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53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석영중 옮김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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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과 무욕망의 나날을 지나고 있는 명망있는 노년의 학자.
명예로운 퇴진을 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고, 오랜 세월 살아온 신념은 삶을 무겁게만 한다.
결국 인간이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이 인류와 자연에 민폐라는 불멸의 진리를 에둘러 말하는 것도 같다.

‘지루한 이야기‘ 라는 제목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실존에 대해 성찰해 볼 기회가 된다.

해설의 타이틀이 ‘모호하고 슬픈, 그래서 매혹적인‘인데 전혀 모호하지 않다. 예리한 통찰이다.
그 해설이 제목은 체호프라는 작가에 대한 인상이라고는 하지만 체호프도 마찬가지로 모호하지 않다.

까쨔라는 어린 여성이 현상에 대해 의문하고 고민하는 젊은 지성으로 등장하는 점도 매력적이다.

- 한마디로 말해서 뒤를 돌아보면 내 인생 전체가 재능있는 손끝에서 창조된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느껴져. 어제 내가 할 일은 그저 피날레를 망치지 않는 일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답게 죽어야 하지. 만일 죽음이란 것이 실제로 닥쳐온 위험이라면 나는 그것을 교사이자 학자이자 그리스도교 국가의 시임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맞이해야겠지. 즉 용감하고 평화로운 영혼으로 말이야. 그렇지만 나는 지금 피날레를 망치고 있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너에게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어. 그런데 너는 그냥 빠져 죽으라고, 그게 순리라고 말하고 있어. - 63

- 저는 과연 누굴까요? 제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부정적인 현상이죠? 그렇지요? - 87

- 누군가는 고주망태가 되어 예술을 속악하게 만들었고, 신문은 대중한테 아부하느라 속악하게 만들었어요. 똑똑한 인간들은 철학으로 속악하게 했죠.
철학이랑은 아무 상관도 없어.
상관 있어요. 누군가가 무언가를 철학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면 그건 즉 그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해요. - 89

- 우리 스스로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관해 잊은 채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들을 제외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 180

- 저는 제 작품의 행간에서 경향성을 읽고 저를 철저한 자유주의자나 철저한 보수주의자로 규정하려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저는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정진주의자도 아니고 수도사도 아니고 무관심주의자도 아닙니다. 저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단지 신께서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을 안 주신 게 유감스러운 따름입니다. 저는 어떤 형태건 거짓말과 폭력을 혐오합니다. 바리세미즘과 아둔함과 전횡은 장사꾼의 집이나 경찰서에서만 횡포를 부리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 속에서. 문학 속에서 그것을 봅니다. 꼬리표와 라벨은 편견입니다. 제가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인간의 몸, 건강, 지성, 재능, 영감, 사랑, 그리고 절대적인 자유입니다. 거짓과 폭력이 어떤 형태를 취하건 간에 그것들로부터의 완벽하게 벗어나는 그런 자유말입니다. - 204

2021. dec.

#지루한이야기 #안똔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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