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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 소설에서 찾은 연애, 질투, 간통의 생물학
데이비드 바래시.나넬 바래시 지음, 박종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선캄브리아 시대의 진흙탕 속에서 노딜던 최초의 생명체 이래 명멸을 거듭했던 그 무수한 생물들에게 정말 심심힌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자와 소설가는 물론이고, 지금 이 책을 읽는 여러분 모두도 결국 그들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 450쪽
지금까지 읽었던 수 많은 문학 작품들이 순간 스쳐간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부터 <금요일밤의 뜨개질 클럽> 까지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소설들을 읽고 즐거워하기도 했고, 또 그중에는 인물을 분석하거나 작가의 문체적 특징을 규명하려는 노력까지도 했었다.
그 많은 책들에는 일관적인 흐름들이 있었다.
남녀, 부자, 부부, 친구와 고부 관계까지 다양한 인간관계들이 소설을 이루는 핵심축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주인공들은 비슷한 행태를 보이곤 했다.
마치 인간들의 행동과 심리에는 어떤 근원적인 원리라도 있다는 듯이 말이다.
바로 이 책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에서는 그런 원리들을 보여준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문학에 있어 생물학적인 요소가 전부는 아니지 않나요?" 물론 문학에는 다른 요소도 있다. 게다가 생물학은 문학을 즐기고 이해하는데 있어 '유일한' 열쇠도 아니다. 하지만 생물학도 열쇠는 열쇠다.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더 많은 문을 열어주고, 더 많은 접금을 가능하게 해주는, 아울러 보다 협소하게 고안된 다른 대안에 비해서는 보다 많은 것들을 시사해주는 일종의 곁쇠인 것이다. 본문 439쪽
그렇다. 생물학이 문학을 해석하는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인간은 한 가지의 학문으로 해석되는 그런 단순한 행동을 보이는 동물이 아니므로 훨씬 더 많은 이유와 까닭이 있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는데 큰 키워드를 제공한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전체가 10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 8개의 장을 할애하여 문학 속에서 보여지는 각 인물들의 행동과 그 근저의 심리를 분석하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귀납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오셀로로 대변되는 모든 남성들은 자신의 번식을 위해서 다른 남성들과 경쟁 관계에 돌입한다. ㄱ,ㄷ,ㄹ의; 경쟁관계는 폭력적이고 허풍스럽다. 이 경쟁에서 상위 서열을 차지한다는 것은 번식 접근성에서 상위 서열을 점령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진화의 성공확률이 상승하는 셈이다. 남성들은 스스로 자손을 출산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짝이 낳은 자손이 자신의 아이임을 확실하 하기 위해서 일부일처제를 고집한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일부일처제는 불합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바로 남성들의 질투는 이 유전자의 영속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오셀로는 자신의 유전자를 순순하게 보존하려는 욕망에 사랑하는 아내를 살해한 것이다.
이 장에서 기억나는 작품은 프랭트 노리스의 <맥티규>이다.
한편 제인오스틴으로 대변되는 여성들은 이런 남성심리와는 반대로 자신의 진화를 위해서 앙혼을 하려는 투쟁을 한다. 외모, 성격, 돈으로 대변되는 유전자 개량의 조건을 갖기위해서 베넷가의 딸들은 빙리씨의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인오스틴의 강점은 그들의 능력을 주인공들이 나누는 재치있는 문답과 명석한 관찰과 통찰력 있는 한마디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바로 훌륭한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정신적 능력이고 성공적 자손을 만들어 낼 가능성의 증거라고 보는 것이다. 이디스 워튼이나 새커리의 작품들을 에로 들고 있다.
남성이 원하는 것은 제인의 경우와는 다르다. 위의 오셀로의 장에서 다룬 대로 남성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발전시킬 상대의 여성을 원한다. 더 젊고 건강한 상대를 고르고자하는 것은 모든 문화의 보편적 현상으로 남성들의 성모/ 창녀 콤플렉스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솔 벨로 <험볼트의 선물>이 기억난다.
마담보바리의 난소 역시도 제인 오스틴과 다르지 않다. 여성들의 간통이 남성의 경우와 다르게 처벌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들로 하여금 자기자식에 대한 불안감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집착은 그들의 이기적일수밖에 없는 심리를 이타주의로까지 확장시킨다. 가족의 유대를 다루는 장에서 작가는 부모로서의 사랑은 진화적 매커니즘의 일부라는 표현을 한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보유하기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혈연의 경우에도 그렇다. 혈연을 향한 이타주의의 근원은 확대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문학작품 중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조리한 사건의 배후에는 혈연의 선택이 있다는 말로 설명된다. 여주인공의 이해할수없는 조카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그가 실은 숨겨둔 친자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물학적 감미로움이라고 한다.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을 예로 든다.
또한 신데렐라의 고초를 이해하는 열쇠도 여기에 있다. 진화는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질색한다. 전수되는 유전자의 주인이 아니므로 그 보상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의 자녀를 향해서 부모로서의 열심을 품을 수 있다는 확신은 사회적 인습일 뿐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와 투쟁하는 한편 자신들의 복제를 선호한다는 장기간의 전통을 지닌 생물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버라 킹솔버의 <콩나무>를 꼭 읽어보아야겠다.
부모 자식간의 갈등의 경우도 유전자의 원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기실 자식이 가진 유전자의 절반만이 나의 것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공유된 유전자가 공통된 이득을 낳듯이 공유되지 않은 유전자는 상충되는 원칙과 노골적인 갈등을 낳는다. 이기적이고 요구사항이 많은 부모를 지니는 것은 끔찍한 고통으로 표현된다. 이미 읽어서 가슴에 남는 라우라 이스키벨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인간이 지니는 호혜적 이타주의에 대해서도 작가는 꼬집는다. 우리 인간은 다른 사람에서 보답을 위한 베풂만을 주기 때문이다. 돌아올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베푼다. 그것이 아주 먼 후일의 일이라도. 인간은 아주 오래 살기 때문이다. 레베카 웰스의 ,야야시스터스의 신성한 비밀>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호혜적 이타주의의 대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굉장히 두꺼운 책이고 또 그 내용 또한 방대하다.
예로 든 작품의 수만해도 너무도 엄청나서 나의 독서 기록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작품들을 예로 들면서 생물학적 이론으로 해석해준다.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과 영화에 대한 저자의 박식과 너무도 날카롭고 적절한 패러디와 위트는 결코 쉽지않은 이 책을 재미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