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유산
이명인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작가가 말하는 은밀한 유산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거짓으로 점철된 족보인가. 뼈대있는 가문의 장손 자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깊이 남아있는 양반의식인가.

아니면 그래도 남은 것은 사랑인가.

 

이 소설은 두 집안간의 다툼으로 시작된다.
오래전 고라실에 자리잡은 불천지위 충숙공파의 연암 이가들이 그 한 집안이다.
뼈대있고 대대로 큰 벼슬을 한 갑족의 명문대가.
그 집안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찔러 궁핍한 형편에도 봉제사 접빈객에 소홀하지 않았으며 감히 향반인 주제에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너븐들의 김가들을 우습게 알았다.
비록 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알토란같은 집안을 이끌어가는 너븐들의 김씨네는 헛기침만하는  고라실 사람들을 비웃는다.


이 소설 의 제 1부는 이렇게 서로 혐오하는 두 집안의 젊은이들이 한일합병 시기를 살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경성에 나가 공부를 하는 두 집안의 자제들은 양반의 후예답게 나라를 구하려는 뜻을 같이하고 학생운동을 도모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히고 그만 옥사하고 만다.
그 중 고라실의 종손인 정우는 너븐들의 딸 난설과 정혼을 하였으나, 혼사를 이루지 못한 채로 눈을 감고 말고 너븐들 역시 귀한 아들을 잃는다.
그 와중에 고라실 종부 백씨는 후사를 이으려는 욕심으로 너븐들의 보물 목각 원앙을 훔쳐내고 그 일은 비밀에 부쳐진다.
고라실은 점점 가세가 기울고 온 집안의 남정네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종가는 그대로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너븐들은 그 알토란같은 살림을 지켜낸다.

 

그리고 2007년.
너븐들의 종손인 현진은 종손인 처지라 장가도 못 간 채로 서울서 직장에 다니다가 블로그를 통해서 우연히 영인을 만난다.
알고보니 영인은  고라실의 후손이다.
고라실 마을 사람들은 영인의 등장으로 영인의 부자 아버지가 고라실의 종손임을 알게 된다.
영인과 현진은 끊어질 듯 사랑 놀음을 한다.
영인의 부자 아버지는 현진을 떼어놓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영인은 자기집 안방의 목각 원앙의 의미를 알고 싶어한다.
영인의 집에 목각원앙이 있을 줄은 몰랐던 현진은 그 이야기를 영인의 집안 이야기인 것처럼 전해주고 급기야 그 원앙 한마리가 고라실에 등장한다.

 

그리고 다시 3부.
정신없던 그 시절.
집안의 일을 돌보아 주던 공인 김몽득은 고라실의 후사를 잇기 위해서 자신의 사촌 누이를 고라실로 들여보내나 후사는 잇지 못한다.
김몽득이 원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거한 양반의 족보이다.
아무리 돈이 말하는 세상이 온다해도 양반이어야 사람 행세를 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리고  사촌 누이가 집안이 망하게 되었음을 알리자 집안의 족보를 훔쳐내어 자신의 아들을 고라실 이씨로 만든다.
그가 바로 영인의 조상이다.


그러니 그들은 실은 실제 그 집안의 후사가 아니다.

김몽득의 선택은 제대로인가.
남의 족보를 훔쳐서라도 되고 싶던 양반인가.


지금의 이 시대에서도 우리는 양반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결국엔 자신의 후손이 고라실의 종손 노릇을 하게되었으니 김몽득의 선택은 정확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때로 등장하는 종가의 정갈한 장독대들이 느닷없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장독대를 깨끗이 닦아내었던 여인들의 손길도 함께 떠오른다.
집안을 위해서 살림을 단장하고 감정을 숨기고 때로는 여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도 그들은 당당했다라고 한다.
무엇이 그들을 당당하게 했을까.
대갓댁 마나님이라는 자부심일까?
온 집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기 때문일까?

 

많은 이야기를 한 권에 담으려는 마음때문이었는지 읽는 내내 줄거리를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읽으면서 숨이 찼다고 하면 과장일까?
저자는 어떤 유산을 은밀히 남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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