇이 되나? 해서 되는 일이 하나라면, 안 되는 일은 아흔 아홉개다. 우리는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뜻한 바가 많을수록 좌절과 불행이 동반 방문한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하면 된다˝는 근대화 정신은 ˝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상식을 잠식한다. - 112

- 인간 중심주의에는 휴머니즘, 자연 파괴라는 양면이 있다. 추구하는 바가 생명 존중인가 돈인가에 따라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망가지는 것도 달라진다. 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고가 현재 디스토피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만물의 영장끼리도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 백인, 남자, 부자만 영장이다. - 135

- ‘군 위안부‘ 운동에도 참여한 세계적인 인권 운동가 샬럿 번치 미국 럿거스 대학 교수는, 사회가 성차별과 여성 살인을 당연시 하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 손댈 수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이없지만 현실적인 발언이다. (...) 성차별은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지만 너무 만연해서 정치로 간주되지 않는 특이한 정치학이다. - 217

2022. jan.

#나를알기위해서쓴다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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