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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어딘지 음삼스럽긴만한 이 소설은 붉은 표지에 권총과 서류가방이 날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모스는 한 손에 기관총을 들고 가방을 맨 채로 달린다.
거친 황야에서 돈이 가득한 그 서류 가방을 손에 든 그 순간 그는 이미 죽음을 예약한 것이다.
등장 인물이나 배경에 대한 안내나 설명도 없이 느닷없이 시작되는 이 소설은 끝까지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심지어 구두점은 고사하고 따옴표조차 없어서 이 대사가 누가 한 말인지 아니면 그저 속으로 혼자 지껄인 말인지를 생각하느라 사건을 놓치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시대적 배경도 알기 어렵고 등장인물의 과거도 알 수 없다.
그저 남자 혹은 여자애라고 지칭되는 등장 인물들은 소설에 느닷없이 뛰어들었다가 총에 맞아 나가 떨어지곤 한다.
전체적으로 잔인한 살인의 장면, 액션 영화 보다도 더 잔인한 총기 난사 장면들, 흐르는 피, 날아간 얼굴, 부러진 채 뼈가 드러난 팔따위가 아무렇게나 나타나서 밤중에 홀로 책을 읽던 나를 화들짝하게도 한다.
그래도 한 번 줄거리를 찾아 본다.
용접일을 하는 베트남 참전 용사 루엘린 모스- 그는 전쟁후의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는 듯하다. 여린 마음의 소유자인 그는 전쟁의 악몽을 갖고 시니컬한 태도를 고수하며 평범한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우연히 황야에서 트럭과 시체들을 발견한다. 그가 있는 곳은 멕시코 접경지이고 그들은 마약 운반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예감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는 또 다른 시체와 돈이 가득 든 가방을 발견한다. 그 가방을 손에 든 그 순간 그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가방엔 트랜스 폰더가 장치되어 있었다. 바로 위치 송신기.
물을 찾으며 죽어가던 그 마약상을 못 잊어 그는 한밤중에 물을 들고 현장을 다시 찾고 돈을 찾고 있던 일당들에게 발견된다. 그리고 그는 집을 떠난다.
그가 사는 지역의 보안관 벨은 특별한 사람이다. 역시 전쟁 영웅인 그는 평생을 그 군의 보안관으로 일했고 그의 조상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모스에게 애정을 갖고 그를 찾으려 애를 쓴다. 모스가 상대하는 적이 모스의 힘으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내면의 목소리를 보이는 사람이 바로 이 보안관 벨이다. 그에겐 이해심 많고 생각이 깊은 아내 로레타가 있다.
모스를 쫓는 잔혹한 살인광 안톤 시거. 그는 단지 자신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모스를 죽이려한다. 또한 모스에게 아내를 죽이겠다고 했기 때문에 모스의 아내 칼라진을 쏜다.
벨은 시거의 존재를 알고 찾으려하지만, 항상 사건이 일어난 후에 존재를 알아챈다.
그리고 모스는 결국엔 죽는다. 길에서 우연히 태운 여자애의 목숨을 위해서 죽고마는 모스에게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았다.
역자는 이 소설을 계시록이라고 한다.
무엇을 계시하는가. 인간성이 사라진 현재의 멸망을 계시하는가.
이 세상에 이미 악마가 존재함을 계시하는가. 여러 번의 생각을 필요로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닐 게이먼의 <멋진 징조들>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 뿐일까?
소설에 나온 한 지명이 나를 웃게 한다. 바로 샌안토니오다.
얼마전 그 곳으로 간 나의 친지는 영화에 안 나오는 지명이니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고 장난치는 나에게 샌안토니오가 미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알려주었다.
음, 이 소설에선 안 살고 싶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