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한 줄 메모>란에 글을 올렸다가 이것을 좀 발전시켜봤습니다. 늘 뭔가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워낙에 필력이 딸리다보니 단문 하나 쓰기도 참 벅찬 요즘입니다. - 그런점에서 쉼없이 왕성하게 글을 쓰시는 소설강님이 부럽게 보일따름이지요- <하이데거, 혁명>은 궁여지책으로 쓴 단문입니다만, 이조차 쓸수 있게된건 모름지기 <황톳길> 덕분이고, 장차 멤버 여러분은 글쓰기의 큰 힘이자 원천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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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기상하면 독서실 오픈 전에 조간부터 먼저 읽습니다. 대충 헤드라인을 훑고 중요 기사는 사무실에 내려가서 읽습니다만 오늘 아침은 한겨레신문 별지<책과 생각>부터 살폈습니다. 두 쪽짜리 <책과 생각>은 일종의 북가이드인셈인데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하이데거>( 박민수 옮김/북캠퍼스)와 프랑스 대혁명기 백과전서파의 일원인 디드로가 편집한 <백과전서> 도판집(전 5권, 정은주 옮기고 엮음/프로파간다)이 눈길을 끄는군요.
두 가지 모두 책값은 두툼한 분량에 걸맞게 권 당 3만원이라는 거액인데, 맘 같아서야 당장 읽고싶지만 지금의 지적욕구와 열정으로 완독이 가능할지, 과연 아내로부터 책값을 타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맘에 드는 책을 놓고 구입을 망설이다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수 없건만 활화산 같은 열정이라도 나이는 어쩔수 없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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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일어나려면 먼저 사람들 머리 속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프랑스 혁명사 연구자 알베르 마티에(1874~1932)는 “혁명은, 사상의 영역에서는 이미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일어났다”고 했단다. 18세기는 ‘계몽의 세기’였다. 마티에가 얘기한 사상 혁명은 바로 그것을 두고 한 얘기일 것이다."
나에게 '혁명'과 '철학'은 시의에 관계없이 항상 관심이 끌리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정치, 사회적 격변기인 요즘의 우리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역사적으로 혁명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1917년 러시아볼세비키 혁명 등을 대표적인 혁명으로 꼽을 수 있지만 21세기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촛불혁명'은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평화혁명이자 축제적 혁명이기에 더욱 자랑스럽고, 나아가 '혁명'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짐작컨대 장차 '촛불혁명'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거나, 우리가 개발한 최상의 문화상품으로 해외에 수출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여하튼 '촛불혁명'과 같은 명예혁명이든, 볼쉐비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든 아니면 혁명의 교과서이자 고전인 프랑스 대혁명이든 모든 혁명은 "사람들 머리속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나야" 할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확고하고, 결과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테니까요. 만약 일시적 포퓰리즘에 기댄 선동의 결과물이거나 감정의 산물이라면 기껏해야 단발성 이벤트으로 그치고 말겠지요. 하지만 분명한것은 요즘의 촛불혁명은 밑바닥 대중의 민심으로부터 시작해서 먹물 지식인들, 나아가 보수 진보할 것없이 대부분의 국민 모두가 총체적으로 공감하는 명실상부한 혁명이기에 백프로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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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는 20세기의 사상가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상가 중의 하나다. 20세기의 거의 모든 철학사조, 현상학과 실존철학, 비판이론, 철학적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 등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 하이데거의 영향은 비단 철학에 그치지 않고 문학과 문예비평, 심리학, 신학, 생태학, 심지어 건축학에까지 미치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 사상가임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만큼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사상가도 없다. 이러한 논란은 주로 하이데거 철학의 난해함과 그의 나치 참여 경력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예를 들어 ‘존재의 진리’라는 말처럼 심오한 듯하지만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하기 힘든 언어로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적으로 문학비평과 신학에 관심이 많은터라 두 분야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해석학은 눈길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점에서 독일철학자 하이데거의 철학은 평소 관심이야 많지만 저와 같은 아마추어로서는 도저히 접근히 힘든 철학자입니다. 하이데거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독일철학이 그런 편인데 칸트, 헤겔 역시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아마 내 평생 이런 철학자의 원전은 단 한 권 이해하지 못하고 죽지 않을까 아쉽습니다.
그렇다면 원전을 읽을 수 없는바에야 차선책으로 해설서나 평전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때로 해설서가 원전보다 더 어려운것이 철학서가 아닐까 우스개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다시 해설서를 붙잡는 악순환이 반복되는군요. 뭐 이깟거야 독학자, 아마추어의 한계이자 비애일테니 감수하면 될테고, 다만 식지 않는 도도한 지적열정, 욕구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모토인 무댓포 정신으루다가 막고 품는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