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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이오니아해(海)의 작은 이타케섬의 왕자이며 페넬로페의 남편이다. 트로이 전쟁에의 출진을 처음에는 미친 척하고 거부하였으나, 일단 전쟁에 참가하자 그리스군(軍)의 패주(敗走)를 저지하는 등 뛰어난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후에 목마(木馬) 속에 병사를 숨기는 꾀를 써서 트로이를 함락시켜 헬레네를 구출하였으나, 고향으로의 개선길에 거인 폴리페모스에 의해 동굴에 갇히기도 하고, 마녀 키르케에 의하여 부하가 돼지로 변하기도 하고, 세이레네스의 요염한 노래의 유혹을 받는 등 위험을 무릅쓰면서 20년간의 방랑 끝에 겨우 고향에 다다랐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우리의 오디세우스 사드사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보다 더 슬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20년만에라도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자리를 찾았으나, 사드사드는 긴 방황과 고통과 위협과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 도착한 런던의 빈민가에서 아직도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레일라와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사드가 그렇게 슬픈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이라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의 탄생이란 마치 복권 추첨과 같다. 누구는 운이 좋아 행운의 숫자를 뽑지만 누구는 억세게 운이 나쁘게도 불행의 숫자를 뽑아들게 된다. 탄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질 뿐이어서 처음으로 돌아갈 기회라고는 두 번 다시 없다.” - 본문 7쪽
불행하게도 이라크에서 태어난 사드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도서관 사서인 부드러운 손을 가진 아버지는 네 딸의 아래로 태어난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그에게 아들은 그야말로 사드사드였다. 아랍어로 ‘희망’이라는 뜻의 ‘사드’는 우연히도 영어로는 ‘슬픔’이란 의미이다. 아버지는 사랑의 이름으로 지어주었지만 어쩌면 사드의 이름에는 그의 운명이 내재(內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트당에 의해서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몰래 집으로 들여와서 지하에 비밀 도서실 ‘미니바벨탑’을 지은 아버지, 그리고 그 곳에서 금지된 지식들을 마음껏 흡수한 아들. 그들의 대화는 늘 고도의 은유와 문학적 상징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 부자의 삶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불행한 이라크의 상황은 사드의 매형들과 조카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누나와 어머니와 사드의 삶은 힘겹기만 했다. 어머니는 사드에게 이라크를 떠날 것을 권유했다. 이라크에서는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하루의 식량도 구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사드에게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보내주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아마도 너라도 외국에 나가서 좀 더 편히 살라는 뜻이었을 게다. 때때로 사드에게 나타나서 삶의 지혜를 주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이라크를 탈출한 사드는 현실이 그가 생각하는 것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방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독재에서 해방시켰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드는 난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 된 사드는 이집트에서 알게된 친구 붑과 함께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 밀항선을 타고 겨우 몰타에 도착한다. 몰타에서 사드는 자신을 버린다. 그가 신분증을 갖고 있는 한 이라크로 추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희망은 오로지 레일라가 말한 런던으로 가는 것이다.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던 시칠리아에서 떠난 이유도 프랑스의 안전한 삶을 버린 이유도 그것이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는 오로지 런던에 가고자 했다. 아무리 비인간적인 처우도 외로움도 굶주림과 고통도 그의 바람을 꺾지는 못했다. 그러나 런던에서 그는 아직도 방황한다.
책의 곳곳에 단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이 드러난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취급을 받는 그들은 비단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우리가 사는 이 곳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책의 맨 처음에 만난 이 문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간명하게 대신하고 있다.
인간에게 이방인은 비인간뿐이다. - 장 지로두 (Jean Giraudoux, 프랑스의 극작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