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대통령인데,
오바마를 보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냐...
4년 더 하라고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건
어떤 건지 상상해본다...

 

사실, 오바마를 더 좋아했던 건 돌아가신 외삼촌을 닮은 이유도 있다.
한국에 남은 엄마 형제 중에서 가장 자주 왕래하셨기에...
나이 든 여동생에게 여전했던 잔소리가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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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밤, MBN에 등장한 새로운 프로그램. 내 손님 - 내 손안의 부모님. 새로 시작한다고 광고했을 때는 별 관심 없었다. 내 취향의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그 시간에는 엄마 때문에 TV를 잘 보지 못한다. 엄마는 보통 9시 정도에 잠자리에 드는데, 많이 예민한 편이라 불이 켜져 있거나, TV 소리가 조금만 들려도 자다가 깨곤 한다. 그래서 밤에 TV를 켜놓기가 불편해서 잘 안 보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tvN의 <문제적 남자> 같은 건데, 나중에 찾아보기는 해도 본방송을 본 적이 많지 않다. 그러니 밤 11시에 새로 시작한다는 프로그램에 관심 둘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내 손안의 부모님이라니... 부모님과 함께 만드는 예능프로그램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제는 엄마가 이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궁금하다고 그 시간에 안 주무시는 거다. 요즘 밤에 잠이 잘 안 온다면서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밤 11시에? 어쩌다 보니 그 시간에 둘 다 깨어있었고, 엄마와 나는 그 프로그램을 같이 보기 시작했다. 박상면, 서경석, 김형범. 세 아들이 엄마(부모님)와 1박 2일을 함께 보내는 거다. 서경석이 엄마 집을 향하면서 하는 말은, 엄마와 단둘이 있어 본 적이 10년이나 되었다고 하더라. 결혼하고 나서 혼자 엄마를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고. 혹자는 이 말을 듣고 ‘왜?’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정말 이상하다. 딸은 결혼하고 나서도 혼자 친정을 찾아오는 일이 있던데, 아들은 결혼 후에 혼자 본가에 갈 일이 없나 보다. 그럴 것도 같다. 평일에는 출퇴근 때문에,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기가 꾸린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엄마를 찾아올 시간적 여유가 없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은, 명절이나 가족의 경조사 때뿐이다. 서경석의 그 말을 듣고, 나는 작년에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남동생(엄마의 아들)이 결혼한 지 5년이 좀 넘었다. 그 전에는 몇 년 정도 나가서 살았고. 결혼 전에 남동생은 엄마에게 종종 전화도 하고, 가끔 평일에 엄마를 만나러 다녀가기도 했다. 남동생 하는 일이 공휴일이나 연휴를 지켜가면서 쉬는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히려 평일에 휴가 내서 다녀가는 게 엄마에게는 더 좋았나 보다. 그런 아들이 결혼했고, 아내와 아이들이 생겼다. 올케의 친정은 여기서 차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 남동생이 내려올 일이 생기면 늘 자기 가족들과 함께 왔고, 친가와 처가를 왔다 갔다 해야 하므로 시간을 오롯이 엄마에게 할애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엄마는 아들이 다녀가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마냥 아쉽겠지... 남동생이 그렇게 다녀갔던 어느 날, 집에 많은 일이 있었고 여전히 진행 중인 일들이 있었는데, 엄마는 남동생과 통화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하더라. ‘시간이 되면 혼자서라도 잠깐, 피곤하고 힘들겠지만, 당일치기라도 왔다 갔으면 좋겠다’라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물었다. 일하느라 피곤한데, 당일로 왔다 가기에도 힘들 텐데 뭐하러 그런 말을 했느냐고. 그랬더니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보고 싶다’라고. 아들이 보고 싶어? (딸은 안 보고 싶고? ㅎㅎ)

 

엄마의 마음은 그런 건가 싶었다. 시간이 안 되고, 자기 가정 꾸리니 더 바쁘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크게 별일 없이 사는 게 다행이고 좋은 거라고 여기면서도, 엄마를 보러 와주기를, 전화 한 통 더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마치 연인 사이에서 바라는 일들 같았다. 그런데도 다른 건, 부모와 자식 사이의 어떤 감정인 듯하다. 내리사랑. 엄마는 아들에게, 아들은 또 자기 자식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애정. 서경석뿐만 아니었다. 김형범의 어머니는 뭐하러 왔냐고 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고, 박상면의 어머니는 힘든 몸을 하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온다는 아들을 기다렸다. 특히 내 눈에 가장 많이 보였던 건 서경석의 어머니였다. 아들은 오후 두시에 온다고 했는데,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씻고 준비하고 하면서 아들을 기다렸다. 아, 정말이지 기다리는 마음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아서 모른척할 수가 없더라. 그 사이에 아들이 방송하는 라디오를 습관처럼 틀어놓고 말이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인가...

 

처음 사전 인터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어머니 모두, 아들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들을 언급했다. 다리가 아픈데 괜찮다고, 뭐든 괜찮다고... 걱정할까 봐 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며, 걱정할까 봐 그랬다고 하더라.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들들은 또 눈물을 찍었다. 저럴까 봐 내가 안 간다니까, 라고 박상면은 말했다. 물론 엄마를 보러 자주 못 가는 이유는 많겠지만, 엄마가 하는 말을 듣기 싫어서 가기 싫은 마음도 무시 못 했던 거다.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런 편안한 죽음을 원한다는 엄마의 말은 아들을 자꾸 속상하게 한다. 지들만 잘 살면 되지, 나는 괜찮아, 라고 하는 말들. 이 프로그램이 재밌게 보이기 위해 어떤 설정을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읽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아니 에르노의 책 두 권이 계속 생각나는 거다.

 

 

 

 

 

 

 

 

 

 

 

<한 여자>와 <남자의 자리>는 아니 에르노가 부모를 생각하며 쓴 책이다. 경험한 것만 기록한다는 그녀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들의 자취를 기록한 글이다.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은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울 수 있는 대상을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관조하는 듯한 분위기다. 그런데 역시, 그녀답다. 상당히 담담하게 표현한 그녀의 문장이 오히려 더 감정적으로 읽혔다. 픽션을 거부한다는 그녀의 글을 몇 번 읽어봤기에 뭐 다를 게 있겠나 싶었는데, 밋밋하게까지 느껴질 법한 그녀의 문장에 감정적으로 더 격해지곤 했다. 국경을 넘어선 부모의 모습이 이렇게 비슷할 수 있는 건가 싶어 말을 잃었다가, 역시 좀 더 애정이 쏠리는 상대에게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구나 싶은 이해가 따라왔다. 읽는 동안, 100페이지 조금 넘는 이 책들이 페이지 수에 반비례하여 가슴을 채우곤 했다.

 

<한 여자>는 알츠하이머로 죽은 어머니를 기억하며 적어 내려간 글이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을 그녀의 글이 재구성한다. 태어나고 자라 여자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죽는 그 순간까지 그녀가 듣고 본 장면을 기록한다. 함께 있는 동안 미처 다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죽고 난 뒤에 기억되니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와의 온전한 이별을 위해 기록하지 않고서는 안 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이 시간은 그녀에게 한 여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간을 불러온다. 그때야 비로소 한 여자에 대한 사랑과 이해, 이별이 완성된다.

 

나는 그녀의 사랑에 대해 확신했다. 또한 그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감자와 우유를 팔아 댄 덕분에 내가 대형 강의실에 앉아 플라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는 그 부당함에 대해서도. (한 여자, 66페이지)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한 여자, 110페이지)

 

<남자의 자리>는 아니 에르노가 <한 여자>와 같은 방식으로 쓴 글인데, 아버지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난 후 기록한 아버지의 시간이다. 대상이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소를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어머니와 함께 꾸렸던 상점의 주인으로, 신분 상승을 바라며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다. 지식인이라 불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던 사람. 그 자리를 딸이 채우며 살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딸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자식에게 잊히는 사람, 그렇지만 자신보다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으로 한없는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 그녀의 아버지였다.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채워진 기록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는 것도 <한 여자>와 다를 바 없다. 내가 본 주변의 아버지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보살피며,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나가려 애쓰는 사람. 때론 실수도 하겠지만, 자신을 지탱해주는 가족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얻기도 하는 사람. 내 주변에서 보편적(?)으로 보아오던 아버지, 아버지는 그래야 한다고 인식된 아버지의 모습. 내가 꿈꾸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버지니까 당연하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내 가정을 위해서 그 정도는 하고 싶어.'라는, 그런 마음이 드는 게 너무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싶었다. 결혼이라는 건,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된다는 건, 혼자일 때와 다른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 아닌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예절 바르게 대하는 모습은 내게는 오랫동안 신비로 남아 있었다. 또 나는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 간단한 인사말을 건넬 때에도 극히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어조의 인사말을 듣게 되면 부끄러웠다. 난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어떤 특별한 호의를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결국 알아차리게 되었다. 몹시 관심 있는 듯한 태도로 질문을 하거나, 이렇게 따뜻하게 미소 짓는 것은 입을 다물고 식사를 하거나 살그머니 코를 푸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남자의 자리, 78~79페이지)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자리, 127페이지)

 

아니 에르노의 두 권의 책은, 우리가 다 알지 못했던 우리 부모의 모습은 어떤 걸까 생각하게 한다. 당연히 모르겠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다 알고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부모와 자식 관계라도 말이다. 그저 조금 더 알기를, 조금 더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시간을 지켜보는 거다. 거기에 마음마저 더해지면 끈끈하고 애정이 넘치겠지. 걱정도, 안심도 더 늘어나는, 서로의 일상과 생각에 조금 더 침투해도 괜찮은 사이가 되는 거겠지. 엄마는 서경석의 어머니가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라디오를 틀어놓을 때도 ‘에휴...’ 박상면의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며 남편에게 연락이 없느냐고 물을 때도 ‘에휴...’ 김형범의 어머니가 아들이 사온 조끼를 입으면서 투덜대면서도 웃는 모습에 ‘에휴...’ 마음과 다르게 나가는 말들에 많이 공감하셨던 듯하다. 그러면서 덧붙이시더라. “엄마들은 다 그래...” 그래, 다 그러겠지. 더 못 해줘서 마음 아프고, 더 건강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바쁜 줄 알지만 전화 한 통 더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더 자주 대화했으면 좋겠고, 나의 일상을 공유했으면 행복할 것 같은. 떨어져 있는 자식들이 더 생각나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별일은 없는지 먼저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돈이 많아서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것도 분명 필요하지만, 여기서 엄마가 원하는 것들은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입으로 한 마디 꺼내면 되는 말들이었다. 그거 한 번 하기가 어려워서 마음이 서운해지고 서글퍼지는 일을 만드는 거다. 미안한 말이지만, 알면서도 잘 안 된다고 핑계를 대고, 쑥스러워서 못 하겠다고 하는 일을 이제는 연습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남동생과 자주 통화하는 편이 아니다. 무슨 일이 없으면 일 년에 한 번도 통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동생은 내가 전화하면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묻는다. 집에 무슨 일이 없으면 전화하지 않기에. 그런 남동생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야, 바쁜 줄 아는데 짬 나면 엄마한테 전화 좀 해. 엄마가 요즘 외로워한다. 고기를 먹어도 안 기쁜가 봐. 아들 보고 싶대...” 문자 확인했을 거면서 대꾸도 없다. 안다. 원래 이런 녀석이라는 걸. 이것도 안다. 곧 엄마에게 전화할 거라는 걸...

(사실은 연말에 엄마와 며느리 사이에 작은 오해가 있었고, 엄마는 그 일로 무척 서운해했다. 서로 오해라는 걸 알았고 그날 바로 풀었지만, 엄마는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가 보다. 지금 그걸 다독여 줄 수 있는 건 엄마의 아들밖에 없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 고기를 먹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엄마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아들의 목소리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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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1-1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감동적인 글입니다. 저도 부모한테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눈 생각이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

구단씨 2017-01-17 11:52   좋아요 0 | URL
알겠는데, 잘 알겠는데... 또 잘 안 되네요. ㅡ.ㅡ;;;
반성 모드입니다.
 

 

 

책을 선택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유독 세계문학을 고를 때는 더 고민하게 된다.

출판사도 중요하고 번역도 중요한데, 그 와중에 꼭 끼어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바로 책표지 디자인.

읽게 될 책의 내용도 봐야하지만 책 디자인에 결정권이 넘어갈 때가 있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적게 고민하여 선택받은 세계문학이 펭귄클래식 판본이다.

소장하고 있는 세계문학 중에서 펭귄클래식 판본을 가장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장 아끼고 싶은 디자인이다.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펭귄클래식의 기본은 블랙판본.

가끔씩 특별판으로 나오는 표지 때문에 독자들의 가슴에 지름신을 부른다.

같은 내용의 책이라면 이왕이면 예쁘고 내 맘에 드는 디자인으로 고르고 싶은 게 진심이디.

나도 그런 이유로 구매한 펭귄클래식이 있다.

주황색의 오리지널 표지. 처음엔 이 책 표지가 어색했는데 그것도 잠깐.

블랙판본 사이에 하나씩 끼어있으면 괜히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물론 나는 그 정도로 꽂아둘 블랙판본의 책이 없어서 아쉽지만, 이 색 자꾸자꾸 눈에 들어온다.

얼마나 더 이 색상으로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블랙판본 사이에서 홍일점처럼 자리 차지하는 모습에 계속 구입하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싶은 추측... ^^

 

 

오만과 편견

가장 최근에 구매한 판본 중의 하나. 양장본 특별판.

특히 넘버링이 있어서 구매 욕구를 상승시키기도 했다.

한정판이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기존 양장본 특별판과 같은 디자인이어서 더 솔깃했다.

사이즈는 앞서 출간된 양장본보다 1cm 정도 작다. 손에 들어오는 안착감은 더 좋다.

책 두께 때문에 계속 손에 들고 읽을 수는 없겠지만

겉표지 느낌이 좋아서 손목에 무리 오기 전까지는 들고 읽을 수 있겠다. ^^

 

 

 

 

지킬박사와 하이드, 가든 파티, 크로이체르 소나타.

3종 세트로 묶어 나왔다. 물론 개별판매도 했다. 지금은 다 절판인 듯하다.

표지가 <오만과 편견>과 같은 디자인에 같은 질감이지만 사이즈는 살짝 크다.

책도 가볍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책의 종이가 사알짝~ 바랜다는 점.

보관을 잘못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종이가 조금 누렇게 변했다.

책을 읽는데 지장은 없지만 초콤 서운하다고 해야 할까.

처음부터 흰색 종이가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기에 뭐,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옆면은 잘 안 보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은 띠지. 띠지가 블랙판 책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표지는 자꾸 눈에 들어온다. 무섭게 생긴 반쪽 가면 같은... ^^

 

 

 

월든.

 

오리지널 표지에 초록색으로 태어난 특별판. 색이 책과 잘 어울린다.

안전하고 강한 질감의 크라프트지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처음에는 자꾸만 어떤 포대, 자루를 연상했다. ^^

표지 색상에서 나무 색깔 부분이 있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책의 내용과 잘 어울리는 듯해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디자인.

 

 

펭귄클래식은 기프트 상품도 같이 나온다.

텀블러, 머그컵, 캐리어, 등등. 뭔가 많이 나오고 있던데,

내가 가진 것은 오리지널 디자인의 머그컵뿐이라 다른 기프트 상품을 못 봐서 아쉽다.

특히 앙증맞은 캐리어, 꼭 한 번 보고 싶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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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홍천기 세트 - 전2권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정은궐의 첫 작품이 출간된 지 십 년이 넘었다. 이미 이 장르를 즐기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 아닐 테지만, 늦게 입문하게 된 나에게는 이 장르의 재미를 알게 해준 작가다. 몇 년 전 처음 로맨스소설을 접할 때 이 장르를 즐기게 해준 몇몇 작가가 있었는데, 정은궐도 그중 한 명이다. 아마도 작가의 전작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장르의 즐거움을 잘 알지 못했을지도 모겠지. 특히 취향이 많이 나뉘는 분야라고 하던데, 웬만해서는 정은궐의 작품을 재미없다고 말하는 독자를 거의 못했던지라, 그만큼 독자들의 보편적인 취향에 두루 맞춘 작품들이 아니었나 싶다. 책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그 진가를 더 다졌으니, 아마 오랜 시간 작가의 신간을 기다려온 독자들에게는 이번 작품 『홍천기』를 대하는 게 가뭄의 단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그래서 신간 소식이 더없이 반가워 고민 없이 예약판매를 신청했다.

 

세종 20년, 백유화단의 여화공 홍천기가 동짓날 밤에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줍게 되고, 그에게 반해 찾아다닌다. 단서는 오직 하나. 그 남자가 남겨 두고 간 신발 한 켤레. 그에 반해 하늘(?)에서 떨어진 그 남자 하람은 앞을 보지 못한다. 오래전에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한 그는 세상이 온통 붉은색으로 보일 뿐이다. 언제쯤 그의 눈은 떠질까? 아니, 그의 눈이 떠질 수가 있긴 한 걸까? 어렸을 적, 기우제에 차출되어 간 자리에서 알 수 없는 사고로 그의 눈은 사라졌다. ‘잠시만’ 빌려달라는 목소리만 남은 채로. 도대체 그 ‘잠시만’은 언제까지일까. 그 상태로 그는 경복궁의 터주신이 되어 살아간다.

 

정말로 하늘에서 남자가 떨어져 홍천기의 품에 안겼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오산이다. ^^ 홍천기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과 맞아떨어진 순간의 타이밍이었다. 시집 못한 딸 홍천기에게 남자 하나만 내려달라고 매일 기도를 드렸던 어머니의 마음에 하늘이 응답하신 거라 여겼다. 어찌 아니 그럴까. 정말로 홍천기의 위에서 (그대로 보면 그 위치는 하늘이 맞다. ^^) 남자가 뚝 하고 떨어졌으니, 어머니의 정성에 하늘이 답해줄 거라 여기지 않을 수가 없지.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라 여기고 의식이 없는 남자를 돌봤으나, 잠깐 자리 비운 사이 돌아와 보니 남자는 사라졌다. 그때부터 남자를 찾아다니던 홍천기는 궁금해하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상하다. 그 남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다. 그는 정말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일까?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단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홍천기. ‘붉은 하늘의 기밀(紅天機)’이라는 뜻이라는데, 소설의 발단에서 드러나는 이 이름이 오해하여 해석되는 부분이 흥미롭다. 아버지의 명으로 사라진 하람을 찾아다니며 발견한 그 이름 ‘홍천기’를 확대하고 오해하여 해석하기를, 그에 반역(역모)을 시도한 인물로 생각했던 거다. 어떻게 하늘에서 정해준 홍 씨의 시대가 온 거로 믿을 수 있는지. ㅎㅎ 그가 정치나 권력에 깊게 파고드는 것보다 오히려 예술을 즐기는 순진무구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심어두고 이렇게 보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여기서 등장하는 안평대군은 실존 인물이지만, 역사 속에서 전해지는 것보다 조금 더 가벼운 캐릭터로 변신시킨 듯하다. 안평대군이 그의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걸 보면, 분명 그도 정치와 멀리 떨어진 인물은 아니었을 텐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시문과 그림, 가야금에 능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사적인 매력을 더 캐릭터에 심어놓은 듯하다. 그게 화사인 홍천기와 최경, 차영욱, 안견, 화마 같은 그림과 관련한 인물들과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버린 ‘그림’이라는 장에 필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기도 했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는 그의 재능이 그림에 빠져버리고야 만 그의 정신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런 바탕에 기인한 소설 『홍천기』 속의 안평대군은 그림에 환장하는 오타쿠이자, 화사를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으로 그렸다. 신분에 상관없이 그림을 매개로 교류하는 그가 왜 이렇게 멋있게 보이는지... ^^ 아마 드라마로 본다면 소설보다 더 발랄하고 경쾌한,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진지함을 숨긴 눈빛을 그대로 확인하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인 하람. 어렸을 적에 기우제에 참여한 그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이게 되고 붉은 눈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설정은 특이했다. 거기에 신이 빚어놓은 듯한 외모라니... 그냥 시각장애인이었더라면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충격으로 그의 눈도 떠지지 않을까, 그리하여 애타게 보고 싶었던 홍천기의 얼굴을 보고 만지고 실컷 품어보는 일상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온갖 상상을 하며 하람의 앞날을 그렸더랬다. 그런데 작가는 하람의 눈에 대해 처음부터 속 시원하게 풀어놓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잘생긴 남자에게 앞을 보지 못하는 고통을 주어야만 했는지 부르짖으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ㅠㅠ)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온 기이한 일, 그로 인해 잃었던 많은 것, 사랑하는 여인마저 마음껏 볼 수 없는 현실이 하람의 고통을 한층 더하게 하면서도, 그 끝을 쉽게 예상하지 못하게 했다. 오히려 소설의 중반 이후로 조금씩 드러나는 일들이 그들 관계가 어떻게 가게 될지 고무시킨다. 천재 화가의 말로로 보였던 홍은오(홍천기의 아버지)의 광증이 시작, 홍천기의 탄생, 하람이 눈을 잃은 순간이 엮어놓은 이들의 운명 같은 인연의 근원을 찾고 싶게 한다. 결국, 그 끈을 찾아가면 갈수록, 꼬인 끈을 풀면 풀수록 나타나는 진실들이 허를 내두르게 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그 진실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 이들의 운명도 자리를 찾아가리. (더 얘기하면 과한 스포일러가 될까 봐 여기서 그만...)

 

로맨스소설이면서도 소설 곳곳에 감춰진 단서들을 찾게 하는, 독자가 파헤쳐야만 그 결론을 보게 해줄 거라는 듯이 흐르는 추리소설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로맨스소설임을 놓지는 않는다. 결말을 보면서, ‘아, 역시 사랑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게 다 드러나고도 자기가 먼저가 아닌, ‘우리’의 먼저를 생각하는 이들 좀 보라지. 사랑이 없으면 선택하지 못할 결말이잖아?! 거기에 깨알 같이 파고드는 웃음의 순간들이 이 소설을 즐겁게 읽게 한다. 개둥, 개놈, 개충이라 부르며 서로의 허물없음을 드러내는 절친들의 애정이 그대로 보였다. 그림에 미쳐서 항상 일을 저지르는 안평대군의 뒤처리를 하는 청지기의 애로사항에 어깨를 토닥이고 싶었고, 만수와 돌이의 눈치 백 단 행동이 귀엽기까지 하더라. 특히, 어디서나 당당하고 서슴없이 마음을 드러내는 홍천기의 매력은 이 소설의 제목이 ‘홍천기’일 수밖에 없게 한다. 여인으로 살면서 마음껏 재능을 뽐내지도 못하던 시대, 하지만 그 재능을 숨길 수도 없었기에 늘 긴장하는 삶, 보고 싶은 사람을 보기 위해 내려놓아야 하는 것마저 시원시원하게 말하는 그 모습이 매력적이다. 실존 인물에서 가져온 캐릭터라고 하더라. 도화서에서 관직을 얻은 화사였으며, 절세 미녀라고 전해진다던데, 소설 속 홍천기 역시 절세 미녀라고 나온다. 그녀의 과한(?) 발랄함에 그 외모를 더해 생각하니 괜히 부러워진다. 그림도 잘 그려, 성격도 좋아, 예쁘기까지 해, 천하제일의 남자가 좋아해 주지... ‘홍천기 is 뭔들~’ 안 그래? ^^

 

실존 인물과 허구의 적절한 조화가 어우러져 소설의 재미와 진지함을 부른다. 화마의 등장은 판타지의 요소를 더하며 오직 그림을 사랑할 뿐이라는 순수함을 느끼게 한다. 재능이, 그림이, 어떤 힘을 가지는 수단이 아니라 그저 가지고 있으니 드러내어 좋은 것은 다 같이 보는 즐거움을 누리자는 듯이 들려서 말이다.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이미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었다니, 이 소설을 기다린 건 독자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한다. 읽으면서 머릿속에 영상을 그리곤 했는데, 실제로 드라마가 되어 다시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1년 후, 드라마로 다시 만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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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두 얼굴 -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
최광현 지음 / 부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의 두 얼굴』 상처 회복의 길, 나와 마주하기.

 

가장 치명적인 얘기는 안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치명적이라는 표현이 좀 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어울리는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꼭꼭 숨겨서 거짓으로 위장해야겠다는 것이 아닌,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주춤거림이다. 이런 내용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 유독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게 하는 것이 가족 이야기다. 나에게도 그렇거니와 주변 사람들을 봐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듣는다.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아프고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나 역시도, 아주 모르쇠로 일관할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가족은 의지가 되고 안심이 되는 존재다. 반면, 나를 한없이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최광현의 『가족의 두 얼굴』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그 내용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보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는데, 그게 진실일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어느 쪽으로든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이 책에 기대를 하게 된다. 오랜 시간 나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과 아픔이란 감정을 품게 하는 가족이란 화두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기에 말이다.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더, 지금보다 나아지는 관계 회복을 위해서라도 가족이란 관계의 양면성을 보고 싶었다. 특히,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나와 가족의 심리테라피’라는 부제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은 커졌다. 치유,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싶은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그 문제, 그 상처의 시작이 어디부터인가를 보게 한다. 가족이 무엇이고 가족은 어떤 존재이며, 가족이란 이름에 함께 수반되어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들을 한꺼번에 던진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발생되는 많은 문제들, 심리적 ․ 경제적 그 이상의 문제들 속에 가족이 있다. 누군가 아픔을 호소하지만 상처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이는 상처보다는 가슴 속에 품은 상처가 더 깊고 아픈데다 그 치료가 힘들다는 것을 한 번 더 알게 되는 순간이다. 분명 아프니까 고통을 호소하는데 그 고통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어떤 치료를 통해 회복해야 하는지도 어려워진다. 이때, 저자가 들려준 답은 ‘아픔을 치료해야 하는 순간에 드러나야 할 것은 과거로의 회귀’였다. 우리가 아이였을 때나, 어른이 되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의 근원을 찾아가야만 한다는 거다. 원인 없는 아픔은 없다. 지금 내 안에 가득한 상처들이 쌓인 이유와 근거가 분명히 있다. 그 치유의 시작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발생한 아픔의 원인들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모두 가족에서 근원하는 건 아니지만, 가족이라는 관계는 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접하고 이루어가는 구성이니 그 시작이 가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가족 안에서 만들어지고 키워지는 문제들은 우리가 더 나아가서 만날 학교나 사회, 그 이후로 펼쳐져야 할 미래까지 영향을 미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던 사례에서만 봐도 그렇다. 이유 없이 슬프고 외롭다고 하지만 찾아보니 이유가 있고,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는 이에게는 가족과 함께이기에 짊어져야 할 아픔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외로움을 겪어야만 하는 이도 있다. 편안하고 만만한 화풀이 대상처럼 가족을 대하는 이도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 내는 모습에 상처는 더 깊어진다. 가족이니까 당연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또 그래왔던 시간들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가는 인성과 환경, 가치관은 보편적으로 이어가는 사회생활이나, 배우자를 만나고 내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족이라는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족이라는 그 이름을 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었나...

 

나와 가족을 둘러싼 문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내가 나고 자란 가족이 그 상처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쩌면 우리의 내면에서 그 답을 이미 찾아내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겪어왔던 어린 시절의 상처와 아픔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 안의 상처는 반복되어 불행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수학문제의 정답처럼 어떤 정해진 숫자를 내놓지 않았다. 다만,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숙제 하나를 내주었다. 나와 마주하기. 내 안의 나를 직면하고, 상처의 시작이 되었던 나의 내면아이를 찾아내어 치유해야 한다는 것. 어린 시절, 나에게 시작되었던 상처를 직시해야만 하며, 그 시간을 보듬고 공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상처의 시작점을 찾아가라고. 결국 앞으로의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닌, 그 상처의 원인인 과거의 시간을 찾아가야만 치유의 시작이 진행된다는 것일 테다. 나와 가족을 둘러싼 문제들이 어떤 양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지 직면하는 것이야 말로 명의의 처방이었다. 그 다음으로 무엇이 달라질지는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얼마만큼의 나를 찾아내느냐, 어떤 마음으로 그 치유의 모습을 감당하느냐, 하는.

 

내가 얼마만큼 나아가고 치유해갈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두렵기도 하다. 불확실성에 대해 거는 기대가 무모해질까봐 무섭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이 상처를 그대로 끌어안고 살아간다면 내일을 만나야 한다는 현실이 무의미해진다. 이대로는 치유되지 않는 상처에 발목 잡혀 삶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그 두려움, 무서움 떨쳐내고 저자의 처방대로 나를 돌아보는 그 시간으로 달려가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이 책 속의 사례에 등장하는 사람들, 아직 드러내지 못한 상처들로 아파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까지 공통으로 주어진 숙제다. 모든 것은 나에게로의 회귀에서 다시 시작한다. 가족이란 이름과 관계를 다시 쓸 기회가 주어졌으니 잡아야 한다. 이제,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주어질 그 순간을 기대하며 나(우리)를 만나러 간다. 모든 상처가 시작되었던 그때의 나(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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