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해마다 봄이 오면 참고서 따위를 모아 폐지했다. 책장 정리도 했다, 아이들이  아직 학생일 때. 떡 본 김에 지내는 제사,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책들 함께 정리하는 책들의 장례식,  소멸의 의식이었다. 올해는 늦은 봄 주말에야 짬을 내어 책을 정리했다. 그렇게  공선옥의 장편소설 영란』을 만났다. 친구의 선물이었다.  소장할 책인데, 절판이라, 택배로 보낸다. 읽어보아라, 아니 꼭 읽고 만나자 했다. 목포 원도심 여행 가이드는 기꺼이 맡을 것이니, ‘꼭 읽고 오렴’, 조건이었다.

50 : 50. 당일은 출장, 다음 날 하루는 휴가, 그렇게 12일 여행 겸 출장이었고, 친구가 속한 업체 방문이었으므로 친구는 월차를 내고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목포로 달렸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내려, 다도해의 일몰 풍경은 포기해야 했다. 항구에 있는 H모텔에 방 두 개를 잡았다. 하나는 우리 부부 다른 하나는 친구와 그곳 후배가 묵을 예정이었다. 이곳 사장님은 고향이 신안(군)의 어느 섬이래, 손님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늘 두세 개의 방을 남겨 둔다고 해. 폭풍우로 배가 끊겨 발이 묶인 고향 사람들을 위한 배려란다.

멋지네, 지금도 그럴까?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예약된 횟집을 찾았다. 민어회 등을 ‘6시 내 고향처럼 차리는 곳, 너무 잘 알려져 목포기행의 필수 코스가 된 민어의 거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당연히 그 집인가 보다 했는데, 친구가 안내한 곳은 널리 알려진 ○○횟집 바로 옆집이었다. 4인상에 15만원이었던가, 맞춤한 가격에 부딤 없이 민어회 풀코스를 위해 네 사람이 모였다는 듯이. ‘어느 집도 안면 있는 건 아니고, 이곳 지인들 따라 몇 차례 오간 곳'이라고 했다. 다만 옆집 상호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


“‘이름이 뭐여?’ 나는 이름을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말했다. ‘누가 물으면 인자부터 영란이라고 해불제 뭘.’”(61)

목포 선창의 허름한 영란여관. 여관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할머니가 무심코 붙여준 이름 영란’, 서울내기인 는 낯선 곳에서 그렇게 영란으로 살아간다. 친구는 내가 당연히 숙제를 해온 것으로 알았겠으나, 출장 준비하랴, 그래도 여행이니 이것저것 챙기랴, 일상 업무까지 사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주인공 두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있는 덕수궁 대한문 부근에서 만나는 장면이 나와, 작품 속 시간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후 작품 속 공간(배경)이 목포라는 데까지도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목포를 다녀와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영란은 우리집 책장 어딘가에 꽂혀 한두 해를 살았던 모양이다,


여행 이튿날, 친구 후배는 출근하고 우리 일행 셋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목포해상케이블카였다. 북항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유달산 중턱 정거장에 잠시 정차했다가 고하도 승강장(종)까지를 왕복하는 코스다. 가는 길 케이블카 안에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보았다.  고하도 해변 길과 산길을 걷는 것까지 일정을 소화한 우리는 돌아오는 케이블카에 탔다. 그런데 갑자기 유달산 정차장에서 내리자는 것이다. 북항에 주차한 차는 한 사람만 택시로 이동하여 가져오면 된다는 것. 그렇게 산 중턱에서 목포 원도심까지 도보로 이동하였다.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조금 내려오니 유달산 둘레길을 만나고, 더 내려가니 목포 원도심에서 대반동(목포해양대학교가 있는)을 오가는 고갯길 정상이다. 케이블카를 오가면서 살핀 풍경 속으로 문득 들어와 버렸다는 느낌 그 자체만으로 신기한 일인데, 친구는 정상에 있는 자그마한 수퍼에 들러 음료든 아이스크림이든 하나씩 먹고 내려가자는 것(손님이 뜸해 그곳에 아이스크림은 없었다). 7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사장님과 친구는 아는 사이인지이런저런 안부를 나누었다.


유달산(해달 228m)의 생명력 넘치는 풍경, 항구도시 사람들의 정겹고 따스한 온기와 부대끼며 는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 영란으로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란으로 거듭난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년째, 물놀이 사고(익사)로 보낸 어린 아들, 곧이어 차량 전복사고로 곁을 떠난 남편까지, 혼자 남은 나, 곁을 떠난 가족들의 빈 자리를 항구의 사람들이 채우기 시작한다. 목포의 영란여관’(에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수옥, ‘를 보며 가슴을 두근대는 완규, 그의 여덟 살배기 조카 수한, 치매 걸린 어머니와 사는 슈퍼 안주인 조인자 등등. 그리고 지고지순한 청각장애인인 모란, 그 딸을 묵묵히 돌보는 모란의 아버지 황진생이 있다.  친구는 설명하지는 않았다.  최근에 읽으면서 대반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하나뿐인 구멍가게 가, 황진생과 그 딸 모란이 사는 집(모델)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맞춤 가이드라고 했잖아! (사실은 소설을 다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 가게 주인은 나하고 사돈네 팔촌쯤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가 거기(원도심) 상당히 머물렀던 것 같아. 그래서.”

친구도 원도심에 일정 기간 살았는데, 소설 영란속 공간(배경)의 디테일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고갯마루 가게를 나와 옛 목포제일여고를 왼쪽에 끼고 내려오는 길, 목포의 사업가가 생전에 살았다는 저택(일부는 성옥기념미술관으로 개방, 저택은 <장군의 아들> 촬영), 등산로 초입의 목포근대역사관1(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 노적봉까지 둘러보고 전날 들렀던 민어횟집 부근, 목포 원도심을 찾으면 으레 걷는 코스까지. 12일 일정은 끝났다.

목포근대역사관1(옛 목포 일본영사관) 앞 대로변에는 돌기둥이 서 있고 <國道 1·2號線 起點 紀念碑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라는 상당히 복잡한 한자가 새겨져 있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국도 1호선), 목포에서 부산까지(국도 2호선), 우리나라 1·,2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이면서 끝나는 기점이 거기 있었다. 친구가 그 기념탑을 배경으로 우리 부부더러 사진 한 컷을 촬영하자고 한 뜻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영란에게 항구 목포는 삶의 끝이면서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미안하고 감사해, 친구가 마련한 문학기행의 마침표를 이제야 찍는다.


너무 늦지 않게 민어회 먹으러 가자던 약속 아직 못 지켰네.”

, 그렇지 뭐. 그나저나 코로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K-드라마도 아닌데 K-드라마인 줄 안다. 최근에 OTT드라마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파친코>의 일부 배경(부산 영도)이 목포 원도심이란다. 목포근대역사관(1) 건물을 왼쪽에 끼고 노적봉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문득 스치는데, 검색해보니 그렇더라고. 다음 목포기행은 좀 더 풍성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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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5-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란』종이책은 절판 상태이네요. 전자책은 살아 있고.. 링크가 종이책으로 걸려서 적습니다.

2022-05-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