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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요리 상식 사전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네 삶에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오죽하면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다 있을 까 싶다. 날마다 하는 가장 큰 고민은 '오늘은 뭘 먹을까?'이다. 점심은 뭘 먹을까? 오늘 저녁은 뭘 해서 먹지? 이런 고민이 어떤 때는 즐겁지만 대개는 짜증스러울 경우가 많다. 이런 때는 정말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언제나 '뭘 먹을까?' 라는 고민 없이 밥상에 앉으면 맛난 반찬들이 김이 오르는 밥과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밥상을 차리느라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 때는 마냥 당연했다. 뜨끈한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서 쭉 찢은 김치를 엄마가 척 얹어주면 세상에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이 있을까. 고슬고슬한 밥에 동치미 한 수저가 입에서 녹고, 푹 지진 무김치도 그냥 꿀맛이었다. 김장독을 새로 헐어서 썰어 낸 첫김치는 입안에서 사각거렸다. 겨울이면 큰 채반 가득 빚던 만두랑 도시락 반찬으로 싸던 콩나물 볶음을 지금도 동생이랑 이야기 한다. 지금은 좋은 음식도 비싼 음식도 흔하지만 그 시절 먹던 그 저녁밥에 비할까? 심지어 어머니께서 직접 밥을 차려주셔도 그 맛이 아니다. 왜 그럴까?
이 책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을 읽었다기보다는 눈으로 먹으면서 어린 시절의 골목들이 갈피갈피 떠 올라서 그립다. 이 책을 쓴 윤혜신 선생님이 지금 터를 잡으신 곳이 당진이라는데, 그 곳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와 퍽이나 가까운 곳이다. 그 곳의 음식들은 그 곳만의 풍미가 있다. 곰삭은 젓갈같은 맛, 시원한 배추 김치의 맛이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그 곳에는 있다. 외할머니의 음식솜씨가 살아있던 그 곳의 특별한 김치의 맛을 얼마 전 소문을 듣고 찾아 간 동네의 작은 칼국수집에서 만났다. 김치를 한 조각 입에 넣을 때마다 그 곳의 시간들이 되살아오는 듯 했다. 이 책이 내게 주는 느낌도 그러했다. 무슨무슨 맛집 기행처럼 화려한 재료와 솜씨도 아니다. 그저 집에서 어머니가 무던히 하시는 그 음식, '어떻게 하는 거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대충......'이라며 웃던 할머니의 모습이 이 책의 느낌이다. 재료를 고르는 법, 재료별로 다듬는 법, 썰기, 익히기, 삭히기, 갈무리 하기, 상차리기 등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는 소중한 지혜들을 담담히 전한다. 제철에 제 땅에서 나오는 곡식과 채소를 먹고, 고기는 좋은 걸로 귀하게 먹고, 잘 다듬고 정성스럽게 조리해서 재료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바로 착하게 먹고 사는 법이다.
순두부 찌개와 무말랭이 무침, 고사리 나물과 멸치 조림 그리고 조기찜으로 차린 밥 한상이 눈에 선하다. 화려한 호텔의 뷔페 음식도 떡벌어지는 80가지 반찬의 한정식도 좋지만 늘 먹는 밥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노란 조가 박혀있는 윤기 흐르는 밥과 보드라운 미역국과 두부 조림과 고소한 김구이가 있는 밥상을 이 책을 보면서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