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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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 사는 어느 사람이고 시한부 인생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을 가끔 하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티베트에는 "내일(來日)과 내생(來生) 중 어느 것이 먼저 올 지 모른다."라는 의미의 속담이 있다고 한다. 삶의 허무함에 대해서 이것처럼 명쾌한 정리가 있을까? 우리는 이 생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이 악착을 떨고 욕심을 부리지만 우리의 삶의 행로 어디 쯤에 이 삶을 정리할 때가 올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인생이란 참 공평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일 당장 끝날 지도 모르는 이 삶을 늘 정리해 두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언제 교통 사고를 당할 지 몰라 목욕할 때마다 배꼽을 깨끗이 닦는다던 학창 시절의 친구 말마따나 우리는 늘 준비를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준코처럼 이번 주에는 사후 준비를 확인하고 다음 주에는 부녀회 봉사를 마지막으로 하고 그 다음 주에는 사랑하는 친구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다음 주에는 부모님 묘소에 참배하고 그리고 그 후 고요히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계획을 우리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 <애도하는 사람>에는 세 사람의 주인공이 있다. 사회의 지저분한 부분만을 바라보며 남의 불행으로 먹고사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신문 기자 마키노 고타로와 곧 죽을 것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의연히 맞이하고 싶은 사카쓰키 준코와 남편을 죽인 죄로 형을 살고 나온 나기 유키오가 그 주인공이다. 세 주인공을 연결하는 고리는 '애도하는 남자'로 불리는 준코의 아들 시즈토다. 많은 죽음들을 겪으며 점점 외로운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던 그는 전국 각지를 돌면서 죽은 이를 애도한다. 누구에게 사랑받았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또 누구에게 감사를 받았는지를 떠올리면서 그들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픈 그의 의도를 사람들은 비난하고 욕을 한다. 그러나 시즈토에게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방편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즈토의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달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만 그의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간접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

 뜻 없는 잘못된 죽음에 무감각해질 만큼 우리 사회는 죽음이 흔하다. 그러나 모르는 그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의미있는 사람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시즈토를 이해하는 데 그리 어려움을 없을 것이다. 생의 갈피 어디에선가는 맞이할 그 순간을 누군가가 마음 깊이 새기고 기억한다면 혼자 떠나야할 그 길이 덜 외롭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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