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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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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하셨습니까?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그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온순하고 진실 되며 믿음직스럽게 전달될 수 있는 게 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번 쓰면 지우기가 쉽지 않고, 지워도 흔적이 남으니 말 한마디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골라서 쓸 것 같다. 무슨 말을 할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뭘까,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식으로, 한 번에 한 마디를 쓰더라도 많은 고민이 된다는 거다. 그래서 더 진중하고 진실하게 전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실제로 내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럴 것 같거든...

 

오래전에, 지금처럼 팩스나 이메일, 휴대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에는, 편지가 가장 원활한 통신 수단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빨리빨리’를 외치는 이 시대에 우편으로 오가는 편지는 그렇게 효율적인 통신 수단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가끔 그때의 정서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가끔 있는 걸 보면, 편지는 할 말을 전하는 수단 그 이상의 어떤 의미와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게 전해지는 그 무엇이 편지글에 더 얹어져서 전달되는 거라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전화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그때,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았던 편지는 서로를 향한 훈훈한 마음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며칠에 걸려 오가는 편지 속에 상대의 건강을 염려하며 안부를 묻고, 힘든 인생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응원한다. 특히 이오덕은 권정생의 오래된 병을 걱정하며 약값을 부쳐주고, 그가 더위와 추위를 유독 심하게 앓을 때마다 근심한다. 교회의 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며 글 쓰는 삶을 놓지 않는 그의 열정에 육체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게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으로 서 있는 아동문학에 관한 내용이 오갈 때마다 ‘아, 이 두 사람은 정말이지 한국 아동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불편한 몸으로 시와 동화를 쓰고 평론을 쓰는 그들에게 좀 더 투명하고 안정된, 진심으로 이루어진 아동문학계가 형성되어야 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탄하게 되고 글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고 싶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게 오직 쓰는 일 한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닐 텐데, 아동문학을 둘러싼 사람들과 사회적 배경들이 그들이 가진 아동문학을 향한 애정에 자꾸 냉기를 퍼붓는 듯했다. 열심히 썼으나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고, 출판계와 작가들의 신뢰가 무너지기도 했고, 사람이 모여서 이룬 공간인지라 서로의 마음에 상처 내는 일도 있었을 테다. 그때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동문학이라고 해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게 된다.

 

아동문학이 문학으로서 대접을 못 받는 까닭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중에서 작가, 시인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아동문학의 정체성과 위기는 오직 우리 문학인들의 반성과 진지한 노력으로서만 타개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재미있게 읽히면서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써서 독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한편 문단과 사회에는 우리 아동문학을 옹호하고 그 존재를 과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5페이지 /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보낸 편지)

 

행인 건, 그런 위기가 한두 번 찾아온 것도 아닐 텐데 끝까지 그 애정을 놓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 된 두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빛나는 작품들 역시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겠고. 겨울의 추위에도 골덴바지에 고무신이면 충분하다는 권정생, 그런 권정생이 마음에 걸려 늘 걱정하는 이오덕. 열두 살의 나이 차가 무색하게 소박하게 이어가는 두 사람의 우정은 진심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시쳇말로 가족끼리도 마음 상하면 돌아서서 남이 되기 일쑤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갖고 30년의 우정을 지속하기란 진심을 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스스럼없이 보내는 약값이 그렇고, 바쁜 와중에 굳이 서신을 주고받는 시간을 할애하는 게 정성스럽고, 서로의 글에 전하는 애정과 조언이 상대의 발전을 기원하는 것만 같아 애틋하다. 아마 글 쓰는 일에서도 서로에게 많은 영향이 미쳤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 꾸준히 관심 두고 써내려간 아동문학이 발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순수하고 정이 담긴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얘기하고 싶은 거라고...

 

몸으로 생활하며 쓴 아이들 것과, 어쩔 수 없이 머리로 만들어진 노래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어른이 아이들을 위한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훌륭한 동요 동시인데도 아이들은 그렇게 감동스럽게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되는 고민일 것입니다. (358페이지 /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일상과 꿈에 관한 고민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게, 두 사람에게 주어진 행운이 아닐까 싶다. 평생을 두고 이렇게 훌훌 털어내듯,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고통의 순간까지 말할 수 있는 사이가 그리 쉽게 이루어질까.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어떤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야 굳어지는 관계인지 알게 하는 편지였다.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느끼는 설렘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장면에 감동하며 수다스러워지는, 아끼는 책도 선뜻 빌려줄 수 있는 사이. (솔직히 나는 책 안 빌려주는 사람이라, 책 빌려주는 관계는 어지간한 믿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 살짝 부러워진다. ^^ 특히 이오덕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며 쓴 권정생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모두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라며 무던히도 애썼다. 출판이 미뤄질 때마다 안타까워했고, 그의 글을 이곳저곳에 기고하기를 바라며 전달했다. 아마 이오덕의 이런 노력이 권정생의 글쓰기를 더욱 부채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느 쪽으로 생각해보나 여러 가지로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서로의 발전을 향해 가는 길이었음은 틀림없다.

 

 

1973년 이오덕과 권정생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2003년 이오덕이 하늘로 가기까지 3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읽는 이에게 소박하고 담백하게 다가온다. 편지나 일기가 지극히 사적인 내용인데도, 이들의 편지는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는 오늘 하루, 어느 순간을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익숙하게 공감되는 글이다. 편하게 들리면서도 삶의 한순간을 배우는 묵직한 분위기로 말이다.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라고 묻는 안부가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는 일상의 인사로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과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인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에게나 밥은 먹었느냐는 안부가 금방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이 두 사람 사이의 정과 믿음이 단단함을 글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당연하게 이런 편지도 주고받고, 오늘날 이렇게 책으로 공개되기까지 이르렀겠지, 싶다. 서로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들어가며 배우는 세상의 모습, 한국 아동문학의 변천사까지 한눈에 보게 하는 내용이 좋았다. 이오덕과 권정생이 서로에게 전하는 애정과 위로가 그대로 전해져 진정한 교류와 교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따뜻한 글이다.

 

 

덧)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 『강아지 똥』과 『몽실 언니』하면 권정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요즘이다. 이 편지글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어 그런지 이 작품들이 더 솔직하면서도 아프게 보이기도 한다. ‘동화’라는 단어에 내가 가진 선입견 같은, 환상적인 판타지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여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한 시절의 아픔, 혹은 누군가의 고통이 묻어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면서도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서 아름다웠다.

앞으로는 제 동화도, 그리고 행동도, 좀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가슴에 맺힌 것, 실컷 풀어 볼 수 있는 작품 쓰고 싶습니다. 선생님, 부디 염려 마세요. 언젠가 모든 오해가 풀릴 날이 오겠지요. 선생님이 지금 걱정하시는 사건도 조금 짐작이 갑니다만, 저는 별로 걱정 않고 있습니다. (121페이지 / 권정생이 이오덕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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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리를 잘한다, 고 생각했다. 여기서 ‘잘’의 의미는 눈앞에서 없애버린다는 뜻이다. 청소하는 걸 워낙 싫어해서 그런지 눈앞에 뭐 있는 꼴을 못 본다. 내가 정리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버리거나 쌓아두거나. 쌓아놓는 것도 위태로울 수 있으니(특히 책), 적당한 높이로 쌓아두다가, 한 번씩 꺼내 확인하고 버리거나 하는 정도. 청소도 너무 싫으니 최소한으로 하는데, 그것도 청소기 돌리기 귀찮아 아주 간략한 방법으로, 몸을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알라딘에서 책 구매하면 따라오는 스티커형 영수증을 떼어서 먼지 찍찍이로 쓴다. 이건 집에 넘쳐난다. 함부로 막 쓴다. 찍찍 소리 내면서 먼지나 머리카락을 다 떼어내고, 천 원에 100장짜리 물티슈를 사서 막 뽑아서 닦는다. 물론 여기서 정리를 안 하니 눈에 보이는 곳만 닦는다는 게 함정이다. 제대로 된 청소가 안 되는 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한번 뒤집어엎기 전에는 제대로 된 청소라는 게 불가능한 나이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이 정도면 숨 쉬고 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

 

어질러 놓는 게 싫다고 말하면 혹자는 내가 엄청나게 깔끔하고 항상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던데(주변에서 그렇게 알고 있더라), 절대 그렇지 않다. 오백 권도 안 되는 책이 몇 년 동안 정리가 안 되어 책 있는 방에는 잘 안 들어간다. 가끔 필요한 책 꺼내러, 새로 사들인 책 던져놓으러, 뭔가 꽂히면 다 팔아버리려고 들어가는 게 전부다. 그 정도면 왜 청소하거나 정리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한소리 할 만한데, 적어도 책 있는 방에 한해서는 그리 뭐라 하지 않는다. 꾸준히 책을 사는데도 늘 책의 양은 그대로라 잔소리할 명분이 없어서인 듯하다(이건 내 생각). 분명 매일같이 택배 기사님이 책 던져주고 가시는데, 책이 새끼 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지난번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한번 읽고 다시 안 읽는 책은 팔거나 지인에게 나눔 하거나 기증하거나 하니까. 그리고 이 이상으로 책을 늘리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것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얼추 지켜지는 것 같기도 하고. 늘 게으른 습관처럼 많이 읽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요즘엔 읽고 싶어졌다고 막 책 사기도 좀 그렇고... 암튼, 책 정리에 관해서도 청소 안 하는 나의 습관이 적용되니까, 아주 조심해야 함.

 

그에 반해 나는 엄마가 정리 안 하는 걸 가끔 뭐라고 하는데, 그건 엄마가 정리 안 한 게 눈에 그대로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안 쓰는 그릇은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두든지 버리든지 하면 되는데,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면서 굳이 버리지 않는다는 것. 부피가 큰 냄비 같은 경우 더 눈에 띄는데, 내 살림 아니니까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겠고... 아예 주방에 안 들어가는 게 상책. 그러면 또 늙은 엄마 밥 시켜 먹는다고 또 한 소리. 아, 이걸 우째...

 

특히 엄마의 옷 얘기는 하다 보면 끝이 없는데, 매일 입을 옷이 없다면서(이건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말 아닌감? 옷을 사도 입을 옷이 없어. ㅎㅎ), 입을 거 하나 사야겠다면서, 서랍에 옷이 한 가득이다. 해가 바뀌었으니,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 하나 산다고 세상 무너지지 않을 터이니, 뭐가 어떻겠느냐마는, 문제는 서랍의 옷을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놔둬, 입을 거야.’ 하면서 버리지 않은 옷이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나는, 새로 옷을 사는 양만큼 버리라고 했다. 어차피 좁은 집이기도 하지만, 한 번 안 입은 옷은 곧! 입을 일이 없다는 거다. 엄마한테 항상 부르짖는 게, 작년에 안 입고 올해 안 입은 옷은 내년에도 안 입는다는 것. 그러니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 버리라는 것!!!! 입지도 않은 옷에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서 입을 거라고 끌어안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잔소리 끝판왕을 흉내 내는 나지만, 그래도 옷 주인이 안 버리는 것을 어쩌랴. 맘대로 하시라면서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

 

 

주말 동안, 지난겨울부터 정리하려던 것을 이제야 마음먹고 정리하게 되었다. 지난주에 아름다운 가게 기증 접수 신청해놓고, 곧 수거하기 오신다기에 미리 다 정리해놓으려고. 사실 내 성격대로 했으면 다 끌어내 놓고 버리면 끝인 것을, 엄마는 또 그 물건들을 꺼내놓고 한참을 망설이신다. 이걸 써? 말어? 버려? 말어? 누구 줄 사람 없나? 이건 필요할 것 같은데? 이건 다시 입을 것 같은데? 아, 고민은 언제 끝나나... 엄마가 망설이는 사이 나는 다 끌어다가 내놓았다. 조카가 타던 킥보드, 롤러블레이드, 안 듣는 음반, 옷, 신발, 가방 등등. 특히 이번에 물건 꺼내다가 놀란 건, 아니 우리 집에 한복이 열 벌도 넘게 있더라. 그것도 엄마 한복은 비싼 것만 남아 있더라고. 그 와중에 엄마는 이 한복 비싸게 했는데, 언제 입을 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도로 원래의 박스에 넣으려고 하기에 얼른 꺼내서 내보낼 박스에 넣었다. “엄마, 요즘엔 이것보다 예쁜 한복 더 많아. 앞으로 한복 입을 일이 몇 번이나 더 있다고? 그리고 엄마 살쪄서 이거 맞지도 않잖아?!” 와아, 나의 마지막 말에서 엄마의 입이 닫힌다. 정말 모든 이유를 들어서도 남겨둘 수 있겠지만, 엄마는 몇 년 사이에 살이 쪄서 예전 한복이 안 맞는다. 그 옷에 맞추기 위한 만큼 다시 살이 빠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걸 본인도 인정하는 순간 그 한복들은, 예전 옷들은 기증할 박스에 풍덩 담겼다. 아이고, 개운해라.

 

특히 어디서 숨은 그릇이며 냄비들이 그렇게 쏟아져 나오는지,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쓰던 게 아니고 새것들. 커피잔 세트 여러 개, 그릇 세트 여러 개, 냄비 세트 여러 개... 나도 처음 보던 것들이 구석구석에서 막 쏟아져 나왔다. 엄마한테 이거 다 언제 샀던 거냐고 물었더니, 언제인지는 몰라도 본인이 산 게 맞댄다. 세상에... 그동안 짝짝이 그릇 사용할 게 아니라 이거 다 꺼내어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지금은 쓰지도 않을 그릇들이기에 그것도 미련 없이 나눔 박스에 넣었다. 아름다운 가게 직원 둘이 수거하러 왔는데, 우리가 꺼내놓은 물건들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라. 가지고 온 차량이 1톤 탑차였는데, 그 안에 3분의 2 정도 채워졌다.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원래 우리 다음으로 수거하러 갈 곳이 있었는데, 센터에 들어가서 이 물건들 내려놓고 다시 나와야겠다고, 정말 엄청나다고 하시더라고. 그러면서 기증 물품은 자기네가 정리하고 수량 및 금액 확인해서 연락 주겠다고 하더라. 원래 수거할 때 박스 기준으로 몇 개라고 서로 확인하고 가져가는데, 우리한테 수거한 물품의 양이 워낙 많아서 박스로 정리가 안 되기에 그렇다고 말하더라고. 내가 봐도 많긴 많더라. 그런데 며칠 지나면 또 정리하고 버릴 게 나올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은 뭐란 말이야...

 

엄마의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가 조금(아주 조금) 휑하다. 속이 다 후련하다면서 옆에서 자꾸 건드렸더니 엄마가 팩~! 소리를 지른다. 우리에게 쓸모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게 재활용된다는 건 좋은 일인데, 엄마의 물건이 나간 자리가 마음까지 휑하게 하나보다. 괜한 심통에 나한테 뭐라 그러네. 그래도 나는 책 때문에 엄마한테 욕먹지는 않았지롱~(미리 땡스기브에 기증 신청해서 끝내버렸다는.)

 

 

문득, 이번에 며칠 동안 정리하면서 든 생각은, 이렇게 한꺼번에 버리고 말고 할 게 아니라, 평소에 정리만 잘해도 오늘 같은 중노동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거다. 한꺼번에 정리하고 치우고 버리고 하려니까 몸이 고생이다. (이번에 몽땅 버린 물건 중에 내 것은 거의 없다는 게 쫌 억울하다. 엄마 거니까 엄마 혼자 다 해야 하는 거 아녀?! 엄마가 등짝을 후려치는 소리가 막 들리긴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파스까지 붙였는데, 정말이지 정리 잘하는 달인이 되고 싶은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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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fair7 2021-03-23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릇 세트를 왜 버린 거에요 ? 쓰던 그릇을 처분하고 ㅡ 새 그릇 세트를 쓰면 되는데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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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가 10년만 젊었어도 그를 사랑했을 것 같다. (아직 10년 이상의 나이 차이는 부담스러워서... ㅡ.ㅡ;;;) 이렇게 까칠하고 툴툴거리는 원칙주의자,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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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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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힘들지만 이런 것도 참 좋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잠시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 살아가는 건가 보라며 종종 이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치기도 했다. 하루 일정으로 어디 다녀올 수 있게 작은 캐리어도 하나 사자고 엄마에게 말하기도 했다. 미뤄두었던 기차 여행도 가보자고, 조금 서늘해지면 산이 있는 곳에도 가자고도 말했다. 돌아다니기를 싫어하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지만,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여전히 힘들고, 깔끔하지 않은 감정들이 남아있고, 풀리지 않는 일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지만, 괜찮을 것도 같아서 어떤 기대가 있었다. 부담스럽고 무거운 짐 같은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란 경험도 했고, 이렇게 어울리는 소소함이 행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데, 뭐 별것 있겠나 싶어 가지는 평범함이 감사했다. 그런데 늘 그렇듯 그게 오래가지 않더라. 잠시나마 느꼈던 행복이 불쾌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방해꾼이 나타나고, 정신을 못 차리게 뺑뺑이 돌리는 것처럼 힘들게 하더라. 여기저기 통화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어차피 해결 안 될 거 손 놓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문제는 문제대로 늘어져 있고, 해결을 못 하니 머릿속은 폭발할 것 같고. 잠깐이나마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던 순간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럼 그렇지. 기차는 뭐고, 좋다고 말하는 건 또 뭐람. 내 몫이 아니었던 거지.

 

그래서였나. 저자의 책 제목을 보자마자 삐딱선을 탔다. 뭐가 그리 재밌느냐고, 시선을 가로막는 거 하나 없이 살고 있느냐고 딴죽 걸고 싶었다. 당신이 재밌게 사는 이유 따위 듣고 싶지 않다고... 그런데 몰랐던 사실 하나 때문에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저자의 글을 몇 번 만났음에도, 나는 저자가 불치병을 앓고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유명한 의사, 책을 몇 권 냈고 좋은 얘길 많이 해주는 사람 정도로 알고 있었다. 저자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지 15년. 내가 느낀 이 병은 몸도 불편하겠지만, 정신적으로 더 큰 아픔을 겪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병이었다. 저자에게 이런 아픔이 있다고 해서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불편하게 살아가면서도 사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여유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아서 놀랐던 거다. 그러니 읽어볼 수밖에, 15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으며 깨달은 것을 얘기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수밖에...

 

사람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는 것도 달라진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저자가 말한다. 자신에게 찾아올 거라 짐작하지 못했던 병, 이제 막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던 차에 이 절망과 억울함을 어떻게 할 줄 몰라 멍했던 한 달. 저자의 머릿속을 치고 나왔던 가능성과 긍정이 새로운 시간과 도전을 만들었다. 바쁘게 살아냈던 시간이 조금은 후회되지만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에 삶의 의욕을 놓지 않는다. 천천히 느리게 가지만 해내는 일들이 있어서 기쁘고, 자신의 역할을 아직 놓지 않으며 충실한 시간을 살아온 그녀.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인생의 지혜들이 육체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재밌게 사는 법을 알게 한다. 소중하고 감사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보게 한 거다. 아직 못 다한 것들을 버킷 리스트에 적어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웃음이 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자녀에게 삶의 구석구석에 대해 말하며 조언한다. 더 멋지게,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하여. 오랜만에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들에게는 더 솔직하게 말하며 마음을 터놓고, 자신에게 의지하는 환자들에게는 완벽하지 않은 삶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아가게 한다. 한때 저자가 살아왔던 방식이 놓쳤던 것을 알기에 더 진중하고 솔직한 상담이 가능한 게 아닐까.

 

마음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아서 겪는 고통이 큰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되는 것들 때문에 괴롭고,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치고 나올 때 당황스럽고, 여전히 제자리에서 풀 수 없는 것들이 힘들게 한다고 푸념하게 되면서 걱정은 산처럼 쌓아올리게 되는 일상. 저자의 메시지는 이런 모든 순간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하지만, 미처 마음을 다 열지 못한 나는 아직 저자의 말에 온전히 빠져들지 못했다.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메시지에 쉽게 긍정의 마음으로 돌아설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 옆에 누군가 있다는 행운을 감사하고, 내가 받은 상처의 정의를 새롭게 보게 하고, 완벽하지 않아서 불안한 것들을 경고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많은 것들 조언하지만 그걸 몰라서 나아가지 못했던 게 아니지 않은가. 다만,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에서 그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어보고 싶은 거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잖아. 잘 될 지도 모르잖아...

 

의무가 아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삶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에 잠시 빠져들었다. 민감한 시기에 상실을 경험한 그녀의 성장 과정도, 당연하게 자신의 몫이라 생각했던 직업의 세계에서도, 그리고 지금 반갑지 않은 병과 싸우고 있는 순간에도, 저자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단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는 조언으로, 가보지 않은 인생에 대해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가 보다. 정말 그리 되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말에 속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고 싶다.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지 못했으니 다른 방법에 눈을 돌려봐야 하지 않겠나. 내일 또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살게 되더라도, 그게 내일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지.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면, 해봐야지.

 

쉽게 충고하지 않아서 좋은 글이다. 함부로 단정하며 가르치려들지 않아서 미워할 수 없는 말투다. 말 그대로 누군가의 지혜를 엿본 기분이다. 지금 내 마음에 가득한 부정의 말들을 누가 좀 녹여줬으면 싶을 때 만난, 잔잔한 열기 같았다. 다행이다. 느려도, 언젠가는 다 녹겠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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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온대.

간접 영향권이라지만, 벌써 새벽부터 바람도 심하게 불고, 후텁지근 하고,

비가 내릴 기운으로 하늘은 잔뜩 흐리고...

 

 

유난히 구급차가 많이 들어오고 교통사고 환자는 왜이렇게 많은지...

10분 사이에 중태에 빠진 환자와 사망한 환자를 봤다.

연명호흡을 하는 사람...

지혈할 상황도 안 되게, 피는 뚝뚝, 숨이 멈춘 사람...

그 옆에서 오열하는 가족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교감하고 싶은데,

나에겐 아주 먼 일, 불가능한 일, 바라는 것조차 사치가 되는 일...

 

 

응급실에서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나오는데, 햇살은 왜 이리도 맑아?

괜히 짜증나고 답답해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더라.

사는 게 뭔데?

 

이제 조금, 숨 좀 쉬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마다

왜 자꾸 태클 걸어오는 것들이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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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5-05-11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급실이 응급환자들에게는 위급 사항이긴 하지만,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힘듦의 장소일수도 있군요. 어쨋든 생명을 다루는 곳이니 힘내시고 잘 살펴 주십시오.

2015-05-12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