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레이스 뜨는 여자>는 문학이 씨줄로, 사회학과 철학과 심리학이 날줄로 얽힌 독특하면서 작품성이 높은 소설이다.

                                                                     187쪽, 차현숙 다시 만난 <레이스 뜨는 여자> 중에서

 

이 소설을 읽게 된 동기는 위의 문장 때문이었다.

요즘 읽게 되는 가벼운 읽을 거리들에 어느덧 지쳐있던 중이었기에 조금은 진중하게 내게 말을 걸어주는 책을 찾고 싶었다.

아마도 무언가 깊은 얘기를 해도 이해할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저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헤어지는 그런 이야기들 말고, 삶에 대한 이해를 나누는 그런 책 말이다.

 

레이스를 뜨는 그 여자는 뽐므이다.

이름 그대로 사과처럼 붉고 단단한 뺨을 가진 뽐므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원하지는 않는다.

"손님 하자는 대로 할게요."라고 생각하던 그녀의 엄마처럼 뽐므 역시도 그녀에게 주어진 삶에 순종한다.

인생은 그녀를 파리로 데려가고 미용실에서 일을 하던 뽐므는 화려한 마릴렌과 우정을 쌓아가지만, 어느 피서지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간다. 뽐므는 피서지에서 귀족 가문의 출신인 에므리를 만나고 너무나 생각이 많은 에므리는 자신의 의도인지 아닌지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도 못한 채 뽐므와 동거를 하게 된다.

지극히 순응적인 여자와 지극히 우유부단한 남자의 동거는 에므리의 싫증으로 간단히 끝이 난다.

에므리가 함께 살자고 해도, 에므리가 나가라고 해도 무조건 따르던 뽐므는 사랑이 깨어진 것에 대한 슬픔보다도 더 큰 수치심을 느낀다.

자신의 고통을 함께 할 엄마에게조차 수치심을 느낀 뽐므는 먹는 것을 거부한다. 인생에 그렇게도 순종적이던 뽐므가 인생에서 스스로 등을 돌린 것이다.

뽐므는 레이스를 뜬다. 한 가닥의 실에서 시작한 레이스는 아름답고 섬세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내미는 작은 손짓이 타인의 그것과 만났을 때 우리는 관계의 무늬를 만든다.

뽐므가 뜨는 레이스는 에므리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사회에게 내미는 손짓이다. 그 손짓은 다른 것과 만나지 못했다.

다른 실과 엮이지 못한 실은 무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내가 내미는 손짓은 다른 실과 만난 것일까?

어쩌면 나는 레이스를 뜨고 싶은데, 털모자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소통이란 어떤 것일까?

 

역시나 매우 얇은 분량임에도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한꺼번에 여러 장을 읽기에는 이해하고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다.

아름다운 표지의 이 책은

가벼움에 지친 이들에게 주는 부피는 얇지만 무거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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