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 불멸의 사랑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다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그 영원이 지겨워질 때도 올까?

영원히 살기를 신께 간구했던 어떤 이는 늙은 몸으로 죽지도 못하는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찬란한 젊음의 시절로 영원을 기원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여기저기 쑤시는 아픈 몸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없는 지리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러하리라.

어찌 영원히 변치않는 '황금의 꽃'같은 맹세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환상이 일상이 될 때, 영원한 사랑의 맹세는 한 조각 종이가 될 수도 있다. 영원히 두 사람이 사랑을 지키면서 살 때, 그 사랑의 무게 중심은 이미 처음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그 곳은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환한 공원이다. 잔디 위에 공을 차는 아이들과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이 웃음 짓는 곳, 벤치엔 책을 읽는 사람들, 유모차를 세우고 이야기에 빠진 여인들이 있는 그런 공원이다. 그 곳에선 한 잔의 커피가 완벽한 오후를 만들고, 뜨거운 불꽃보다는 은근한 온기가 서로를 따스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윌은 그러하지 못했다. 윌은 자신의 두려움으로 영원의 사랑인 트루디를 잃었다.

 전쟁과 무자비한 사람들에 의한 충격과 공포로 통찰력을 잃은 트루디는 윌의 도움을 구했으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윌의 망설임은 트루디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쟁 후 평생 트루디의 그림자를 쫓는 윌은 우연히 클레어를 알게된다. 트루디의 향기가 나는 여자, 그러나 또 다른 여자 클레어는 윌에게 어떤 의미일까? 소설의 두 축인 클레어와 트루디의 사이에는 윌이 있다.

 1942년 홍콩에는 전쟁이 닥친다. 영국의 식민지로 영국인들은 고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생활을 하고, 중국인들은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마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침입으로 홍콩의 구조는 큰 충격을 받고 영국인들은 집단 수용소에 수감된다. 은행장이 텃밭을 가꾸고, 날마다 화려한 디너파티를 열던 대부호의 아내는 적십자 구호품 속의 초콜릿을 가지고 다른 여자와 다툰다. 혼혈인 트루디는 수용소에 갇히지 않았으나 일본인 장교에 협조를 하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녀가 홍콩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윌때문일까?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밖에서 윌을 돕고 싶어서였을까? 위험에 빠진 트루디는 윌에게 자기 나름의 도움을 청했으나, 단 한 번의 시도였다. 윌에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짧은 망설임에서 트루디는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를 고민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 트루디에게는 큰 의미였다.

 1952년 홍콩은 더웠지만, 흥미로운 곳이라고 클레어는 생각했다.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남자 마틴과 결혼을 하고, 그를 따라 홍콩으로 온 클레어는 마치 서머셋 모옴의 소설 <인생의 베일>의 키티와 같았다. 그녀는 키티처럼 홍콩의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다. 그러다가 아멜리아의 소개로 중국인 부자인 빅터 첸의 집에 피아노 교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 곳에는 정말로 낯선 영국인 운전사 윌이 있었다.  소설은 윌과 트루디, 윌과 클레어를 중심으로 교차한다.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과 가장 참혹한 시절을 트루디와 함께한 윌은 아직도 문을 잠그지 못한다. 이사를 하지도 못한다. 언젠가 트루디가 돌아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윌에게 클레어는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윌에게 끌리는 클레어는 결국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떠난다.

 만약 트루디가 윌과 영원히 함께 했다면 윌의 마음에 남는 한은 없을까? 만약 클레어와 윌이 함께라면 클레어는 윌을 영원히 사랑했을까?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은 남은 시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사랑의 무게중심을 햇빛 찬란한 오후의 공원으로 함께 옮기지 못한 아쉬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태자의 마지막 키스 역사 속으로 떠나는 비엔나 여행 2
프레더릭 모턴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드는 의문 하나, 메리 베체라는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황태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아니면 황태자를 최후에 차지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남기고 싶은 허영때문에?

메리 베체라라는 인물은 책의 중반에 등장한다.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한 지속적이고 치밀한 노력을 하는 비엔나의 패션리더였다. 출신은 그다지 높은 신분이 아니지만, 아름다운 용모와 지략적인 머리, 그리고 딸과 비슷한 소망을 가진 어머니 덕분에 비엔나의 유명인사였던 메리베체라는 황태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의 동반 자살 계획을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것도 17세의 어린 나이에 말이다. 무엇이 메리로 하여금 그런 선택을 하게 했을까? 메리는 황태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했고, 죽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을 남겼지만(“사랑하는 엄마. 나를 용서해주세요. 사랑을 멈출 수 없었어요. 알란트 교구 묘지에 나란히 묻히기로 우린 약속했어요. 삶보다 죽음이 더 행복해요. 메리로부터.” - 메리의 유서), 그 동안의 메리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참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선택이었다. 황태자와의 비밀스런 몇 번의 만남이 죽음을 함께할 결심을 할 정도로 깊은 사랑을 불러왔을까? 혹 비엔나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이고픈 소망때문이었다면 그 소망은 슬프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메리의 죽음은 비밀스럽게 처리되었고, 제국의 사람들은 그녀가 황태자와 함께 자살했다는 것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알던 사람들이 그 사건에 대해서 코멘트할 겨를도 없이 말이다. 단지 한 가지 당시 비엔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유혹에 빠졌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유가 될 것인가? 이것 역시도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욕심 많고 꿈 많았을 어린 소녀의 심리가 궁금하다.

 황태자 루돌프는 사실 함께 자살할 사람이 굳이 메리가 아니라도 관계없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는 메리 이전에 사귀던 '스위트 걸' 미치에게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황태자의 신분이지만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서 아무런 실질적 권한을 갖지 못했던 루돌프는 멋진 용모와 세련된 매너로 오스트리아 백성은 물론 유럽의 다른 왕가들에서도 인기인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제외하고 돌아가는 세상은 루돌프의 손과 발을 묶어놓았고 심지어 조롱을 하기도 한다. 루돌프 황태자는 스스로 제국의 발전과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서 애를 쓰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의 상심은 깊어갔다. 어려운 그를 위로하는 것은 사냥과 글쓰기였지만, 1889년에 들어서는 그는 신문에 기고하지도 않았고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가 꿈꾸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가 죽지 않았다면 과연 제1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동안 유럽의 작은 나라라고만 생각했던 오스트리아의 격변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회였다. 단지 문체가 좀 정돈이 안 되어서 읽는데 몰입이 힘든 편이었으며, 군데군데의 오타와 비문은 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했다. 좀 더 세심한 점검은 책에 대한 믿음을 배가시킬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즈니스 성공맛집 - 맛의 달인 중앙일보 유지상 기자의
유지상 지음 / 리스컴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받기 전까지 참말로 기대했었다.

 사람이 살면서 뭐 그리 크게 영화를 바라겠나 하면서 (누구는 하루에 네끼를 먹겠으며 좋은 걸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아둥바둥살까- 하는 태평한 생각임을 밝힌다.) 맘 편하고, 속 안 썩고, 읽고 싶은 책 맘껏 읽으면서 살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요즘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으면서 물건에 욕심을 내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인생인가를 공감하던 차에 더욱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 책 <비즈니스 성공 맛집>을 공부하면 이 책에 소개된 집들을 살살 찾아다니면서 맛난 것도 좀 먹고, 책에 나오는 것처럼 같은 기분인지도 좀 느끼면서 한가하게 살자 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순간 좀 실망한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우선 책의 거의 모든 맛집이 수도권 중심이라는 것이다. 지방은 뒤에 아주 작게 겨우 가게 이름과 주소 정도만 나와 있었다. 그것도 한 페이지에 여러 지방을 묶어서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이고(그래서 요즘 시끄럽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저자의 주 활동지가 서울이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이 단지 서울 사람만 볼 책은 아니기에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지방만 해도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로 맛있는 가게들이 참 많다. 저자도 소개한 가게의 칼국수나 두부 두루치기도 그렇고, 토속 음식은 아니지만 서로들 알고 있는 맛난 가게들이 많다. 작은 가게 밖으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정말 그런 가게들이 한 군데라도 소개되기를 기대했는데, 참말로 아쉬운 일이었다. 서울엔 왜 그렇게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아서 저자가 우리 지역에까지 올 시간을 못 내게 만든 것이냔 말이다.

 또, 앞부분부터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은 한 끼 식사비로 도저히 지출할 수 없는 금액의 식당들이 즐비했다. 깔끔한 상차림에 전통적인 맛이라는 설명과 멋진 가게 사진은 나를 홀리기에 충분했으나 메뉴의 가격은 갑작스레 나를 초라한 기분에 들게했다. 저녁 한 끼에 10만원짜리를 먹기엔 좀 어려운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물론 저자는 '최고의 접대 품격 맛집'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여서 아주아주 특별한 날에만 갈 수 있다는 듯한 느낌을 풍기기는 했다.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뒤로 갈수록 소박하고 정겨운 가게들,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들러볼 수 있는 그야말로 만만한 식당들도 소개가 되어 있었지만, 처음에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가끔씩 서울에 간다. KTX를 타면 금방 도착하는 서울(심지어 책을 반 권도 못 읽을 정도로)에 이런 근사한 곳들이 많다. 급히 볼 일을 보고 내려와야 해서, 혹은 길을 몰라서 그저 대충 역에서 식사를 하거나,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먹곤 한다. 한 번 친구를 만나서 좀 한가하게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친구가 근무하는 관청의 앞에 있는 작은 음식점이었다. 가게에 온통 와인과 책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식사 시간이 매우 행복했다. 와인 한 잔과 파스타 한 접시, 그리고 한 그릇의 요리일 뿐이었지만, 오랜 만에 만난 어린 시절의 친구와 여행 얘기, 책 얘기로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그 날은 아주 늦게 귀향을 했고, 다음 날 출근하기가 어려웠었다. 나에겐 너무나 멋진 가게라서 혹시 책에 나와있나 살펴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맛집이다. 다음에 올라갈 때는 이 책을 가지고 가려고 한다. 이왕이면 이 책에 나와있는 집들을 하나씩 들러보려고 말이다.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 이 책을 주어야지. 나대신에 들러보고 얘기해 달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전아리 지음 / 포럼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재미없게 다니던 시시한 직장에서 짤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난다. 물론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실 그 자리에 꼭 그 여자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있었어도 삶은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지금 그는 너무도 허전하다. 어쩌면 진실로 아내를 사랑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를 헤매던 그는 토끼 분장옷을 발견한다. 입어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하다. 그는 그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가 토끼라는 생각을 한다.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낸다. 그동안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적은 돈을 벌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한다. 사회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거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재감이 없던 시절보다 토끼로 살아갈 때 더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회 안으로 그를 이끈다. 포르노 야설 작가 오세리, 미혼모가 되기로 결정한 정은, 소심한 일러스트레이터 북극곰과 생오이만 먹는 걸로 먹고 사는 오이할아방등 독특하지만 소외된 캐릭터들과의 애정어린 관계와 그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어쩌면 작가가 진정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은 아닐까?

 가볍게 읽을 만하지만 오래도록 여러가지로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연배에 비해서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까 싶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 구실 못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린 나이에 이토록 세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어른이라고 해서 내세울 것도 없는 가보다

 구양수는 글을 잘 쓰는 비결로 다독, 다작, 다상량을 들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어째서 쓰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앞서는가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 다음에 많이 써 보아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알고보니 원래 구양수가 제시한 것은 다문(多聞), 다독(多督), 다상량(多想量)이었다. 많이 듣고 읽고 생각하는 것이 글을 잘쓰는 비결임이 더 옳은 것 같다.

 이 소설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의 작가 전아리씨를 생각하면 '소년등과'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큰 상을 받고 등단한 그야말로 '소년등과'의 증거가 아닌가. 그의 수상 경력은 이미 고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문학 영재라는 말을 들으며 저작 활동을 해 왔고 그 덕분에 대학도 남들보다는 쉽게 진학한 편이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오로지 수능하나를 목표로 하고 3년간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그의 인생은 어쩌면 더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그 덕에 유명해지고 남들보다 더 쉽게 간다고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겪어봤듯이 글을 쓰는 작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천형(天刑)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가슴 속의 울렁임을 참지 못해서 글을 쓰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글 쓰는 사람은 늘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들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또한 글 쓰는 것일 것이다. 괴롭지만 가야하는 길 말이다. 아마 전아리 작가 역시도 그럴 것이다. 그의 성취가 몹시도 빛나지만 그 뒤의 숨은 노력을 우리는 간과한다. 그 숨은 노력의 대부분이 아마도 다문(多聞), 다독(多督),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이 아닐까?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재미없게 다니던 시시한 직장에서 짤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난다. 물론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기실 그 자리에 꼭 그 여자가 아니라 다른 여자가 있었어도 삶은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지금 그는 너무도 허전하다. 어쩌면 진실로 아내를 사랑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를 헤매던 그는 토끼 분장옷을 발견한다. 입어보니 어쩐지 마음이 편안하다. 그는 그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기가 토끼라는 생각을 한다.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낸다. 그동안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적은 돈을 벌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한다. 사회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거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재감이 없던 시절보다 토끼로 살아갈 때 더 많은 이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고 사회 안으로 그를 이끈다. 포르노 야설 작가 오세리, 미혼모가 되기로 결정한 정은, 소심한 일러스트레이터 북극곰과 생오이만 먹는 걸로 먹고 사는 오이할아방등 독특하지만 소외된 캐릭터들과의 애정어린 관계와 그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은 어쩌면 작가가 진정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은 아닐까?

 가볍게 읽을 만하지만 오래도록 여러가지로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었다. 작가의 연배에 비해서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까 싶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도 사람 구실 못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린 나이에 이토록 세상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어른이라고 해서 내세울 것도 없는 가보다

 구양수는 글을 잘 쓰는 비결로 다독, 다작, 다상량을 들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어째서 쓰는 것이 생각하는 것보다 앞서는가 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 다음에 많이 써 보아야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알고보니 원래 구양수가 제시한 것은 다문(多聞), 다독(多督), 다상량(多想量)이었다. 많이 듣고 읽고 생각하는 것이 글을 잘쓰는 비결임이 더 옳은 것 같다.

 이 소설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의 작가 전아리씨를 생각하면 '소년등과'라는 말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큰 상을 받고 등단한 그야말로 '소년등과'의 증거가 아닌가. 그의 수상 경력은 이미 고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문학 영재라는 말을 들으며 저작 활동을 해 왔고 그 덕분에 대학도 남들보다는 쉽게 진학한 편이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이 오로지 수능하나를 목표로 하고 3년간 고생하는 것에 비하면 그의 인생은 어쩌면 더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그 덕에 유명해지고 남들보다 더 쉽게 간다고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겪어봤듯이 글을 쓰는 작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천형(天刑)이라는 말까지 있을까. 무언가를 쓰고 싶은 가슴 속의 울렁임을 참지 못해서 글을 쓰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글 쓰는 사람은 늘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들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또한 글 쓰는 것일 것이다. 괴롭지만 가야하는 길 말이다. 아마 전아리 작가 역시도 그럴 것이다. 그의 성취가 몹시도 빛나지만 그 뒤의 숨은 노력을 우리는 간과한다. 그 숨은 노력의 대부분이 아마도 다문(多聞), 다독(多督),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입가에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이건 뭐 조선 과학 수사대 별순검의 가정판도 아니고, 어설프고  무능하고 착하디 착한 그래서 깨물고 싶게 귀여운 우리 공생원님이 온갖 복잡한 생각을 머리에 이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나이 마흔 다섯에 태기라니 공생원은 기쁘지만은 않다. 비록 의료 사고를 내고 달아나긴 했지만 그래도 용하다던 서의원의 진찰에 의하면 이태껏 아이가 안 들어선 원인이 공생원 자신에게 있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래 마음을 비우고 살아왔건만 이게 웬 날벼락인가 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큰아버지 덕으로 어렵게 살던 공생원은 장가 하나 잘 들어 처가덕을 좀 보았다. 그나마 집칸이나 차지하고 남에게 아쉰소리 안 하고 사는 것도 모두 마나님의 덕이다. 그러면 어쩐다.

 공생원은 마나님의 주변에 있는 남자들을 용의선상에 올려본다. 마나님의 배꼽 수술을 해 준 의원 채만주, 공생원의 오랜 친구인 얌체 참봉 박기곤, 마나님이 좋아하는 두부를 만날 가지고 골목을 드나드는 두부장수 강자수, 착하고 든든하기로는 둘째가면 서러운 노비 돈이, 성질 머리 더러운 알도 임술증, 마나님의 소꼽친구인 저포전의 황용갑, 처팔촌 최명구, 악소배 백달치. 이들 중 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면면을 살핀다.

 이들의 속을 훔쳐보는 공생원의 눈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다들 도포자락이나 휘날리며 수염 쓰다듬으며 살았을 성 싶은 조선시대. 여자들은 규방에 꽁꽁 숨어서 자수나 놓고, 남자들은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임금 앞에서 조아리며 당쟁이나 일삼았을 듯 한 그런 시대라는 편견은 우리가 본 사극의 배경이 대동소이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을 타고 다니면 말잡이가 있었을 것이고, 아가씨가 규중에서 수를 놓으면 그 옷을 빨아 바느질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먼나라만 같았던 15세기 우리 선조들의 삶을 마치 옆집 이야기 하듯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소심하기 짝이 없는 착한 공생원이나 배포 큰 마나님,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은 지금 우리 동네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살아있는 인물이다.

  작가의 전작인 <달을 먹다>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다. 전작이 고아한 품위를 가진 평시조 같았다면 이 소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은 질펀하고 해학적인 사설시조와 같다고나 할까? 그 중 무엇이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