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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표지엔 귀여운 노란 소형차가 있다.
노란 잎들이 떨어지는 가로수길을 노란차는 운전하느라 긴장해서 얼굴이 시꺼매진 엄마와 철없는 아이 둘이 타고 있다.
아이들은 창밖의 노란 나비같은 꽃잎들을 바라보고 입을 벌리느라 정신없다.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 같기도 해서 웃음이 난다.
우리 아이들은 제 아빠가 운전하는 차보단 내가 운전하는 차를 더 좋아한다.
아빤 너무 급하게 해서 멀미가 난단다.
그래도 좀 위험하다 싶으면 아빠보고 운전하라는 말을 해서 나를 기분 나쁘게 한다.
무슨 심뽀인지 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넘어선 찬사와 감동이라는 표지의 광고답게 이 소설의 서술자는 초등학교 5학년의 남자아이다.
라임오렌지 나무의 친구인 제제처럼 나이보다 조숙하고 생각이 많다. 그리고 역시나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으며 깊은 상처를 마음에 가지고 있다.
찰흙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요군은 엄마때문에 걱정이다.
다른 엄마와는 다르게 덜렁거리고 실수투성이인데다가 요즘엔 노란코끼리까지 운전하기 때문이다. 자기도 못하는 효과적인 수납법이나, 아이의 기분을 좋게하는 방법 따위의 글을 쓰느라 항상 얼굴을 찡그리는 엄마는 아이 둘을 책임지는 싱글맘이다. 깡통 하나 제대로 못 따던 엄마가 운전을 배우기로 한 것은 아빠가 더 이상 운전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여동생 나나는 아빠가 없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요군은 엄마와 나나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항상 나나를 돌보아주는데 힘쓴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열한살 생일날 아빠는 반짝반짝 빛나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가 비를 맞으며 가 버리고 나나와 요군은 앞으로는 아빠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빠와 엄마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더라도 요군과 나나의 아빠인데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지 요군은 이해할까?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미묘한 심리와 신경전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다. 아마도 자신이 의지하는 그 사람의 기분을 알아채는 것은 거의 동물적인 본능일 것이다.
부모 사이의 심각한 기류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아이들은 또 다시 그런 기분이 들 땐 스스로 그것을 어찌해보려고 노력한다. 말하지는 않아도 부모도 그것을 느낀다. 부모의 사이가 틀어질까봐 불안해 하는 아이, 그리고 자기의 힘으로 그것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아이의 마음을 어른들은 어쩌면 알지 못한다.
자신이 가장이기에 엄마와 나나를 책임지려는 요군의 모습에서 가여움이 느껴진다. 5학년 키도 작고 마른 그 어깨에 그리 무거운 짐을 지다니.
그러나, 요군 그러지 않아도 돼.
아무리 덜렁대고 실수 투성이라도 엄마는 강하단다.
그리고 엄마는 노란코끼리로 세상과 합류했으니, 이젠 엄마를 믿고 편히 쉬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