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곳곳에 지뢰를 매설하자. 물론 지뢰는 위험한 폭발물이지만 내가 말하는 지뢰는 그렇지 않다. 흔히 지뢰는 당사자만 아는 은밀한 곳에 설치한다. 내가 설치하고자 하는 지뢰 역시 나만 아는 곳에 한다. 굳이 남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 미리 말하는데, 내가 묻으려는 지뢰는 밟는 즉시 사고와는 반대로 즐거움이 폭발한다. 그러니까 삶의 즐거움을 위한 지뢰매설이라고나 할까.

 

나는 앞에서 지뢰 매설은 당사자만 아는 은밀한 곳이어야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기쁨도 함부로 발설하면 효과가 반감되는 법, 삶의 희열, 기쁨은 속으로 은밀히 간직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알아도 안 된다. 시시콜콜하다고 냉소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쁨이란 서로 나눌 때 배가되지만, 어떤 지뢰든 속성상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 

 

일상에 매설하는 즐거움이란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할 것 없다. 나만 좋으면 되니 굳이 남에게 자랑할 것도, 떠벌릴 것도 없다. 삶의 곳곳에 매설함으로써 즐거움을 유발하는 지뢰는 생각보다 폭발력이 크지 않다. 대체로 크기사 소형 지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용량이 작은만큼 많이 설치하면 효과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일상의 지뢰는 설치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수다. 하나더 부언하면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갯수만 매설해야지 과부하 걸릴정도면 오히려 효과는 반감된다. 그러면 그동안 나만 아는곳에 매설한 지뢰 몇 개를 소개하겠다.

 

우선 가장 큰 지뢰인 '문학'부터 시작할까? 문학은 내 평생하는 것. 좋은 소설, 좋은 시 한편을 읽는 것은 그 어떤것보다 큰 기쁨이다. 나는 콘테이너 에 몇 권의 서적, 독서실 사무실에 몇 권 싸놓고, 문학작품을 읽느다. 와중에 문학평론서도 보면서 작품 분석도 하고 글로 옮긴다. 이것은 무상의 희열이자 기쁨이다. 삶의 비좁은 공간, 이 창고같은 공간에서 내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문학적 무한한 상상력을 가능할때, 나는 문하작품을 읽을 때 시공간, 역사를 초월해서 맘껏 하늘을 날아다닌다. 그렇게해서 거의 청춘시절 지옥같던 원양어선 새왈르 했고, 공무원 생활도 했다. 만약 이런 지뢰가 없었다면 나의 삶은 그냥 창살없는 감옥에 불과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지뢰는 음악

영화

사상, 철학

글쓰기

비교적 가벼운 지뢰는 커피의 즐거움, 사람과의 만남, 혹은 대화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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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청소마치고 방금 농협에 다녀왔다. 어제 예스24에 주문한 대만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DVD 네 편, 황정은의 장편소설 <백의 노래> <앨리스에게> 등 구입비 64,000원 송금하다. 오후쯤 트럼펫샵에 수리 맡긴 3번 밸브슬라이드 도착 예정.

 

정홍수 문학비평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문학동네, 2014년) 서문에 대만의 영화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한 편을 꽤 길게 언급하였다. 흔히 비평집 서문은 책을 펴낸 동기나 소감을 서술하는데, 영화 이야기로 시작하니 은근히 호기심이 동했다. 하지만 막상 그가 거론한 영화들을 거의 보지 못한 형편이라 대강 가늠만 해야했다.

 

술적 상상력에 대한 코멘트가 주 요지인데, 정홍수는 비평가로서 시나 소설 등을 읽으며 예술적 상상력에 호흡을 불어넣고,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며 그런 감동을 글로 써낸다는 것이다. 

 

커피나 영화라면 자다가도 벌떡일어나는 나인지라 갑자기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가 생각났다. 프로젝터로 2003년작 <카페 뤼미에르>를 감상했다. 과거 <비정성시>를 통해 예술파 감독인지는 알았으나 뒤늦게 다시 보게된거다.두 번을 반복해서 본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영화인지라 오즈에 대한 오마주인지는 알았지만 일명 다다미쇼트를 빼고는 어떤 점이 오즈 스타일일지 알 수 없다. 건 그렇고 일단 <카페 뤼미에르>에 대해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작가인 요코는 대략 20대 중반의 여성.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인데 대만 남성과 결혼을 하려다 만다. 그러던중 동경에 있는 부모집에 잠깐 다니러간다. 어머니는 새엄마다. 한편 서점을 운영하는 하지메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취미가 좀 독특해서 전철 역 등의 소리를 녹음하고 다닌다.

 

요코는 현재 대만 음악가인 장예윈의 부탁으로 그의 문서를 찾는 중이다. 가끔 하지메의 서점에 들러 이런 애기 저런 애기를 나누지만 그냥 친구지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다. 요코 역시 담담한 성격이라 우산 장수인 그의 남자가 누구인지 언급이 없고, 임신 중인 아이를 혼자 나서 키우려고 생각한다. 일단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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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 졸업하고 곧장 스무살부터 서른 직전까지 10여년간의 원양어선 생활. 연이어 50중반까지 학교 실습선 생활. 그리고 50중반부터 퇴직 때까지 학교 행정실 근무. 그러니까  꼬박 30여년 뱃생활을 했고, 나머지 10여년 사무실 생활을 했다. 퇴직 4년전부터 시작한 독서실을 10여년째하고 있으니 결국 스무살부터 육십 중반인 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온셈이다. 소시민으로 태어나 평생을 소시민으로 살았으며 단 한 해도 놀지 않았으니 이만하면 부끄러울것 없다. 

2
평생 해온 책읽기, 글쓰기, 음악, 영화는 딜레탕트로서의 취미생활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수산학교를 졸업한 후 학교에서 배운대로 뱃생활하며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땀흘리고 고군분투한 나는 지식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닌 소시민의 한 사람일 따름이다.

3
왜 평생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가? 재미 있으니까.  왜 평생 예술영화를 공부하고 감상하는가? 즐거우니까. 왜 클래식을 감상하며 트럼펫 연주를 하는가? 재밌고 즐거우니까. 이것만이 유일하게 삶을 윤택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니까. 이것말고 달리 재밌는 일이 없고, 아는게 없으니까. 이것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취미며 즐거움이니까. 

4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지만 소시민인 나는 죽어 잡글 몇 개 남기고 소리 소문없이 사라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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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떠오르는 것 한 가지. 우리집에 전통이랄만한게 있었던가? 없다. 그것도 완벽하게. 그럼 나는 어떻게해야하나? 후손을 위해 뭔가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숟가락이든 세수대야든 소소한것 하나라도. 그게 뭘까. 우리집 전통으로 내세울만한게 뭐가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책? 음반? 악기?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리고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닌것 같다. 만약 지금 당장 없다면 두고두고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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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저 사람 빈번하게 만나면 독서와 글쓰기에 소홀해진다. 당최 시간이 나질않고 몰두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누구든 만나서 이야기나누는게 얼마나 신나는가. 하지만 정작 하고싶은 일을 못하는게 문제다. 결론은 만남의 횟수와 상대를 제한해야한다는 것. 물론 누구 누구하며 사람을 가려 만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 아, 10년은 얼마나 짦은가! - 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 

세상엔 읽어야할 책, 써야 할 글- 비록 한 두 줄에 불과한 낙서일지라도- 은 얼마나 많은가. 나 혼자 사색하고, 궁리하며 침묵 속에 골몰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소란스러움을 피해 고독을 자청하기 혹은 널널하니 무료함을 마다할게 아니다.  그런 무료함과 고독 속에서 사색의 결과가 생길지 모르니까.   

연주실력에 문제가 있다싶어 한동안 트럼펫에만 몰두했다. 이젠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시간의 분배, 열정의 분배를 통해 균형잡힌 삶을 재배치하기. 아무리 좋아도 어느 한 가지에만 몰두할게 아니라는 것. 이것저것 고루 맛보고 가벼운 즐김을 원하는 딜레탕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방에 즐거움과 재미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느 한 가지만을 맛본다는건 너무 아쉬운 노릇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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