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 - 내가 뉴스를, 뉴스가 나를 말하다
김주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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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다. 그녀의 외모가 요즘 흔히들 꼽는 것처럼 섹시한 것도 아니고, 패셔니스타라 불릴 만큼 유행을 선도하는 것도 아니지만, 단정한 모습으로 데스크에 앉아서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가 전하는 뉴스에는 어쩐지 세상에 대한 가득한 애정이 느껴져서 유독 채널을 고정하게 만들었다.

 우리 어릴 적만해도 텔레비전에서 진행을 하는 사람은 남자였다. 여자 아나운서나 앵커는 남자 아나운서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거나 슬쩍 부연 설명을 하는 수준에 있었다. 그러나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여성 앵커가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고, 여성 앵커 둘이 진행하는 뉴스도 있다.

어린 시절 잠시나마 앵커의 꿈을 가졌던 나는 이 김주하 아나운서의 책을 참 즐겁게 읽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보도국의 일상을 다큐로 방영할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본 보도국의 활기찬 풍경이 참 부러웠다. 뉴스의 첨단에 서서 세상 사람들에게 온갖 소식을 다 전해주는 그들의 일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김주하씨는 또한 앵커일 뿐 아니라 기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뉴스 진행에 만족하지 않고 뉴스를 찾아 직접 발로 뛰는 모습이 참 당당하고 근사해 보였다. 스스로 자신에게 목표를 정해주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모습은 우리 후배와 딸들에게 진정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다.

 이 책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는 김주하 앵커의 방송국 입사기와 그동안의 취재 및 진행 일지들이 기록되어 있다. 특종을 전했을 때의 환희와 악전고투 속에 좋은 방송을 보냈을 때의 기쁨, 고통스런 노력과 정성에도 불구하고 취재에 성공하지 못했던 아픔과 또한 세상 모두에 대한 그의 사랑의 기록이다.

 사채때문에 괴로워하던 여인을 도와주지 못한 그의 안타까움과 경쟁 속에서 동료의 고마움을 느꼈던 독도 취재, 그리고 아테나 여신이 되었던 올림픽 취재와 신나던 월드컵의 기록들이 정말 흥미로웠다. 그러나 애완견 관련 취재의 내용을 읽으면서 김주하 아나운서 못지않게 마음이 아프다. 이 마음이 어쩐지 앞으로도 오래도록 문득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침 일찍 뉴스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은 도대체 잠을 자는 것인가 궁금함을 가졌던 적이 있다. 오늘 아침 뉴스를 전했던 그들은 새벽 두 시 혹은 세 시에 출근을 한단다. 화면에 근사하게 나온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근사하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어느 일이나 고통스런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김주하 기자의 취재를 듣고 싶다. 오래오래 김주하 앵커의 뉴스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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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헴펠 연대기
세라 S. 바이넘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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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헴펠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아이들은 7학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인 셈이다. 아, 중학교 1학년이란 나이가 주는 그 느낌을 교사가 아닌 다음에야 - 그것도 중학교 1학년을 가르쳐보지 않은 다음에는 -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천진하면서도 엉뚱한 불손함과 순수함이 혼재된 쑥스러운 표정의 남자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과 새침한 표정으로 책을 읽어내리는 약간 상기한 여자 아이의 발그레한 뺨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직은 아기같은 철없는 모습과 그럼에도 세상을 다 아는 듯 잘난 체 하는 나이의 그 아이들이 갖는 통통 튀는 활력과 활짝 열린 미래에 대한 희망이 교실을 밝게하곤 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녀처럼 나도 그런 아이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 세라 바이넘의 경험이 녹아있는 단편들을 모아놓은 이 책 <미스헴펠연대기>는 전부 8개의 단편들이 모여있다. 중학교 7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 비어트리스 헴펠의 일상과 꿈과 과거와 사랑, 그리고 우정이 이 소설들에 녹아있다. 소설들은 서로 잘 어우러져서 마치 한 편의 장편을 읽었을 때처럼 독자는 비어트리스 헴펠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는 캘빈이라는 동생이 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매기라는 여동생이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매끄러운 팔과 다리를 가진 호씨 성을 쓰는 중국여인이며,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큰 불화가 있었으나 부부는 그런대로 생활을 영위해 간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만족하지 못했던 베어트리스는 늘 학교를 떠나는 꿈을 꾼다. 때로는 큰 부상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임신과 결혼으로 그 길을 찾으려하기도 했지만, 비어트리스 헴펠 선생은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가진 재능을 아꼈다. 그녀는 아이들과의 바닷가 피크닉에서 그들의 세상에 동화하고, 함께 했던 수업의 내용들이 아이들이 자라서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결코 길지도 않지만, 짧다고도 할 수 없는 세월동안 학교만 다녔던(그 중의 반은 학생으로 나머지는 선생으로) 나로서는 이 소설의 배경이 학교라는 점에서 일단 친근감을 느꼈다. 아무리 나라와 문화가 다르더라도 학교는 학교니 말이다. 아이들의 엉뚱함과 때로는 전쟁과도 같은 수업 시간, 짜릿한 휴식 시간의 소란함까지도 어쩌면 그리도 비슷한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학교와 교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원형적인 체험을 이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참말이다. 또 헴펠 선생네의 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갖가지 사건들을 만날 수 있고 헴펠이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문학은 보편적이고 개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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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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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들었던 노래 중에 "내 인생의 나의 것" 이라면서 외치던 노래가 있었다.
 단 한번도 인생의 주인의 누구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던 때이고, 게다가 막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라서 그 말이 주는 충격은 나름 깊었다. 나는 부모의 자랑스런 딸이고, 동생의 언니였는데,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내것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 아닌가. 학교를 꼭 안 가도 되는 것이고, 공부를 꼭 잘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란다. 매일매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책이나 읽고 만화방에만 가도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내 인생이 오로지 내 것일수 있다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면서도 보람차고 그리고 부담스러운 것인가 말이다. 그 때의 그 혼란스럽고 미묘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그 여운이 남는다.

 그런데 이 소설 <구경꾼들>에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은 어쩐지 인생의 주인공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이 소설조차 그가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 그의 아버지와 할머니, 증조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 삼촌, 작은 삼촌과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외할머니가 주인공처럼 보인다. 소설 속의 그들은 한없이 얽히고  설켜서 그림으로라도 그려봐야 일목요연하게 보일 정도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쓰면 소설 한 권은 족히 나올 것이라고 하지만, 참말로 그런 사람들이 이 소설에 가득하다. 한 사람 한 사람 그의 인생을 집요하게 따라간다면 각각의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소설 속의 그들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사돈지간인데도 함께 여행을 가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심지어 한 집에 살기도 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식사 시간의 친밀함과 서로에 대한 무심한 관심들은 이렇게 사는 것도 참 근사하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들이 살았던 집의 기억들과 나무의 기억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한없는 방랑속의 사람들 역시 이 소설의 사랑스런 주인들이고 그들 인생의 주인이란다.

 세상 사는 것이 답답하고 너무나 천편일률이어서 지겨울 때 이 책 한 번 들여다 보자. 이들의 다채롭고 대단한 그러나 조금은 평범하고 지겨운 삶들의 나열을 보면서 우리 역시 우리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그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고 또 구경꾼인 것처럼 우리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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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세계사 - 음식, 인류 역사 1만 년을 가득 채운 그 달콤 쌉싸래한 이야기
주영하 지음 / 소와당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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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가지 즐거움이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즐거움,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 그리고 책을 찾아 읽는 즐거움 등 저마다 다 다르고 또 같기도 하다. 그 중 공통적으로 다들 사랑하는 것 중에 하나가 먹는 즐거움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단지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가기 위해서 여행을 계획하기도 할 정도로 먹는 즐거움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맛난 음식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조차 있지 않은가 말이다.

 세상이 점점 좁아져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칠리소스를 바른 나초에 기네스 맥주를 마실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면 언제든지 세계 각 나라의 멋진 음식들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여러나라의 독특한 음식들을 보면서 가끔은 이것들은 우리 곁에 언제쯤 왔을까? 혹은 이것들을 처음 먹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 때도 있다.

 이 책 <맛있는 세계사>에는 바로 그런 숨은 이야기들이 열 가지나 있다. 최초의 문명이 만들어낸 음식인 빵, 로마 군대와 함께 지중해를 장악한 치즈,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들어온 국수,  중세 유럽의 농민 음식인 소시지,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에 전해진 사탕과 신대륙 아메리카의 토마토가 완성한 피자와 오스만의 케밥, 과학의 힘을 입은 초콜릿과 영국의 식민지배로 탄생한 인도의 커리, 그리고 20세기 미국의 힘이 만들어낸 햄버거가 그 주인공이다. 각각의 음식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음식이 그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이 관계되어 있는지를 이 책은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각 음식마다 그 음식의 이야기에 언급된 역사적 배경들까지 그림 또는 사진으로 전달하고, 바르고 공정하게 생각할 문제거리들을 주어서 사고의 폭을 넓히게 한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음식은 바로 국수였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누들로드 Noodle Road>를 퍽 흥미롭게 볼 정도로 나는 국수라는 음식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많다. 밥보다 더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는 지라, 동네에 새로 국숫집이 생기면 꼭 챙겨서 찾아가곤 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국수의 나라인 중국을 여행하면서 '국수 기행'을 하고 싶은 꿈도 꾼다. 그러니 국수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이다. 다만 이 책은 국수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기에 그 설명이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 대신 다른 음식들이 또 나를 기다리지 않는가. 요즘 조금씩 베이킹을 시도해 보는 중이라서 빵에 대한 관심도 많고, 이젠 치즈도 더 알고 싶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음에도 결코 가볍지 않으며,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음에도 결코 깊이를 무시하지 않는다. 한창 음식에 관심이 많은 아이에게도, 시사 상식이 곧 실력을 키우는 길인 수험생에게도 권하고 싶은 좋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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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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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신년이 되면 서점에 풀리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기다렸다. 올해는 또 어떤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을 것인가 하는 기대와 그 작품에 대한 설렘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일은 행복하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은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글자를 알게 된  그 순간부터 책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깊은 겨울 밤 아랫목에 깔아 놓은 이불에 발을 넣고 한 장 한 장 넘기던 그 소설책들은 대부분이 외국 작가의 작품들이었다. 그 때만 해도 세로줄 책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한 면이 책으로 가득한 이모의 서재는 국민학교 시절 동네 친구의 집에서 다 빌려다가 읽은 오렌지빛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 이후로 가장 근사한 보물창고였다.

 그러던 나의 소설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게된 계기가 바로 이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전까지 우리나라 소설들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터라(나를 소설의 세계로 이끈 이모의 서구 취향은 나의 문학적 방향을 제한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처음 이 작품들을 접했을 때의 신선함과 행복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저녁의 게임>, <엄마의 말뚝>을 거쳐서 나의 성장과 함께한 이 수상집에 대한 애정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작품들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어느덧 수상자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해지고 더 나아가 그들의 연배가 나보다 아래인 경험을 할 때 진정한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좀씩 피로를 느끼는 나이에도

마무리 없이 잇달은 나의 문제들

하기야 그런대로 멀어는 갈 테지

안개처럼 언제나

나라는 한없는 서장(序章)처럼 

                                   박태진, 안개 중에서  

 

 나이를 먹고도 뚜렷한 성취를 이루지 못했던 나의 현실을 직시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꾸준히 사 모으던 책을 작년엔 한 해 쉬었다. 박민규 작가가 수상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동년배에 대한 근거없는 친근함을 갖게 한 그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참신하다기 보다는 파격적인 소재와 거침없는 표현, 그리고 어쩌면 다르게 보이지만 늘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펼치기엔 조금은 부담스러운 느낌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 <아침의 문>은 늦게라도 읽기를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남자와 여자, 그들의 시선은 서로를 향하지 않고 스스로의 내면을 향한다. 인터넷 자살 까페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서 만난 그들은 처음엔 여섯 명이었다. 그 중 두 명은 울다가 돌아가고 나머지 네 명만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밟기로 했다. 그러나 화자는 어처구니없게 자신은 이틀 내내 잠만 자고 일어났다는 것을 눈을 뜨고 나서 알게 된다. 화가 난 화자는 편의점에 가서 비스킷을 사 먹고 터덜거리며 돌아온다. 그리고 그는 다시 천국으로 가는 또 다른 길을 모색한다. 

 우리의 시선은 편의점에서 만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는 임신 막바지이다. 아무도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모른다. 그녀를 임신하게 한 그놈만 빼고, 그러나 그놈은 그녀를 때리고 위협할 뿐이다. 이미 중절할 시기를 놓친 그녀는 세상에 대해서 욕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지만, 그 날은 유난히 강한 통증이 허리를 비틀게 한다. 그녀는 잘 몰랐지만 그것은 출산의 징후다. 어느 곳에도 자기 몸 하나 마음 놓고 뉘일 곳 없는 그녀에게 태어날 아기는 두렵기만하다.

 박민규의 시선이 따뜻한 것은 그래서이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자리한 곳이 차가운 시멘트 위인 아기에게나, 두렵고 피하고 싶으면서도 그 아기가 기형일까봐 걱정인 그녀에게나, 이젠 그만 동그란 문으로 자신의 목을 들이밀고 싶었던 그에게나 그 날 아침 햇살은 참으로 축복이었던 것이다.

 이젠 더 이상 희망이라든가, 이상이라든가 혹은 정의 같은 말들에 감격하고 흥분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세상은 너무 춥고 너무 쓸쓸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탓이다. 그러나 가끔씩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한 사람을 볼 때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거나 할 때 아직도 우리의 마음 속에 따뜻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작품이 나에게 하늘을 다시 한 번 볼 여유를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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