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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회사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5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호시 신이치라는 이름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처음 들었다.
워낙 일본 소설이라든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적은 탓도 있지만, 이 분의 명성 또한 그리 대중적이지 만은 않은 듯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일부 매니아들이 그에게 열광한다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 시리즈의 이름이 더욱 눈을 끌었다.
'플라시보' 란 실제로는 약효가 전혀 없는 약을 환자에게 약이라고 속이고 투약했을 경우, 환자가 호전 반응을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라틴어다.
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보이고 싶은 약효는 무엇일까?
그는 독자들이 그의 글을 읽고 어떤 현실을 잊기를 바란 것인가?
그의 플라시보 시리즈 중 5권인 <도둑회사>는 처음 만난 나에게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결코 크지 않은 사이즈, 220쪽의 많지 않은 분량에 그는 41편의 초단편을 실었다.
대다수가 다섯 쪽의 짧은 분량이다.
인물의 외모라든가 성격, 사건의 정황 묘사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주로 줄거리.
그러나, 간략한 이야기 요약본을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짧지만 그 안에는 해야할 말은 다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건의 인과 관계와 스피디한 속도가 관건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의외의 허탈한 반전들이 재미있다.
시작은 <원대한 계획>이라는 제목의 원대한 작품이다.
아이디어나 소설 속의 시간 전개가 원대하다.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유명회사인 R사의 입사 시험에 합격을 한다. 뜻밖에 그를 찾아 온 사장은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경쟁사인 K사에 입사 시험을 보라는 것이 사장의 제안이다.
그에게 경쟁사에 입사해서 신임을 받은 뒤, K사의 회사 기밀을 수집하는 스파이의 역할을 제안하다.
보수도 많이 주고 R사로 돌아오는 즉시 중역으로 승진 시키겠다고 한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K사에 입사를 한다.
그리고 의심 받지 않고 회사 기밀을 다룰 수 있을 만큼 승진을 하기위해서 몸 바쳐서 열심히 일을 한다. 회사에서는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초고속 승진을 시키고 회사 간부의 딸과 결혼까지 한다.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을 하지만 실력있고 똑똑한 그는 더욱 더 많은 정보를 얻어서 확실한 입지를 갖고자 더 열심히 일을 한다. 드디어 그는 K사의 모든 기밀을 알 수 있는 자리에 오른다. 바로 K사의 사장이 된 것이다.
"K회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모두 내 손에 달렸다. 여기서 교묘하게 도산시킬 수 있다면 내 사명은 성공적으로 끝나게 된다. "
"그러나 꼭 망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피땀 흘린 노력을 어설픈 보수로는 보상 받을 수 없어. 돌아가서 R사의 임원이 되어도 별다른 소득도 없고, 사장의 후계자가 된다고 해도 지금보다 못하지. "
----------본문 10-11쪽
결국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한사람의 일생을 고작 몇 쪽의 소설 안에 몽땅 담을 만큼 원대하다.
나는 여기서 작가의 세상에 대한 냉소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집 <도둑회사>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 암울함은 외계와의 소통으로 외계인을 이용하다가 오히려 당하는 어리석은 지구인들의 모습으로 드러나거나, 평범한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잔인한 무관심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사기와 트릭과 암호와 최면을 이용한 그의 회색빛 반전들로 나타난다.
작가가 잊게 하고픈 현실이 바로 이런 모습인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