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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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직장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는 서로 안 지 오래되지 않은 사이) 그녀가 말하기를 "저는 아들만 둘이예요."라고 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어머, 딸이 없어?" 이런 말을 했다. 그랬다. 어느 새 세상이 너무너무 변해서 엄마들은 딸이 없는 것을 무척이나 서운해 한다. 여자가 나이들면 가장 필요한 것이 딸이라나 뭐라나 하는 말도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그래도 아들은 있어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은 여자로 살아가기에 험하다. 여성이 스스로 당당하게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기에는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밤중에 돌아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제 집에조차 혼자 있는 것은 위험하다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봉우리에 당당하게 우뚝 서 있는 여성들의 모습은 귀감이 될 만하다. 게다가 그가 온갖 어려움과 고난을 훌륭히 이겨내고 그 자리에 올랐을 때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오프라 윈프리가 그러하고 그의 멘토라는 마야 안젤루가 그러하다. 흑인이고 여성이고 배운 것조차 많지 않았던 그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에 그가 가진 조건은 너무 참혹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굳건하고 강한 의지가 있었다. 생에 대한 긍정과 기대가 있었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딸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인생의 긴 여정동안 만나는 갖가지 상황에 부딪혀 갈팡지팡하는 여성에게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얻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경험들은 선입견 없는 마음과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이 책에서 그는 딸에게 자신의 지헤를 전하지만,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그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지게 한다. 그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지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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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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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사는 어느 사람이고 시한부 인생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을 가끔 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티베트에는 "내일(來日)과 내생(來生) 중 어느 것이 먼저 올 지 모른다."라는 의미의 속담이 있다고 한다. 삶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것처럼 명쾌한 정리가 있을까? 우리는 이 생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이 악착을 떨고 욕심을 부리지만 우리의 삶의 행로 어디 쯤에 이 삶을 정리할 때가 올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인생이란 참 공평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일 당장 끝날 지도 모르는 이 삶을 늘 정리해 두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언제 교통 사고를 당할 지 몰라 목욕할 때마다 배꼽을 깨끗이 닦는다던 학창 시절의 친구 말마따나 우리는 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준코처럼 이번 주에는 사후 준비를 확인하고 다음 주에는 부녀회 봉사를 마지막으로 하고 그 다음 주에는 사랑하는 친구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다음 주에는 부모님 묘소에 참배하고 그리고 그 후 고요히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계획을 우리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 <애도하는 사람>에는 세 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사회의 지저분한 부분만을 바라보며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신문 기자 마키노 고타로와 곧 죽을 것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의연히 맞이하고 싶은 사카쓰키 준코와 남편을 죽인 죄로 형을 살고 나온 나기 유키오가 그 주인공이다. 세 주인공을 연결하는 고리는 '애도하는 남자'로 불리는 준코의 아들 시즈토다. 많은 죽음들을 겪으며 점점 외로운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던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면서 죽은 이를 애도한다.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또 누구에게 감사를 받았는지를 떠올리면서 그들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픈 그의 의도를 사람들은 비난하고 욕을 한다. 그러나 시즈토에게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방편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즈토의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달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만 그의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간접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뜻 없는 잘못된 죽음에 무감각해질 만큼 우리 사회는 죽음이 흔하다. 그러나 모르는 그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의미있는 사람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시즈토를 이해하는 데 그리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생의 갈피 어디에선가는 맞이할 그 순간을 누군가가 마음 깊이 새기고 기억한다면 혼자 떠나야할 그 길이 덜 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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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관음 1
하이옌 지음, 김태성 옮김 / 아우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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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에서 많이 읽고 또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책 중에는 일본 소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독자들이 일본 소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 그의 신작이 나오면 출간 즉시 구매하기도 한다. 심지어 특정 작가는 마니아층까지 형성되어 있어 국내 작가들보다 더 인기를 끌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근접한 나라이고 여러가지로 정서도 비슷하며 역사적으로도 매우 긴밀한 연관 관계를 가진 중국의 소설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일부 작가들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기도 하고 그 작품성과 흥미가 인정받아 꾸준히 읽히기도 하지만 일본 소설의 그것과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와는 많이 다른 사회구조와 풍토가 그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는 있지만, 중국은 엄연히 사회주의 국가이고 국가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대한 기록에 우리가 쉽게 동화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꿈과 희망과 이상이 우리와는 좀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도 그렇다.
 그러나 이 책 <옥관음1, 2>는 그런 생각을 불식하게 한다. 중국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을 그린 이 소설은 두 권이라는 분량과 낯선 지명과 풍토, 사회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희망은 다르지 않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주인공 양 루이는 멀끔한 외모와 멋진 화술, 그리고 높은 학력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바람둥이다. 그는 자신의 외모로 인해서 높은 급여와 복지가 보장되는 회사에 취직을 하고 사장의 동생과 결혼 약속까지 하게 된다. 그야말로 중국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바라마지 않는 행운을 걸머쥔 양 루이의 삶에 일생의 연인이 될 안신이 등장한다. 소녀같은 외모의 청순한 그녀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여자. 출세가 보장된 길을 앞에 둔 양 루이는 이 안신에게 급격히 빠져들고 급기야는 탄탄대로이던 자신의 삶을 버리기에 이른다. 그가 바라는 것은 안신의 사랑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청순 가련하기만한 안신은 알면 알 수록 비밀이 많은 여자였다. 끝도 없이 나오는 그녀의 놀라운 과거는 양 루이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안신의 행복 뿐이다.

 아름답기로 유명해서 이 시대의 샹그리라라고 불리는 윈난과 베이징, 로스엔젤러스를 넘나들며 펼치는 양 루이의 사랑의 여정은 세상의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어느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건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평안하고 행복한 사람을 살기를 바란다. 또한 진정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얻는 부와 명예는 허망하다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 나는 매일 밤 불을 끄기 전 침실과 거실 사이의 문을 열어 놓는다.

   혹시 깊은 잠에 빠져 한 밤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

                                                          - 옥관음 2,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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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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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창밖은 검고 낮은 빗소리만 들린다. 아직은 봄이라 부르기에 스산한 계절, 사람들은 아직도 두꺼운 겨울용 외투를 입고 입김을 불면서 거리를 지난다. 찬란한 봄 햇살도 샛노란 꽃도 없는 봄. 우리는 멀리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외롭다.

 이 소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이런 쓸쓸한 밤에 읽기엔 어쩌면 딱 좋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너무 슬프다. 그는 혼자서 지낸다.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 대부분이 사무실 전화다. 남의 대필을 해 주는 그에게 글쓰기는 천형(天刑)도 아니고 자기표현도 아니고 그저 밥벌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글에 더욱 담담하고, 글 값을 이야기하는 것을 덜 불편해 한다. 그리고 그 글은 그의 것이 아니다. 반지하의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그에게는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다. 사랑해마지 않던 , 아니 떠난 지금 더욱 사랑하는 아내와의 기억들을 곱씹으면서 거리를 배회하고 밥을 지어먹고 술을 마신다. 아내를 맘껏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 자신이 밉고, 사랑하던 강아지의 진심을 몰랐던 자신이 후회스럽다. 단조롭고 지리한 나날들을 지내면서 하루는 아버지가 떠오르고, 또 다른 날은 예전 함께 일했던 친구가 등장한다. 학창 시절 마음을 다치게 했던 그 친구에게 새삼 용서를 빌고, 말 못하는 여자 아이와 백야를 보기도 한다.

 기다리는 이가 없는 텅 빈 방안에 들어서면서 불을 켜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빈 공간에 울리는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와 강아지의 나직한 짖음은 그의 외로움을 더욱 깊이 만들었을까?

 그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그가 찾는 것은 아내일까? 태인이일까?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혼자 질기게 남아, 살겠다고 병원에 가고 죽을 사 먹는 그를 보면서, 차라리 잊지도 못할 거면서 따라 죽지도 못한다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임을 알았다.

 가을보다 더 쓸쓸한 추운 봄밤에 이 소설은 슬픔의 웅덩이를 파 놓고 나를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 혹은 한 마리의 짐승이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함께 몸을 부비며 체온을 나누고, 적은 차라도 함께 나누어 먹으며, 겨울보다 더 차가운 이 추위를 녹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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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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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나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한 소년의 한바탕 수다를 듣고 난 느낌이 들 것이다. 처음부터 심상지 않게 시작한 이 소설은 소년 샘의 독백이다. 샘의 나이는 열 다섯, 엄마의 나이는 서른 둘이다. 나이 얘기에서 짐작이 가듯 그의 엄마는 열 여섯에 샘을 낳았다. 심지어 샘의 집안에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해 본 사람이 거의 없다. 어려서부터 그 말을 듣고 자란 샘은 어린 나이에 아기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너무도 잘 알았다. 또한 자기가 본의 아니게 엄마의 인생을 망친거나 아닌지 불안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 샘에게 아리따운 여자 친구 엘리시아가 생긴다. 그들은 너무도 둘만 아는 시간들을 보냈고 그리고 급격한 불길이 그렇듯 금세 사그러들었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있으니 바로 엘리시아가 임신을 한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는 소식을 예감하며 샘은 어떻게든 피해보려 하지만, 실은 가장 솔직하고 성실하게 그의 할 일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우상 TH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샘의 솔직한 세계는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소년답고 신사다운 샘은 그의 앞에 놓인 어려운 과제를 담담하게 책임을 지고 이끌어 간다. 가끔씩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현실에서 그는 더 없이 착하고 성실한 소년이다. 아마도 거의 모든 소년들이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역시나 닉 혼비다 싶다. 한바탕의 수다 속에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유머와 위트, 그리고 솔직한 감수성은 읽는 동안 내내 웃음을 잃지 않게 하고, 늘 우울하고 어두워 보이는 아이들의 세계에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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