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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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 아내에게 무차별 폭행을 가하면서, 우는 아이가 겁에 질려있는 걸 쳐다보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는 남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봤다. 아이가 보고 싶다면서 같이 살자고 아내를 한국으로 오게 한 남자의 진짜 모습이었다. 아내가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만들었다고, 한국말을 잘 못 한다고, 가져오라는 물건을 잘못 가져왔다고 폭력을 일삼던 한국인 남편.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닫힌 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알 수 없던 일이었다. 남들에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일, 분명한 증거를 제시해야만 확인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게, 바로 닫힌 문 안쪽에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이다.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도 결혼해서 살다 보면 성격이나 문화의 차이로 다툰다. 이혼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문화를 겪으며 살아온 다문화 가족에게는 같은 문화를 가지고 살아온 이들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텐데, 그 차이를 좁혀나가기 위한 노력은커녕 당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로 분풀이를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재미 한인 작가 정 윤이 쓴 이 소설도 다르지 않았다. 돈 때문에 힘들어서 집을 내놓기로 했던 그날, 경의 집을 향해 걸어오던 나체의 여자. 경의 어머니였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발로 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어머니의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란다. 곧 알게 된 경의 부모님 사건은 고요하던 마을에 큰 이슈로 남는다. 경의 부모님 집에 2인조 강도가 들었고, 그들은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을 폭행하고 강간하며 금품을 갈취했다. 강도 중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도주했다. 도주한 범인이 잡히지 않아서 더 두려운 상황.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집을 팔아서 빚을 줄이려고 했던 경의 계획도 변경되었다. 경의 아내 질리언은 당분간 경의 부모님을 모셔와 같이 지내기로 한다. 부모의 곁을 떠나고 싶어서 오랫동안 고생하면서도 철저히 독립적인 생활을 했던 경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경과 그의 부모가 함께 지내야 하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어쩔 수 없이, 경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버텨보려 한다. 거리를 두고 싶었던 부모와 한집에서 살게 된 경의 정신은 피폐해진다.

 

집이란 무엇일까. 물리적으로는 의식주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집의 개념은 그 한 가지에 머물지 않는다. 머물 수 있는 곳, 정신적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누구나 그런 개념으로 집을 마련하고, 가정을 만들려고 한다. 경의 부모님도 그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의 미국, 동양인 이민자가 살아가기 쉬운 환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낯설고 친근하지 않은 곳,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더 큰 노력을 해야 하는 곳. 그런 환경에서 경의 아버지는 교수 자리까지 얻고, 그 명성과 부를 유지한다. 교회에 다니면서 친목 활동도 한다. 경의 부모는 그곳 한인들에게 한없이 부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떤 목적으로든 가까이 지내면 좋을 사람들이기에 교회라는 공간에서 똘똘 뭉친 관계를 형성하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들만의 비밀처럼 간직한 집 안쪽의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의 인생 계획에 없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도를 당한 후유증으로 온몸에 상처 입은 이들 3명과 함께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강도에게 강간당했다고 믿은 경의 어머니와 강도에게 묶이고 폭행당한 아버지, 경의 부모님 집에 일하러 왔던 가정부까지 돌봐야 하는 경의 심신은 피곤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서로의 거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경의 모습에, 어쩌면 이들이 다시 정상적인 가족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상상했다. 부모님에게 닥친 이 사건은 불행한 일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부모와 아들 사이의 관계는 회복될 거라고 믿었다.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나아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경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못한다. 그는 부모와 화해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번번이 그 기회를 놓친다.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질 법도 하건만, 여전히 경의 가슴에 머무는 어릴 적의 기억에 그는 부모님에게 다가가는 그 한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세 가지 시선을 갖게 된다. 한 가지는 경의 부모님 집에 든 강도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따라가면서 추리소설을 읽는 시선이다. 어쨌든, 그들에게 일어난 일의 마무리는 범인이 잡히는 것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한국인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뿌리박힌 그 문화다. 미국에서 살지만, 그 내면의 한국인 정서가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부모의 말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 부모가 우선이다. 부모가 하는 말에 토 달지 마라. 자식이나 가정생활이 모두 부모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게 올바른 것이라고 가르치고 믿게 하는 것. 세 번째는 타지의 생활에 저절로 선택하게 되는 종교 단체는 한 마디로 이해하기 어려운 그 한국 문화를 더 돈독하게 하는 수단과 계기가 된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고 독선적으로 행동해도 괜찮은, 소속된 종교단체가 개인의 삶 안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도 이상할 게 없다는 시선. 이 세 가지가 만나니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한국 문화의 어벤져스가 완성된 것만 같다. 그런 환경에서 떨어져 나오고자 애쓴 경의 노력은 그날의 사건으로 물거품이 된다. 여전히 자기 이기심만 펼치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며 따르는 어머니, 마치 구원을 위해 등장한 것처럼 그들 가족의 삶에 파고드는 종교인들. 하지만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감춰진, 보이는 것 이면의 모습을 숨긴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의 정서를 알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폭력의 대물림이 결국 폭력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묻고 싶기도 했다. 어느 집이나 문 안쪽의 일은 타인이 다 알 수 없다. 풍문처럼 들리는 이야기로 추측하거나, 아예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비슷하다. 하지만 불행보다 행복의 지분이 많게 하는 일은 가족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가장 먼저는 그 가족을 구성하는 부부, 부모의 노력일 것이다. 경의 아버지가 경의 어머니에게 이해로 먼저 다가갔다면 이 가족이 몇십 년을 불행하게 보낸 시간은 처음부터 없지 않았을까? 경의 아버지가, 스무 살에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도 못 하면서 남편만을 의지하는 삶을 시작해야 했던 아내를 조금만 살펴봐 주었더라면, 어쩌면 경의 성장 과정도 보통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관계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텐데 말이다. 가족이란 관계가 사랑과 이해로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항상 긴장하고 폭력을 당해야 하는 관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맞는 것일까. 결국은 경이 겪은 모든 시간과 닮지 않았겠는가.

 

닫힌 문 안쪽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눈앞에서 보는 게 아니고 읽는 것뿐인데도 고통스러웠다.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마음의 여유는 없었고, 남들에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가면을 쓰면서 스트레스는 쌓이고, 그 분노를 폭발시킬 지점이 집이라는 공간에 머물 때라는 게 안타깝다. 가족은 상하 관계가 아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뒤늦게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해서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소설의 결말이 보여준다. 돌이킬 수 있을 때 돌이켜야 한다. 관계 회복의 기회는 계속 오는 게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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