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여자로서 주부로서 엄마로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에서든 어려운 일인 것은 확실하다.

때로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옥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서 행동하기도 하고,

자신의 모성을 의심하며 괴로워 하기도 한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날리며 거리를 걷고 음악을 듣고 시와 인생을 이야기하던 그녀.

혹은 갈래머리를 하고 뺨을 부풀리며 천진한 웃음을 짓던 소녀.

그녀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이를 낳고 키우며 끊임없는 노동 속에서 하루를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라는 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조차 잊고 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소설 <알링턴 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는 런던 근교  가상의 중산층 베드타운인 알링턴 파크에 살고 있는 기혼 여성 줄리엣, 어맨다, 솔리, 메이지, 크리스틴의 하루를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한 모범생이던 줄리엣은 결혼 후 알링턴 파크에서 별 특별할 것 없는 여교사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힘들어 한다. 그녀는 일주일 중 하루, 남편에게 아이들을 찾아오게 하고 자신은 학교의 문학반 수업을 진행하면서 거기에서라도 무엇인가 의미를 찾고 싶어하지만 남편 베네딕트와는 소통이 단절되어 있다.

 

"자신이 장을 보지 않으면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바나비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베네딕트가 다시 직장에 나가버리고 자신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리해야할 집안 일들이 너무 많아서, 베네딕트에게 부탁하느니 직접 하는 게 더 편하겠다고 생각하다보니 어느덧 일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땐 그녀도 많이 놀랐고, 거의 분노를 느꼈다. "

                                                        본문 55-56쪽

 

내 몸을 움직여야만 식구들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생각났다.

처음에는 아이에 대한 사랑에 겨운 감정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이 어느 새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었을 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그 부당함이라니.

그것은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조차 없다. 어쩐지 자신의 모성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줄리엣은

 

"베네치아의 돌벽이 짙은 색 물살을 견디고, 또한 벽 사이를 흐르는 물이 자신을 가두는 돌벽을 견디며, 그렇게 영원히 서로 맞닿은 채 함께 존재하는 벽과 물의 관계가 어떤 이름으로 불리며, 하나의 실존, 일종의 아름다움일 수 있는 거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줄리엣도 새로 시작되는 하루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문 31쪽

 

세상의 어느 누구도 당사자가 아닌 한 타인의 삶에 대해서 어떤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될 것이다.

어머니로서 규정되어지는 삶이 때로는 타고난 모성조차도 위협할 만큼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아이를 낳고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모든 것을 헌신하고도 더 못 주어 서운한 것이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그 어머니도 한 때는 동그란 볼을 가진 생각 많은 소녀였고, 드넓은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펼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알아야한다.

어머니에게도 '엄마'라는 호칭 이전에 그녀만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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