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단어 끝에 매달린 눈물을 멈추게 할 치료약은 없는 듯하다. 그리움이 밀려오는 그 시간을 흘려보내는 수밖에는. 시간이 만들어낸 그리움이 시간으로 흐릿해지길 바라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수밖에. 누구, 다른 방법 알고 있다면, 좀, 알려줘...

 

2회 모두 챙겨보게 된 <무한도전 토토가>가 한없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렇게 화려하고 흥겨운 무대에, 왜 눈물이 나는지 알 수 없어 그냥 흐르게 놔두었는데, 다 끝나고 생각해보니 그건, 그리움이었다. 가수들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처럼, 언제 이런 자리가 또 만들어질지 몰라서 더 그리워질 시간.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찾아왔을 그 순간이 눈물로밖에 표현될 수 없었던 듯하다. 전성기라 불러도 좋을 시간을 묻어두고 살았을 그들에게 이번 무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을 분출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1990년대에 십 대 후반 이십 대를 살았던 나에게도 온갖 감정이 범벅이다. 자신들의 화양연화를 되돌아보고, 다시 모인 자리가 기쁘고 즐거운데도 눈물을 훔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슴 속 말들을 읽는다. 힘들지만 좋았던 시절, 좋은 줄도 모르고 그저 익숙하게 지냈던 시간, 다시 모여 이렇게 노래 부르고 행복하지만, ‘언제 또 우리 다시 뭉치자’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것.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만족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20대가 아닌 30, 40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선뜻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 알고 있기 때문에... 길에서 우연히 예전에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순간적인 반가움에 아는 척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 하는 말이 영혼 없는 약속이 되어버릴까 봐, 선뜻 꺼낼 수 없는 말이 됨을 아는 것과 같은 의미.

 

그래서 계속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들려오는 <토토가>의 노래가 기쁘면서 눈물이 나는 거 아닐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판타지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이들의 이 무대가 지금 이렇게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고 좋다는 것. 나이를 먹고 체력이 달려 춤추면서 힘들어하고, 그때와 똑같이 분장을 했지만 얼굴의 주름이 다 가려지지도 않는...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동시에 같이 나이 먹어가고 있음을 공감하며, 닿지 않는 손을 뻗어가며 다독이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틀에 박힌 향수라고 해도, ‘추억팔이’라고 말해도 괜찮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한 시간의 소환이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게, 어느 한 때를 노래로 공유했다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해서, 추억이라 부를 시간을 만들어낸 게 기적 같아서 좋은.

 

배순탁의 <청춘을 달리다>도 비슷하다. 그의 전문적인 음악 지식을 풀어내고 있지만, 그 배경은 1990년대, 그가 이십 대를 보내던 시절의 이야기가 곳곳에 녹아있다. 

 

 

때때로 음악은 특정한 시절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어려운 시절보다는 좋았던 시절이 소환될 때, 눈물이 왈칵 차올라서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는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쁜 기억들은 사라지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남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돌아오지 않아’라는 진실을 그 어떤 바보가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이 곡을 지금까지도 듣는 이유는, 거기에 아버지와 나의 환한 미소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음악은 때로 이렇게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거는 전화가 된다.

부치지 못한 편지가 된다. 나처럼 나중에 땅을 치면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해야 한다. 돌아오지 않는다. 절대로.

- 46~47페이지 <청춘을 달리다>

 

 

 

1년쯤 전, TV를 잘 보지 않았던 그때도 <응답하라 1994>에 빠져 본방송을 챙겨볼 정도였다. 주변에서 웬일인가 싶어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곤 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거, 우리 그때랑 너무 똑같잖아!’ 라면서 미치도록 공감하며 다음 회를 기다렸다. 우리의 20대, 너무 그립고, 서툴러서 아쉬웠던 그 시간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봤다. 드라마가 너무 재밌다며 몰입했고 중독됐다. 그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저 재밌는 드라마라고... 근데 오늘 <무한도전 토토가>를 보면서 그 드라마를 떠올리니, 스토리 자체가 만드는 몰입보다 그 배경에서 계속 들려왔던 음악이 더 생각났다. 그 때문인 듯하다. 눈이 아닌 귀로 저절로 그 시간을 소환해내는 것. 물론 눈과 귀가 같이 영향을 받았기에 그 시너지가 엄청났을 테지만, 음악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그 시대의 음악이 빠져서는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잠시 잠깐, 시간이 멈춰있었다. 그 시간의 감동과 열기가 행복하면서 두렵기까지 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한바탕 꿈에서 깨어난 후유증을 견디기 어려울까 봐. 휴...

 

어느덧, 누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고, 누구는 가수보다 예능인으로 더 각인되었고, 누구는 혼자 두 사람 몫의 노래를 하며 행사를 뛰고, 누구는 한류의 한가운데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고... 그때 매일같이 얼굴 보며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들의 지금 자리는 너무 달랐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에 다른 생각은 낄 자리가 없는 듯하다. 지금, 이렇게 행복하면 좋다는 듯, 다행이라는 듯...

 

 

프로그램이 끝나고 이십여 년을 함께 한 친구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졸업하고 우연히 남철이를 만난 적이 있어. 우리가 슬리퍼 버렸다는 거, 알고 있더라고... 그냥 웃더라.'

그 친구와 나만이 알 수 있는 암호 같은 문장을 전송했다. 가수들에게 오늘의 시간이 여운으로 길게 남아 힘들 것처럼, 나에게도 한동안 마음을 무겁게 할 여운으로 남아있을 듯하다. 그리운 어떤 게 빨리 잊히기만을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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