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로 난 길로 저녁마다 산책을 하는데, 기찻길이 보인다. 30분 정도 걷다 보면 지나는 기차를 몇 대 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랑 둘이서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기차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다.”라고. 질리도록 했던 말... 그냥 역에 가서 기차를 타면 되는 일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일까. 막상 기차를 타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건 실행에 옮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그냥 습관처럼 하는 말이라는 것을, 엄마도 나도 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아버지 때문에 어디 가는 일이 불가능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신데도 어딘가로 가는 일이 쉽지 않더라. 오늘은 이런 일로 내일은 저런 일로, 며칠 동안 집을 비우고 떠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걸 새삼 느낄 즈음. 드디어 기차를 탔다. 집을 떠나 어딘가로 향했다.

 

10월 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기로 말만 한 상태였는데도 설렜다. 기차표 예약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캐리어를 꺼내고, 소지품 몇 개와 엄마와 내가 갈아입을 옷 한 벌씩만 넣고 짐을 다 쌌다. 동생과 통화를 하고 하루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몇 년 동안 집을 비우지 못해 힘들었을 엄마와 나에게, 제부가 어렵게 예약한 숙소도 있으니 설악산에 가자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 때문에 예약한 일정이라고 했다. 그러니 꼭 오셔야 한다고. 이렇게 같이 어딘가로 가자고 얘기한 게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거절하곤 했는데, 예전 같으면 너희들끼리 다녀오라고 말했을 엄마가 별 고민도 없이 같이 가자고 하더라. 그럴 때 주저하면 안 된다. 엄마 마음 변하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 한다. 바로 기차표를 예약하고 짐을 싸고, 말을 번복하지 말라고 엄마한테 으름장을 놓고. 별다른 준비도 없이 그렇게 집을 떠났다.

 

 

여기서 서울까지는 고속열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다. 노원에 사는 동생이 잠실에 있는 언니한테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보다 빠른 시간이다.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는 곳인데, 매번 한번 오라고 하는 제부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며 거절만 했는데, 이렇게 쉬운 일이었다는 게 조금 씁쓸했다. 사실, 그렇게 다녀온 곳에서도 별거는 없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 사람들, 먹을 것 같은 게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태풍 콩레이가 지나간 후여서 바닷바람은 세고 파도도 높고 너무 추웠다. 아직은 이른 시기였던 터라 설악산의 단풍도 제대로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좋았다. 엄마와 함께여서 더 좋았다.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아프면서 오래 걷지 못하는 엄마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런데도 엄마는 그 먼 거리를 걸어 올라가고, 힘들다고 밤마다 코를 골면서 주무시는데도 일정에 다 맞춰 움직여줬다. 그렇게 힘들면서도 재미있다고, 이렇게 데리고 나와 줘서 자식들한테 고맙다는 말도 하셨다. 노인네 데리고 다니는 거 쉽지 않은데 애썼다고.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또 오고 싶다고... 또 오면 되는 거지!!! 여동생과 내가 동시에 한 대답에 다 같이 웃고 말았는데, 속으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에게 이런 말 처음 들었다. 그동안 사는 게 팍팍해서, 크고 작게 일어나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가족을 이끌어온 엄마의 고달픔이, 막상 어디 가자고 하면 귀찮다고 거절하던 엄마가 어딘가로 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대로 들려서. 이제라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싶은데 엄마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그래서 요즘 부모와 함께 떠난 여행, 특히 엄마와 함께 다니는 이야기를 찾아서 보고 있다. 작년에는 <엄마의 골목> 때문에 참 많이 울컥했는데, 이번에는 조금 발랄한 느낌의 엄마와의 여행책들을 만났다.

 

작가 태원준이 엄마와 떠난 여행이 마냥 신기했다.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한 해외여행도 아닌 듯했다. 여행비용이 넉넉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편안하고 고민할 게 적은 패키지여행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조건에 엄마가 함께했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두 사람은 해냈다. 막상 떠나고 보니 어떻게든 나아가게 되어 있더라. 아들과 엄마. 그 조합이 이뤄낸 여행이 참 발랄해서 보는 이가 다 즐거웠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굉장히 신난 놀이를 하는 기분이 들더라. 아, 부러워라. 예순 살과 서른 살의 엄마와 아들이 한 이 여행은, 힘들면서도 놓치기 아까운 하루하루를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삶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그러니 언제 또 올지 모를 이 여행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오자는 바람처럼 보였다. 엄마도 아들도, 열심히 걷고 많은 것을 보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겪고... 뭉클했다. 커다란 배낭 하나씩 메고 서 있는 모자의 뒷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부럽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너도 엄마랑 가면 되잖아?!’라고 말하겠지만, 이 모자의 여행이 부러운 건 그렇게 떠나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정부터 비용까지, 떠나있는 동안 비워둘 곳의 정리까지, 크고 작은 일들이 발목을 잡곤 했다. 작가는 엄마의 환갑잔치 대신 그 비용으로 엄마와의 여행을 택했고, 작가의 엄마 역시 아들의 제안에 응해주었다. 한국에서의 일상을 정리해야 할 것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같이 여행길에 오르면 감정 상할 일이 많을 텐데, 그걸 아들과 엄마가 한다는 게 무슨 기적이라도 보는 듯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300일이라니... 가능할까 싶은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야 만 이 모자가 부럽지 않을 수가 있나?

 

엄마는 일상의 대부분이 걱정투성이다. 이제 11월이 시작인데, 엄마는 벌써 김장할 걱정을 한다. 기름값이 많이 올랐는데,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 여기 시골에서의 겨울을 지낼 걱정을 한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엄마는 감기 없이 올겨울을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을 한다.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식들이 별문제 없이 하루하루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기도한다. 마치 그게 자신의 걱정과 기도로 다 해결될 것처럼 말이다. 10월에는 한 달 사이에 세 번의 장례식을 다녀오면서, 언제 닥칠지 모를 자기 죽음도 걱정한다. 며칠 전 누군가의 장례식에 다녀온 어느 날, 오래 살고 싶다고 했다. 건강하게 잘 지내면서, 또 어딘가로 놀러 가고 싶다고도 했다. 엄마에게 그런 말을 처음 들었다. 지난번의 짧은 여행이 좋으셨나 보다. 그러면서, 어딘가를 다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건강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듯하다. 두 다리가 건강해야 여기저기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볼 것이고, 정신이 건강해야 보고 듣는 많은 것을 즐기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그건 누구보다 우리가 바라는 일인데 말이다. 엄마가 건강하게 지내면서 우리와 지금처럼 스스럼없이 얘기도 하고, 싸우고, 같이 다니는 일상을 계속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엄마가 없으면 할 수 없으니까, 의미가 없으니까.

 

짧았던 가을 여행을 기억하며 다시 겨울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 어디로 갈지 언제 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생각만 해도 좋다. 엄마 앞에 닥친 가장 급한 일은 김장일 텐데, 김장이 끝나고 가야겠지? 명절이 돌아오면 힘들다고 하실 테니까 명절 기간도 피해야겠지? 겨울이니까 지난번보다 짐은 많아지겠지? 캐리어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으니까 하나 더 사야겠다. 혹시라도 엄마가 망설이면 조금 더 귀찮게 졸라봐야지. 달달 볶이다 보면 두 손을 들고 가자고 하겠지...

 

집을 나서는 게 문제이지, 막상 나서고 나면 그다음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게 되어 있다. 추우면 가방 안에서 패딩을 꺼내 입고, 다리가 아프면 조금 쉬었다 가고,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뭐든 먹으면 될 것이고. 한 가지 걱정은 체력이다. 유독 겨울 지내기를 힘들어하는 엄마가 잘 견딜 수 있기를... 나야 엄마보다 젊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게 익숙해서 덜 힘들겠지만, 허리와 무릎이 안 좋은 엄마가 오랜 시간 걷기에는 무리가 생기는 게 걱정이 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가 될지 몰라서 놓치는 게 더 후회될 것 같다. 조금은 덜 춥고, 덜 힘들 곳. 겨울을 즐길 수 있지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곳,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같이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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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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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어떤 날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들이 살아온 어떤 날 중의 하루를 꺼내어 들려주는 것만 같다. 지나간 시간이지만 기억에서 지워지지는 않고, 돌이킬 수 없어서 그렇게 끌어안고 사는 기억을 한 번쯤은 꺼내고 싶은 날. 이들에게 그런 날들의 숨소리가 건너온다. 우리 삶을 두르고 있는 일상의 굴레를 이렇게 슬쩍 열어놓는다.

 

「에트르」의 서른 살 ‘나’는 백화점 베이커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연말의 매장은 붐빈다. 밥 한 숟가락 제대로 넘길 시간이 없는 일상에서 부담은 늘어난다. 집주인이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다. 이사를 결심하고 12월 31일 집을 보러 간다. 연말이고 누구나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 ‘나’는 집을 보러 갔지만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새로 이사하려고 집을 보러 간 동네도 지금 사는 동네와 다르지 않다. 오히려 너무 닮아서 놀랄 정도다. 이곳(지금 사는 동네)과 저곳(집을 보러 갔던 동네)이 다른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동시에 밀려드는 건, 월세나 보증금의 문제보다는 그저 ‘나’의 삶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여전히 무겁고 버겁고 힘들다.

 

현실적으로는 대출이 불가능하고 더 벌 수도 없으니까 쓰는 걸 줄여야 했다. 그동안 잠도 줄이고 게으름 피우는 시간도 줄이고 말도 줄이고 꿈과 기대와 감정까지 줄이며 살았는데 여전히 뭔가를 더 줄여야만 했다. (12페이지, 「에트르」)

 

사는 건 왜 이리 힘들까. 이십 대의 치기 어린 마음이 무모해서 힘든 걸까? 대책 없이 서울로 상경해서 시작한 청춘이어서 그런 걸까? 그럼 이십 대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이제 곧 서른을 넘어서는 주인공이 보내는 지금이 그렇게 아프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미 알아버렸지 않은가. 그건 이십 대여서가 아니라 청춘이어서가 아니라, 삶이 고단한 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환경 때문이라는 것을. 사람을 알아가고 인생을 더 배운다고 해서 달라질 거로 믿고 오늘을 버틴다는 것을. 다른 단편 속 주인공들 삶도 비슷하다. 「뒷모습의 발견」의 아내는 갑자기 사라진 남편 때문에 남편의 회사 생활과 동료들을 만난다. 그녀가 알던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본다. 1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남편을 모른다. 그가 스스로 사라진 건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을 생각하면 혼란스러운 것뿐이다. 「이후의 삶」의 남자는 이혼 후 임시 거처로 찜질방을 택한다. 곧 나갈 거지만 그곳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익숙해지고 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으로부터 죽음의 이야기를 듣는다. 돈이 많아도 외롭다는 말은 남자에게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찜질방 남자의 말이 틀린 것도 없다. 죽음 이후의 모습조차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을. 혼자 죽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제 낯선 일도 아닐 것이기에 말이다.

 

어느 날 자기 삶이 어떤지 돌이켜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변해가네」의 주인공 ‘나’는 그날 오래전 인생을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요양원에 들여보내는 것과 딸이 산통이 시작되는 건 동시에 이루어졌다. 마음이 급했다. 엄마를 안전하게 요양원에 인계해야 했고, 첫 출산을 하는 딸에게도 가봐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지나간 시간이 떠오른다. 현재의 그녀가 사는 모습까지 지나온 시간, 그래서 지금 행복한지 스스로 묻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그래, 이 정도면 나 지금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을까? 이와 반대의 느낌을 주는 단편이 「개의 나날」이었는데, 주인공 ‘나’는 성매매 알선하는 일을 한다. 거구의 몸으로 먹는 것을 일삼고 있다.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그는 어떤 꿈을 상상한다. 새아버지가 될 뻔한 남자의 죽음, 아주 오래전 잠깐 인연이었던 남자의 죽음을 왜 자기에게 알리는 건가 싶지만 그가 남긴 걸 찾아가라는 말에 유산을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주인공 ‘나’는 혹시 돈을 생각했던 건 아닐까? 지금 그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돈은 아니었지만 죽은 이가 남긴 건 그의 삶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물론 내 생각에는 그렇다. 죽은 이가 남긴 봉투에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가 성매매 업소의 문 앞을 지키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줄 알았다. 서성이던 개에게 다시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그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려서다. 하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았고, 멀어져가는 개를 쳐다볼 뿐이다. 어쩌면 그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선뜻 그 말을 품지는 못한다. 그 말이 의미를 담지 못해서다. 현재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안도할 수 없어서다. 허기진 그 마음을 채우려 계속 먹고 또 먹었던 것처럼 그의 비어있는 속을 채워줄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다. 누구라도 그걸 쉽게, 금방 알 수 있을까? 알지 못해서 현재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각 단편 주인공들의 나이대가 다양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혹시 내일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바람, 노력으로 오늘을 채우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이 너무 팍팍하다. 피하고 싶은 위기는 언제나 잘도 찾아왔다. 때로는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르지 않은 건 여전히 존재한다. 불안한 삶. 나름 오늘을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남는 게 없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너무 익숙하다. 지금 여기, 우리 삶과 다를 게 없는 그대로였다. 현실 속 우리 모습 그대로를 담고 있다. 미래를 꿈꾸기도 하지만, 지금 눈앞의 현실이 암담해서 오늘을 살아내기에 급급한 모습. 그렇다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또 꿈을 꾸고. 그래서 무언가를 품어가면서 그 마음 내려놓지 않는다. 떨어트려서 망가졌지만 다시 주워서 품에 안아버린 케이크처럼, 떠나지 못하는 삶을 대신 떠나가라고 개에게 말하는 것처럼, 불행을 알리는 소식이 올지도 모르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이상하게 웃던 엄마의 표정을 떠올리면서. 케이크는 다시 사면 되고,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언젠가 자기가 될지도 모르는, 이상하지만 엄마의 웃는 모습은 아직 볼 수 있는...

 

열차가 삶의 한 시기를 지나 간이역에 멈춰 설 때, 내리지 못한 채 네모난 칸에 실려 덜컹거리는 여정을 이어갈 때마다 반대편의 삶과 새로운 바람이 불던 창 밖에 대해 생각했다. (172~173페이지, 「변해가네」)

 

그저 가볍게, 삶의 한 부분을 기억에서 꺼냈다고만 하기에는 무거운 이야기들이었다. 현실 속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아서 공감하지만, 역시 우울하고 서글픈.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는 게 우리 모두의 운명인 것처럼 여겨져서 씁쓸했지만, 또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받아들이게 된다. 내일 또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펼쳐진다면 그렇게 또 살아가고, 또 그날과 이별하면서 살아가겠지. 마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던 소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살아가는 보편적이고 평범하던 삶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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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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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상력이라니. 강지영이라는 작가가 원래 이런 글을 썼나? 모르겠다. 다른 작품을 가지고 있지만 읽지는 않았으니, 이 작품으로 작가 강지영을 처음 만났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을 만난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의 소설이 작가 강지영의 색깔인 것만 같다. 강렬하면서도 공포였고, 이런 공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되는 장면들 속의 사람들이 저절로 그려진다. 마치 오랫동안 그런 일상을 영위한 사람들의 익숙함. 천연덕스럽게 공포를 소화하는 듯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알게 된, 기억에서 희미해진 과거의 사건이 벌이 되어 돌아온 표제작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한편의 짧은 미스터리였다. 개에게 물린 ‘나’는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개 주인의 말을 듣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놀라웠고, ‘나’가 잊었던 시간을 불러온다. 그래, 그때 그랬었지. 하지만 그때 일어난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동안 잊었던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표제작과 다 비슷하다. 「눈물」이나 「스틸레토」처럼 판타지 같이 흐르기도 하다가, 「있던 자리」처럼 답답한 현실에 울부짖다가...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인간이 저지르고 있으니, 어디 다른 세상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디에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일들에 누군가의 욕심은 하늘을 뚫고, 그런 욕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각 단편의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가진 참혹한 현실이 결말로 드러난다. 하아, 이런 삶에서 무엇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그런 비밀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그들의 의지가 놀랍기도 하면서...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즐기거나 끝장을 낸다. 「사향나무 로맨스」의 노파에게 젊은 청년들이 옆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아이러니했는데, 노파의 몸이 점점 나무가 되어 가는데도 사라지지 않은 사향나무 향기는 그녀만이 가질 수 매력을 선사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놓아버려야 할 순간일지도 모를 때, 오히려 비밀은 향기는 낸다.

 

각 단편 모두 그들이 품은 비밀을 말하지만, 그 비밀은 의외의 결말로 독자를 충격에 빠뜨린다. 가장 충격적이고 아팠던 결말은 「눈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3개였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마에 자리한 작은 눈 하나에서, 눈물이 흐를 때마다 특이한 보석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소녀의 눈물을 쥐어짜면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부를 축적한다. 소녀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소녀의 눈에서 나오는 보석의 이익금을 분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녀에게 눈물을 얻어내려고 감금하고 폭행한다. 소녀가 한번 눈물을 흘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부자가 된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소녀를 탈출시키고, 소녀는 기자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자가 마치 소녀를 구해준 은인 같았는데...

 

「눈물」의 소녀가 말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이 단편에서 보여준 결말은 그 누구의 침묵도 침묵이 아니었다는 거다. 기자와 함께 떠난 소녀가 새로 만난 세상에 적응하는 분투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던 나의 예상은 한참을 빗나갔다. 소녀는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자기의 고통을 끝내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다. 비정한 세계를 직접 단죄했다.

 

인간은 착한가? 아니면, 인간은 악한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인간은 착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속한 현실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 현실 탓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인간이 내재한 욕망과 이기심에 그 악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내몰리는 인생들이 있고, 저지른 죄를 잊고 살다가 복수를 당하기도 하는, 남의 고통에 빌붙어 먹고 사는 인간들도, 다 우리 사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만의 비밀,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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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겔만 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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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요양소에서 지내느니 감옥이 낫겠어!

정말?

 

‘폐쇄되고 자유가 없는, 당당하게 내 돈 내고 들어간 게 아니라 벌을 받으려고 들어간 곳이 절대 요양소보다 좋을 리가 없어!’라는 생각에, 이 할머니의 엉뚱한 모험에 기대가 없었다. 무료하고 심심해서 재밌는 건수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벌인 소란 정도로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읽을수록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무엇을 확인하게 된 잔인함 같은, 지금 내가 노인을 대하는 시선이 변해야 함을, 누구도 아닌 내 부모와 내가 겪고 있는 일이라는 게 쉽게 잊히지 않는다.

 

복지가 좋다는 스웨덴의 한 노인 요양소에서 다섯 명의 70대 노인이 사라진다. 편한 곳에서 요양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노인들은 규정과 규칙에 억눌린 생활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강제로 취침하고, 식사도 부실한 게 실상이다. 외출이나 산책이 자유롭지 못했고 쉽지 않았다. 요양소에서 내킬 때만 허락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잠잘 곳이 있고, 부족해도 때가 되면 식사가 나오고, 휴게실에서 장기라도 둘 수 있는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게 어디냐 싶었는데...

 

산다는 건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 잘 알면서도 살면서 겪는 고민과 생각의 중심은 늘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어서... 막상 이 노인들의 삶을 경험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 마음을 듣고 싶어 한 적이 없다. 당장 내 문제가 아니어서 절실하게 보이지 않았다. 국가에서 노인들을 위해 여러모로 시행하는 정책이 많은데, 개인도 노인(부모)을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많은데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건가 싶었다. 내가 내는 세금과 돈으로 그 모든 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뭘 더 어쩌란 말이냐고 투정 어린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한 권의 소설을 읽고,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나를 대입해보니, 그 생각이 바뀌더라. 내가 들어가서 살아야 할 곳이 요양소라고 하더라도, 그게 가장 최상의 선택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의 생활이 이 정도라면 나는 싫을 것 같다. 노인들이 무모해 보이는 범죄를 저지르며 굳이 감옥에 가고 싶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민망해졌다. 물론, 아직 감옥 생활의 실체를 몰라서 막연한 기대로 감옥행을 원했던 거지만, 오죽했으면 요양소보다 감옥이 좋을 거라 여겼을까.

 

낙엽 지는 황혼기를 맞아 인생을 조금 즐겨 보고 싶은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면 그 사회는 분명 뭔가 잘못된 사회임에 틀림없다 (208~209페이지)

 

범죄영화와 탐정소설을 읽으며 범행을 준비하고, 무조건 훔치겠다는 것보다 잠깐 유괴하는 거라 여기며 되돌려줄 방안까지 생각하는 그 열정이 놀랍다. 실패해도 괜찮다. 이들의 목적은 범행의 성공이 아니라 범행을 들키고 감옥에 가는 거였으니까. 순박한 마음으로 시도한 절도가 어리바리해 보일 때마다, 내가 가서 머리 맞대고 같이 고민하고 싶었다. 어차피 잡혀가는 게 목적이라지만 그래도 범죄를 저지르고자 했다면 성공하는 게 더 그럴싸해 보이지 않을까? 멋지게 성공하고 감옥에 들어가는 그 당당함이 이 노인들에게 더 재밌는 외출로 남아야 하는 거니까.

 

소박한(?) 바람으로 시도한 노인들의 범죄 행각에 시종일관 웃음과 눈물이 따라온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끼어들 때마다 이들의 범행은 점점 산으로 간다. 그런데도 이상하지. 여기저기 샛길로 빠지는 듯한 계획이 잠깐 한눈을 팔기도 하면서 그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하늘도 이 노인들을 돕고 싶었나 보다. 메르타 할머니의 다양하고 치밀한 계획이 튀어나오고, 천재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기지를 발휘하고, 갈퀴 할아버지의 연기가 빛을 내고, 스티나 할머니의 제안이 먹혀들고, 안나그레타 할머니의 통장 잔액이 힘을 낼 때마다, 이들의 범행을 응원하는 나를 봤다. 처음, 노인들이 요양소를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이유를 찾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노인이라는 나이를 잊고 원하는 삶을 누려보기를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노인의 삶이나, 보호자나 방문객으로 드나들었던 노인 요양소의 모습을 다시 보게 하는 이야기다. 상황에 따라 나이 든 사람들을 돌봐줄 곳이 필요하고, 지금도 많은 시설이 있지만, 그런 곳이 가져야 할 자세에 경고한다.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전부가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공간이 우선이라는 것. 그걸 이루기 위해 어떤 변화와 시도가 필요한지 고민을 남긴다.

 

말을 마친 페테르손은 잠시 먼 산을 보며 노인네들 생각을 하다가 늙는다는 것이 저런 것인가 싶어 우울하기만 했다. 늙으면 그렇게 되는 것인가? 자신에게도 그때가 올 텐데, 그때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192페이지)

 

자주 잊고 살아서 그런 걸까. 나도 늙어가고 있는데, 육체가 늙어 거동이 쉽지 않은 순간이 올 텐데, 아직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게 쉽지 않다. 아픈 엄마를 모시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아버지의 병원 생활 몇 년을 옆에서 함께했는데도, 병원에 있는 그 대상이 내가 될 거란 생각이 잘 안 드는 거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노인들이 보내는 그 노후의 모습이, 평소 익숙하게 보는 이 동네 노인들로 보였다. 요양소에서 재워주고 먹여주고 잘 지낼 수 있게 보호한다고 여겼기에, 막상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진심은 들어볼 생각조차 안 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냐?’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빠진 게 있었다. 그 ‘좋은’ 것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 이 노인들의 행보에서 내가 찾게 되었던 게 그 진실을 아는 거였다. 내 눈에 가려졌던 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바로 옆에서 밥맛이 없다면서 억지로 저녁을 먹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한 움큼의 약을 먹어야 하는 일상이 지겹다고 하면서도, 약을 먹어야 하니 식사도 챙겨야 한다고, 귀찮은 일이지만 이렇게 늙어가는 게 자기 일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모를까. 그런데도 참 오랫동안 눈과 귀를 닫고 살아온 듯하다. 미안하게시리.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도 있었지만, 이 노인들이 보내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끔해지곤 했다. 그저 나이라는 숫자가 늘고 오래 사용한 육체가 늙었다는 것 말고, 이분들이 나와 우리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나와 같은 사람, 몇 년 후 만날 내 모습이라는 걸 이 노인들의 자신만만한 시도와 모험에 자꾸 상기하게 된다. 당연하게 주어지는 삶에서 이들에게 제외된 많은 부분을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읽는 동안의 재미보다 여운이 더 크게 남는다.

 

매번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때마다 그들은 더 젊어지는 것만 같았다.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만큼 도움이 되는 것이 따로 없는 것이다. 조만간 노인 강도단, 아니 <힘을 얻은 노인들>이라는 예술가 단체가 크게 한탕을 할 것이다. (49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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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나른한 기분. 이 소설을 어느 정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나른하고 무료한 거였다. 삐뚜름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귀찮은 일이 생기면 '그래, 그냥 한 방 쏘고 탈탈 털어버릴까?' 하는 무신경한 시선 같은. 물론 이 소설은 무료하고 나른한,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면서 감각이 없는 느낌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어느 페이지를 넘기며 순간적으로 느꼈던 기분을 말하는 거다. 데니스 루헤인의 초기 작품(우리나라 출간 기준)을 몇 편 읽었다. 상당히 몰입이 잘되고,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어떤 시선 하나만을 담을 수도 없게 진지하고 묵직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읽으려다 보니, 그동안의 작품과 사뭇 다른 느낌을 나는 '나른한 시선을 던지는 어떤 남자'를 계속 머릿속에 그리게 된 듯하다. 나른한 시선을 던지는 그 남자는 물론, 주인공 밥이다.

 

상당한 거구에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 보이는 남자, 밥. 사촌 마브와 함께 드롭 바를 운영하지만 그 화려했던 명성도 다 옛말이다. 지금은 그저 파견 나온 직원처럼 바의 일꾼일 뿐이다. 뭔가 감추는 듯한 분위기의 마브와 밥의 과거와 전적들. 새벽 두 시마다 수금하러 들르는 갱단의 무리. 외상값을 갚지도 않으면서 밤늦도록 바를 지키는 노파가 드롭 바의 일상이다.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개 한 마리를 발견한 밥은 자신이 데려와 돌보기 시작한다. 그 우연 같은 사건으로 뭔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별것 아닐 것 같은, 하지만 뭔가 거대하게 밥의 인생을 쥐고 흔드는 회오리 같은 어떤 것. 사회의 부조리, 돈과 권력이 목숨을 쥐고 흔드는 세상,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병, 그래서 더욱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야만은 인간이 만난 첫 여름부터 힘을 과시하고 그 이후로도 쉬는 날이 없었단다. 최악의 인간은 일상적이나 지고의 선인은 귀하고도 귀하지. (85페이지)

 

그 모든 이야기가 밥을 중심으로 뿌연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이런 건가?' 싶으면 다시 저런 모습으로 이야기를 틀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밥의 말, 행동, 시선에 주목하게 된다.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 결국 안개 속에서 길을 열어주는 것은 밥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과거, 혹은 비밀이 하나씩 펼쳐지면서 마지막에 다다르면 결국 우리가 봐야 할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 보통, 사람을 보면 좋은 놈 나쁜 놈 가리게 되기 마련인데, 밥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도 그가 좋다, 정의롭다, 나쁘다, 하는 어떤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아마도 이 소설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아닌 것도 맞는 것처럼,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지나가게 하는 의연함을 담고 있어서일지도. 스릴러 소설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뒷골목 범죄 세상의 현실이 담담하게 들려오는 의아함이 더 컸다. 범죄소설이 잔인함보다 마음속 서늘함을 더 크게 남겨준 느낌이다.

 

기존에 전자책으로 출간된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Animal Rescue)」를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단편으로 먼저 만나지 못했기에 어떤 비교의 맛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밥의 매력과 드롭 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뒷골목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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