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문학동네 시인선 86
김상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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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너무 와닿은 시들.

김상혁 시인의 시들이 더더 읽고 싶어졌다.

<십일월>과 <나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두 시가 특히나 좋다.


- 한 떠돌이 부부가 마을로 흘러들었다.
그들은 주민 가운데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곽, 아슬아슬한 암벽 밑 울퉁불퉁한 황무지에 집을 지으려고 온 마을에 아부했고 겨우 집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허락한 주민 가운데 그 누구도 땅의 주인은 아니다. 주인은 나중에 온다. 군대와 함께. 부부의 영혼과도 같은 그 집을 무너뜨리러 온다. - 시인의 말

- 먹는 기쁨, 보는 기쁨, 생각하는 기쁨.
영혼의 기쁨 같은 건 없다.
그렇대도 기쁜 영혼 같은 건 있으면 좋겠다. - 기분의 왕 중

- 여전히 귀를 기울인 채로
왼손에 쥔 어둠이 무거우면 오른손으로 그것을 옮겨 쥐다
그런 반복을 이 순간에도 몇 번씩
그렇게 입가를 문지르고 빈주먹을 쥐다 펴고 귀를 기울이고
너희가 맞구나, 너희가 아니구나,
죽은 친구들과 떠난 아이들을 떠올리다 - 맞다, 아니다 중

- 우리는 너를 위해 너무나 오랫동안 기도하다
도무지 신 같은 건 믿을 수 없게 되었다 - 아들에게 중

- 자네의 그림에는 풍경과 생각이 섞여 있어 언덕을 그리고 나면 떠오르는 소리를 거기에 색으로 입히지 어제의 붉은 언덕을 오르던 사람이 오늘의 검은 언덕을 내려가는 식이라네 왜 석양을 바라보는 일은 눈을 감는 일보다는 항상 덜 슬픈가 - 십일월 중

2019.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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