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포스터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1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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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엘렌을 만나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책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가 떠올랐다. 내용과는 연관성이 없지만, 엘렌의 힘겨운 삶이 마치 단련되는 강철을 보는 듯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어린 엘렌에게 아버지는 덩치만 큰 인간 장난감같은 존재였다. 아픈 엄마를 괴롭히기만 하는 술주정뱅이인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엘렌은 늘 방법을 궁리하곤 했다. 독거미를 풀고 아빠가 죽으면 슬프고 넋나간 표정을 지으리라 생각도 한다. 몸이 아파서 엘렌을 돌봐줄 수 없던 엄마는 어느 날 잠을 자다가 하늘 나라로 가고 만다.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엘렌은 혼자서 살아간다. 아버지에게 오는 돈봉투에서(이 돈은 엘렌의 외할머니가 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무능한 아버지의 의사와 관계없이 삼촌들이 그 땅을 판 모양이었다.) 약간의 돈을 꺼내어 공과금을 보내고 냉동식품을 사다가 먹으면서 단 하나뿐인 친구 스타레타와 논다. 아버지가 싫어서 견딜 수 없을 때, 아버지가 밀쳐서 멍이 들었을 때 엘렌은 스타레타의 집에 가지만 그 집에서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스타레타가 흑인이기 때문이다. 남부에서 자라고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한 엘렌은 흑인의 음식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몸에 든 멍을 담임선생님이 보시고 엘렌은 미술선생님인 줄리아의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술에 취한 채 아버지가 죽고 엄마의 엄마(엘렌은 외할머니라고 절대 부르지 않는다.)는 엘렌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도록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 어른들은 한 번도 엘렌에게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 지 묻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생각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엘렌을 보낼 뿐이었다. 엄마의 엄마는 엘렌을 아빠를 닮았다면서 괴롭혔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돌봐 준 사람은 엘렌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엘렌은 이모의 손에 맡겨진다. 그 곳에서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던 엘렌은 스스로 살 곳을 찾아간다. 엄마라고 부를 수 있고, 언제나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서 엘렌을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을 스스로 찾아낸다. 아마도 엘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른이 될 것이다. 스스로 단련된 강철처럼 말이다.

  너무나 조숙하고 말짱한 엘렌은 어린아이지만 강하고 굳세게 자신을 지킨다. 엘렌의 소리만으로 그녀의 삶을 짐작하고 모든 것이 엘렌의 판단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엘렌은 엘렌 스스로도 알지못하는 마음 속의 그 커다란 상처때문에 화요일마다 그를 만나서 상담을 해야하는 것일 것이다.

 세상의 어른들은 너무도 독선적이어서 아이들의 생각을 무시하곤 한다. 자신도 어린아이 시절이 있었으면서 말이다. 나 역시도 어린 아이일 적에 스스로 다 자란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던가. 그때보다 지금이 더 현명하다고 단언할 자신은 조금도 없다. 때때로 어른들은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할 지도 모른다. "너를 위해서." 라고 말하면서 아이에게 행하는 모든 것들이 진정 아이가 원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할 일이다. 때때로 "너는 몰라도 된다."는 어려운 어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도 말짱하게 이해하고 있을 찌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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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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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디세우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다. 이오니아해(海)의 작은 이타케섬의 왕자이며 페넬로페의 남편이다. 트로이 전쟁에의 출진을 처음에는 미친 척하고 거부하였으나, 일단 전쟁에 참가하자 그리스군(軍)의 패주(敗走)를 저지하는 등 뛰어난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후에 목마(木馬) 속에 병사를 숨기는 꾀를 써서 트로이를 함락시켜 헬레네를 구출하였으나, 고향으로의 개선길에 거인 폴리페모스에 의해 동굴에 갇히기도 하고, 마녀 키르케에 의하여 부하가 돼지로 변하기도 하고, 세이레네스의 요염한 노래의 유혹을 받는 등 위험을 무릅쓰면서 20년간의 방랑 끝에 겨우 고향에 다다랐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우리의 오디세우스 사드사드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보다 더 슬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20년만에라도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자리를 찾았으나, 사드사드는 긴 방황과 고통과 위협과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으면서 도착한 런던의 빈민가에서 아직도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레일라와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사드가 그렇게 슬픈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이라크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의 탄생이란 마치 복권 추첨과 같다. 누구는 운이 좋아 행운의 숫자를 뽑지만 누구는 억세게 운이 나쁘게도 불행의 숫자를 뽑아들게 된다. 탄생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질 뿐이어서 처음으로 돌아갈 기회라고는 두 번 다시 없다.” - 본문 7쪽



 

 불행하게도 이라크에서 태어난 사드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도서관 사서인 부드러운 손을 가진 아버지는 네 딸의 아래로 태어난 아들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그에게 아들은 그야말로 사드사드였다. 아랍어로 ‘희망’이라는 뜻의 ‘사드’는 우연히도 영어로는 ‘슬픔’이란 의미이다. 아버지는 사랑의 이름으로 지어주었지만 어쩌면 사드의 이름에는 그의 운명이 내재(內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바트당에 의해서 금서로 지정된 책들을 몰래 집으로 들여와서 지하에 비밀 도서실 ‘미니바벨탑’을 지은 아버지, 그리고 그 곳에서 금지된 지식들을 마음껏 흡수한 아들. 그들의 대화는 늘 고도의 은유와 문학적 상징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 부자의 삶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불행한 이라크의 상황은 사드의 매형들과 조카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누나와 어머니와 사드의 삶은 힘겹기만 했다. 어머니는 사드에게 이라크를 떠날 것을 권유했다. 이라크에서는 아무리 힘들게 일을 해도 하루의 식량도 구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사드에게 외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보내주면 되지 않겠냐는 말을 했지만, 아마도 너라도 외국에 나가서 좀 더 편히 살라는 뜻이었을 게다. 때때로 사드에게 나타나서 삶의 지혜를 주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이라크를 탈출한 사드는 현실이 그가 생각하는 것과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방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독재에서 해방시켰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드는 난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 된 사드는 이집트에서 알게된 친구 붑과 함께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 밀항선을 타고 겨우 몰타에 도착한다. 몰타에서 사드는 자신을 버린다. 그가 신분증을 갖고 있는 한 이라크로 추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희망은 오로지 레일라가 말한 런던으로 가는 것이다.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던 시칠리아에서 떠난 이유도 프랑스의 안전한 삶을 버린 이유도 그것이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는 오로지 런던에 가고자 했다. 아무리 비인간적인 처우도 외로움도 굶주림과 고통도 그의 바람을 꺾지는 못했다. 그러나 런던에서 그는 아직도 방황한다.

 

 책의 곳곳에 단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이 드러난다.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취급을 받는 그들은 비단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 우리가 사는 이 곳에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책의 맨 처음에 만난 이 문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간명하게 대신하고 있다.



 

 인간에게 이방인은 비인간뿐이다. - 장 지로두 (Jean Giraudoux, 프랑스의 극작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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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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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좀 갸우뚱하면서 읽은 게 사실이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와 어린 딸을 둔 남편의 처신으로는 댄의 행동에 이해가지 않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인 카르멘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그녀는 고통과 싸우고 항암제에 시달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과 이별해야하는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 아기인 루나는 늘 돌봐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댄은 암에 걸린 아내를 둔 남편의 괴로운 심정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구원하느라 바쁜듯 보였다. 아마도 우리의 의식과는 아주 많이 다른 네덜란드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곳 암스테르담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고 그들은 마약을 허용하며 그리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곳이 아닌가 말이다. 아파서 몸부림치는 아내를 두고도 그는 해소할 수 없는 그의 욕망을 돌보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며 술집으로 클럽으로 돌아다니며, 카니발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플로리다로 여행을 한다. 그의 친구들 역시 여행지에서 혹은 페스티발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걸 보면 그런 것은 그 나라에서는 일상인가 보다. 그러나, 내게는 조금은 낯설고 거북하기까지 했다. 특히 그가 로즈에게서 위안을 찾고 카르멘을 끊임없이 속이는 것은 그에게조차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날마다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고, 사랑하는 아기 루나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 괴로운 항암치료를 견디고, 남편을 힘들게 하는 것을 알고, 그가 가끔은 혹은 자주 자신을 속인다는 것을 아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조금만 아프고 힘들 때 가족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인데, 카르멘은 도대체 어떻게 지냈을까?
 그러나 그들은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웃었다. 아마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래도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디고 그리고 아름답게 최후를 맞았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처음에 느꼈던 거북함은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지만, 카르멘의 최후를 준비하면서 댄이 보여준 훌륭하고 다정한 태도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댄의 태도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내 혹은 남편의 죽음을 함께 맞이해야할 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것이고 그것은 누구에게 먼저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속담에 "내일(來日)과 내생(來生) 중 무엇이 먼저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唆)하는 말이다. 그리고 삶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또한 닥쳐올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남은 삶이 언제 멈출지 모르므로 우리는 오늘을 좀 더 알차게 신나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이 책은 참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카르멘을 기억하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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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가 사랑에게 말했다 - 브라운아이즈 윤건의 커피에세이
윤건 외 지음 / PageOne(페이지원)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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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라면 나도 참 할 말 많은 사람 중의 하나다.

아직도 너무 많은 커피로 인해서 잠을 못 이루거나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를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의 커피 사랑은 그치지 않는다.

깔끔한 아메리카노 한 잔은 차가운 겨울 아침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제 맛이다.

거품 잔뜩 올린 카푸치노는 햇살 충만한 창가의 너른 탁자도 좋다.

가끔은 아이와 함께 시끄럽지만 나름 화려한 커피 전문점의 좁은 탁자에서 마시는 캬라멜 마끼야또도 사랑한다.

아침 출근 직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켜기도 아니고, 서랍에 핸드백 정리도 아니고, 무선 주전자의 전원을 켜는 일이다.

"쉭~~"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끓기 시작하면 기대로 잠깐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나의 오바일까?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우리 사무실은 전년도까지 사무실이 아닌 무슨 휴게소같은 곳이었던 모양이다. 더러운 것은 말도 못할 뿐아니라, 일단 물을 끓일 주전자가 무선 전기 주전자가 아닌 전기 보온 포트라는 물건이었다. 물을 끓여 놓으면 꽤 오랜 시간동안 보온이 가능하지만 그 온도는 아기들 분유 타는 정도로 딱 적당하다. 또 물을 끓이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는 도대체 커피물이 뜨뜻하면 되지, 뭘 뜨거울 필요가 있느냐는 말을 했다. 이런 이런......뜨뜻이라니...... 커피란 자고로 팔팔 끓인 물로 마셔야한다는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커피는 나만의 조제법으로 조제한다. 시중의 믹스는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 사용도구 역시 전용 스푼과 머그잔이다. 분량과 비율을 정확히 맞추고 팔팔 끓는 물을 조로록 따를 때의 행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낀다.

 

 이 정도의 커피 사랑이라면 이 책 <커피가 사랑에게 말했다>를 읽고 싶은 이유는 충분히 되려니 하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책은 전부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설렘, 끌림, 추억, 사랑이라는 챕터의 제목은 roasting, grinding, drip, with coffee라는 커피의 탄생 과정을 또 다른 제목으로 삼았다. 각 챕터마다 브라운 아이즈의 윤건과 인터넷 유명인 현경의 커피와 얽힌 사랑의 추억들이 빼곡하다. 하나의 꼭지마다 그 글과 어울리는 음악을 작은 글씨로 소개하고 있어서 (너무 구석에 작게 표시되어 있어서 처음엔 몰랐다.) 그 음악과 그 꼭지의 커피와 함께 글을 읽으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윤건의 '뜻밖의 고백'이라는 꼭지는 Marc Anthony의 'I Need You'를 틀고 모카커피를 마시며 읽는 식이다. 단지 약간의 어려움이라면 이 책에 소개된 스물네 곡의 음악을 찾는 일과 스물네 가지의 커피를 만드는 일 정도랄까? 또 하나의 재미는 각 꼭지마다 끝에 소개한 상현의 커피 사랑말과 커피 만드는 팁과 에피소드 읽기였다. 요리하는 철학자라는 소개답게 그의 글에는 유머와 위트가 넘쳤으며 그의 커피 만드는 방식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아보였으나 어딘지 그윽한 풍미가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정 아름답고 훌륭한 요리는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어렵지 않게 만들지만 깊은 맛이 나는 요리인 것처럼 말이다.

 

 과연 커피는 사랑에게 무슨 말을 한 걸까?

커피와 사랑은 하나라고? 아니면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랑에 둔해졌을 지라도 함께한 한 잔의 커피향은 기억할 것이라고? 혹은 이 커피가 사랑을 부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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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나라에서
히샴 마타르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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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참으로 슬프고 가슴 아프다. 읽는 내내 어린 주인공 술레이만의 아픔이 내게 전해져서 그야말로 "짠한 심정이었다." 남자들에 의한 남자들을 위한 남자들의 세계인 리비아에서 다른 형제도 없이 아름다운 마마와 사는 술레이만의 아버지는 부유한 사업가이다. 수입업을 하는 바바는 자주 집을 비우고 그 때마다 남자인 술레이만에게 마마를 잘 돌봐드리라는 말을 한다. 바바가 없을 때 마마는 늘 아팠다. 마마는 늘 냄새나는 약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스물세 살의 남자와 폭력적인 결혼을 해야했던 슬픈 이야기를 술레이만의 귀에 속삭인다. 술레이만은 마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슴 아파한다. 그의 꿈은 늘 마마가 열네 살이던 때로 돌아가서 마마를 구해내는 내용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살던 바바의 친한 친구인 라시드가 혁명위원회에 잡혀간다. 술레이만의 가장 친한 친구인 카림의 아버지인 라시드는 대학 교수였는데, 아들에 대한 큰 사랑을 표현하는 다정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 후로 술레이만의 가정에도 불안함이 찾아온다. 카림의 아버지를 잡아갔던 사람들이 술레이만의 집에도 들이닥치고 마마와 무사는 바바의 책들을 불태운다. 바바가 책을 몹시 사랑하는 것을 알고있는 술레이만은 화가 난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슬그머니 매트리스 밑에 감춘다. 연락이 두절된 바바, 감시당하는 집, 친구들과의 싸움, 친구인 카림에 대한 죄책감과 마마의 불안정한 행동등으로 혼란스러운 술레이만은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만하다. 그리고 어느 날 돌아온 바바는 몸을 감추고 술레이만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술레이만을 어린애 취급하면서 거짓말만 늘어놓는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작가인 히샴 마티르의 회고록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술레이만의 삶의 궤적이 작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의 아버지 역시 리비아의 경찰에게 잡혀서 지금까지도 소식을 알 수 없다지 않은가. 그러나 물론 작가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을 하긴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에게는 형도 있고, 어머니 역시 사라진 아버지 대신에 가정을 굳게 지키는 강한 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어딘지 모르게 술레이만의 고통스런 눈에서 히샴 마티르를 보는 듯하다. 아마 작가의 아픔이 그대로 이 소설 속에 투사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가슴을 조리고, 어린 술레이만의 고통을 함께 하면서 술레이만의 눈물겨운 성장을 지켜보았다. 마치 칼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처럼 소년의 성장을 바라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표지사진의 소년의 눈동자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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