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드롭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나른한 기분. 이 소설을 어느 정도 읽고 나서 내가 느낀 분위기는 나른하고 무료한 거였다. 삐뚜름한 자세로 앉아 있다가, 귀찮은 일이 생기면 '그래, 그냥 한 방 쏘고 탈탈 털어버릴까?' 하는 무신경한 시선 같은. 물론 이 소설은 무료하고 나른한, 아무렇지도 않게 살인을 저지르면서 감각이 없는 느낌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냥 내가 어느 페이지를 넘기며 순간적으로 느꼈던 기분을 말하는 거다. 데니스 루헤인의 초기 작품(우리나라 출간 기준)을 몇 편 읽었다. 상당히 몰입이 잘되고,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어떤 시선 하나만을 담을 수도 없게 진지하고 묵직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을 읽으려다 보니, 그동안의 작품과 사뭇 다른 느낌을 나는 '나른한 시선을 던지는 어떤 남자'를 계속 머릿속에 그리게 된 듯하다. 나른한 시선을 던지는 그 남자는 물론, 주인공 밥이다.

 

상당한 거구에 타인과의 소통이 어려워 보이는 남자, 밥. 사촌 마브와 함께 드롭 바를 운영하지만 그 화려했던 명성도 다 옛말이다. 지금은 그저 파견 나온 직원처럼 바의 일꾼일 뿐이다. 뭔가 감추는 듯한 분위기의 마브와 밥의 과거와 전적들. 새벽 두 시마다 수금하러 들르는 갱단의 무리. 외상값을 갚지도 않으면서 밤늦도록 바를 지키는 노파가 드롭 바의 일상이다. 어느 날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개 한 마리를 발견한 밥은 자신이 데려와 돌보기 시작한다. 그 우연 같은 사건으로 뭔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별것 아닐 것 같은, 하지만 뭔가 거대하게 밥의 인생을 쥐고 흔드는 회오리 같은 어떤 것. 사회의 부조리, 돈과 권력이 목숨을 쥐고 흔드는 세상,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병, 그래서 더욱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야만은 인간이 만난 첫 여름부터 힘을 과시하고 그 이후로도 쉬는 날이 없었단다. 최악의 인간은 일상적이나 지고의 선인은 귀하고도 귀하지. (85페이지)

 

그 모든 이야기가 밥을 중심으로 뿌연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이런 건가?' 싶으면 다시 저런 모습으로 이야기를 틀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자꾸만 밥의 말, 행동, 시선에 주목하게 된다. 뭔가가 있을 것만 같은, 결국 안개 속에서 길을 열어주는 것은 밥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이야기를 기대하며 읽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과거, 혹은 비밀이 하나씩 펼쳐지면서 마지막에 다다르면 결국 우리가 봐야 할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 보통, 사람을 보면 좋은 놈 나쁜 놈 가리게 되기 마련인데, 밥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나서도 그가 좋다, 정의롭다, 나쁘다, 하는 어떤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아마도 이 소설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아닌 것도 맞는 것처럼,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지나가게 하는 의연함을 담고 있어서일지도. 스릴러 소설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뒷골목 범죄 세상의 현실이 담담하게 들려오는 의아함이 더 컸다. 범죄소설이 잔인함보다 마음속 서늘함을 더 크게 남겨준 느낌이다.

 

기존에 전자책으로 출간된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Animal Rescue)」를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라고 한다. 단편으로 먼저 만나지 못했기에 어떤 비교의 맛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밥의 매력과 드롭 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뒷골목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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