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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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반전에 약간 어리둥절하기는 햇으나, 그럼에도 속에서 우러나오는 포효와 달콤한 미소에 휩쓸려 박수를 친다. 그 미소에 남자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괴로움에 시달리며 남을 조롱해대던 신랄함은 사라지고,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하는 순간 바뀌어버린 듯, 말씨가 부드러운 세련된 지식인의 모습이 자리를 잡고 있다. 조금 전 입에서 토해내던 말과는 어떤 관계도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 13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어느 신도시 코미디클럽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도빌레에 대한 것이다.
유대인이어서 겪은 지난 세대의 불행과 그에서 파생되는 이번 세대의 불행을 왜 코미디 무대위에서 말하려고 하는 걸까. 
유년기의 친구를 수소문해 초대한 그는 자신의 쇠락해가는(그럼에도 무대 위에서는 어느 순간 빛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모습을 봐달라고 부탁한다.

“나를 봐주면 좋겠어.” 그가 격하게 토해냈다. “나를 봐주면 정말로 봐주면, 그런 다음에 말해주면 좋겠어.”
“뭘 말해줘?”
“네가 본 걸.” - 50

인생이란 이렇게 되고 마는 거야. 인간은 계획하고, 신은 그 인간을 좆같이 망쳐버리지. - 64

마치 이런 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인지, 하룻 저녁 즐거움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 앞에서 도빌레는 자신의 인생을 변명하고 자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일부는 그의 넋두리를 아무말도 없이 들어주지만, 일부는 자리를 뜨고 도빌레에게 야유를 한다.
어쩌면 이 불쾌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여주는 두가지의 행동은 도빌레의 내면과도 어쩌면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골치아픈 운명을 직시하는 혹은 외면해버리고 마는 결정.

하지만 그 웃음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늘 그렇듯이, 우리 발밑의 깔개를 확 채가듯이 사라진다. 특히 나의 발밑으로부터. 다시 나는 깊고 어두운 기만을 느낀다. 말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기만. - 72

“동정과 품위의 아주 작은 섬들.”- 77

하지만 모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스탠드업 코미디 아닐까? 인생을 무대에 올린다면 아마도 그 자체로 달콤하고 씁쓸한 긴 한편의 코미디가 되는 것.

나는 그의 쇼에 두 번, 세 번 오는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그가 이 사람들한테 뭘 주고 있는 걸까?
저렇게 진부하기 짝이 없는데...... 그가 줘야 하는 게 도대체 뭘까?
어쩌면 떠나지 않은 게 잘한 일인지도 몰라, 나는 흥분 때문에 묘하게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생각한다. 결국 이 자리에서 이걸 다 보게 된 게 좋은 일이야. - 95

어린 시절 물구나무 서기로 다니는 행위로 자신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던 도빌레와, 캠프에서 비보를 전해듣고 집으로 가는 길에 아무도 경위를 설명해주지 않아 혼란스러워 하던 도빌레가 겹쳐 보인다. 자의에 의한 외면과 타의에 의한 눈가림은 엄연히 다른 문제지만, 결국 도빌레의 인생을 관통하는 것은 직시하지 않음 이었던 것.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직시하기로 한 밤 어쩌면 유일한 증인으로 떠올린 퇴직 판사인 친구는 어떤 이유로 선택했던 걸까.

이유는 없어. 날 위한 거야. 모르겠어. 이봐, 나도 이게 느닷 없다는 거 알아. 하지만 갑자기 그러고 싶어. 그뿐이야. 때가 된거지. - 100

명확한 이유, 깔끔한 결론 이런 것이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이유는 없고, 느닷없고 갑자기 그러고 싶어지는 것. 그게 도빌레가 인생 무대를 계획하게 만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의 초대에 응한 친구는 너의 인생을 동정하지 않으며 봐주겠다고 어쩌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는 사람 처럼 대답했다. 

진지하게 이야기 하는데요, 여러분. 우리는 여기 좀 웃자고 왔는데 저 사람은 지금 홀로코스트 추모식을 하고 있잖아요. 게다가 홀로코스트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어요! - 184

항의하고 불평하는 관객의 목소리는 타인의 삶을 오해하고 판단해버리는 사람의 모습을 반영한다.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객관적이지만, 경험한 모든 것이 다른 결을 가지는 타인이 어떻게 누군가를 제대로 응시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도빌레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왜 자신을 돌아보는데 관객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확신이 없는 회고에 동의를 구할 누군가를 왜 무대에 위에서 찾는지 하는 점. 자신의 삶과 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타자에게 가능하면 가장 중립적인 가치 판단을 해줄 수 있는 대상을 찾은 것일까. 어찌 됐든 스스로 클럽에 왔으나 일방적으로 도빌레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관객들에게 약간의 동정심도 느껴지는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것이 내가 법정에서 보여줄 필요가 있는 그런 얼굴이라고 설명했다. 속으로는 폭발하고 있어도 내 감정에 대한 암시를 주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아직 내 마음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 여자애한테 보여주었던 바로 그 돌 같은 얼굴을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자기 쪽 이야기를 할 때도 똑같이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정의가 눈에 보여야 돼.” 나는 고집했다.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공감은 판결문에 표현될 거라고 약속할 수 있어.”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어.” 타마라가 말했다. “그 아이는 당신한테 이야기를 하던 그 끔찍한 순간에 그게 필요했던거야.” 그러면서 타마라는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198

공감과 이해가 인류에게 필요하다고 설명하는 지난한 과정일까. 왜 타인을 이해해야 하는지 그게 왜 중요한 일인지 이스라엘의 현실이 말해주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결국 목격자로 호명되어 이 무대에 불려나온 판사 친구는 “이제 저 사람이 이야기 좀 하게 하시오!”(202)라고 공감에 도달하게 되고 마니까 말이다.

“일 분만 더 시간을 내줄 수 있어?” 그는 자기 몸을 다시 무대 위로 들어올려 가장자리에 앉는데, 힘이 들어 두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한 시간도 낼 수 있지.”
“집에 빨리 가지 않아도 돼?”
“어디든 빨리 갈 데 없어.”
“그냥, 알겠지만......” 그는 힘없이 웃는다. “그냥 아드레날린이 조금 내려갈 때까지만.”
그는 머리를 가슴에 떨구고 있다. 앉은 채로 잠이 든 것 같다.
갑자기 타마라가 이곳에 와 있다, 나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그녀의 존재가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다. 그녀에게 채널을 맞추자 그녀가 내 귀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사랑하는 페르난두 페소아를 인용하고 있다. “그냥 존재하는 것마으로, 얼마든지 완전해질 수 있다.”
도발레는 몸을 떨며 깨어나 눈을 뜬다. 눈동자가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뭘 긁적이는 걸 봤는데.” 그가 말한다.
“뭘 좀 써보려고 생각했지.”
“그래?” 그의 얼굴이 웃음으로 가득찬다.
“다 쓰면 너한테 줄게.”
“적어도 몇 마디는 남겠네.” 그가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톱밥처럼, 알잖아......” - 316

읽는 도중에는 조금 중언부언 하는게 아닌가 싶었으나, 그것은 스탠드업 코미디로 주인공의 말을 풀어내면서 생기는 불가피함인 듯 하고, 오히려 이 글을 쓰면서 이 책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인간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아주 작은 공감, 그냥 이해한다는 어깨 토닥임 정도 라고 그 정도면 많은 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다는 것.

이스라엘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 했다는 추천에 대해서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판단을 내릴수는 없겠다. 간간히 끼워넣은 냉소적인 유머들은 단지 그의 변명인지, 날카로운 비판인지 이 책 한 권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2018.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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