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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의 뜨개질 클럽
케이트 제이콥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털실을 고르는 일은 그 잠재적 결과를 생각하면 언제나 흥분된다. 다채로운 색깔과 질감의 털실들은 스웨터나 모자의 형상들로 (그리고 그에 동반되는,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찬사로 ) 당신을 유혹할 뿐, 그것을 얻기 위해 수반되는 힘든 노동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어릴 때는 엄마가 떠 준 스웨터를 입는 아이들이 많았다.
서로 엄마의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샘을 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오렌지색 바지만큼은 정말 싫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는 기억을 못하시지만 촘촘한 결로 두코 고무뜨기로 죽 이어서 뜬 그 바지를 입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곤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 바지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이 안 갈 정도인데도 말이다.
아직도 우리 엄마는 내게 스웨터를 떠 주시곤 한다.
내 것뿐 아니라, 내 남편, 우리 아이들의 조끼며 스웨터를 떠 주신다.
나도 뜨개질을 곧잘하는 편인데도 엄마가 보시기엔 영 엉성하단다. 풀고 다시 뜨실 정도이니 말이다.
뜨개질 마니아였던 나에게 이 책 <금요일밤의 뜨개질 클럽>은 너무너무 재미있는 책이다.
총 528쪽의 분량에 저자 서문도 역자 서문도 없다.
온통 본문이다. (끝에 두 쪽은 역자의 후기가 간단히 달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몇시간이 소요되었을 뿐이다.
뜨개질 순서에 따라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재료모으기, 게이지 내기 등에서 자신이 만든 옷 입기까지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뜨개질 강습용 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뜨개질의 일련의 과정들은 우리의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다시피 뜨개질의 재료는 꼭 털실이 아니라도 관계없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듯이 동네에 간간이 있는 뜨개질 집에는 꼭 여인들이 모인다.
각자 뜨개질 거리를 들고 앉아서 손으로는 열심히 바늘을 놀리고 입으로는 열심히 수다를 떤다.
집에서 뜨다가 잘 모르는 코줄이기 또는 코 늘이기, 이어 붙이기를 만나면 너무너무 난감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도해줄 선생님이 필요하다. 혹시나 휴일이어서 선생님을 만날수 없는 날이면 가슴이 답답한 불안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미리 다음판을 시작하기도 한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단지 그것뿐은 아니다.
우리는 거기서 사람을 만나다.
뜨개질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곳에선 처음보는 아기의 옷을 함께 구상하기도 하고 모르는 남자의 조끼의 패턴을 연구하기도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리라.
우리는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유만으로도 같은 클럽인 것이다.
주인공은 딱히 한 명은 아니다.
뜨개질 가게 주인 조지아 워커 - 혼혈인 딸을 둔 싱글맘이다.
그녀의 딸 다코타 워커 - 요리를 좋아하는 밝고 귀여운 사춘기 소녀이다.
다코타의 아빠 제임스 - 젊은 시절 본의 아니게 조지아를 떠났으나, 그들에게 돌아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워커 수예점의 멘토 애니타 - 그녀는 남편을 잃고 마음 붙일 데를 조지아를 사랑하는 걸로 정한 듯하다. 그들은 정신적 모녀이다.
수예점의 직원 페리 - 너무나 똑똑한 그녀는 가정에선 법대 진학을 바라지만 가방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다.
조지아의 선배 K.C - 출판사 편집자였던 그녀는 직장에서 위협을 받자 법대 진학을 결심하고 페리에게 과외를 받는다.
조지아의 어릴 적 친구 캣 - 대학 진학 당시 조지아를 배신한 후로 연락이 끊겼다. 부자인 아담과 결혼하여 돈만 많은 생활을 하다가 조지아를 보고 용기를 얻어 혼자만의 삶을 시작하려한다.
클럽 회원 루시 - 남자와의 관계를 부담스러워하지만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아이를 갖기로 한다. 그리고 임신을 한다 불투명한 직장과 적은 급료로 살기 어렵지만 뜨개질 클럽에서 위안을 받으면서 다윈을 만난다.
다윈 - 뜨개질은 잘 못한다. 처음엔 논문 자료 수집차 클럽에 나왔지만, 결국엔 클럽의 회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과의 관계, 루시와의 다정한 사이 등이 그녀의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
마티 - 워커 수예점 아래층 델리의 주인. 워커 모녀를 가족처럼 생각한다.
이들 모두의 절절하고 기구한 사연들이 이 소설을 가로세로 얼기설기 이끌고 있다.
그들은 생판 남처럼 보이지만 실은 털실처럼 서로 얽혀있음을,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좋아하는 뜨개질 용어들, 아름다운 털실과 스웨터를 뜨는 동안의 인내와 고통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읽는 내내 내가 그 클럽의 회원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그들과 함께 털실을 고르고 무늬를 짜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을 정도로 기쁜 일이었다.
적절한 위트와 섬세한 묘사가 이 글을 읽는 내내 웃음짓게 만든다.
영화를 기대한다.
창고에 처박아둔 뜨다만 뜨개질감을 꺼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