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위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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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황금가지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하였습니다.


11월에 반소매 셔츠를 입을 정도로 덥다니. 이렇게 마음속으로 놀란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한파특보라니. 기후위기를 더 자주, 더 강렬하게 체감하는 만큼 종말을 상상하는 빈도도 잦아졌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본인의 상상만큼 종말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는 것 같다. 마치 내 살아 있는 동안 종말이 오기야 하겠어?’라는 식으로. 마치 태어날 때부터 죽을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부정하는 사람들처럼.


부정해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대로라면 인류 모두가 종말 코앞까지 가게 될 수도 있는데, 진짜 종말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나는,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거대한 운명 앞에서의 선택이라는 주제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채택되었을 만큼 서사적으로 매혹적인 아이디어지만, 영화를 안 보는 나같은 사람은 책이나 보다가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인류의 종말은 투표로 결정되었습니다는 인류 종말을 주제(테마)로 한 여섯 편의 단편 기획선이다. 사람도 저마다 삶을 꾸리는 방식이 제각각이듯 여섯 편의 단편에 묘사된 종말의 원인도, 종말을 맞이하는 태도도 제각각이다. 이 인간적인 서사의 태도들이 마음에 든다.

 


죽이는 것이 더 낫다에 묘사되는 종말은 운석이나 외계인 같은 외부 요인의 개입 없이 인류의 일부 개체가 종말을 직접 결정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불러온 재앙(스불재)’의 표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해주의’,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는 게 결과적으로 이득이다라는 사상이 책을 매개로 전파된다. 사상에 도취된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진다. “워킹 데드와 같이 미디어에 표현된 좀비의 변형된 버전인 셈이다. 사상의 디테일은 생략되어 있는데(이를테면 ’, ‘어떤 측면에서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것이 나은지) 단편의 분량과 서사의 전개를 고려하면 탁월한 전략이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무에 가려 숲을 못 보면 안 되니까, 그렇게 망했다는 것이 요점이니까.


서평단 이벤트 공지를 통해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 솔직히 떠올린 생각은 시대정신이 투표만능주의라 미디어에서도 살인 투표니 오디션이니 하더니만 이제는 종말까지 투표로 정하네였다. 그런데 투표로 정해지는 인류 종말의 아이디어가 담긴 표제작(이라면 표제작) 침착한 종말을 읽다 보면 시종일관 느껴지는 분위기가 제목의 어그로와는 딴판이라 일종의 배신감(?)마저 든다. 미래 사회에는 일주일에 고작 2, 그것도 8시간 미만을 일하고 여유 시간에는 각자 보내고 싶었던 시간을 보낸다. 예전 유행했던 슬로건처럼 저녁이 있는 삶을 마음껏 누리는 셈이다. 대신 그 저녁의 끝에는 종말이 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한 번 경험하면 그대로 모든 것이 끝나는. 아마도 인류 종말이라는 전 지구적 이벤트 앞에서 우리의 현실은 작품에서 묘사된 것만큼 다소 우왕좌왕하며 나아가지 않을까.


종말은 인류라는 종()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이벤트다. 적용 범위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존재의 끝이라는 차원에서 죽음은 종에 속한 개체가 맞이하는 개별적인 종말이다. 캐시는 종말의 스펙트럼이 개인을 접점으로 교차할 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숙고하게끔 한다. 불행을 예견하여 피하도록 한 것과 비극을 포함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결과론적으로 같은 사실을 공유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무거운 분위기이지만, ‘종말이라는 사태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를 상기한다면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주인공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네필()의 마지막 하루에서도 종말의 직전까지 삶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어진다. ‘시네필스러운농담이 유쾌한 분위기로 군데군데 깔려 있는데, 덕분에 진성 시네필이 아니라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패러디된 영화 원작의 결을 알아차리지 못한 내 입장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트위터(현재 ‘X’라고 불리는)를 하는 시네필이라면 작품 곳곳에 포진한 은유와 패러디, 농담을 만끽하며 마음껏 즐길 수 있으리라 본다. 물론 시네필이 아니어도 괜찮다.


멸망을 향하여는 게임 마니아(그냥 겜덕이라 쓸게요)라면 한 번쯤 해 보았을 법한 상상을 기반으로 한다. ‘만약 지금 내가 하는 게임이 서비스 종료를 한다면, 게임 속 캐릭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소설의 무대는 서비스 종료를 앞둔 게임 속 세계이며, 소설은 비인기캐의 관점에서 세계가 어떻게 닫히는지를 종말전후로 드러내 보인다. 파국은 예정되어 있고 그 경로를 틀어버릴 수는 없다는 점에서 게임 속 캐릭터와 사람은 닮았다. 어쩌면 유한한 운명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게임의 세계를 창조하고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는 제목 그대로 가위바위보가 인류 종말을 앞에 두고 지구를 구하는 문제로 격상하게 된 이야기다. 가위바위보에서만큼은 100%의 절대적인 승률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 할 것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영웅이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영웅의 성장 서사를 수용하고 또 어떤 식으로 비껴가는지를 다루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제가 주제인지라 책을 덮고 나면 자연스럽게 숙연해진다. 아무래도 개체로서의 내가 맞이할 끝도 생각하게 되니까. 내 예정에 없는 삶을 간접적으로 겪어 보는 것이 독서가 가져다주는 효용 중 하나라면, 이 책의 수록작을 읽으며 예정된 에 대해 미루어서 체험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니 나는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해도 되겠다.

 


p.s. 별을 한 개 뺀 이유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하다 싶은 초반부의 오탈자 때문이다. (2쇄에는 고쳐졌으리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존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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