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도감 - 음식.옷.집의 모든 것 체험 도감 시리즈 4
오치 도요코 글, 하라노 에리코 그림, 김창원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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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우리 나라 아이들처럼 바쁜 아이들이 인류의 역사상에 과연 있었을까? 아침 일찍부터 밤이 늦도록 공부만을 하고 공부만을 신경써야 하는 아이들이 한편으로는 참으로 측은하다. 어린 나이에 궁금한 것, 하고 싶은 것도 많을텐데 오로지 한 가지만을 일률적으로 강요받는 아이들은 답답하다는 표현을 하지만, 어른들 역시도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맘껏 아이들을 풀어주지 못하는 마음에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집에서도 그런 풍경이 벌어진다. 방학을 맞아 모처럼 읽고 싶은 책을 읽겠다던 딸아이는 며칠밤을 새우면서 소설책에 빠져들었고, 책을 읽는 딸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은  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인정하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나 역시도 많은 밤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고 지금도 항상 독서의 행복을 강조하면서도 책을 읽는 아이에게 들어가 공부를 하라는 말을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펐다.

  평생 공부의 근간이 될 책을 읽을 시간조차 아껴야하는 우리의 현실에 아이들은 또다른 많은 것들을 배울 기회를 놓치고 있을 것이다. 밥을 짓는 법, 단추를 다는 법, 심지어 청소를 하는 법조차 우리의 아이들을 배울 기회가 없다. 예전에는 부모와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생활의 다양한 지혜들을 배울 시간과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도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독립하지 못한 채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찾게 된다. 진정한 어른은 생활의 모든 것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요즘 아이들은 진짜 어른이 될 기회를 어릴 때부터 차단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생활도감>은 그런 아이들에게 생활의 작은 지혜들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될 수 있다. "음식과 옷과 집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재에 아이들이 집안일을 해 나가는 상황을 설정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저녁을 짓고 빨래를 걷고 목욕을 하고 내일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없어진 물건을 찾기도 하고 함부로 둔 체육복때문에 발을 구르기도 하지만 그들은 마치 소꿉장난을 하듯 즐거운 모습이다. 요리의 기초인 밥물 맞추기, 국물 만들기, 간 맞추기와 음식 궁합 등과 요리 도구, 요리 재료, 썰기 굽기 등의 실전과 식사예절까지 소개한다. 같은 방법으로 옷과 집을 정리하고 간수하는 법을 자세히 가르치는 이 책은 아이들이 읽기 재미있게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고, 앞부분의 목차를 자세히 적어두어서 필요한 상황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생활의 지혜를 자연스레 전달할 상황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이 책은 그 공백을 메우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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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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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뒷장을 뒤적였는지 모른다. 첫번 째 편지를 읽는 순간 뒷장의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조금씩 아껴서 읽기로 다짐하고 하루에 편지 한 개씩만 읽으리라 맘먹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다음 편지가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게 되곤 했다. 아, 이런 책은 숨겨두고 먹는 간식처럼 날마다 야금야금 읽어야하는데......

 서간문으로 구성된 소설들을 여러권 읽었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것처럼 재미지고 아슬아슬해서 언제나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이 편지의 주인공인 헬렌과 프랭크는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으로 그들의 마음은 마치 나의 속내처럼 친숙하고 좋았다. 그러니 이 편지들은 나의 마음 속 친구들이 주고 받은 것이다. 그들은 책을 원하는 미국의 헬렌과 (당시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고전들이 많았으므로) 전쟁의 여파로 빈곤에 시달리던 영국의 중고서적상 프랭크이다. 처음 헬렌은 프랭크가 근무하는 서점에 책을 의뢰한다. 서점 측에서는 아름다운 책을 구해서 헬렌에게 보낸다. 그 이후로 헬렌은 필요한 책을 프랭크에게 의뢰하고 프랭크는 헬렌의 요청보다 더욱 훌륭한 책들을 보내준다. 또한 자신도 곤긍하기만 했던 헬렌이지만 영국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앍고 보낼 수 있는 음식들을 보내주고 프랭크의 서점 직원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사를 하면서 그들은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눈다. 단 한번의 만남도 갖지 못했으나 그들의 우정은 2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이 편지들은 무명작가였던 헬렌을 유명인사로 만들어 주었다.

 자신의 작품으로는 그다지 문명(文名)을 얻지 못했던 헬렌 한프의 글을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들이 가졌던 것이 책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관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채링크로스 84번지의 마크스 서점의 직원들과 미국의 무명 작가 헬렌은 서로를 귀한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도움을 주었다. 그들이 일면식도 없으면서 그렇게 믿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므로,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동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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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요리 상식 사전
윤혜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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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네 삶에서 먹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 오죽하면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다 있을 까 싶다. 날마다 하는 가장 큰 고민은 '오늘은 뭘 먹을까?'이다. 점심은 뭘 먹을까? 오늘 저녁은 뭘 해서 먹지? 이런 고민이 어떤 때는 즐겁지만 대개는 짜증스러울 경우가 많다. 이런 때는 정말 어린 시절이 그립다. 언제나 '뭘 먹을까?' 라는 고민 없이 밥상에 앉으면 맛난 반찬들이 김이 오르는 밥과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밥상을 차리느라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 때는 마냥 당연했다. 뜨끈한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서 쭉 찢은 김치를 엄마가 척 얹어주면 세상에 그보다 더 맛있는 것이 있을까. 고슬고슬한 밥에 동치미 한 수저가 입에서 녹고, 푹 지진 무김치도 그냥 꿀맛이었다. 김장독을 새로 헐어서 썰어 낸 첫김치는 입안에서 사각거렸다. 겨울이면 큰 채반 가득 빚던 만두랑 도시락 반찬으로 싸던 콩나물 볶음을 지금도 동생이랑 이야기 한다. 지금은 좋은 음식도 비싼 음식도 흔하지만 그 시절 먹던 그 저녁밥에 비할까? 심지어 어머니께서 직접 밥을 차려주셔도 그 맛이 아니다. 왜 그럴까?

 이 책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을 읽었다기보다는 눈으로 먹으면서 어린 시절의 골목들이 갈피갈피 떠 올라서 그립다. 이 책을 쓴 윤혜신 선생님이 지금 터를 잡으신 곳이 당진이라는데, 그 곳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와 퍽이나 가까운 곳이다. 그 곳의 음식들은 그 곳만의 풍미가 있다. 곰삭은 젓갈같은 맛, 시원한 배추 김치의 맛이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 그 곳에는 있다. 외할머니의 음식솜씨가 살아있던 그 곳의 특별한 김치의 맛을 얼마 전 소문을 듣고 찾아 간 동네의 작은 칼국수집에서 만났다. 김치를 한 조각 입에 넣을 때마다 그 곳의 시간들이 되살아오는 듯 했다. 이 책이 내게 주는 느낌도 그러했다. 무슨무슨 맛집 기행처럼 화려한 재료와 솜씨도 아니다. 그저 집에서 어머니가 무던히 하시는 그 음식, '어떻게 하는 거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대충......'이라며 웃던 할머니의 모습이 이 책의 느낌이다. 재료를 고르는 법, 재료별로 다듬는 법, 썰기, 익히기, 삭히기, 갈무리 하기, 상차리기 등 어머니가 딸에게 들려주는 소중한 지혜들을 담담히 전한다. 제철에 제 땅에서 나오는 곡식과 채소를 먹고, 고기는 좋은 걸로 귀하게 먹고, 잘 다듬고 정성스럽게 조리해서 재료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바로 착하게 먹고 사는 법이다.

 순두부 찌개와 무말랭이 무침, 고사리 나물과 멸치 조림 그리고 조기찜으로 차린 밥 한상이 눈에 선하다. 화려한 호텔의 뷔페 음식도 떡벌어지는 80가지 반찬의 한정식도 좋지만 늘 먹는 밥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노란 조가 박혀있는 윤기 흐르는 밥과 보드라운 미역국과 두부 조림과 고소한 김구이가 있는 밥상을 이 책을 보면서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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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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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5월의 일요일.

한강에 떠오른 남자.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의 지문은 우리나라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한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혼으로 이복 남매를 둔 아버지 김상호, 김상호 전처의 아이들을 키우는 옥영에게는 딸 유지가 있다. 김상호의 아들인 헤성은 유명 의대에 합격을 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누나인 은성은 집을 얻어서 따로 산다. 그녀는 지나친 편식 습관과 남자에 대한 집착을 자신들을 두고 이혼한 부모 특히 아버지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해서 이 소설을 가정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 본질의 문제를 다룬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던 이 집안에 한 가지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한가로운 2월의 일요일이다. 그날 아이 유지는 바이올린 레슨이 있고, 옥영은 나갈 일이 있었다. 할  일 없는 혜성은 유지 선생님에게 레슨비를 전해주기로 했지만, 갑작스런 누나의 사고로 집을 비우게 된다. 김상호는 일요일에 약속이 있었고 집에는 아이만 남았다. 그들에게 하루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김상호가 돌아온 밤 집안에는 유지도 혜성도 없었다.

유지가 사라졌다. 아이는 열한 살이고 혼자서 어디에 가서 자고 올 나이는 아니다. 말이 없고 친구도 없는 그 유지를 찾기 위해서 김상호, 옥영 그리고 혜성과 은성은 나름대로 고군분투를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드러난다. 겉으로는 무난하게 보이는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하나 다들 깊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김상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수 없다. 그의 일은 불법일 뿐 아니라 무서운 일이다. 옥영의 마음 깊은 곳에는 대만이 있다. 그 곳엔 자신의 젊음과 사랑과 밍밍이 있다. 혜성에게는 인생의 의욕이 없었고 은성은 그냥 막 살아왔다. 그들은 모두들 말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유지를 찾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한다. 상황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고 그렇게 시간도 같이 흐른다.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지켜가는 이것은 무엇일까? 어떤 한 가지가 이 삶에 던져질 때, 우리의 삶이 낱낱히 파헤쳐질 때 얼마나 남루한 본색이 드러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구나의 삶도 이것과 많이 다르지 않으리라.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아는 걸까?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우습게도 이 소설에서 옥영의 친정으로 설정된 지역의 이름이 나의 근무지와 주소가 비슷했다. 대전시 서구 갈마 2동이라니 얼마나 웃었던지......작가는 혹시 이 곳에 다녀간 걸까? 아니면 그의 외가라도 되는 걸까? 소설에서 설정한 대로 갈마 2동엔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물론 주차난도 심각하다고 한다. 읽으면서 어쩐지 쭈뼛한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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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 - 만화가 이우일의 추억을 담은 여행책
이우일 글 그림 / 시공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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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에는 그 흔한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는 일본으로 베트남으로 캄보디아로 그리스로 또 어디로 우리를 데리고 떠나지만, 단 한 곳의 사진도 우리에게 전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는 멋진 그림으로 사진을 대신한다. 오토바이를 타는 그, 딸과 아내의 뒷모습, 해변의 아줌마, 거대한 참치들을 사진보다 더 강렬하고 솔직하게 우리에게 보낸다.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 그가 보았을 해변과 도시와 토산품들과 거미 튀김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가 보냈을 따뜻하거나 시원하거나 혹은 덥거나 추웠을 여행을 상상한다.

만화가로 잘 알려진 그는 여행을 참말로 좋아한다. 그리고 여행가방 꾸리기도 좋아한다. 책의 첫머리에 서 그는 여행가방에 넣을 책을 고르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는 소설가형이 해 준 이야기를 인용한다. 그 소설가가 김영하라는 것은 내 짐작이다. 그런데 그 소설가가 한 이야기는 어쩜 그리도 내 생각과 똑같은지...... 여행갈 때는 재미없는 책을 골라서 간다는 말말이다. 읽어야하지만 잘 안 읽게되는 책을 여행지에 가져가면 읽을거리가 없어서 반드시 읽게된다. 재미있고 쉬운 책은 언제든지 읽을 수 있으니 독서에 있어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 곳에 미뤄둔 책을 가지고 가는 것이 나의 비법인데, 이걸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가 다녔던 다양한 여행들의 경험을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들과 더불어 풀어놓은 이 책은 작고 가벼워서 여행지에 가지고 좋긴 하지만, 그러기엔 조금 위험하다. 재미있어서 빨리 읽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보험으로 하나 더 들고 가야한다.

 

" 생각해 보면 여권과 비행기표를 빼고 나면 여행 가방 속에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언젠가 그런 것은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땐 나도 정말 좋은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

                                                                                                        본문 13쪽

 

이 세상의 모든 삶은 여행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데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애당초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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