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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창밖은 검고 낮은 빗소리만 들린다. 아직은 봄이라 부르기에 스산한 계절, 사람들은 아직도 두꺼운 겨울용 외투를 입고 입김을 불면서 거리를 지난다. 찬란한 봄 햇살도 샛노란 꽃도 없는 봄. 우리는 멀리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면서 오늘도 외롭다.
이 소설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은 이런 쓸쓸한 밤에 읽기엔 어쩌면 딱 좋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너무 슬프다. 그는 혼자서 지낸다.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 대부분이 사무실 전화다. 남의 대필을 해 주는 그에게 글쓰기는 천형(天刑)도 아니고 자기표현도 아니고 그저 밥벌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글에 더욱 담담하고, 글 값을 이야기하는 것을 덜 불편해 한다. 그리고 그 글은 그의 것이 아니다. 반지하의 사무실에서 생활하는 그에게는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다. 사랑해마지 않던 , 아니 떠난 지금 더욱 사랑하는 아내와의 기억들을 곱씹으면서 거리를 배회하고 밥을 지어먹고 술을 마신다. 아내를 맘껏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 자신이 밉고, 사랑하던 강아지의 진심을 몰랐던 자신이 후회스럽다. 단조롭고 지리한 나날들을 지내면서 하루는 아버지가 떠오르고, 또 다른 날은 예전 함께 일했던 친구가 등장한다. 학창 시절 마음을 다치게 했던 그 친구에게 새삼 용서를 빌고, 말 못하는 여자 아이와 백야를 보기도 한다.
기다리는 이가 없는 텅 빈 방안에 들어서면서 불을 켜는 이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빈 공간에 울리는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와 강아지의 나직한 짖음은 그의 외로움을 더욱 깊이 만들었을까?
그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그가 찾는 것은 아내일까? 태인이일까?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혼자 질기게 남아, 살겠다고 병원에 가고 죽을 사 먹는 그를 보면서, 차라리 잊지도 못할 거면서 따라 죽지도 못한다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임을 알았다.
가을보다 더 쓸쓸한 추운 봄밤에 이 소설은 슬픔의 웅덩이를 파 놓고 나를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 혹은 한 마리의 짐승이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함께 몸을 부비며 체온을 나누고, 적은 차라도 함께 나누어 먹으며, 겨울보다 더 차가운 이 추위를 녹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을 읽은 모든 이들의 느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