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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연민(憐憫/憐愍) 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타인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바로 연민이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아직은 만나 본 적이 없는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연민>을 관통하는 주된 정조가 바로 '동정심'이다.
세계 제 1차 대전의 영웅인 호프밀러를 서술자가 만나는 장면으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전투기까지 홀로 격추시킨 그는 너무도 뛰어난 군인으로서 온 나라의 존경을 받지만,
정작 그는
"나는 지난번 전쟁 때 군중의 용기라는 것이 기껏 일렬 종대 내에서의 용기임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이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사람은 아주 희귀한 요소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수많은 허영심과 경솔함, 심지어 지루함과 두려움까지도......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조소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독단적인 행동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동감 넘치는 다른 무리들과 반대 입장에 서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 본문 13쪽
라는 의견을 낸다.
서술자에게 그는 "용기란 가끔은 뒤집어진 소심함"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로지 "연민"이라는 감정 때문에 예정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그는 진정한 사랑과 동정심 사이에서 방황하는 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우리가 감추고 싶어하고 때로는 스스로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음 갈피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도 작가는 이 소설의 주인공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장애 소녀에 대한 동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씨로부터 시작된 이 불행은 그 결말이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의 너그럽고 친절한 마음씨는 그의 타고난 인간성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신처럼 바라보는 우쭐한 마음이기도 했다.
케케스팔바 가족의 호프밀러 소위에 대한 의존과 사랑과 존경은 심약하고 어리석으면서도 착한 마음씨를 가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 대한 대책없는 동정심이 그녀와 케케스팔바 가족을 불행으로 밀어넣으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사랑하는 에디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그 집사람들에게 오로지 존경과 감사만을 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매번 그 지독한 동정심을 거두고 냉정하려할 때마다 또 다시 밀려오는 연민의 파도에 스러지고 만다.
그 연민에 이끌려 그는 에디트와 약혼까지 하고 그것을 부정하기에 이르러 에디트로 하여금 죽음을 향하게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연민"은 사랑할 때 버려야할 지독한 감정이다.
타인과 세상에 동정심이 가득한 사람은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비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듯이 동정심만으로는 사랑할 수는 없다.
동정심이란 상대가 나보다 부족하다고 느낄 때 갖게되는 우월감의 또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상대와 내가 동등하다고 느낄때, 또는 상대에게서 존경할만한 덕목을 발견할 때 사랑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에 가득한 작은 글씨의 이 책은 곳곳에 날카로운 문장들을 품고 있어서 읽는 즐거움을 준다.
"우리는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와 사명감을 느낀다." - 본문 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