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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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트남 출신 아내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면서, 우는 아이가 겁에 질려있는 걸 쳐다보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는 남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봤다. 아이가 보고 싶다면서 같이 살자고 아내를 한국으로 오게 한 남자의 진짜 모습이었다. 아내가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국말을 잘 못 한다고, 가져오라는 물건을 잘못 가져왔다고 폭력을 일삼던 한국인 남편.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닫힌 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알 수 없던 일이었다. 남들에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일, 분명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확인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바로 닫힌 문 안쪽에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이다.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도 결혼해서 살다 보면 성격이나 문화의 차이로 다툰다.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문화를 겪으며 살아온 다문화 가족에게는 같은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텐데, 그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한 노력은커녕 당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로 분풀이를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재미 한인 작가 정 윤이 쓴 이 소설도 다르지 않았다. 돈 때문에 힘들어서 집을 내놓기로 했던 그날, 경의 집을 향해 걸어오던 나체의 여자. 경의 어머니였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발로 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어머니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다. 곧 알게 된 경의 부모님 사건은 고요하던 마을에 큰 이슈로 남는다. 경의 부모님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었고, 그들은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을 폭행하고 강간하며 금품을 갈취했다. 강도 중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도주했다. 도주한 범인이 잡히지 않아서 더 두려운 상황.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집을 팔아서 빚을 줄이려고 했던 경의 계획도 변경되었다. 경의 아내 질리언은 당분간 경의 부모님을 모셔와 같이 지내기로 한다.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어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도 철저히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경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경과 그의 부모가 함께 지내야 하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경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버텨보려 한다. 거리를 두고 싶었던 부모와 한집에서 살게 된 경의 정신은 피폐해진다.

 

집이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는 의식주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집의 개념은 그 한 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머물 수 있는 곳,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누구나 그런 개념으로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만들려고 한다. 경의 부모님도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의 미국, 동양인 이민자가 살아가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낯설고 친근하지 않은 곳,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더 큰 노력을 해야 하는 곳. 그런 환경에서 경의 아버지는 교수 자리까지 얻고, 그 명성과 부를 유지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친목 활동도 한다. 경의 부모는 그곳 한인들에게 한없이 부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으로든 가까이 지내면 좋을 사람들이기에 교회라는 공간에서 똘똘 뭉친 관계를 형성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들만의 비밀처럼 간직한 집 안쪽의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의 인생 계획에 없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도를 당한 후유증으로 온몸에 상처 입은 이들 3명과 함께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강도에게 강간당했다고 믿은 경의 어머니와 강도에게 묶이고 폭행당한 아버지, 경의 부모님 집에 일하러 왔던 가정부까지 돌봐야 하는 경의 심신은 피곤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서로의 거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경의 모습에, 어쩌면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가족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상상했다. 부모님에게 닥친 이 사건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부모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회복될 거라고 믿었다.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나아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경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못한다. 그는 부모와 화해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번번이 그 기회를 놓친다.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경의 가슴에 머무는 어릴 적의 기억에 그는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그 한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 가지 시선을 갖게 된다. 한 가지는 경의 부모님 집에 든 강도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따라가면서 추리소설을 읽는 시선이다. 어쨌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의 마무리는 범인이 잡히는 것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한국인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뿌리박힌 그 문화다. 미국에서 살지만, 그 내면의 한국인 정서가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부모가 우선이다. 부모가 하는 말에 토 달지 마라. 자식이나 가정생활이 모두 부모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올바른 것이라고 가르치고 믿게 하는 것. 세 번째는 타지의 생활에 저절로 선택하게 되는 종교 단체는 한 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 한국 문화를 더 돈독하게 하는 수단과 계기가 된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해도 괜찮은, 소속된 종교단체가 개인의 삶 안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시선. 이 세 가지가 만나니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한국 문화의 어벤져스가 완성된 것만 같다. 그런 환경에서 떨어져 나오고자 애쓴 경의 노력은 그날의 사건으로 물거품이 된다. 여전히 자기 이기심만 펼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며 따르는 어머니, 마치 구원을 위해 등장한 것처럼 그들 가족의 삶에 파고드는 종교인들. 하지만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감춰진, 보이는 것 이면의 모습을 숨긴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의 정서를 알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폭력의 대물림이 결국 폭력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묻고 싶기도 했다. 어느 집이나 문 안쪽의 일은 타인이 다 알 수 없다. 풍문처럼 들리는 이야기로 추측하거나, 아예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하지만 불행보다 행복의 지분이 많게 하는 일은 가족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장 먼저는 그 가족을 구성하는 부부, 부모의 노력일 것이다. 경의 아버지가 경의 어머니에게 이해로 먼저 다가갔다면 이 가족이 몇십 년을 불행하게 보낸 시간은 처음부터 없지 않았을까? 경의 아버지가, 스무 살에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도 못 하면서 남편만을 의지하는 삶을 시작해야 했던 아내를 조금만 살펴봐 주었더라면, 어쩌면 경의 성장 과정도 보통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텐데 말이다. 가족이란 관계가 사랑과 이해로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항상 긴장하고 폭력을 당해야 하는 관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맞는 것일까. 결국은 경이 겪은 모든 시간과 닮지 않았겠는가.

 

닫힌 문 안쪽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눈앞에서 보는 게 아니고 읽는 것뿐인데도 고통스러웠다.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마음의 여유는 없었고, 남들에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가면을 쓰면서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 분노를 폭발시킬 지점이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 때라는 게 안타깝다. 가족은 상하 관계가 아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뒤늦게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해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의 결말이 보여준다.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켜야 한다. 관계 회복의 기회는 계속 오는 게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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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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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꽉 짜인 스토리에 익숙해서일까, 아니면 뭐든 분명한 결말과 범인을 찾게 되는 사건에 길들어서일까. 그동안 미스터리 소설에서 확인하고 싶은 건, 확실한 답이었다. 발생한 사건에서 찾는 범인과 범행동기, 잔인할 정도의 수법에 기가 차는 이야기. 그렇게 하나의 사건은 해결되고 독자는 개운한 결말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 특히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그 등줄기 오싹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면 최고의 추리소설이 아니겠는가. 구라치 준의 이번 소설에서는 특히 그 기대가 컸다고 말할 수밖에. 왜냐고? 제목을 좀 봐봐. 기대를 안 하게 생겼나. 그동안 어느 추리소설에서 상상이나 했던 상황이었느냔 말이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이었겠어? 이 정도면 끝내주는 추리소설에 쌍 엄지 추켜들고 대박을 외치게 되는 상황이지.

 

마사키 박사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리고 시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건 대체 뭔가?”

나도 처음부터 그것이 걸렸다. 시체의 머리 부분을 중심으로 하얀 것이 산산조각 나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두부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44년 12월 초순. 제국육군특수과학연구소 2-13호 실험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157페이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밀실 같은 방에서 한 병사가 죽은 것으로 시작한다. 시체의 주변에는 하얀 두부 조각이 흩어져 있다. 방은 목격자가 나간 뒤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병사 한 명만 죽어있는 걸 빼고는. 아, 흩어진 두부 조각이 있었지. 죽은 이의 뒤통수에는 모서리에 찍힌 흔적이 있다. 아마도 이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이다. 모서리? 그 방에서 모서리는 없는데? 별다른 가구도 없고, 도구도 없다. 그렇다면 범행도구는 하나뿐이다. 두부. 그럼 그 두부는 어쩌다가 그 밀실에 들어가게 되었나? 마사키 박사가 숨진 병사에게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려라!’라고 말하며 야식으로 넣어준 것이다. 그런데 두부가 무슨 힘이 있다고 사람의 뒤통수를 가격할 정도가 될까.

 

이상하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사건은 일어났고, 사람이 죽었다. 범행도구라고 남겨진 게 흩어진 두부뿐이라 단서는 그거 하나다. 그렇다고 두부에서 계속 사건 해결을 하려고 하니 뭔가 분명하게 찾아지는 것도 없다. 오리무중. 어찌 되었든 사건의 기승전결을 찾아야 마무리가 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당신은 이런 사건의 현장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그래서 계속 이 사건을 추리하는 등장인물들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끝장을 보고 싶어서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시선이 향하는 쪽은 죽은 이가 아니라 두부다. 도대체 왜, 두부는 거기서 그런 형태로 남아있는지, 그것만 찾으면 될 것 같은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아아아아악~! 답답하도다! 판타지 같은 해석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단 말인가.

 

 

시신이 있는 곳이었다.

젊은 여성이다.

반듯이 누운 자세라 마치 잠든 것 같다.

옷에도 훼손된 부분이 없다.

평온해 보이는 시체다.

다만 딱 한 가지가 몹시 기이하고 묘했다.

괴상하고 기괴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광경만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뭐, 뭐지 이건…….’ (80페이지,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이 작가의 분위기가 원래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신선하면서도 경쾌하다. 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이야기 중에서 어느 것 하나 특이하지 않은 게 없다. 물론 그 바탕에는 인간의 심리와 어느 지역의 풍습 같은 미신이 작용하는 게 있다. 특히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에서는 그런 느낌이 강하다. 죽은 여자의 시체를 둘러싸고 작은 케이크 3개가 시신의 머리 둘레로 진열되어 있다. 시신의 입에는 긴 파가 그대로 꽂혀 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살해의 현장이 참 묘하다. 케이크와 파라니. 형사들은 탐문 끝에 용의자를 바로 찾는다. 이제 용의자를 잡아서 취조하면 되는데,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케이크와 파가 같은 공간에서 묘하게 살해 현장을 장식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은 것은 과학적이고 명쾌한 답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감정적인 것만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살해 동기와 과정을 찾아서는 안 되지만, 또 그게 사건을 설명하는 유일한 답이 되기도 한다.

 

잔뜩 긴장하고 읽으면서 그 오소소한 소름을 즐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서 읽었는데, 첫 이야기부터 그 긴장감은 박장대소로 뒤바뀌었다. 「ABC 살인」 인간의 심리를 참 잘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쇄살인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 피해자는 A 지역에 사는 A, 두 번째 피해자는 B 지역에 사는 B. 누가 봐도 다음 피해자는 예상된다. C 지역에 사는 C일 것이다. 도박으로 유산을 탕진한 주인공은 돈이 궁하다. 자기보다 살짝 더 받은 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만 거절당하자 동생을 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ABC 연쇄 살인에 편승하여 동생을 죽여 버리자. 그럼 자기의 단독 범행은 연쇄살인에 묻어갈 수 있고, 범행이 성공했을 경우 동생의 재산도 갖고 보험금도 받고 일석이조. 딱 좋아. 그런데 주인공의 살인 계획에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등장한다. 처음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하지만, 계속되는 방해꾼(?)들에 주인공은 당황한다. 어라? 이거 뭐지? 한번, 두 번. 계속되는 방해에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그러면서도 씁쓸한 기운을 감출 수가 없다. 인간에게 내재한 살해와 분노의 감정이 이 정도로 많았던가? 인과응보처럼,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주인공도 그 누군가의 살해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변수를 간과했다. 자기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인간이 선택한 편리함 이면에 자리한 거대한 오류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내 편애」는, 인간이 발명한 것에게 역으로 공격당하는 기분이 든다. 인간이 설정한 인공지능이 인간이 해야 할 거의 모든 일을 대신에 한다. 특히 분명하게 선을 그어놓고 처리해야 할 일들에 인간적인 감정이 들어가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일에 투입된다. 잘 됐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일 앞에서 주춤할 필요가 없으니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여기서 판단 오류가 생겼다. 인공지능이라고 완벽할 수가 없던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지만, 인간보다 못한 감정으로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무감정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한다. 평등과 균형을 위해 도입한 시스템에서 오히려 인간이 처리할 때보다 더한 불평등과 오해가 쌓이게 된다. 과연 인간이 발명한 시스템은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게 맞는 걸까? 기계의 편애로 엉망이 된 생활을 벗어나고픈 주인공의 분투가 눈물겹다.

 

휴식하려고 시골의 할머니 집으로 간 주인공이 눈여겨보게 된 고양이의 눈빛(「밤을 보는 고양이」)은 인간이 보지 못한 부분의 흔적을 쫓는다. 듣고 보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게 흔적을 느끼게 하는 후각. 그리고 그런 고양이의 감각을 놓치지 않고 살펴보며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누군가에게 가격당한 이를 대신해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읽게 되는 틈(「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은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의 행동까지 하게 하는지 묻는다. 사실 그 내막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지 말자고 묵언의 약속을 하는 게 또 인간이 아니겠는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규정을 어기는 일은 인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므로, 최소한의 인간다움은 지키면서 살자.

 

하마오카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저분한 갈색으로 시든 담쟁이덩굴이 얽힌 폐건물을 보면서 멍하니 생각한다. 네코마루 선배는 연구원 중 누군가가 농땡이를 치러 이곳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낙천적인 의견이다. 한편 가시와 씨는 수상한 사람이면 무섭다고 말했다. 여성스러운 생각이다. 산본마쓰 연구원은 정말로 스파이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연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다운 견해다. 처지에 따른 세 가지 생각. 이렇게 의견이 나뉘는 것이 아주 재미있다. (257페이지,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때로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기도 하다. 쓸데없는 상상이라고 말하는 게 문제의 답이 되기도 한다. 마치 다양한 장르를 한데 모아놓은 것처럼 펼쳐지는 6편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궁금했다가, 기대했다가, 어이없다가, 씁쓸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가...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게, 어느새 논리를 꽉 채운 구성으로 뒤바뀌기도 하는 상황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장면을 상상했다가 코믹한 상황에 웃음도 안 나는 뒤통수에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거 미스터리 맞아?’ 하면서. 아마도 그게 이 작가의 매력인 듯하다. 골라 먹는 맛이 다양해서 찾는 뷔페처럼, 의외의 순간에 찾게 되는 답이 더 즐거운 것처럼, 느슨하게 마음 놓고 있다가 툭 치고 들어오는 긴장감처럼 심장을 쫄깃하게 한다. 6편의 이야기가 너무 개성이 넘쳐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단편집 읽는 다양한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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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어린이과학동아 1년 정기구독 (24권)
동아사이언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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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선물용으로 구매. 초등학생 눈높이에 딱 맞는 과학이야기가 흥미로움. 정기구독으로 매번 구매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딱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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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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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은 있어도 우연한 이별은 없다.

장점이 단점으로 단점이 더 큰 단점으로 서서히 부각됐다.

누가 뭐래도 제눈에는 예뻤던 것이 남들보다 더 흉하게 보였다. 못 견디게 싫었다.

남편을 포획한 아내. 더는 아내로 볼 수가 없었다. (213페이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거, 그게 사랑이야.”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지만,

적어도 이 소설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는 공통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를 꽉 쥐고 있는 사랑은 가짜라고, 또 그런 사랑에 끌려가는 이가 아플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순간 그 사랑을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 방식의 사랑 역시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랑을 하면서 아프지 않을 수 없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덜 아프게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가 사랑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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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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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상상 해본 적이 있던가? 미래의 어느 시대, 인간의 한계를 채워주는 시스템이나 로봇 같은 게 우리 삶에 익숙해진 상황을. 상상에서만 멈추지 않고 실제로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만나는 게 새로운 경험은 아니다. 그런데 물리적인 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을 채워주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이 소설에서 시도하는 정신적인 부분의 삭제와 추가 같은 건, 언젠가 우리가 바랐던 여러 가지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내 기억 속에서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것, 내 기억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것. 그 어느 것이라도 우리는 그걸 선택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이유는 하나. 기억을 삭제하거나 추가하는 건, 우리가 불행이라고 여기는 순간을 사라지게 하려는 거다. 아픈 기억을 지우고, 행복하게 만들어줄 가짜 기억이라도 심어두려는 것. 그렇게 우리는 자기 슬픔을 지우려고 노력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그런 사고방식은 기억 개조 기술의 보급과 함께 과거의 유물이 되어 갔다. 미래는 불명확하다. 그렇지만 과거는 바꿀 수 있다. (67페이지)

 

가짜 기억을 사고팔 수 있는 세상이었다. 치히로는 불행했던 성장 과정의 한때를 지우고 싶었다. 아내 외에도 다른 여자들의 '의억(나노로봇이 만들어낸 가공의 기억)'을 가지고 살았던 아버지와 자식인 치히로 외에 다른 아이들의 '의억'을 가지고 살았던 어머니 사이에서, 치히로는 상처받았다. 왜 옆에 아내가 있는데도 여자들의 의억이 필요할까, 왜 바로 앞에 당신 자식이 있는데도 아이들의 의억이 필요할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처는 존재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시간을 지우고 싶어서 업체에서 살 '레테(특정 시기의 기억을 제거해주는 나노로봇)'를 삼켰다. 하지만 잘못 설정된 알약은 레테가 아니라 '그린그린(가공의 청춘 시절을 제공하는 나노로봇)'이었다. 치히로의 기억에 소년 시절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가 경험하지 않은 청춘 시절의 기억이 심어진 거다. 그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쓰나기 도카는 치히로의 첫사랑이었고, 현재의 어느 순간마다 도카는 추억이 되어 치히로의 기억에 소환된다.

 

잊으려던 기억 대신 만들어진 어느 시간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혹시 새로운 소설 한 편을 쓰는 기분은 아닐까? 어쩌면 이 기억 때문에 애써 지우려던 시간이 행복해지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알 수 없다. 새로운 기억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 더 불행하게 할지는. 다만, 그 전의 불행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의뢰를 하고 알약을 삼키는 것일 테지. 치히로는 자기가 원하지 않은 기억을 갖게 되었으니 삭제하면 그만이다. 원래 바라던 행복을 향해, 다시 받은 진짜 레테를 삼키면 된다. 의뢰하지 않은 기억 따위 삭제하면 그만인데... 그러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도카의 존재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거짓 기억인 걸 알면서 거부하는데도, 순간순간 거짓과 사실 사이에서 흔들렸다. 자기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인 걸 알면서도 점점 확신할 수 없었다. 자기만의 기억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고 있었다.

 

"기억이란 건 마음먹기에 따라서 너무나 쉽게 왜곡되기 마련이니까." (39페이지)

 

결국 인간은 믿고 싶은 걸 미게끔 되는 것이다. 진실을 견디지 못할 때 인강는 인식을 왜곡한다. 현실을 바꾸는 것보다 그쪽이 편하니까. (114페이지)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가. 같은 시간의 경험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때 내가 이랬잖아. 아니, 그때 너는 저랬거든. 어느 날의 기억은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로 써진다. 우리는 이런 불완전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치히로가 혼란스러운 이유도 이해가 된다. 삽입된 기억이 아니라 진짜 그의 과거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가공된 기억이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도카와의 시간을 그리워한다. 둘이 함께한 시간의 행복을 찾고 싶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도카는 실재의 사람이 아니니까. 그때 가공의 기억에서만 존재해야 할 도카가 치히로 앞에 나타난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가공의 기억에 존재하는 도카가 치히로의 인생에 뛰어들었던 것은 말 그대로 가공의 시간에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도카를 현실의 치히로 앞에 내놓은 건 무슨 이유일까. 작가는 판타지 같은 사랑을 그려놓으며 독자를 설레게 했다가, 도카를 현실 속에 내놓음으로써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LP판의 앞면 뒷면을 뒤집어가면서 들어야 앨범의 노래 전체를 들을 수 있듯이, 치히로와 도카의 시선으로 두 가지 이야기를 펼친다. 이어지는 도카의 인생은 치히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온 시절, 천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격리되듯 살아온 시간이 그녀의 성장 기간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찾은 상상의 시간은 그녀에게 위로가 됐다. 다른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그리면서 이야기에 빠져 지내는 일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 방법 같았다. 그녀의 이런 재능은 '의억기공사(가공된 기억을 만드는 전문 인력)'가 되게 했고, 어느 날 의억을 의뢰한 치히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기와 너무 닮은 치히로의 슬픔에 그녀는 자기 자신을 투입하여 그와의 시간을 구성하고, 치히로의 기억 속 첫사랑이 된다.

 

잘 생각해봤을 때 내게 잊고 싶지 않은 일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잊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잊고 싶지 않은 장소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아찔해졌다. 대개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기억이 사라지도 있다는 걸 알면, 무엇보다 먼저 잊고 싶지 않은 일들을 적기 시작할 것이다. 그걸 몇 번이나 거듭 읽으며 뇌에 각인시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잊어버릴 수 있다면 잊어버리고 싶은 쓰라린 기억을 도려내고 나면, 남은 것은 빈껍데기와 같은 무가치한 기억밖에 없었다. (248페이지)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의 만남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삭제와 추가는 엄연히 반대의 의미가 아니던가. 기억 삭제를 원하는 사람에게 의뢰하지도 않은 기억의 추가를 설정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도카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갑자기 발병한 신형 알츠하이머(예전의 기억부터 사라지는)에 걸린 스무 살 인생이, 무엇을 기억하고 갈 수 있을까. 도카는 치히로와 다르지 않은, 불행하고 아팠던 시간보다 아름다운 첫사랑 하나쯤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도카의 간절한 바람이, 기도가 반영된 의억이 실재가 되어버린 일. 도카가 의억기공사로 일하면서 추구했던 의미와 같다. 그렇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도카의 발칙한 장난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 심어두고자 하는 바람 같은 게 느껴진다. 힘들고 슬프게 자라온 시간에 그 정도의 보상은 허락되어도 좋지 아니한가. 그러면서 동시에 읽히는 감정. 자신과 다르지 않은 치히로의 시간도 자신의 존재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다고 말이다.

 

"인생에는 이따금 그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행복하기만 한 인생이 그리 흔하지 않듯이, 불행하기만 한 인생도 그리 흔한 게 아냐. 도카는 도카의 행복을 조금만 더 믿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341페이지)

 

가짜 기억과 가짜 추억으로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들려주는 청춘의 사랑으로, 우리가 바라는 삶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하는 이야기다. 가짜이지만 경험하지 못한 기억을 심어놓는 게 괜찮은 건지, 경험으로 녹아든 기억을 인위적으로 삭제하는 게 괜찮은 건지.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겪는 온갖 경험의 기억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우리는 삭제 버튼 하나로 그 슬픔을 다 지울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 잊어가면서 살아가는 동안 남는 건 사랑뿐일까, 하고. 만들어진 사랑일지라도, 가짜 사랑일지라도, 환상일지 몰라도, 그게 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나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 사랑일 수도 있다니... 사랑을 불신하고 청춘의 시간이 불행했던 이들에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순간이 된 것만 같다.

 

 

*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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