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에 그림 하나, 한 페이지에 문장 하나. 미스 반 하우트의 <해피 시리즈>는 아주 단순하게 표현한 듯하지만, 물고기의 표정 하나하나 세세하게 담고 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 매력적인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요술까지 부린다. 지금껏 동물을 그린 여러 그림을 봤어도 이렇게 표현한 그림은 처음 봤다. 물론 내가 그림책을 많이 접하지 않아서 모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색감과 표현이 낯설면서 새롭고 자꾸 눈에 들어온다. 어른인 내 눈에 이렇다면 아이들의 눈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내가 아동도서나 그림책을 보고 재미있다고 느껴지면 아이들도 재미있다고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 주의.) 그래서인지 곧 4살이 되는 조카가 한참을 보면서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나는 조카의 표정을 보곤 했다. 웃으면서도 심오하게, 가끔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자주 웃으면서... 나는 옆에서 조카가 그림 한 장 넘길 때마다 옆에 있는 단어를 읽어줬다. 글을 모르는 아이도 그림의 표정에서 마음을 읽는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조카의 표정이 그림 속 물고기, 아이와 꼬마 괴물, 새의 표정과 너무 닮아 있었다.

 

 

<행복한 물고기>

시리즈의 첫 번째인 <행복한 물고기>는 아이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감정이기에 어떻게 보이는지 더 궁금했다. 기쁘고 즐거운, 떨리고 놀라운, 궁금하고 화나는, 자랑스럽고 샘나는 감정을 물고기를 그린 색과 표정으로 말한다. 거울을 보지 않는 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얼굴로 나타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떤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거울을 본다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표현된 물고기의 표정을 보면서 사람의 감정에 따른 표정을 그대로 보게 된다. 화나면 찡그리고 미운 주름이 생기는 모습, 놀라워서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뜨는 것, 기쁘고 흐뭇해서 함박웃음 짓는 입 모양,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의 불안함을 그대로 담았다.

물고기로 표현된 감정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는데, 아이들의 순수한 표정을 보는 듯했다. 어른이 되어 때로는 감정을 표정에서 숨기고 세상을 대해야 할 때를 경험하곤 하는데, 아직 감정을 숨기거나 표정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특히 눈빛과 입 모양을 달리하면서 말을 대신하는 표정은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눈빛과 입 모양으로 보이는 표정이 얼굴 전체에 담기지 않나?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는지, 입모양에 따라 어떤 웃음인지도 보이는 정도이니 얼마나 솔직한 언어인지... 시각적 효과를 그대로 담고 있는 <행복한 물고기>의 이야기에 눈으로 즐긴다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행복한 꼬마 괴물>

어느 시기가 지나면 아이들은 매일 보는 가족이 아니라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그 시작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동네 놀이터나 기타 장소에서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 혼자, 항상 내가 먼저였던 것이 이젠 나만의 것이 아니고 '함께' 하는 게 뭔지 배워가는 시간이다. 그런데 친구를 만들고 사이좋게 지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어른인 우리도 이 관계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 서로의 관계를 유지시키고 화해하고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행복한 꼬마 괴물>이다.

아이와 꼬마 괴물의 만남. 같이 놀다가 지루하기도 하고, 그러다 약 올리고 다툰다. 속상한 마음에 울면서 "다신 너랑 안 놀아." 하며 팽 돌아서기도 한다. 그렇게 사이는 멀어지고 시간이 흐른다. 왜 싸웠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뉘우친다. 그러면서 기다린다. 친구가 다시 오기를... 머쓱한 마음이지만 화해도 하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쌓아간다. 이젠 해피해피 스마일~! ^^

아이들 사이에서 우정을 만들어가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참 단순해보이지만, 현실에서 그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 역시 만감이 교차하는 어느 순간을 만날 것 같다. 사람에 대한 생각, 내가 뭘 잘못하고 잘했는지 반추하는 모습, 타인과 잘 지낼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 아닌 사람과 항상 잘 지낼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관계를 잘 유지해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과정을 담은 <행복한 꼬마 괴물> 이야기는 어른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느끼지 못할 것들을 그림과 감정 표현으로 들려준다. 책 속에서 아이 자신의 모습을 많이 볼 것 같다. 특정한 어느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그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의 보편적인 모습이고 갈등이다. 그렇게 배워가는 모습이 참 예쁠 것 같다. 우정의 풍경이 이렇게 그려지고, 서로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 돈독해지는 것. 살아가는 모습이 비춰지는 이 순간에 행복을 느끼게 되는 아이들의 표정도 내 머릿속에 그려본다.

 

 

<행복한 엄마 새>

엄마가 되기를 꿈꾸고 바라는 일. 엄마 새를 통해 보여주는 건 우리네 엄마이자,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다. 아이를 잉태하고 뱃속에 품어 보듬고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평범한 엄마의 모습이지만, 평범한 마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할 것 같다. 보살피고 다독이고 아껴 주면서 키우지만, 잘못된 부분에서는 호되게 나무란다. 사랑과 행복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지켜본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실패부터 생각하지 않게 많은 일에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잘 할 거야.' '잘 할 수 있어!' 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한없는 신뢰를 보낸다. <행복한 엄마 새>는 그런 마음을 그대로 담은 엄마 새와 아기 새의 시간을, 아기 새를 품고, 낳고, 키우고, 세상으로 향해 나가기까지 지켜보고 보살피는 엄마의 여정을 담았다. 그 여정에서 느낄 수 있는 놀람의 단어들과 표정을 하나의 단어, 문장으로 표현했다. “꿈꾸어요.” “바라고, 또 바라요.” “우아!” "즐겨요" "나무라요" "귀 기울여요" "용기를 주어요" "떠나보내요" 일련의 과정이 이 단어들로, 그대로 시간의 역사를 만든다. 아이를 보는 엄마의 시선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엄마에게' 라고 써져있다. 아마도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책이 아닐까 추측한다. 어디 작가의 어머니뿐이랴. 세상 모든 어머니가 이 책에 담겨 있는 걸. 아이와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애틋한지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고맙고,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들. 몇 개의 단어로 빛나는 순간과 엄마의 사랑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이가 자라서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가 되면 똑같이 겪을 감정이 기대된다.

 

 

처음 이 책을 펼치지 전에는 물고기로 어떻게 사람의 감정을 표현할까 싶은 궁금증이 있었지만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 하나, 등장하는 주인공의 표정 그대로 표현하는 게 너무 완벽해 보인다. '아, 이렇게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표를 머릿속에 띄웠다. 이 시리즈가 아마도 4세 전후의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도 말을 시작하고 단어를 쓰며 눈에 보이는 사물이 뭘까 궁금해 할 수 있는 나이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넘쳐 '이건 뭐야?' 하는 말이 돌림노래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오는 게 이때의 아이들 모습이다. (아이가 없어도 여러 명의 조카들이 이 나이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그래도 좀 안다. ^^) 특히 보는 게 많아지고, 보이는 그대로 습득하기 쉬운 나이이다 보니 주변의 어른이 어떻게 행동하고 가르치는지 중요하게 영향 받을 시기다. 그대로 성립된 자아가 커가면서 어떻게 작용할지 생각하고 염려해야만 한다. 미스 반 하우트의 <해피 시리즈>는 우리가 살아가는 그런 일상적인 모습을,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키워야 하는지를 그림 하나와 단어 하나로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방법으로 그 마음을 설명하고 그린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그림이다. 평소 관심이 없던 것도 한번 눈에 들어오니 소장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그림이 원색적이면서도 화려해서 한 번씩 펼쳐보고 싶어진다. 이런 색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터치 하나, 색깔 하나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가 뇌리에 남는다. 게다가 보통 흰 바탕의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는 보편성을 버렸다. 검은색을 바탕으로 깔아놓고 그림을 그렸다. 온통 검은색 바탕에 어둡고 무겁게 보일 수 있는데,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전체적으로 밝고 환하게 보이게 한다. 원색의 강렬한 대비가 멋스럽다. 표현 재료로 오일 파스텔을 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일 파스텔은 다루기 쉽고 발색이 선명하며 속도감 있는 선묘에 적합하지만, 혼색이 어렵고 표현도 거칠어 정교한 표현을 하기에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고 한다. 작가는 오히려 오일 파스텔의 단점을 활용하여 그 표현 재료만이 가능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캐릭터가 분명해지고 다채로운 색채를 멋지게 조화시켰다. 특히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한글의 문자 구조를 연구하고 연습한 끝에, 네덜란드 문자로 그려진 원작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글자의 시각 이미지를 재현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처음의 의미를 그대로 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보인다.

 

기존에 만났던 그림책과의 차별성이 매력적이고, 이런 간단한 표현과 문장에 인간의 온갖 감정을 다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이 책을 접할 아이와 어른들에게 전하는 글과 의미가 따뜻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정서에 이 책이 줄 온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 책을 따라 그리기를 해도 좋을 듯하다. 서투르지만 함께 그리고 표현하면서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는 여정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한다는 게, 큰 의미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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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평가단 두번째 에세이 골라본다.

 

 

 

<휘파람 부는 사람>

전작 <완벽한 날들>을 아직 다 읽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이번 신작은 읽고 싶다.

소개글에 보면 자연과 인간, 살아간다는 것의 경이로움을 노래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의 느낌은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작은 사유, 뜻밖의 관찰 같은 분위기.

추운 계절이 끝나기 전에 읽으면 좋겠다.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소설을 읽다보면 배고플 때가 있다.

문장으로 그려진 음식, 혹은 먹는 것에 묘사는 허기를 불러온다.

특히 한밤에 읽을 땐 주의를 요한다.

그런 공감을 누군가는 알아채고 맞춤형으로 그 배고픔을 더해주려고 하는 듯하다.

문학과 함께 맛보는 음식의 즐거움을 기대해본다.

 

 

<어린이 책의 다리>

어린이에게 현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양식'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저자의 메시지를 읽고 싶다.

전쟁의 폐허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게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꿈과 희망, 열정을 전달하는 일.

 

 

 

<전국 5일장 순례기>

제목만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사는 이 지역에도 5일장 열리는 곳이 있다.

명절을 앞두고 더욱 북적거리는 모습은 가진 게 없어도 괜히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전국의 5일장을 얼마나 사람 냄새 나게 담아왔을지 궁금하다.

사람 사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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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1 1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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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7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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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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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이 비범함이 되는 순간, 삶은 문학이 된다. 『스토너』

 

 

이렇게 평범한 한 인생이 문학이 되고, 공감을 부르며, 가슴에 남을 수 있다는 게, 애틋하다. 스토너의 삶이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그의 삶에 대해 뭔가 더 극적이고 놀라운 어떤 말을 풀어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읽는 내내 답답했다. '아, 이게 아닌데...' 이거 말고 더 진실 되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찾아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눈에 힘만 주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을 보면서 '우리는 또, 이렇게 왔다가 가는 모습인가.' 싶은 안타까움과 아련함, 담담함, 받아들임, 이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스토너』는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고 자란 스토너. 그는 제 뜻이 아닌 아버지의 의지로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다. 처음 예정대로라면 그는 대학에서 농업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평생 해왔던 농업을 계속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운명처럼 만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가 그의 인생에 없던 길로 인도한다. 이 남자, 문학과의 사랑에 빠진 거다. 혹시 아버지에게 반항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뜻밖에 그의 결정은 고요하게 합의된 것처럼,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대학에 남아 영문학도가 된다. 그 이후의 삶도 평범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모교의 교수가 되어 문학을 가르친다. 출세보다는 학문을 사랑했고, 아내와의 관계가 어색해도 가정을 의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는 그냥 '평범하게'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스토너만의 삶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보편적이라 부르는 인생의 모습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제 일을 하며 가족과 함께 늙어가는 것.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아내와 딸을 가진 존경받는 가장의 모습, 명함 내밀기 좋은 교수라는 직함이 그를 대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그 평범함 한편에 늘 자리하고 있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추고 있다.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나 항상 그럴 수만은 없다는 거, 나의 선택으로 진행되는 삶이라도 때론 다른 이의 시선이나 가치관이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자라면서, 세상을 겪으면서 저절로 배우고 알게 된다. 스토너가 그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마지막까지 그 자신으로 살아가던 모습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겠지만 온전한 평화와 고요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겪은 것처럼 그의 몸은 피곤해지고 쇠약해지고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픈 거다. 보편적으로 보이는 그 삶에 눈물이 나는 거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살아갈 수 없는 많은 삶을 떠올리게 하니까.

 

그가 태어나서 그의 의지대로 했던 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자 마음먹었던 순간부터다. 그마저도 온전히 그의 마음 가볍게 계속되었던 건 아닌 듯하지만, 뭐 괜찮다. 그게 시작이었다고 보면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거니까.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에서도 그는 굳건했다. 모두가 입영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학문 곁에 있었다. 누군가 그를 음해하듯 자꾸 찔러대도 상관없었다. 가정이 위태로웠어도, 딸이 망가져가고 있어도 지켜보면 견뎠다. 늦게야 만난 사랑을 놓았을 때도 참아냈다. 그만의 방식으로 참고 견디고,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을 비췄다. 문득,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일이든 취미든, 연인과의 사랑이든, 자녀를 향한 맹목적 헌신이든. 살아가면서 무엇 하나쯤 자신을 지탱하는 게 있을 것 같다. 저마다 다른 선택과 눈으로 그걸 찾아낼 수도 있겠다. 스토너에게 그건 학문을 향한 열정, 문학으로 가는 길 아니었을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온갖 구린 냄새를 맡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티면서 걸어가게 하는 것. 그건 그가 평생에 있어서 처음 선택한 일이자 애정을 품었던 문학이었다. 그 순간에 그는 빛났고, 아름다웠다. 강의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그만이 문학과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 장면들에서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마치 환희가 그를 둘러싼 듯, 오직 그 순간만 존재하는 듯. 마지막 눈감는 순간까지 그를 이끌어 왔던 건 오직 그 한가지였다.

 

삶이 문학이 될 수 있다고, 문학이 삶을 구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학으로 어느 한 순간을 위로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을 온전하게 주관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토너의 삶의 여정을 그린 이 이야기를 보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든다. 일상의 보통날을 살아가기 바쁜 오늘, 문학의 한 페이지를 들추며 삶의 한 장면을 그리며 빠져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남들이 보기에 실패로 보이는 삶을 관조하며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읊조리는 스토너. 인생의 성공과 실패, 딱 두 가지의 길이 아니라 그냥 유유히 흘러가는 삶도 문학이 될 수 있음을 스토너를 통해 보여준다. 그저 한 남자의 인생이었다. 태어나고 자라 평범한 길을 걸으며 죽음에 이른 한 사람. 이런 삶이 문학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문학은 늘 비범한 사람이 주인공이었고, 그들의 인생은 높은 파도가 일렁이는 시간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스토너의 삶을 같이 걸어오면서 느꼈던 그 소소함, 참고 묵묵히 건너가는 길이, 마치 길 걷다 돌부리에 넘어져 까진 무릎을 털어내는 것 같았다. 말싸움에 지쳐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하며 무시하고 넘어가는 일들, 나를 괴롭히는 작은 공격에서 이겼다는 쾌감에도 인간적인 공감을 만든다.

 

뭔가 얻은 것 같은데, 성공한 것 같은데도 허전하고 고독한 시간은 멀어지지 않고 쓸쓸함을 부르곤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뒤돌아보니 삶의 끝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 밀려드는 외로움까지도 익숙하다. 그럴 때 발견하고 싶은 건 단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두고 내가 열정으로 품었던 것 단 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 평범함이 차곡차곡 쌓여 만든 인생이 특별해 보일 것 같다. 스토너에게 그 특별함을 부여했던 건 아마도 문학이었으리라. 그 순간이 그의 마지막이 되어버릴지라도, 그의 평범한 삶이 문학이 된 순간에 고독과 쓸쓸함, 외로움마저 그의 곁을 떠나갔을 것 같다. "세월이 정말이지, 날 듯이 흐르고 있어.(355페이지)"라고 말하는 그의 표현에서 결국 그가 종착역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 문학의 정점에 다다른 사람이 했던 말.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자신에게 계속 물으며 삶을 반추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와 다르지만 닮았고, 닮았지만 다른 그의 이야기를 금방 잊지는 못하겠다. 한 사람의 서사가, 그것도 너무 평범해서 익숙한 삶이 소설이 된 건, 우연이 아니었을 거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마지막 책이 보여준 건 책(문학)과 그의 인생이 운명이라는 정의였을지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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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일기예보를 보고 나갔다. 그런데도 나가자마자 비를 맞았다.

오늘 늦은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했잖아.

아침부터 온다고 안했잖아...

우산을 사기도 애매하고 맞고 다니자니 그것도 애매하고.

왜 항상, 그냥 나가면 비가 오고 우산 들고 나가면 비가 거의 안 오는 거임?

그러다가 고민하고 편의점에서 산 비닐 우산이 집에 몇 개나 있는지...

실내에 있을 거니까, 비 오는 거리는 조금만 걸어가면 되니까, 우산을 사지 말자, 라고 생각했는데...

 

퍼뜩,

검정 장우산을 하나 꼭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늘 쉽게 구매해지지 않아서 잊곤 했는데,

영화 <강남 1970>을 보면서 다시 검정 장우산이 생각났다.

아, 검정 장우산 아주 튼튼한 걸로 하나 마련해야겠어.

좀 묵직한 걸로, 우산 살이 튼튼한 걸로, 방수가 아주 잘 되는 걸로...

영화는 재미없었는데, 기억나는 한 장면은 이 님들이 죽은 누군가를 묻던 산.

그날 비가 엄청 내렸고, 모두 검정 슈트에, 검장 장우산을 다 쓰고 있었던 거지...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한 장면.

근데 또 너무 잘 어울려서 빠지면 서운해질 장면...

 

 

 

스토너를 읽고 있는데, 지금 한 50페이지 읽었나...

왜 이렇게 페이지가 안 넘어가지...

이 부분만 지나가면 술술 넘어가려나...

상당히 좋은 책이라는 입소문을 들었으나, 나에겐 아직...

그런데 책은 페이지수에 비해 가볍게 잘 만들어졌다.

들고 읽어도 손목에 부담이 덜 감.

 

 

 

 

아, 요즘 이거에 빠졌어. 힐러...

지창욱은 우리 7살 조카를 닮아서 자꾸 보게 되고, 연기도 잘한다.

스토리도 재밌다.

흘러가는 내용이야 뻔하지만, 그 뻔함을 계속 지켜보게 하는 게 드라마의 매력 아닐까.

다음 회가 기다려지게 하는 드라마 오랜만에 만났다.

힐러, 박봉수, 서정후...

 

 

 

 

 

<나가수3>에 하동균이 나온대. 꺄올~!!!!

티비에 얼굴 잘 비추지 않는데 의외네... 탈락하지 않으면 몇 회는 나올 거잖아.

무조건 첫방은 보겠어!!

 

 

 

 

 

 

이성과 감성이 새로운 표지로 나와서 궁금하군... 양장본이 아니어서 아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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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15-01-21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하동균의 팬으로서...이번 나가수3에 출연은 반갑지만...광탈하면 너무 슬플것 같아요. ㅠㅠ 제발...오래 살아 남아주길 바라면서 무릎끓고 볼판입니다.

구단씨 2015-01-22 14:46   좋아요 1 | URL
불후의 명곡에 하동균이 나왔을 때 엄청 집중해서 봤어요.
탈락 안 하고 졸업할 때까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금요일 밤 10시를 매주 기다릴 텐데요... ^^

오후즈음 2015-01-22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 13회를 한다고 하니 완전 기대되네요. 이수가 나가수한테 팽 당하는거 보니 물론 그도 잘못 했지만 참 그렇네요. 제작진들이 진득하지 못하고 팔랑귀 같고
 

도서정가제 이후로 책 구매하는 횟수나 금액은 줄었으나, 그래도 책은 계속 살 거임. 더 신중하고 더 읽고 싶은 책으로. (응? 그러지 않겠어?)
외국문학을 좀 읽고 싶어서 고전 몇 권 구입했는데, 그것도 차근차근 읽어주겠어. 한국문학 좋다고 그것만 먼저 눈에 들이니, 취향이 무서워지더라고. 외국문학이 너무 도톰하고 읽기 힘들고 어려워졌어.(뭐는 어렵지 않겠냐마는...) 그래서 다시 읽어보려고. (응? 넌 원래 게을렀는데 그게 가능하겠냐고? 히잉... 그래고 해볼 거임.)
적게 읽고 느리게 읽고 독서 기록하지 않았던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한 달에 10권쯤 기록으로 남겨야겠어.(한달에 10권 읽을 수나 있어?) 그냥 끄적끄적 몇줄이라도... (응? 원래 그런 거 성실하게 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해보겠다고.) 읽은 줄도 모르고 같은 책 두 번 구매하는 일은 이제 그만.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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