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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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불멸의 사랑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다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그 영원이 지겨워질 때도 올까?

영원히 살기를 신께 간구했던 어떤 이는 늙은 몸으로 죽지도 못하는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찬란한 젊음의 시절로 영원을 기원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여기저기 쑤시는 아픈 몸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 없는 지리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그러하리라.

어찌 영원히 변치않는 '황금의 꽃'같은 맹세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환상이 일상이 될 때, 영원한 사랑의 맹세는 한 조각 종이가 될 수도 있다. 영원히 두 사람이 사랑을 지키면서 살 때, 그 사랑의 무게 중심은 이미 처음의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그 곳은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환한 공원이다. 잔디 위에 공을 차는 아이들과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이 웃음 짓는 곳, 벤치엔 책을 읽는 사람들, 유모차를 세우고 이야기에 빠진 여인들이 있는 그런 공원이다. 그 곳에선 한 잔의 커피가 완벽한 오후를 만들고, 뜨거운 불꽃보다는 은근한 온기가 서로를 따스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윌은 그러하지 못했다. 윌은 자신의 두려움으로 영원의 사랑인 트루디를 잃었다.

 전쟁과 무자비한 사람들에 의한 충격과 공포로 통찰력을 잃은 트루디는 윌의 도움을 구했으나,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윌의 망설임은 트루디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쟁 후 평생 트루디의 그림자를 쫓는 윌은 우연히 클레어를 알게된다. 트루디의 향기가 나는 여자, 그러나 또 다른 여자 클레어는 윌에게 어떤 의미일까? 소설의 두 축인 클레어와 트루디의 사이에는 윌이 있다.

 1942년 홍콩에는 전쟁이 닥친다. 영국의 식민지로 영국인들은 고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수준의 생활을 하고, 중국인들은 그들의 시중을 드는 아마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침입으로 홍콩의 구조는 큰 충격을 받고 영국인들은 집단 수용소에 수감된다. 은행장이 텃밭을 가꾸고, 날마다 화려한 디너파티를 열던 대부호의 아내는 적십자 구호품 속의 초콜릿을 가지고 다른 여자와 다툰다. 혼혈인 트루디는 수용소에 갇히지 않았으나 일본인 장교에 협조를 하면서 목숨을 부지한다. 그녀가 홍콩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윌때문일까? 수용소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밖에서 윌을 돕고 싶어서였을까? 위험에 빠진 트루디는 윌에게 자기 나름의 도움을 청했으나, 단 한 번의 시도였다. 윌에게 결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짧은 망설임에서 트루디는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를 고민에 빠뜨리지 않는 것이 트루디에게는 큰 의미였다.

 1952년 홍콩은 더웠지만, 흥미로운 곳이라고 클레어는 생각했다.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남자 마틴과 결혼을 하고, 그를 따라 홍콩으로 온 클레어는 마치 서머셋 모옴의 소설 <인생의 베일>의 키티와 같았다. 그녀는 키티처럼 홍콩의 여러가지를 배우게 된다. 그러다가 아멜리아의 소개로 중국인 부자인 빅터 첸의 집에 피아노 교사로 취직하게 된다. 그 곳에는 정말로 낯선 영국인 운전사 윌이 있었다.  소설은 윌과 트루디, 윌과 클레어를 중심으로 교차한다. 인간으로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과 가장 참혹한 시절을 트루디와 함께한 윌은 아직도 문을 잠그지 못한다. 이사를 하지도 못한다. 언젠가 트루디가 돌아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윌에게 클레어는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윌에게 끌리는 클레어는 결국 모든 것에서 손을 놓고 떠난다.

 만약 트루디가 윌과 영원히 함께 했다면 윌의 마음에 남는 한은 없을까? 만약 클레어와 윌이 함께라면 클레어는 윌을 영원히 사랑했을까?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라는 것은 남은 시간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사랑의 무게중심을 햇빛 찬란한 오후의 공원으로 함께 옮기지 못한 아쉬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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