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 '여.순항쟁'과 '4. 3 항쟁'에 대한 전문가들의 강연과 책자를 접하면서 역사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길사에서 간행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송남헌의 <해방 3년사> 등을 읽으면서 그동안 애매하게 알았던 해방 전후사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할 수 있었다. 

새롭게 안 사실인데, 해방 전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및 한국전쟁의 기원의 첫 번째 요인은 친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물론 한국전쟁의 기원과 '여.순항쟁', '제주 4. 3항쟁' 모두 그것이 촉발된 계기는 여러 복합적 요인일테지만, 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친일파 청산이 무산된 점을 꼽는다. 친일파 문제와 관련해서 김지석의 칼럼 <시대의 담론>(한겨레신문)중 일부를 인용한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좌우합작 운동은 1947년 초 결국 좌초한다. 의견 대립의 핵심 사안이 토지개혁과 친일파 처벌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특히 친일파 문제는 이후에도 민주주의 발전에 최대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된다.

(...) 신탁통치 문제는 단독정부 수립으로 가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게다가 친일 세력은 힘들 게 없는 반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민족주의자로 변신하는 기회를 얻는다. 그즈음 우리 의도와 무관하게 미-소 냉전이 시작될 조짐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남쪽 정치세력이 그 분위기를 활용하며 분단을 고착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잘못이다. 이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을 왜곡해 반탁운동을 벌인 것에 못잖게 외세 의존적이며, 이런 분단 고착화 추세의 연장선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단정이라는 한계 속에서 법적인 형태로 분명한 민주공화국이 출범했으나, 이승만 정권의 행태는 애초부터 이에 어울리지 않는다. 194810월 여수·순천사건을 계기로 한 국가보안법 제정과 무리한 확대 적용, 소장파 의원들을 제압하기 위한 19495~8월 국회프락치사건, 19496월 친일 경찰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 습격, 19494월 국민보도연맹 결성과 한국전쟁 발발을 계기로 한 연맹원 학살 등은 전형적인 독재정권의 모습이다."

'빨갱이'라는 단어의 기원 역시 배후에 민족 갈등을 의도한 일제의 농간으로 비롯되었고 - 당시 사회주의자는 일제에 항거한 지식인들이다 -  이 단어가 우리사회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여순항쟁' 때부터다. 특히 여순항쟁은 오늘날의 '국가보안법'을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친일파 청산의 실패는 이승만 정권때부터 시작해서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은 친미,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보수정권의 이데올로기, 혹은 권력 유지를 위해 '빨갱이'라는 단어를 우리사회에 고착화시키는데 골몰했다.

어제 문 대통령의 3. 1절 기념 경축사에서 관심을 끈 대목은 일제하 친일 청산의 무산과 그로인한 '빨갱이'라는 단어의 유래, 또 이것이 오늘날 어떻게 변형되어서 계속 판을 치고 있는지 언급한 점이었다. 

오늘자 한겨레신문 역시 이 점을 부각하고 있는데, 특히 조선일보 선대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선대 사주인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거론하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오늘자 한겨례신문의 사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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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1운동 100주년 경축사에서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하는 과정에서 빨갱이란 말이 생겨났다’며 ‘좌우의 적대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정치적 공격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분단 현실의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매우 적절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분단과 냉전은 친일파들이 활개칠 수 있는 음습한 토양을 제공해왔다. 최근의 ‘5·18 망언’은 물론 역대 선거 때마다 되풀이돼온 색깔론은 곳곳에 뿌리박은 친일 잔재의 또다른 몰골이다. 이런 색깔론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은 친일 청산은커녕 친일파의 후예들이 정치·언론·군·학계 등 우리 사회 기득권 체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의미를 폄훼하는 뉴라이트적 건국 사관이 판쳤던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일부 보수언론이 여기에 중심적 구실을 하고 있는 사실은 허투루 넘길 수 없다. <조선일보>의 선대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김성수는 정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2009년 11월까지 4년여 조사 끝에 확정한 1006명에 포함됐고 후손들이 소송까지 걸었으나 대법원은 이들을 친일행위자로 확정 판결했다.

그럼에도 두 언론사는 1985년 서로의 친일행적을 둘러싸고 이전투구의 논쟁을 벌였을 뿐 한번도 국민과 독자 앞에 진지하게 사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계기마다 한때의 ‘항일’만 부각하고 홍보할 뿐 ‘친일’의 부끄러운 역사는 여전히 감추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최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섣불리 ‘김성수 재평가’ 운운한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선대의 ‘항일’ 공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발언에 신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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