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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건을 구입할 때 흔히 실용성과 외양, 가격사이에서 갈등하곤한다. 가령 옷이나 가구, 악세서리 등을 구입할 때 실용성보다는 외양이나 때깔이 그럴듯해서 구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대체로 가격이나 실용성 위주로 따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책을 살때는 어떨까.
일단 책은 사기 전에 구입 목적이 확실해서 망설일 이유가 별로 없다. 가령 문학서만하더라도 우선 어떤 작품, 작가인가, 번역자가 누구인지, 출판사, 가격 등이 문제일뿐이지 옷이나 악세서리처럼 외양이나 장정은 구입결정에 큰 요소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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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나운동 한길문고에 들렀다.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장자>를 구입할까했지만 막상 펼쳐드니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문학코너에 발길에 멈췄다. 순간 일본 소설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도 작가지만 예쁜 장정이 특별했다. 전부 14권으로 된 전집 중 1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2권 <도련님>을 우선 구입하기로 했다.
전집 중 <한눈팔기>은 문학동네판, <행인>은 문학과지성사판으로 이미 구입했으니 나머지 10여권만 더 구입하면 전집을 모두 채울수 있을텐데, 아내의 눈초리가 각별히 매서워진 요즘 같아서는 아마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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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출판사들이 장정에 많은 신경을 쓰느라 전문적인 북디자이너가 따로 있을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못지않게 아름다운 책들이 많다. 가령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 전집이라든가,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마르셀 프루스트의 전집은 어데 내놔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장정을 뽐낸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은 보다시피 은근한 쥐색이나 푸른 바탕에 국판 보다 약간 작은 판형이어서 보기에 앙증맞을뿐 아니라 제법 품격까지 있어보였다. 특히 책 제제가 눈길을 끄는데, 마치 일본서적과 도 흡사했다. 일본인들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매사 외양을 중시하기 때문에 우선 겉모양을 요모저모 아름답고 섬세하게 꾸민다. 장정을 말하다보니 떠오른 추억이 하나 있는데, 학교 실습선에 승선하던 시절, 동인천 어느 서점에서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한 불문학자 김붕구 선생의 <보들레르>연구서도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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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고전과 철학서에 몰두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를 좀 식힐까. 이럴때는 문학작품이 제격이다. 궁리 끝에 스탕달의 <적과 흑>, 에머슨의 에세이 <자연>을 꺼내들었다. 예상했던대로 일단 재미가 있었다. 이미 자타가 공인한 터지만, 스탕달은 워낙에 스토리를 풀어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솜씨가 기막힌 소설가다. 어데 스탕달뿐일까. 리얼리즘이 풍미했던 19세기 프랑스 소설 거의가 아마 이럴 것이다.
무려 200년전에 출간된 소설 <적과 흑>은 플로오벨의 <마담 보바리>가 그렇듯 표면상 남녀의 불륜담을 취하는지라 읽는 재미가 자별할 수밖에 없다. 하기야 동서고금 남녀의 불륜담처럼 재밌는 소재가 또 어데있을까.
시장 부인이자 연상인 레날 부인과 갓 스무살 청년 쥘리앵 소렐의 밀고땡기는 연애담은 제아무리 하드코어 포르노가 난무하는 시대라해도 훨 재미가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몇 달전 읽은 박범신의 <은교>나 이와이 슌지의 <러브 레터>보다 재밌으면 재밌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프랑스 소설이나 러시아 소설의 연애담은 오늘날의 싯점에서 보면 좀 진부하달까, 특유의 감상적인 장면이 등장하곤 하는데, 거야 시대를 감안하면 크게 험은 아닐 것이다.
장정이 아름다워 구입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채만식의 <탁류>가 그렇듯 풍자적인 데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수 있다.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들의 위선이랄까.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 지식인과 화자인 고양이가 나누는 수작이 자못 웃음 짓게 한다.
한낮 햇볕은 찬란한데 바람끝은 여전히 매섭다. 움츠러든 겨울, 한동안 <적과 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자연>을 교대로 읽으며 봄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