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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처음엔 좀 갸우뚱하면서 읽은 게 사실이다. 암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와 어린 딸을 둔 남편의 처신으로는 댄의 행동에 이해가지 않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내인 카르멘은 언제 죽을 지 모른다. 그녀는 고통과 싸우고 항암제에 시달리고 죽음으로 모든 것과 이별해야하는 두려움 속에 떨고 있다. 아기인 루나는 늘 돌봐주는 손길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댄은 암에 걸린 아내를 둔 남편의 괴로운 심정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구원하느라 바쁜듯 보였다. 아마도 우리의 의식과는 아주 많이 다른 네덜란드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곳 암스테르담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고 그들은 마약을 허용하며 그리고 안락사가 허용되는 곳이 아닌가 말이다. 아파서 몸부림치는 아내를 두고도 그는 해소할 수 없는 그의 욕망을 돌보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며 술집으로 클럽으로 돌아다니며, 카니발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플로리다로 여행을 한다. 그의 친구들 역시 여행지에서 혹은 페스티발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걸 보면 그런 것은 그 나라에서는 일상인가 보다. 그러나, 내게는 조금은 낯설고 거북하기까지 했다. 특히 그가 로즈에게서 위안을 찾고 카르멘을 끊임없이 속이는 것은 그에게조차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날마다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고, 사랑하는 아기 루나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없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 괴로운 항암치료를 견디고, 남편을 힘들게 하는 것을 알고, 그가 가끔은 혹은 자주 자신을 속인다는 것을 아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조금만 아프고 힘들 때 가족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인데, 카르멘은 도대체 어떻게 지냈을까?
그러나 그들은 다투고 화해하고 울고 웃었다. 아마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래도 가장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디고 그리고 아름답게 최후를 맞았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처음에 느꼈던 거북함은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지만, 카르멘의 최후를 준비하면서 댄이 보여준 훌륭하고 다정한 태도는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댄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덜 수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댄의 태도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내 혹은 남편의 죽음을 함께 맞이해야할 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을 것이고 그것은 누구에게 먼저 찾아올 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속담에 "내일(來日)과 내생(來生) 중 무엇이 먼저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시사(示唆)하는 말이다. 그리고 삶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또한 닥쳐올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남은 삶이 언제 멈출지 모르므로 우리는 오늘을 좀 더 알차게 신나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이 책은 참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카르멘을 기억하는 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