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종교
역사연구모임 엮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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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미디어의 "상식으로 꼭 알아야할 ~" 시리즈는 그야말로 상식을 넓히는 데 아주 좋은 책이다.

음악, 역사, 문학, 미술 등 어느 한 분야도 빼  놓지 않고 교양인이라면 알아야할 지식들을 정리해 준다.

그 시리즈를 여러 권 읽었지만, 그 제목에 비해서 내용이 빈약하다거나 했던 기억이 없다.

이 책 <상식으로 꼭 알아야할 세계의 종교> 편은 그 중에서도 꼽을 만큼 내용이 알차다.

 

나는 기독교 학교를 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교생이 모이는  예배가 있었고, 주 1회 성경 공부 시간이 있었으며, 합창 대회에서는 성가곡을 지정곡으로 불렀다.

어릴 때 친구따라서 교회도 가 보았고, 성당의 그 고즈넉하고 청결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또 조용한 산사에서의 산책은 얼마나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지 모른다.

물론 종교인으로서 비 종교인보다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것은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이지 그가 믿는 종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에 사람을 보고 종교를 판단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찌보면 모든 종교에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이고, 또 달리 보면 특별한 종교가 없는 것이다.

기독교건 불교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얄팍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어쩐지 우리 사회에서 거리감을 두고 있는 듯한 이슬람에 대해서는 그들의 문화나 생활 습관에 대해서 약간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기독교와 이슬람과의 관계를 모르고야 국제 정세의 동향은 물론 우리나라 금리의 흐름까지도 읽기 어려운 이런 세상에 그야말로 문맹이다 다름이 없었다.

그 좋아하는 티벳의 불교와 불국사 대웅전의 그 부처님이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세계의 3대 종교라 할 수 있는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이슬람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세 종교의 시작을 부처와 그리스도, 마호메트의 생애와 더불어 알아보는 것으로 부터 불교의 경전과 성경, 그리고 코란의 주요 사상과 각 종교에서의 신의 의미와 신을 찾는 방법 등을 설명하여 종교의 기초를 알려준다.

이어서 각 종교의 역사를 다루면서 종파의 차이를 설명한다. 흔히들 소승 불교라 부르는 남방 불교와 우리나라 및 일본, 중국이 주류인 대승불교의 차이는 대략 알고 있었으나 그렇게 분리된 까닭을 새로 알게 되었고, 소승불교 라는 표현은 바른 표현이 아님을 배웠다.

궁금해하던 티벳 불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책의 가치를 내게 충분히 하였으며, 밀교와 현교를 공부하면서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래전에 공부를 한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갈라지게 된 원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 등 기독교의 종파와 외국 뉴스를 들을 때 가끔 들리는 이슬람의 사아파와 수니파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설명들을 이 책에서는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가끔씩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본인의 생각에 너무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서 상대에게 권하는 것이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꼭 감안해야할 점이다.

지금 전 세계의 인구중 20%가 이슬람 신도라고 한다. 흔히들 아랍권의 몇몇 나라의 종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슬람은 이미 전 세계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슬람이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으나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도 크게 작용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다른 종교 신자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열린 마음이 그들의 종교를 더욱 널리 퍼지게 하는 지도 모른다.

 

이 책 <상식으로 꼭 알아야할 세계의 종교>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사회 생활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역시 '종교' 라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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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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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에서든 어려운 일인 것은 확실하다.

때로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옥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하기도 하고,

자신의 모성을 의심하며 괴로워 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날리며 거리를 걷고 음악을 듣고 시와 인생을 이야기하던 그녀.

혹은 갈래머리를 하고 뺨을 부풀리며 천진한 웃음을 짓던 소녀.

그녀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끊임없는 노동 속에서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라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조차 잊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소설 <알링턴 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는 런던 근교  가상의 중산층 베드타운인 알링턴 파크에 살고 있는 기혼 여성 줄리엣, 어맨다, 솔리, 메이지, 크리스틴의 하루를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한 모범생이던 줄리엣은 결혼 후 알링턴 파크에서 별 특별할 것 없는 여교사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어 한다. 그녀는 일주일 중 하루, 남편에게 아이들을 찾아오게 하고 자신은 학교의 문학반 수업을 진행하면서 거기에서라도 무엇인가 의미를 찾고 싶어하지만 남편 베네딕트와는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자신이 장을 보지 않으면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바나비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베네딕트가 다시 직장에 나가버리고 자신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리해야할 집안 일들이 너무 많아서, 베네딕트에게 부탁하느니 직접 하는 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일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땐 그녀도 많이 놀랐고, 거의 분노를 느꼈다. "

                                                        본문 55-56쪽

 

내 몸을 움직여야만 식구들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생각났다.

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에 겨운 감정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이 어느 새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었을 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그 부당함이라니.

그것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조차 없다. 어쩐지 자신의 모성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줄리엣은

 

"베네치아의 돌벽이 짙은 색 물살을 견디고, 또한 벽 사이를 흐르는 물이 자신을 가두는 돌벽을 견디며, 그렇게 영원히 서로 맞닿은 채 함께 존재하는 벽과 물의 관계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며, 하나의 실존, 일종의 아름다움일 수 있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줄리엣도 새로 시작되는 하루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문 31쪽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사자가 아닌 한 타인의 삶에 대해서 어떤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될 것이다.

어머니로서 규정되어지는 삶이 때로는 타고난 모성조차도 위협할 만큼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을 헌신하고도 더 못 주어 서운한 것이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그 어머니도 한 때는 동그란 볼을 가진 생각 많은 소녀였고, 드넓은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펼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알아야한다.

어머니에게도 '엄마'라는 호칭 이전에 그녀만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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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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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더불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인정할 일이다.

남자든 여자든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그에게 서로 적응하고 서로의 역할을 결정하는 시간들이 있다.

약간의 알력이 작용하고 서로 기싸움도 하지만 대개는 여자들이 더욱 많은 생활의 책임을 맡게 된다.

식사 준비, 집안 청소와 빨래까지 전통적으로 여자의 일로 인식되어 있는 수 많은 집안 일을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고 소꿉놀이 하듯 사랑의 마음으로 행하게 된다.

남편의 옷을 깔끔하게 만져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어 주면 너무 고맙고 사랑스럽다.

그러다가 아이가 태어나면 너무나 늘어난 일에 당황하고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남자들은 그 때까지 잘해오던 일을 새삼스레 나누자고 하는 아내를 이해하기 싫어한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입아프게 자꾸 얘기하기도 귀찮고, 돈을 벌어오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까지도 갖는다.

아이가 없을 때야 귀찮으면 밥을 안 해 먹어도 되고,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이가 있으면 그것은 꼭 해야할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세월을 다 지내고 아이들도 엄마의 손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무렵이 되면 자신의 인생이 껍데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게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 상의 밥을 먹고 한 집에서 잠을 자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서로를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 살기도 한다.

서서히 대화의 벽이 생기고 특정 주제가 화제가 되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평생을 다투어 왔지만 풀어지지 않는 숙제들이 어디에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 소설 <도피행>의 주인공 타에코는 그런 외로운 마음을 개 포포에게 의지하면서 살아왔다.

남편을 뒷바라지 하고 두 딸을 깔끔하게 키워냈지만, 그들은 타에코의 생각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가끔은 그들은 아픈 타에코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도록 한다.

그러나 포포는 항상 그녀 곁에서 맹목적인 사랑으로 타에코를 바라본다.

그런 포포가 괴롭히는 옆집 아이를 물고만다. 커다란 골든 레트리버에게 물린 옆집 아이는 죽고 말았고, 동네 사람들과 가족들은 포포를 안락사 시키라고 한다.

자식보다 더 마음이 가는 포포를 죽게할 수 없다는 생각에 타에코는 한밤중에  무작정 포포를 데리고 가출한다.

긴 시간 동안 집안 살림만 돌본 타에코는 그 밤에 커다란 개를 데리고 갈 곳이 없다.

게다가 얼마전 수술을 한 터라 몸도 너무너무 힘들다. 그저 포포의 따뜻한 몸을 안고 잠들고 싶을 뿐이다.

후미진 산 고개를 넘고, 멀리로 떠나는 타에코와 포포의 밤길이 순탄하지 않다.

 

강아지를 기르는 입장으로 타에코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끔은 강아지의 눈을 들여다 보거나, 강아지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을 느낄 때면 그 작은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내 마음 속의 생각들도 다 눈치채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어딘지 사색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강아지의 나이로는 결코 어리지 않은 우리 앨리스는 자신의 견생을 돌아보는 것일까?

타에코가 지키고자한 것은 단지 개 포포의 목숨이 아닐 것이다.

타에코 자신의 존엄성,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타에코가 다른 사람의 의견과 관계없이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당해 보였다.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하지 않기로 했을 때, 그것은 혈연이라는 이름으로도 묶을 수 없는 더 낯선 타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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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사랑 판타 빌리지
리처드 매드슨 지음, 김민혜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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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전생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어쩐지 삶이라는 게 이번 한 번뿐이라면 너무나 억울할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해 보지도 못 했던 많은 일들,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나의 조건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시간들이 너무너무 억울하다.

그러니 꼭 나는 다음 생에도 태어나야할 것이다.

그래야, 이 생에서 못다한 일들의 한을 풀 것이 아닌가 말이다.

 

만약에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주변 정리를 할까? 가보고 싶었던 곳을 여행할까?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다 만나볼까?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할까?

 

이 소설 <시간 여행자의 사랑>의 주인공 리처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잘 나가는 방송작가인 그는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결혼한 적도 없이 혼자서 형의 집 근처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그는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게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동전을 던져서 방향을 결정하고 무작정 출발한다.

그리고 들어간 호텔에서 1890년대의 유명 여배우였던 앨리스의 사진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과연 사진만 보고도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이란 무엇보다도 정신의 화학 작용이라고 믿는 내겐 불가사의한 이야기다. 어쩌면 리처드는 75년 전에 사랑했던 앨리스의 기억을 갖고 다시 돌아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끝없는 윤회의 바퀴마냥 돌고 또 도는 것인지도 ......그래서 사진만 보고도 그녀가 자신의 필생의 사랑임을 깨듣는 것이다.)

앨리스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생각으로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다니면서 그녀를 알아가던 중,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이미 오래 전에 앨리스를 만나 적이 있음을 기억해 낸다.

20대 시절 우연히 들른 파티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았으나 그는 몰랐고 앨리스는 그 날밤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를 만난 충격으로 그리고 그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의 의문이 풀린 탓으로 그랬을 것이다.

이제 리처드는 모든 정신과 노력을 앨리스를 만나고 싶은 열망 속에 던진다.

이미 그 호텔에 도착하기 전에 들렀던 과거의 배에서 어쩐지 과거가 살아오는 느낌을 받았던지라, 리처드는 앨리스에게로 가려는 자신의 노력이 성공할 것임을 알았다.

그는 드디어 75년 전의 코로나도 호텔로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해변을 걷던 앨리스를 만난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의심없이 리처드를 받아들이고 그들은 깊은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의 사랑을 깨닫던 그 날밤 작은 동전 하나의 힘으로 리처드는 현실로 돌아오고 만다.

앨리스에게 작별의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그 후로 앨리스의 삶에 일어난 변화는 이미 리처드도 알고 있다.

 

진정 사랑이란 국경도 시간도 뛰어 넘는 것일까?

사랑의 유효기간이 18개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세상은 모든 것을 수치로만 계산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시들해지는 시간이 대체로 18개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이 어찌 서로에 대한 호감이나 떨림만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편안함, 신뢰 그리고 함께할 미래를 꿈꿀 수 있기에 동물과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닐까?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그래고 사랑만은 우리에게 희망찬 단어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소설에 드러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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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만드는 소년 - 바람개비가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폴 플라이쉬만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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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결과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은 - 선하든, 악하든, 무심하든 - 보이지 않는 곳으로 물결치듯 퍼져나간다.        

                                                      

                                              본문 103쪽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우리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는 그 결과를 염려하고 고심한다.

그리하여 원하는 결과를 의도한 행동들을 하게 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그것이 어른들이 행동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때로는 그래서 어른들은 안전하고 원만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정해진 대로 보수적으로 행동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거나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일들을 삼가게 된다.

아마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고, 삶의 경험상 책임질 수 없는 행동들이 가지고 오는 결과가 기득권을 포기할 만큼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늙어가는 자신을 인식하지만 스스로 위안한다. " C'est la vie!"

 

아직은 세상의 때가 덜 묻고 뭐든지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만,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청소년들은 그런 어른들의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삶에 대한 태도가 경직되어 있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어른들의 보호를 받는 자신의 삶이 짜증스럽고 싫을 수도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흔히 '일탈" 행위를 하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소통의 부재는 어른들에게도 철저한 고독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세상이 절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 소설 <바람을 만드는 소년>인 브렌트 역시 그러했다.

부모와의 대화의 단절, 잦은 이사로 깊은 우정을 경험하지 못해서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 없던 브렌트는 음악과 고급 의상과 차에 심취해 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라고 믿고, 스스로를 멋진 소년으로 만들기 위해서 옷을 고르고 귀고리를 단속하고 여자 친구를 고른다. 남에게 그럴듯 하게 보이기 위한 행동들이다.

어느 날, 파티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끝났다고 느낀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음주 운전 도중에 핸들을 놓아 버린다. 그러나, 죽은 것은 그가 아니라 엉뚱한 소녀이다. 자신과는 다르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세상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소녀를 죽게 만들고 그는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브렌트는 감옥에 가는 대신 미국의 네 귀퉁이에 바람개비를 만들어 세

우기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기 가족처럼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브렌트는 그 여행 속에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지루하기만 했던 별자리 공부도 스스로 하게되고 바람개비를 만드는 실력 역시 일취월장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장한 것은 브렌트 자신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설 자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브렌트는 끊임없는 사색과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간다.

또한 브렌트가 만든 바람개비들은 브렌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한다.

그 아이 중의 하나가 한국인 입양아라는 점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아이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바람개비는 그 아이에게 휴식을 준다. 부모의 끝없는 욕심에 지쳐있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브렌트가 만든 것은 그저 바람개비 하나가 아니었다.

 

" 그는 한 날이 움직이면 다른 날도 따라서 움직이게끔 프로펠러 날을 서로 맞물리게 만들어 놓았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자신이 만든 네 개의 바람개비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 되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했다. 이 세상 역시 바람개비와 같다. 보이지 않게 연결된 무수한 부품들이 숨겨진 크랭크축과 연결봉들을 통해 행동에서 행동으로, 지구 이곳에서 저곳으로, 수세기에 걸쳐 이어진다."

                                   

                                                                                본문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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