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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식사할 시간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7월
평점 :
이런 상상력이라니. 강지영이라는 작가가 원래 이런 글을 썼나? 모르겠다. 다른 작품을 가지고 있지만 읽지는 않았으니, 이 작품으로 작가 강지영을 처음 만났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아홉 편의 단편이 담긴 이 소설집의 첫 단편을 만난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의 소설이 작가 강지영의 색깔인 것만 같다. 강렬하면서도 공포였고, 이런 공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되는 장면들 속의 사람들이 저절로 그려진다. 마치 오랫동안 그런 일상을 영위한 사람들의 익숙함. 천연덕스럽게 공포를 소화하는 듯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알게 된, 기억에서 희미해진 과거의 사건이 벌이 되어 돌아온 표제작 「개들이 식사할 시간」은 한편의 짧은 미스터리였다. 개에게 물린 ‘나’는 움직이지 못한 상태에서 개 주인의 말을 듣는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놀라웠고, ‘나’가 잊었던 시간을 불러온다. 그래, 그때 그랬었지. 하지만 그때 일어난 일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동안 잊었던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표제작과 다 비슷하다. 「눈물」이나 「스틸레토」처럼 판타지 같이 흐르기도 하다가, 「있던 자리」처럼 답답한 현실에 울부짖다가...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인간이 저지르고 있으니, 어디 다른 세상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디에 내놓고 말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일들에 누군가의 욕심은 하늘을 뚫고, 그런 욕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균열을 만들기도 한다. 각 단편의 이야기는 주인공들이 가진 참혹한 현실이 결말로 드러난다. 하아, 이런 삶에서 무엇을 찾아 살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그런 비밀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는 그들의 의지가 놀랍기도 하면서... 그냥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고통을 즐기거나 끝장을 낸다. 「사향나무 로맨스」의 노파에게 젊은 청년들이 옆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가 아이러니했는데, 노파의 몸이 점점 나무가 되어 가는데도 사라지지 않은 사향나무 향기는 그녀만이 가질 수 매력을 선사한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놓아버려야 할 순간일지도 모를 때, 오히려 비밀은 향기는 낸다.
각 단편 모두 그들이 품은 비밀을 말하지만, 그 비밀은 의외의 결말로 독자를 충격에 빠뜨린다. 가장 충격적이고 아팠던 결말은 「눈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3개였던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마에 자리한 작은 눈 하나에서, 눈물이 흐를 때마다 특이한 보석이 떨어진다. 한 방울, 두 방울. 소녀의 눈물을 쥐어짜면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부를 축적한다. 소녀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으면서 소녀의 눈에서 나오는 보석의 이익금을 분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녀에게 눈물을 얻어내려고 감금하고 폭행한다. 소녀가 한번 눈물을 흘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부자가 된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기자가 소녀를 탈출시키고, 소녀는 기자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자가 마치 소녀를 구해준 은인 같았는데...
「눈물」의 소녀가 말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이 단편에서 보여준 결말은 그 누구의 침묵도 침묵이 아니었다는 거다. 기자와 함께 떠난 소녀가 새로 만난 세상에 적응하는 분투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던 나의 예상은 한참을 빗나갔다. 소녀는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자기의 고통을 끝내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한다. 비정한 세계를 직접 단죄했다.
인간은 착한가? 아니면, 인간은 악한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인간은 착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속한 현실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 현실 탓만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인간이 내재한 욕망과 이기심에 그 악함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내몰리는 인생들이 있고, 저지른 죄를 잊고 살다가 복수를 당하기도 하는, 남의 고통에 빌붙어 먹고 사는 인간들도, 다 우리 사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들만의 비밀,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