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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ㅣ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부터 나는 라틴 아메리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잉카나 마야나 아즈텍과 내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쩐지 그 곳의 음악을 들으면 알 수 없는 설움 같은 것들이 왈칵 몰려나왔고,
그 쪽의 의상이나 소품들을 보면 감촉을 느끼고 싶었으며,
그들의 문학은 나로하여금 피가 뛰놀게 했고, 그들의 색채는 나의 감성을 일깨웠다.
학창 시절 <엘 콘도르 파사>는 나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이었다.
우연히 전생을 검색하는 사이트의 결과를 보니 나는 전생에 아즈텍의 전사였단다.
그러면 그렇지. 그곳은 나의 정신의 고향이다.
화가 <김병종의 라틴 화첩 기행>은 정말로 딱 맞는 주인의 손에 안기게 된 것이다.
그림 못지않은 문재를 지녔다는 김병종님의 글과 그림을 이번에 처음 만났다.
이 책 <김병종의 라틴 화첩 기행>은 그가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그림과 글로 표현한 일기같았다.
나는 이 책에서 많은 화가와 혁명각와 소설가와 시인과 연주가를 만났다.
경이로운 색채의 그림을 함께 감사한 것까지 포함한다면 나의 눈과 마음은 큰 호강을 한 셈이다.
우선 그는 쿠바를 향한다.
아바나! 쿠바리듬과 아름다운 여인들과 시가가 잇는 그 곳에서 그는 브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연주를 감상할 행운을 얻는다. 호텔 콜리의 경건한 식탁에서 그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그리고 입의 사치가 영혼을 흐리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쿠바의 아바나에는 호텔 암보스문도스가 있다. 그 곳 511호에서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고 한다. 아바나는 체게바라와 헤밍웨이의 도시인가 보다. 아니, 그가 헤밍웨이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카페 프로리디타,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서 <노인과 바다>의 코히마르, 헤밍웨이의 별장 핑카 비히아까지 그는 훼밍웨이의 자취를 따른다. 가장 마초적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여린 심성을 가졌을 헤밍웨이는 쿠바의 성격과 묘하게 닮았다.
체게바라와 호세 마르티와 트로피카나와 말레콘까지, 그는 내가 쿠바에 가면 꼭 보아야할 것들을 미리 보여준다.
디에고와 칼로의 멕시코.
벽화로 유명한 디에고는 그의 아내 프리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만 그녀 프리다 칼로는 그의 모습을 이마에 새길 정도로 그들은 하나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푸른 색의 프리다의 집과 피둥피둥한 디에고의 자화상과 마리아치 밴드와 푸엔테스가 있는 나라 멕시코를 그는 푸른 색의 바다로 표현한다.
아르헨티나.
우리나라와는 지구의 정반대라는 그 나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좋은 공기의 도시, 남미의 파리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수 많은 예술가들이 스쳐갈 때는 무엇인가가 있겠지.
보르헤스와 에바 페론의 무덤이 있는 레골레타를 안내하고 육체로 쓰는 시 탱고를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꼭 가고 싶은 곳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라 보카. 탱고의 태생지라는 그 곳.
거리 전체가 설치 미술같은 색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라 보카를 꼭 가보리라.
삼바의 브라질과 일 포스티노를 연상케하는 네루다의 나라 칠레를 여행하고 그는 새들도 가서 죽는다는 페루에 갔다.
내 영혼의 고향인 마추픽추와 세계의 배꼽 쿠스코에서 만난 아름다운 눈동자의 아이들.
그리고 날마다 죽는 사제를 만나 곳 리마.
짙은 바다 안개가 문을 닫아도 슬며시 들어와 가슴을 채운다는 그 곳에서 로맹가리가 만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리마 북쪽 10킬로미터는 로맹가리가 가고 싶어하던 그 곳일까?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음악, 미술, 문학에 대한 광대한 지식과 적재적소에 인용하는 힘에 놀랐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 느껴지는 책이었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의 안목을 더욱 넓히고 더욱 많은 것을 만난 것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