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체브라시카 시리즈 세트 - 전3권 - 체브라시카와 새 친구 + 체브라시카의 첫 여행 + 체브라시카와 서커스 안녕, 체브라시카
예두아르트 우스펜스키 원작, 야마치 카즈히로 엮음, 김지현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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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조카들에게 보내주려고 종종 아이들 책을 관심 있게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발견한 체브라시카는 아주 귀여운 캐릭터다. 시리즈의 첫 번째인 <체브라시카와 새 친구>의 캐릭터 소개에 의하면, 체브라시카는 곰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그냥 체브라시카. 얼핏 귀여운 아기 원숭이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네. ^^ 처음 만날 때부터 콱 꼬꾸라지는 모습이어서 그랬는지 이름이 러시아 어로 ‘쓰러지다’, ‘푹 고꾸라지다’라는 뜻의 ‘체브라시카’가 되었다. 곰 같은 색으로 털옷을 입었지만, 덩치로 보니 곰도 아닌 것 같고. 말 그대로 그냥, 체브라시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것을 배제한 채로 인정하면 되는 것을 말하려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 <체브라시카와 새 친구>

오렌지 상자에 같이 실려 낯선 나라로 온 체브라시카는 새로운 환경을 접한다. 정말 낯설고, 친구 한 명도 없다.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 같은 걸 품고 있는 동그란 눈이 안쓰럽고 귀여워서 지켜보던 중, 악어 게나의 친구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다. 그곳에서 악어 게나, 여자 어린이 가랴와 마을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중 심술궂은 할머니 샤포클라크는 백발의 악동 같다. ^^ 욕심쟁이에 장난도 도가 지나치고. 어딜 가나 꼭 한 명 있는 못된 친구 같은 역할을 샤포클라크 할머니가 표현하는 듯하다. 이들 모두 하나가 되어 '친구의 집'을 짓기로 한다. 누구나 망설이지 않고 찾아올 수 있는 곳, 수줍게 주춤거리지 않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곳, 마음 놓고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동물 친구들이 힘을 합쳐 친구의 집을 만들고 행복과 우정의 함박웃음을 짓는다.

 

 

두 번째 이야기 <체브라시카와 첫 여행>

악어 친구 게나와 함께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된 체브라시카. 기차를 타고 가던 중 기차표를 분실한 것을 알게 되고, 기차에서 내리게 된다. 알고 보니 기차표를 샤포클라크 할머니가 숨긴 것. 기차표를 되찾지 못한 게나와 체브라시카는 기차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숲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꽃, 싱싱한 버섯, 나무 열매 같은 자연을 처음 접하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신기해하면서도 손으로 꺾거나 망가뜨리지 않는 예쁜 손. 그렇게 걷다가 발견한 어느 강에서 보게 된 오염물질. 그 오염된 물이 공장에서 흘러나와 강으로 흐르는 것을 봤지만, 공장 주인은 딱 잡아뗀다. 게나만의 재치로 응징해주고 공장에서 더 이상 폐수와 매연을 내보내지 못하게 혼쭐을 낸다. 게다가 숲에서 만난 나쁜 사람들의 악행에 도 서슴없이 복수한다. 동물을 잡으려 놓은 덫으로 혼내주고, 물고기를 몽땅 잡으려고 쳐놓은 그물을 건져 올렸을 때 나타난 악어 게나가 겁을 주고. 아주 통쾌한 한방으로 인간의 욕심을 지적한다. 그리고 다시 떠나는 기차 여행. ^^

 

 

세 번째 이야기 <체브라시카와 서커스>

마을에 서커스단이 왔다. 체브라시카와 친구들이 처음 구경하게 된 서커스가 마냥 신기하다. 온갖 재능을 뽐내고 서커스단에 들어가고 싶지만 탈락한 친구들. 그 중에 외줄타기에 도전하고 싶은 소녀 마랴가 불합격하고 우는 모습을 본 게나와 체브라시카는 마랴와 함께 외줄타기 연습을 하며 도와준다. 줄에서 자꾸 떨어져도 다시 올라가 도전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마랴를 응원하고 서커스단에 도전하게 한다. 단장은 마랴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서커스 공연에 오르도록 한다. 동물들의 친구 마랴는 공연에 성공해서 서커스단에 입단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체브라시카는 어떤 동물일까 상당히 궁금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인지...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그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듯, 그런 고정관념을 배제한다. 어디서 왔든, 어떤 종류의 동물이든, 아무런 상관없이 체브라시카라는 이름만으로 존재하게 한다. 정글에서 와서 낯선 동물들과의 첫 만남이 두려울 수도 있는데, 악어 게나의 친구 모집 공고는 어떤 기회를 만드는, 먼저 손 내미는 제스처였다. '우리, 이렇게 친구가 될 수 있잖아.' 하는 의미였다. 이 책을 만나게 될 연령대가 4~7세라고 나온다. 취학 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닐 나이의 아이들이다. 엄마 품에서, 집에서 익숙한 얼굴과 생활하다가 처음 가게 된 곳의 단체생활이 얼마나 두려울지... 조카들이나 주변의 아이들을 봐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처음 유치원 등원 차량에 아이가 타는데 우는 경우가 많다. 엄마와 떨어진다는 두려움, 모두 새로운 얼굴, 낯선 환경 속에서 보낼 시간이 공포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듯이, 자꾸 넓은 공간, 다른 사람들을 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듯이, 체브라시카 첫 번째 시리즈는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어우러져 가는 과정을 말한다. 친구를 사귀게 되고, 서로 함께 하는 공감을 만들어가고, 우정을 쌓아가는 방법을 그렸다. 아이가 낯선 친구와 환경에 점점 적응해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듯하다. 그 적응과정이 앞으로 어떤 시간을 이어가게 할지, 어떤 아이로 성장하게 할지 긍정적으로 기대하게 한다.

 

체브라시카 두 번째 시리즈인 여행은, 좀 더 큰 세상 속으로 뛰어든 모습을 그린다. 그 여행에서서 만나게 되는 세상의 부조리와 부패, 자연의 망가짐을 지켜보게 한다. 아이에게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공장의 매연과 폐수를 내뿜는 게 비일비재한 세상, 오염되는 자연을 방치하면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사람들. 자연의 번식과 유지가 필요하고 당연한 건데, 그것을 자신의 뱃속에만 채워 넣으려는 몰지각한 사람들의 횡포를 알려주면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한다. 자연은 어느 한 가지로만 설명되고 포함되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자연을 만들고 유지해왔다. 그걸 한 번에 망가뜨리려는 사람에게 보내는 귀여운 경고를 동물 친구들이 대신하고 있다. 악어 게나가 폐수의 출구를 엉덩이로 막아 공장으로 폐수가 역류하게 만들었던 건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독한 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표현해도 되지만 그것 보다는 재치 있게 상황을 되짚어가게 하는 모험 같은 전개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제법 잘 어울린다. 자연을 훼손하는 것 자체가 해서는 안 될 일임과 동시에,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지 또 한 번 배운 셈이다.

 

세 번째 시리즈 서커스는, 자신감과 우정이 아이의 어떤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지 보게 한다. 서커스 단원이 되고 싶었던 마랴에게 매번 실패하는 줄타기는 절망일 것이다. 잘되지도 않고, 줄에서 계속 떨어지고, 하지만 서커스 단원은 꼭 되고 싶은 마랴의 간절한 마음. 그때 옆에서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게나와 체브라시카의 모습이 훈훈했다. 아이들끼리의 공감대 같은 거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그 바탕에는 되고 싶은, 바라는 일에 어떤 마음으로 도전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주저앉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 넘어질 때마다 포기하고 싶지만 간절한 바람을 항상 상기하게 되는 것, 그 옆에서 응원가를 불러주고 같이 손잡아주는 친구가 고마워서 더욱 노력하게 되는 시간. 마랴의 줄타기 연습 시간은 그런 온기로 행복했을 것 같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더욱 최선을 다하게 되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림이 상당히 부드럽게 그려지고 동물들의 모습이 예쁘게 표현되었다. 체브라시카의 처음 모습은 지금 같지 않았다던데,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큰 귀, 크고 둥근 눈, 밤색 털을 가진 동물. 상상만 해도 귀여움 그 자체다. 순진무구한 큰 눈을 반짝이며 많은 것을 보고, 큰 귀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러시아를 상징하는 캐릭터이자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네 차례의 올림픽에서 공식 마스코트로 선정되어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 여러 형태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하고... 꾸준히 재생산되어 많은 아이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게 자연스럽다.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캐릭터다.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의 전개와 활약, 마음을 담은 이야기가 다정하다.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자라면서 꼭 한 번은 마주하고 겪게 되는 에피소드에, 아이에게 직접 닿을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처음 경험하는 것들, 배우면서 봐야 하는 것들, 호기심을 채우며 즐길 수 있지만 결코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으로 자리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다. 감동과 재미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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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 이동진의 빨간책방 오프닝 에세이
허은실 글.사진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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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을 맞추는 시간.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읽으며 <빨간책방>의 문을 여는 이동진의 목소리를 저절로 떠올린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동진의 얼굴을 본 게 훨씬 더 오래전이지만, 이동진은 귀로 듣는데 제법 잘 어울리는 목소리와 말투를 가졌다. 고요하고 다정한 목소리, 차분한 말투. <빨간책방>의 청취자가 많은 이유 중에 그게 한몫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나처럼 게으른 독자도 생각나면 챙겨 듣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팟캐스트다. 그 방송의 오프닝 에세이를 이렇게 만났다.

 

새 신발을 신었을 때

발가락이나 뒤꿈치에 생긴 물집 때문에 고생한 일,

누구나 있을 겁니다.

 

기타를 처음 배울 땐 어떤가요.

어느 순간 손가락 끝의 껍질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이지요.

 

사람과 사귈 때도 그런 물집과 굳은살의 시간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면

당연히 부딪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고요.

그 마찰 때문에 마음에도 물집이 생기죠.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타든, 신발이든, 사람이든,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건 그런 시간을 통과한 다음이니까요. - 43페이지. 물집과 굳은살

 

에세이인데 시 같다. 짧은 글이 어떤 운율에 맞춰 읊조리는 느낌이 나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다섯 개의 키워드로 나뉜 이야기다. 사이, 마음, 책, 독서, 삶. 각 키워드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지만 결국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일상과 생각을 그대로 연결한 것처럼 자연스럽다. 세상 속 우리 시선, 고민, 바람 같은 게 그대로 묻어있어서 친근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이 어려워 겪게 되는 일들을 ‘사이’라는 필연적 조건이라 표현하며 이해하게 한다. 관계 맺음과 이어감의 어려움을 굳은살로 만들어야 한다고 에둘러 말한다. 처음부터 익숙해지는 건 없는 법, 찢어지고 물집이 생겨가면서 굳어지는 살이 만드는 게 관계임을 풀어낸다. 환절기가 한 번씩 지날 때마다 설명하기 힘든 그 마음의 출렁임이 부담스러웠는데, 저자는 그걸 계절과의 연애처럼 표현한다. 한 계절이 끝나가고 있음이, 한 번의 연애가 끝나는 것처럼 여기게 한다. 아, 계절의 흐름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이 계절을 이렇게 흘려보낼 수도 있는 거였구나, 싶은 안도감 같은... 살면서 겪는 많은 감정을 한 가지씩, 살짝, 조용할 목소리로 건네는 속삭임 같다.

 

긴 외출 후에 돌아와 우편함을 열 땐

조금 들뜬 기분이 듭니다.

숫자들만 가득한 공과금 고지서 속에

어쩌면 다른 게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죠.

우표가 붙은 엽서, 누군가의 지문이 묻은 손 편지.

그런 것들 말이지요.

 

마음의 근황을 물어오는 뜻밖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그렇게 혹시나, 어쩌면, 하고 기대를 품고

스팸 메일이나 납세고지서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인지 모릅니다. - 196페이지. 어쩌면 오늘 우리는 편지를

 

 

페이지를 계속 넘기면서 만나는 책 이야기는 ‘그래서 책 이야기를 하는 방송의 문을 여는 것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이 낯설지 않아서 더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독서가 사람 살아가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 저자. 단어와 문장과 페이지에 눈을 맞추며 느끼는 것들. 사람, 시간, 세상, 그리고 더 많은 것. 살면서 여러 가지를 ‘지어가는’ 일이 소소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과정이 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풀고 있다. 본방송을 듣기 전의 애피타이저 같은, 본방송을 다 듣고 난 후 맛보는 후식 같은 글.

 

(비밀을 하나 말하자면) <빨간책방> 초기를 제외하면, 사실 나는 오프닝 원고를 미리 읽어보지 않는다. 그 글을 처음 대하자마자 눈과 뇌를 거쳐 의미와 리듬을 한꺼번에 굴리면서 입 밖으로 내미는 짧은 순간의 신선한 긴장감에서 출발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글을 온전히 믿고 순전히 즐긴다. - 이동진

 

이동진의 추천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저자의 글이, 아직 남은 겨울에 온기를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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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보스
정이연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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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내 옆에 웬 낯선 여자(남자)가 누워 있다?'

솔직히 새로운 설정은 아니다. 이런 에피소드로 시작된 이야기가 신선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짧고 굵다는 건 이 소설을 두고 한 말 같다. ^^ 장편소설 분량을 딱 반토막 낸 분량으로, 해야 할 말만 간단명료하게 적어놓은 듯한 분위기. 군더더기 빼고 느슨해지는 분위기 빼고, 치고 빠지는 기술이라고 해야 할까. 짧은 시간에 좀 더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여 즐기기에 충분한 소설.

 

오랜만에 한국으로 들어온 강욱의 어느 날 아침. 햇살의 따가움에 잠을 깨고 일어났는데, 자신의 침대에 웬 여자가 누워 있다. 간밤에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원나잇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술이 떡이 되어 누워있는 이 여자는 누구인가? 이상한 여자일세. 그게 한번이면 아량을 베풀어 볼만도 하건만, 두 번이나 반복되는 건 또 뭔가. 도대체 이 여자가 자신의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건지 몰라 신경이 거슬리던 사이, 여자의 가방 속에서 신원을 확인한다. 희미하게 웃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리고 여자의 약점(?)을 쥐고 거래를 한다. '너 나한테 빚 졌다!'

 

얼마 후, 강욱과 여자는 태용건설에서 재회한다. 여자는 신입사원 강욱의 상사 김수현. 외모 멀쩡하고 일 끝내주게 잘하는데 워커홀릭이다. 자신의 침대 위에서 본 여자와 회사에서 마주한 여자의 이미지가 다르다. 이 여자, 뭘까? 시건방진 캐릭터 그대로 강욱은 느물느물 자신감 넘치는 신입으로 수현을 대하고, 겉으로 단단하게 보이는 수현은 강욱의 놀림 같은 관심에 공격당한다.

 

실실 쪼개며 속을 끓게 만드는 남자의 매력이 상큼하다. 딱 눈길이 가게 만들어졌다고 해야 하나. 까칠한 듯하면서 말랑말랑한 마음을 갖고 사는 매력덩어리를 그대로 심어놓은 것처럼, 얄미운데 딱밤보다는 괜히 옆구리를 찔러주고 싶은? 뭐, 좋다는 얘기지. ^^ 그런 강욱이 자신의 배경을 숨기고, 목적을 두고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였기에 그 사실을 수현이 알게 될 때를 대비해 준비를 한다. 수현에게 향하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시간차 계획을 세운다. 두 사람 사이에 알게 모르게 생긴 비밀. 이 잘난 남자가, 자신에게 미친듯 관심을 보이는 남자가, 기껏 신입사원이었던 남자가, 사실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오너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는 거야?!

 

많은 이들이 가볍게 웃고 즐겼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짧은 후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적 분위기가 충분히,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한다. 장편과 단편 그 사이의 장점을 살려 짧고 굵게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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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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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지배받는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왕의 한의학』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봤던 조선 왕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손가락 끝으로 천하를 호령하는 사람이었다. 시쳇말로 수행원들 줄줄 달고 살며,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편한 생활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너무 익숙하면 가끔 심심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편하게 살고 싶은 건 인간이 가지는 바람이기도 하니 부럽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한 적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누리기 위해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것도 많았다는 것. 단순히 흥미로만 만나던 그 시간의 이야기를 즐길 요소도 있지만, 그 이면의 것들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게 아닐까 추측해보기도 한다.

 

이상곤의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의 질병과 역사를 연결한다. 어느 사건이 일어난 때, 어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왕의 건강이 보내는 신호를 말한다. 굳이 왕이 아니어도, 일반인인 우리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건드리는 사건이나 고민거리가 생길 때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고 반응한다. 온갖 방법으로 그 치료를 하겠지만, 그 근원을 뽑아내기 전에는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 왕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의 의료행위는, 한의학으로 왕의 건강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역사와 함께 해왔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으로 시간을 추적하고 왕의 몸을 다시 진찰한다. 그 기록 안 왕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병명, 증상, 치료법도 여러 가지가 함께 했지만,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보면 그 자리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가 모든 병의 근원이었던 듯하다.

 

고대의 주례(周禮)를 충실하게 복원한 조선 왕실의 상사(喪事)는 살인적이었다. 아마 세종은 그 첫 희생자였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신하들의 고기 섭취 권유에 덧붙이는 세종의 말은 그가 고기 마니아였고 대식가였다는 가설을 부정하기에 충분하다. “내가 본디 병이 없고 늙지도 어리지도 않으니 어찌 감히 뒷날에 병이 날까 봐 고기를 먹겠느냐.” (27페이지 세종)

 

왕의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미 몸의 이상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다. 선대의 상을 치르면서 예를 갖추느라 오랜 시간 몸을 상하게 했고, 왕위에 오르자마자 시작된 격무는 피로한 몸을 더 혹사하곤 했다. 권력 다툼의 중심에서 온몸은 긴장으로 풀어질 줄 몰랐다. 저자는 조선 왕실의 의학과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들려준다. 몇몇 왕을 제외하고 태종부터 고종까지 실록을 바탕으로 해석하듯 비밀스러운 한의학을 풀어낸다. 그 결과부터 말하자면 역시, 가면 하나를 쓰고 살았던 조선 왕들에게 드러나는 증상들이 마음의 고통을 증명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결국 다 숨기지 못했던 듯하다. 밖으로는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며 안으로는 수도 없이 밀려드는 위협과 싸워야 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관여해야 하는 묵중한 업무와 신하들과의 밀당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위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 흔적은 고스란히 몸에 남았다. 세종은 워커홀릭으로 비만이었고,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시대의 색골이었다. 숙종은 화증과 눈병으로 평생을 앓았고, 헌종과 철종은 종마의 역할을 충실히 하느라 골골했다. 고종은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 와중에 의외로 보였던 사람이 영조다. 정조는 장수한 거로도 유명한데, 평소 자신의 체질을 잘 알고 질병에 대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에게도 나중에는 화병의 징후가 보이는데, 그건 허약체지이었던 그가 자기 관리로도 결국 감출 수 없었던 고질병이 아니었을까.

 

저자의 역사 해설과 함께 조선 왕의 증상을 들으면서 알 수 있었던 건 세세한 기록과 진료로 처방과 치료를 했다는 건데, 그 안에서도 의학은 자주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손 안에 있었던 것 같다. 내의원 삼제조의 영향 아래서 온전한 의술을 펼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것. 한편으로는 왕실의 의료 행위가 국가적인 일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힘의 작용을 완전히 무시하시는 못했을 듯하다. 게다가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통치나 권력 투쟁은 왕들의 발병을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정치적 갈등과 초상을 치르는 과정이 온갖 질환을 불러와 세상을 떠나게 하고, 독살설을 내놓는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기록된 조선의 왕실의 의료 기록을 볼 때 독살되었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왕은 거의 없다고 한다. 독살이라기보다는 의료 과실에 가까운 원인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눈앞에서 아비의 죽음을 목격하고 평생 그 한을 풀기 위해 애쓴 정조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야 했을까? 정조의 질병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이 가져다준 트라우마가 화증이 되어 평생 그를 괴롭혔다. (335페이지 정조)

 

가만히 듣다 보면, 이들의 모든 병은 화병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그 화병 한 가지로 그들의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병을 시작으로 합병증처럼 다른 병들이 줄줄이 따라온 것 같다. 종기는 기본으로 생기는 게 비일비재했고, 소화불량과 과로는 스트레스로 직행했다. 왕의 자리라는 것이 이들의 건강을 좌우해 기인한 것이 아닐까.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온갖 병을 불러오고 있었음이라. 말 그대로 왕노릇이 수명을 단축시킨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거부당하며 시작되는 질병의 참모습이다.

 

역사 해석과 함께 풀어놓은 저자의 관점은 한의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하면서, 현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왕의 자리라는 위치만 다를 뿐 우리 살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스트레스, 때를 맞추기 어려운 식사로 인한 소화불량, 불면증 같은 시대를 거슬러도 비슷한 질병들을 안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처방과 치료법이 워낙 방대해서 다 옮겨 적을 수가 없는 게 아쉽지만, 그들의 증상을 보고 처방하고 치료한 과정을 통해 한의학의 역할과 발전,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처방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보약처방이 많았고 침구술 같은 외과 치료가 경외 시 되었다는 것도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 같다. 아마도 서양의학의 도입과 함께 변화되어 가던 과정도 한몫한 건 아닐까 싶다. 조선 시대 의학이면서 상당히 적극적인 치료법이었고, 오늘까지 계승된 것이 많다니 믿어볼 만 하다. 역사와 의료를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진지했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그 설명에 믿음이 간다. 한의학은 자연과의 조화라는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순간 신호를 보내는 몸이 그걸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환경이 인간을 병들어가게 하는 과정과 그 치료를 위한 자세를 배우게 하는 실용적인 책이다. 읽는 내내 진지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 『공자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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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란 단어 끝에 매달린 눈물을 멈추게 할 치료약은 없는 듯하다. 그리움이 밀려오는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수밖에는. 시간이 만들어낸 그리움이 시간으로 흐릿해지길 바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수밖에. 누구, 다른 방법 알고 있다면, 좀, 알려줘...

 

2회 모두 챙겨보게 된 <무한도전 토토가>가 한없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렇게 화려하고 흥겨운 무대에,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어 그냥 흐르게 놔두었는데, 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그건, 그리움이었다. 가수들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언제 이런 자리가 또 만들어질지 몰라서 더 그리워질 시간.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찾아왔을 그 순간이 눈물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던 듯하다. 전성기라 불러도 좋을 시간을 묻어두고 살았을 그들에게 이번 무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분출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1990년대에 십 대 후반 이십 대를 살았던 나에게도 온갖 감정이 범벅이다.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되돌아보고, 다시 모인 자리가 기쁘고 즐거운데도 눈물을 훔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슴 속 말들을 읽는다. 힘들지만 좋았던 시절, 좋은 줄도 모르고 그저 익숙하게 지냈던 시간, 다시 모여 이렇게 노래 부르고 행복하지만, ‘언제 또 우리 다시 뭉치자’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것.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20대가 아닌 30, 40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선뜻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 알고 있기 때문에... 길에서 우연히 예전에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순간적인 반가움에 아는 척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하는 말이 영혼 없는 약속이 되어버릴까 봐, 선뜻 꺼낼 수 없는 말이 됨을 아는 것과 같은 의미.

 

그래서 계속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들려오는 <토토가>의 노래가 기쁘면서 눈물이 나는 거 아닐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판타지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들의 이 무대가 지금 이렇게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고 좋다는 것. 나이를 먹고 체력이 달려 춤추면서 힘들어하고, 그때와 똑같이 분장을 했지만 얼굴의 주름이 다 가려지지도 않는...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같이 나이 먹어가고 있음을 공감하며, 닿지 않는 손을 뻗어가며 다독이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에 박힌 향수라고 해도, ‘추억팔이’라고 말해도 괜찮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시간의 소환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게, 어느 한 때를 노래로 공유했다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해서, 추억이라 부를 시간을 만들어낸 게 기적 같아서 좋은.

 

배순탁의 <청춘을 달리다>도 비슷하다. 그의 전문적인 음악 지식을 풀어내고 있지만, 그 배경은 1990년대, 그가 이십 대를 보내던 시절의 이야기가 곳곳에 녹아있다. 

 

 

때때로 음악은 특정한 시절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어려운 시절보다는 좋았던 시절이 소환될 때, 눈물이 왈칵 차올라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는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쁜 기억들은 사라지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남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돌아오지 않아’라는 진실을 그 어떤 바보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이 곡을 지금까지도 듣는 이유는, 거기에 아버지와 나의 환한 미소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음악은 때로 이렇게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거는 전화가 된다.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된다. 나처럼 나중에 땅을 치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해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다. 절대로.

- 46~47페이지 <청춘을 달리다>

 

 

 

1년쯤 전, TV를 잘 보지 않았던 그때도 <응답하라 1994>에 빠져 본방송을 챙겨볼 정도였다. 주변에서 웬일인가 싶어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곤 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거, 우리 그때랑 너무 똑같잖아!’ 라면서 미치도록 공감하며 다음 회를 기다렸다. 우리의 20대, 너무 그립고, 서툴러서 아쉬웠던 그 시간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봤다. 드라마가 너무 재밌다며 몰입했고 중독됐다. 그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저 재밌는 드라마라고... 근데 오늘 <무한도전 토토가>를 보면서 그 드라마를 떠올리니, 스토리 자체가 만드는 몰입보다 그 배경에서 계속 들려왔던 음악이 더 생각났다. 그 때문인 듯하다. 눈이 아닌 귀로 저절로 그 시간을 소환해내는 것. 물론 눈과 귀가 같이 영향을 받았기에 그 시너지가 엄청났을 테지만, 음악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그 시대의 음악이 빠져서는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잠시 잠깐, 시간이 멈춰있었다. 그 시간의 감동과 열기가 행복하면서 두렵기까지 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후유증을 견디기 어려울까 봐. 휴...

 

어느덧, 누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고, 누구는 가수보다 예능인으로 더 각인되었고, 누구는 혼자 두 사람 몫의 노래를 하며 행사를 뛰고, 누구는 한류의 한가운데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그때 매일같이 얼굴 보며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들의 지금 자리는 너무 달랐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에 다른 생각은 낄 자리가 없는 듯하다. 지금, 이렇게 행복하면 좋다는 듯, 다행이라는 듯...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십여 년을 함께 한 친구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졸업하고 우연히 남철이를 만난 적이 있어. 우리가 슬리퍼 버렸다는 거, 알고 있더라고... 그냥 웃더라.'

그 친구와 나만이 알 수 있는 암호 같은 문장을 전송했다. 가수들에게 오늘의 시간이 여운으로 길게 남아 힘들 것처럼, 나에게도 한동안 마음을 무겁게 할 여운으로 남아있을 듯하다. 그리운 어떤 게 빨리 잊히기만을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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