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 뒤에 쓰는 반성문>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문지 푸른 문학
김도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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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아랫도리를 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놀던 시절도 있을 것이고, 엄마에게 야단 맞고 숨어 울던 때도 있다. 기억의 문을 열면 처음 학교에 들어가서 두렵고 설레던 기억, 시험지를 놓고 갸우뚱 거리던 기억, 짝꿍과 싸우고 토라져서 돌아오던 기억들까지 와르르 쏟아진다. 어떤 기억은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고, 또 어떤 기억은 꽁꽁 싸매서 감추고 싶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은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도 하다.

 이 글은 삼십 년전의 선생님을 만나면서 심지어 본인조차도 잊어버린 그 기억을 기어코 떠올리고야마는 한 소설가의 뒤늦은 반성문이다. 너무도 부끄러운 그 기억이 상처가 되어서 한 시절을 몽땅 잡아 먹었기에 기억의 저편 문 뒤에 슬쩍 밀어놓았던 기억을 선생님은 잊지도 않으셨던 것이다. 작가는 그 기억을 밀어두기 위해서 다른 기억들까지도 함께 버려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어린 시절이 없다. 삼십 년만에 만난 선생님은 곧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그 이야기를 꺼내신다. 선생님은 그에게 "자네 이야기들은...... 어딘가에서 무엇인가에 막혀있다는 생각이 드네."(본문 21쪽)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인은 그가 쓰지 않고 삼십 년을 버틴 반성문 때문이라고 하신다. 반성문에 대한 기억마저 전혀 없던 작가는 드디어 할 수 없이 그 시절로 돌아가 그 때를 다시 살아간다.

  어린 시절 누군가의 글에서 따온 자신의 첫 작품, 그 기억을 그는 밀어두었었다.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 그에게 어린 중학생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500매의 반성문을 쓰게 하신다. 중학교 2학년 내내 그는 그 반성문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무단 결석까지 해 버린다.

  비록에 늦은 뒤에 쓰는 반성문이지만, 그는 그 반성문을 쓰기 위해서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 낸다. 이 소설은 그의 어린 시절과 현재를 병치해서 구성하고 있다. 잊었던 어린 시절을 살고, 오늘의 선생님과의 충만한 이별을 만들며 그는 안타깝고도 행복한 시간들을 기록한다. 그래서 이 글은 뒤늦은 반성문이며, 성장 소설이며 한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다.

 내게도 기억의 저편에 밀어둔 그런 것들이 있다. 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창피함들, 문득 떠오를 때면 크게 소리라도 질러야 견딜 수 있는 그런 것들의 존재를 뚜렷하게 느낀 날이었다. 언젠가는 그것들을 꺼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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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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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서 내가 그동안 해 왔던 독서의 부박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최인훈의 <회색인>이나 <서유기>를 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처음엔 반갑지만은 않았다. 전적을 알지 못하는 이의 일기를 읽는 기분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러나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독고준이라는 인물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일기와 그의 딸, 성적 소수자이며 지식인인 서술자의 일기가 교차되는 이 글은 다른 책들처럼 쉬이 읽히지는 않았으나 그게 오히려 더 즐거웠다. 한 사람의 일생의 기록을 휙 읽어버리는 일은 얼마나 무례한가 말이다. 독고준의 일기를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어떨까? 그가 읽은 책을 같이 읽고, 그 말미에 달아 놓은 그의 딸의 생각을 공유하며 한동안 지내도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북에서 부르조아적 사고로 자아비판을 강요받았던 섬세한 소년은 그 상처를 평생 잊지 못한다. 남에서 의지할 곳 없어서 자기 누이를 북에 두고 내려와 새 장가를 든 매형의 집에 얹혀 지내야 했을 때, 너절한 삶을 이끌어야 했을 그 자존심 강한 소년의 상처받은 마음이 생생했다. 비록 그의 일기 어디에서도 그런 구절을 찾을 수 없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크기의 상처가 아닐까?

 다양한 범위를 아우르는 독서의 세계, 그리고 아름다운 시들에 대한 촌철의 평들은 내가 앞으로 읽어야할 책들이 너무도 많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느껴야할 세상의 아름다운 시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한다.  정치 시평(時評), 세계에 대한 관심, 문단과 후배 문인들에 대한 사랑과 작품에 대한 꼼꼼한 독서의 흔적이 드러나는 이 일기는 소설이라기 보다는 실제 한 인물의 긴 인생의 기록으로만 느껴진다. 과연 이 글들이 고종석이라는 작가의 창작이란 말인가?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으면 독고준에 대해서 얼마나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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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유혹 - 열혈 여행자 12인의 짜릿한 가출 일기
김진아 외 글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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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무더우 것 같은 여름이 가긴 가나 보다.

아침 저녁 슬쩍 쌀쌀한 기운마저 드는 걸 보니 계절의 약속이라는 것은 어김이 없다 싶다.

이런 가을같지는 않은 가을날,

낙엽이 휘익 날리고 트렌치 코트 깃마저 함께 날리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를 떠올리는 것은 바로 책 덕분이다.

그저 어디 다른 곳에 가고만 싶을 뿐 실제 가지는 않는 천상 안락의자 여행가인 나는 전 세계 곳곳에 안 가 본 곳이 거의 없다. 유럽이고 사하라고 탕헤르고 라싸고 간에 나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은 어디일까? 아마도 북한?

나의 이 평생에 걸친 여행길에는 늘 동반자가 있었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당황하는 나를 이끌고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머뭇거리며 골목 깊숙한 곳의 카페로, 혹은 정갈한 숙소로,  길거리 공연이 펼쳐지는 광장으로 끝없이 놀라게 한다. 말해봤자 입만 아픈 불가리아의 돌길, 아오자이 자락 휘날리며 오토바이에 올라앉은 아가씨들의 도시 호치민, 고양이가 손짓하는 도쿄의 고토쿠지등은 나의 여행박사 친구들이 데려간 곳이다.

이 책 <여행자의 유혹>은 그 오랜 나의 친구들이 그동안의 기억을 모은 책이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수 있는 열혈 여행가 열두 사람이 자신의 여행 중 기억에 남는 곳에서의 비밀 일기를 공개하는 것이다. 그들의 여행에 동행하다보면 우리는 막심 고리키의 언덕을 거닐며,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기고 내일을 기약하는 삶들을 만난다. 다람살라에서 먹는 티베트 국수는 외국의 맛에 지친 우리를 위로할 것이고, 지도 하나 볼 줄 몰라도 헝가리에선 말의 쇼를 보고 굴라쉬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찾아 갔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깊숙한 곳의 귀여운 카페와 인순이를 알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에서 만난 사람들도 또 다른 나의 친구들이다.

한 사람의 긴 여행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열두 사람의 긴 여행길에 잠깐 잠깐 함께 하면서 사막과 남아프리카와 칠레와 캐나다를 한꺼번에 넘나든다. 다소 숨이 벅차더라도 수 많은 아름다운 사진들이 용기를 줄 것이다.
 

이들에게 떠남이란, 그 어떤 태산같은 유혹이 온다 해도 버릴 수 없는 그 무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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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카르마
이상민 지음 / 푸른물고기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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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이라면 한여름의 즐거움이다.

그리하여 어릴 때부터 '전설의 고향'이니 '구미호'니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이불 뒤집어쓰고 보는 여름밤의 즐거움을 누린다든지, 극장에서 상영하는 '버닝'이니 '오맨'이니 하는 영화들을 친구들과 몰려가서 소리지르며 보기도 했다. 공포영화에 대한 공포가 있는 나는 별로 즐기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많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이 소설 <카르마>는 바로 그런 친구들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깊은 마음 속에 비밀을 감춘 채로 살아간다. 혹자는 이미 그것을 잊고 삶을 즐기고 혹자는 그 비밀에 가위 눌리며 몸서리를 친다. 삶과 죽음의 깊은 인과과 얽혀서 그들의 삶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미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다만, 지난친 우연의 설정들이 조금 걸렸다. 그들의 업(카르마)이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게 읽는 재미를 조금 떨어뜨렸다고 할까? 혹은 그 우연마저 카르마인 것일까?

한여름 밤 홀로 빈 집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것만한 피서는 없을 것이다.

주위의 사람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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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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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스럽게도 그는 예술가의 영혼을 타고 났으나 재능은 없었다."

본문 47쪽

 

 

정말 웃기는 그러면서도 행복해지는 그런 책이다.

완전 매력 그자체인 등장인물들의 사랑스러운 생각과 행동과 말들, 심지어 괴물용인 스티브까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해변휴양지인 코브마을의 9월은 관광객들에게 여름 내내 시달린 마을 사람들에게 휴식의 시간이었다. 그런 평화와 고요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사건의 징조들이 슬그머니 나타났는데, 그 하나는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파이프 누수 건, 민달팽이 머리 술집에서 블루스 가수를 고용한 것,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베스 리앤더가 자살한 사건이다. 마을의 유일한 순경인 시오필러스 크로는 이 자살 사건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그러나 대마초 중독자인 그에게는 약점을 잡고 있는 버튼 보안관이 있었다. 그는 시오에게 막대한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베스 리앤더의 정신과 의사인 벨러리 리어든은 베스가 자살한 것이 자신이 처방한 약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마을 사람 전체에게 가짜약을 주고 그들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 외에도 멋쟁이 불루스 가수 캣피시, 인조인간 메이비스, 생물학자 게이브와 그의 멋진 강아지 스키너, B급 영화 주연 배우였던 정신나간 몰리 미숑, 그리고 화가 에스텔과 5천년 이상 바닷속에서 살아온 괴물용 스티브까지 그들은 모두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들 하나하나의 가슴 아픈 사연들과 그리고 이 자리에 모여서 서로를 의지하게되는 과정들은 그야말로 인본주의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악당은 가차없이 처벌하는 명쾌함, 그들이 내뱉는 상황에 따라서는 어이없을 농담과 그 진의들, 그리고 남들 눈에는 괴물로 보일지라도 스티브가 가진 깊은 사랑과 연인에 대한 헌신이 아름다운 환상들, 끈적거리는 블루스 음악, 강아지의 컹컹거림, H.P까페의 커피향과 어울려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즐겁고 행복한 환상 속에서 마치 그들이 나의 친구들인양 함께 웃고, 와인을 마시고, 스티브의 귀향을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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