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질주하는 법
가스 스타인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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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들은 늘 다음에 일어날 일을 염려한다. 내일 일을 걱정하느라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개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앞으로' 갖게 될 것에 더욱 신경을 쓴다. "

                                           

                                                     본문 201쪽

 

"차는 눈이 가는 곳으로 가지요."(본문 339쪽)

그렇다. 우리는 늘 우리가 바라보는 곳으로 우리의 인생을 몰고간다.

데니는 자기의 인생의 운전대를 자기가 잡으려고 애를 쓰는 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서, 혹은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인생의 운전대를 놓을 생각이 없다.

그것이 더욱 가능한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바로 그에게는 엔조가 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데니가 너무나 힘겨워서 인생의 레이스를 중도에 포기하려 할 때, 엔조는 그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데니의 가장 깊은 곳의 생각을 일깨워주려 애를 슨다.

엔조는 두 번 짖거나, 서류를 물고 달아나거나, 데니의 다리에 코를 문지른다.

엔조는 늘 이렇게 말한다.

"개의 몸을 입고 있지만, 그건 껍데기에 불과하다. 몸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가 중요하다. 영혼, 내 영혼은 인간인 것을."(본문 8쪽)

 

이 소설의 서술자는 바로 그 철학자 개인 엔조이다.

천진난만하고 장난기 많은 개이지만, 엔조의 생각의 깊이는 여느 인간보다 더욱 깊다.

아무 것도 모르던 철없는 강아지이던 엔조는 데니가 출근할 때 켜 놓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세상을 배운다.

엔조는 데니와 함께 살면서 데니가 이브를 만나고 이브와 결혼하고, 데니가 없는 사이 이브가 아기를 낳을 때 곁에 있어 준다.

엔조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냄새 맡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보고, 맡을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불행한 사건을 미리 알 수도 있지만, 그것을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한다.

엔조는 그런 자기의 몸이 너무나 답답하고 싫지만, 그저 데니와 이브와 조위를 사랑하는 수 밖에.

 

카레이서인 데니의 직업은 굽이마다 예기치 않은 위험과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긴 인생과 닮았다.

레이싱은 훈련과 지략의 싸움이다. 단순히 누가 속도를 잘 내는지 겨루는 경기가 아니다.

게다가 데니의 인생에는 다른 사람보다 더 힘겨운 조건들이 널려있으니, 마치 비 오는 날의 레이싱과 같은 것이다.

빗 속에서 성공적인 레이싱을 하기 위해서 해야할 일, 갖추어야 할 것인지 무엇인지 데니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잠시 데니가 레이싱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엔조는 그걸 깨우쳐 준다.

 

"얼룩말은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있다는 걸.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포기,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의 내면에 있는 최악의 부분이 바로 '얼룩말'인 것이다.

악마는 결국 우리 안에 있음을!"

 

                                             본문 280쪽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포기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가끔씩 집에 있는 강아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혹시 저 강아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가족의 마음, 건강 상태, 혹은 입 밖으로 말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다 느끼고 보고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이 책의 엔조처럼 배우고 생각하고 관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인가.

꽃이 울지 않는다고 해서 꺾고,

강아지가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기실 자연의 위대한 순환은 동물이 먼저 알고, 집 안의 우울한 분위기나 주인의 사소한 기분의 변화에도 강아지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간은 자신만이 인간이라는 어리석고 자만한 생각을 버려야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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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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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이스 뜨는 여자>는 문학이 씨줄로, 사회학과 철학과 심리학이 날줄로 얽힌 독특하면서 작품성이 높은 소설이다.

                                                                     187쪽, 차현숙 다시 만난 <레이스 뜨는 여자> 중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된 동기는 위의 문장 때문이었다.

요즘 읽게 되는 가벼운 읽을 거리들에 어느덧 지쳐있던 중이었기에 조금은 진중하게 내게 말을 걸어주는 책을 찾고 싶었다.

아마도 무언가 깊은 얘기를 해도 이해할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저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는 그런 이야기들 말고, 삶에 대한 이해를 나누는 그런 책 말이다.

 

레이스를 뜨는 그 여자는 뽐므이다.

이름 그대로 사과처럼 붉고 단단한 뺨을 가진 뽐므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원하지는 않는다.

"손님 하자는 대로 할게요."라고 생각하던 그녀의 엄마처럼 뽐므 역시도 그녀에게 주어진 삶에 순종한다.

인생은 그녀를 파리로 데려가고 미용실에서 일을 하던 뽐므는 화려한 마릴렌과 우정을 쌓아가지만, 어느 피서지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간다. 뽐므는 피서지에서 귀족 가문의 출신인 에므리를 만나고 너무나 생각이 많은 에므리는 자신의 의도인지 아닌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도 못한 채 뽐므와 동거를 하게 된다.

지극히 순응적인 여자와 지극히 우유부단한 남자의 동거는 에므리의 싫증으로 간단히 끝이 난다.

에므리가 함께 살자고 해도, 에므리가 나가라고 해도 무조건 따르던 뽐므는 사랑이 깨어진 것에 대한 슬픔보다도 더 큰 수치심을 느낀다.

자신의 고통을 함께 할 엄마에게조차 수치심을 느낀 뽐므는 먹는 것을 거부한다. 인생에 그렇게도 순종적이던 뽐므가 인생에서 스스로 등을 돌린 것이다.

뽐므는 레이스를 뜬다. 한 가닥의 실에서 시작한 레이스는 아름답고 섬세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내미는 작은 손짓이 타인의 그것과 만났을 때 우리는 관계의 무늬를 만든다.

뽐므가 뜨는 레이스는 에므리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사회에게 내미는 손짓이다. 그 손짓은 다른 것과 만나지 못했다.

다른 실과 엮이지 못한 실은 무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내가 내미는 손짓은 다른 실과 만난 것일까?

어쩌면 나는 레이스를 뜨고 싶은데, 털모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소통이란 어떤 것일까?

 

역시나 매우 얇은 분량임에도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한꺼번에 여러 장을 읽기에는 이해하고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아름다운 표지의 이 책은

가벼움에 지친 이들에게 주는 부피는 얇지만 무거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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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메릴 호
한가을 지음 / 엔블록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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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큰 사회적 문제임에 틀림없다.

(물론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할 어른들 역시도 1년 가야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지만, 어른보다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 여기서는 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자.)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예전 우리가 자랄 때에 비해서 요즘 아이들의 독서량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

우리가 자랄 때야 책 말고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었던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요즘 아이들이야 텔레비전이니 컴퓨터니 해서 재미난 게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이니 활자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기다릴 줄 모르고 성급해서 진득한 이야기나 길게 에둘러 가는 것은 못 참는다.

그저 빨리 싸우고 죽여서 일을 끝내야 하니, 우리 때의 그 두꺼운 클래식 고전들은 펼쳐 볼 생각도 않는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그래도 자기 자식에게는 책을 읽히려 한다. 그게 좋은 것이란 것은 아는 모양이다.

 

책을 안 읽기로 치면 여자 아이들보다 남자 아이들이 더 하다.

그렇지만 남자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책이 있으니 그것은 판타지 소설 장르이다. 거기에 빠져서 다른 모든 것을 다 잊고 사는 아이도 있다.

판타지 하면 <해리포터> 하듯이 외국 소설이 많다. 얼마나 많은 판타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 나중에는 그 세계들끼리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요정의 세계, 다른 행성, 시공간의 이동 등 다양한 환상의 세계에 빠져있다보면 현실로 돌아오기 싫을 정도이다.

 

이 소설 <보물선 메릴호>는 그런 외국 판타지 물 사이에서 국산 환상 동화로 그 의미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18세기와 21세기의 우리 우주와 또 다른 다양한 우주들이 겹쳐지는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이 특별한 사건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다른 시각을 갖도록 한다.

주인공 모이는 어느 날 이상한 전화를 받는다. 메릴 호의 선장인 모이 선장을 찾는 것이다. 특별한 우주 화물의 운송을 부탁한다는 그 전화를 모이는 금방 잊는다. 그런 이상한 일 말고도 모이는 걱정거리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모이가 어렸을 때 벚꽃이 날리던 날 집을 나간 어머니는 여태 소식이 없다. 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때문에 사업에 흥미를 잃어서 곧 사채업자에게 인쇄소가 넘어가게 생겼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잃게 되면 공허하고 건조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런 모이에게 어느 날 알모타 제국의 공주라는 미치가 나타난다. 미치는 다른 우주에서 왔다면 자기가 돌아가게 도와달라고 한다.

미치가 돌아갈 길을 찾던 중 그들은 동네의 외딴 집에 숨어서 다른 우주와 밀무역을 하는 조씨의 배에 몰래 승선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18세기의 대서양으로 들어선 그들은 배를 훔쳐서 알모타로 갈 계획을 세우지만 선장의 배신과 잔인한 해적과의 조우로 무서운 일을 겪게 된다.

그들과의 싸움을 이겨내면서 배를 빼앗아 가는 과정에서 모이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모이는 이 여행의 끝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알모타에서 쓸모없는 그 작은 다이아몬드 하나면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

아마도 이 힘이 모이의 활약을 만든 것이 아닐까?

 

단지 모이의 나이에 비해서 모이가 벌이는 활약이 너무 대단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해적과의 전투에서 각종 선박에 대한 지식과 해적과 싸우는 용기와 지략이 어린이답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토종의 판타지 문학이라는 점에서 주인공이 우리나라 어린이라는 점에서 어린이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어린이들은 이 소설에서 모이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친구에 대한 우정 그리고 실천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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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리스트: 전달자
장태일 지음 / 팬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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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니 마치 난해한 한 편의 프랑스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줄거리는 알겠는데, 그 느낌이 어딘지 개운치가 않고, 누군가 한 인물을 이해 못해서 뭔가 중요한 고리를 하나 놓친 듯한 느낌.

대강의 내용은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 줄 자신이 없는 그런 느낌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이가 사는 세계는 지금으로 부터 먼 미래이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있는 그 시대에는 본청에서 지구를 관리한다.

그들은 이미 지구에 들어와 살던 외계인들을 제 별로 돌려보내는 작업을 완성했고, 화성으로의 이민을 광고한다.

그 본청에서 인간의 이미테이션인 리플리컨트들을 폐기하는 임무를 맡은 제이는 참전용사로서 깊은 정신적 외상을 입은 듯이 보인다.

어린 시절 본청 연구소에서 일하던 부모가 본청의 부름을 받고 간 후에 죽었다는 통보만을 받은 제이는 군사학교를 거쳐서 전쟁에 참전한 모양이다.

그 제이에게는 전쟁 후에 만났다가 사라진 그녀가 있다.

어느 날 임무 수행중에 제이는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를 그대로 복제한 클론이 슬럼가를 돌아다니며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클론은 누군가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며 그 클론을 제거하지 않을면 스스로에게 위협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게된다.

왜냐하면 클론이 돌아다니는 세계는 이 세상에서 철저히 통제하는 영화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제이의 클론이 전달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은 제이와 제이의 클론의 시각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처음에는 클론이라는 설명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이 상당히 난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일인칭의 서술인데도 장소와 시간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이, 혹은 제이의 클론이 만나는 사람들, 사용하는 물건들, 그리고 그 상황들은 영화의 모티브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

소설을 읽는 도중 느닷없이 장국영이 속옷차림으로 맘보를 추는 모습이 영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 작가는 독자들이 여기에 차용된 영화들을 모두 보았다는 전제하에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영화들은 대체로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들이어서 그 목적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소설에 소개되는 영화들을 다 보고 이 소설을 다시 읽는다면 내가 빠뜨린 인물이 누구인지, 내가 이해 못하는 고리가 어디인지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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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혼을 위한 레시피
케이트 캐리건 지음, 나선숙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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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일 여지를 주지 않으면 평생 그 사람에 대해 무지한 채 살아갈 수 있다."

                                                                    본문 118쪽

 

완벽한 결혼이란 어떤 것일까?

어느 나라의 어느 결혼이든 여성의 노력과 남성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없을 것이다.

스물 몇해가 넘는 긴 시간동안 다른 삶의 양식을 고수한 사람끼리 만나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만들어진 가족이다.)

자기 자신의 욕심을 희생하고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음식을 만들고 옷을 다듬고 집을 청소한다.

남자는 자기 아내와 아이를 먹일 음식을 벌어온다.

물론 현대에는 여자 또한 자기의 일을 갖는 경우가 많아서 전통적인 2분법의 가사 노동 분담은 불가능하다.

그럼 남자와 여자가 가사를 공평히 분담하면 좋으련만,

여자가 나가서 벌어오는 돈은 좋고, 집안일은 하기 싫은 남자의 이기적인 마음과

바깥 일에서도 완벽하게 집안 일도 완벽하게 하고 싶은 여자의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우리 사회에 수많은 여성우울중 환자를 양산한다.

그런 탓인지 결혼을 다루는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어딘지 에둘러가는 듯한 느낌을 많이 주었다.

'남자와 여자가 있다. 사랑했다. 결혼했다. 싸웠다. 헤어졌다.'의 인생 구도에서

결혼하기 까지의 과정을 다루거나, 결혼 후에 헤어지는 과정을 그리거나, 헤어진 후에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은 많아도 이 소설처럼 결혼에 직접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은 자주 만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유명한 요리 컨설턴트인 트레사는 아파트 관리인인 댄과 결혼을 한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그것이 잘못된 선택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진정한 결혼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는 트레사의 기억에 평생을 사랑으로 사신 것으로 기억되는 외할머니 부부인 버나딘과 제임스의 결혼이야기가 중첩된다.

댄과 트레사가 좌충우돌하는 사이, 버나딘과 제임스의 삶의 이야기는 마치 쌍둥이처럼 같은 곡선을 그리며 진행된다.

또한 그들의 결혼 생활의 과정을 상징하는 요리들과 함께 말이다.

 

처음엔 구즈베리쨈으로 시작된다. 제목은 화학작용이다.

처음엔 불꽃같은 화학작용이 일어나야한다. 그러나, 내가 만든 쨈은 최고로 품질좋은 재료를 넣고 알맞게 끓였는데도 , 웬일인지 그 화학작용이 안 일어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내 결혼만 악몽같은 것일까?

다음은 타협이다. 현실과 타협하는 루바브 타르트를 만들고,  남편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허니 케이크를 만든다. 꼬마 카스텔라는 함께하는 기쁨을 주고, 빵은 그와 그의 가족을 인내하게 한다.

이 이외에도 많은 요리가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엔 모든 요리는 pobs에서 끝난다.

따끈한 우유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이겨넣고 거기에 설탕을 뿌린 pobs는 아주 어린 아이나 아주 나이 든 사람에게 적당한 음식이다.

어쩌면 아무리 화려하고 멋진 요리라고 해도 마음을 달래주지 못할 때가 있다.

진정한 우리 내면과 마주할 때는 그저 간단한 pobs 한 잔이면 우리는 자신과 마주할 시간을 찾게 될 수도 있다.

 

"사랑에 헌신할 수는 있으나, 헌신없이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본문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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