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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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끔 청소년 문학을 읽을 때 보이는 장면이 있다. 부모는 자기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자식에게 자기의 바람을 집어넣는다. 어렸을 적 간절히 바라던 꿈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되었을 때, 이루지 못한 그 아쉬움을 자식에게 달래고자 할 때 말이다. 그래서 종종 자기의 간절함을 자식에게서 이루게 하여 만족하고 싶어 한다. 그 바람은 자식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어쩌랴. 세월은 흘렀고, 이미 어른이 되었으며, 자기의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자식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을. 하지만 미련하게도 남아있는 게 있다. 아쉬운 그 마음은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한 바람을 끌어안고 사는 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 한구석, 언제나 갈증을 일으키는 그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기득권층의 취미 같은 게임도 비슷하다. 나이는 먹었고, 돈은 많다. 어떤 식으로든 돈을 축적하면서 노년에 이르렀다. 아마도 전쟁터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돈을 쌓았겠지. 당연하다. 누구라도 돈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게 바로 세상 아니던가.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거나 그들의 돈을 욕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그들이 아바타처럼 조종하는 젊은이들의 인생이다. 오롯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 건데, 그들에게 선택당한 젊은이들은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걸 아무도 알지 못한다. 오직 젊은 인생들을 조종하는 그들만 알 뿐이다.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너무도 아름답다. 이제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 (98페이지)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박준석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최경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고, 경은 준석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준석의 머릿속에 거머리가 심어져 있고, 그 거머리는 파우스트에게 준석의 모든 일상을 지켜보게 한다는 것. 준석이 보고 듣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파우스트가 똑같이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준석의 인생을 누군가가 준석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같은 인생을 두 사람이 사는 게 문제라기보다는, 파우스트가 조종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파우스터가 바로 그 젊은이들이라는 게 문제다. 누가 감히 타인의 인생을 조종할 수 있는가? 개인의 아쉬운 인생을 좀 풀어보고자, 타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해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느냔 말이다. 메피스토 코리아는 창립멤버이자 메피스토 코리아의 개설을 도운 태근은 자기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한 야구선수 준석을 골랐다. 형편 때문에 꿈을 이루지 못할 상황에 부닥친 준석에게 보이지 않는 손으로 여러 방면에서 도우면서 준석이 야구선수로의 탄탄대로를 걷게 만든다. 준석은 몰랐지만, 준석이 현재의 선수로 키워지기까지 구석구석 태근의 손이 미친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10년 동안 준석이 이룬 삶은 준석의 것이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준석만이 바라는 꿈이 있고, 길을 걸어왔던 것도 맞다. 하지만 오롯이 준석만의 의지로 온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건 누구의 인생이 되는 걸까?

 

정말 그런 단체가 있을까 싶었다. 소설은 판타지 느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지금 이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이런 집단이 있지 않을까 싶을 가능성도 열어두게 한다. 과거에는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이루지 못한 것을, 시간과 돈이 있는 지금 누리듯이 가능하게 한다는 이야기가 과연 상상만으로 멈출 수 있을까. 타깃을 정해 자기가 키우는 애완동물처럼 조종하고, 타깃이 느끼는 그대로를 내가 느낄 수 있다는 게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해왔고, 현재도 미래도 여전히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아간다. 그러니 언젠가는 이런 설정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그게 언제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냥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파우스트와 파우스터 사이에 연결된 것으로 노인이 젊음의 시간을 대신 경험하고 있다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걸 게임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악질이라는 거다. 파우스트와 파우스터를 연결하는 메피스토는 회원을 모집하고, 모집된 회원은 파우스트라 불리며 그들의 돈을 파우스터에게 투자한다. 얼마의 돈을 투자해서 어떤 상황을 만들고, 그런 상황은 그들의 파우스터가 탄탄대로의 길을 가게 인위적으로 만든다.

 

살면서 느낀다. 부정부패의 순간들 말이다. 공정한 경쟁으로 이뤄져야 할 장이 때로는 누군가의 힘으로 불공정해진다. 그로 인해 피해자가 생긴다. 누군가가 죽는 일도 흔하다. 메피스토에 가입비 100억을 내고 들어오는 65세 이상의 노인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이라고 의심하지 못할 시간을 자기들이 조종하여 하나의 인형을 만들어가는 일. 돈은 들지만 인생의 만족을 느낀다면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지 않을까? 가끔 이런 질문 많이 해보지 않는가,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하는 만약을 상상하며 즐거워보고 싶은 바람들. 젊은 육체를 얻을 수는 없지만, 젊은 육체를 가진 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의 많은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흥분될까. 자식은 마음대로 안 되지만, 파우스트의 파우스터는 자기 맘대로 조종되는 게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싶다. 그 만족감으로 오랜 시간 큰돈을 들여가면서도 파우스터를 지켜보는 재미를 놓고 싶지 않았겠지.

 

자식들은 절대 부모 마음대로 될 수 없다.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란 또 얼마나 바보 같은 존재인가. 하지만 파우스터는 다르다. 파우스터는 자식들이 해줄 수 없는 모든 것을 대체해준다. 파우스터는 새로 태어난 나다. 내가 되고 싶었던 청년이고 내게 없었으며 하는 것들을 제거한 젊음이다. (244페이지)

 

파우스팅의 여운이 계속되고 있었다. 남선은 취해 잠들었을 은민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의 아이이자 나의 청춘이자 나의 분신이다. 나는 그녀의 후원자이자 절대자가 되고 싶다. 아니 그녀가 나고 내가 그녀가 되고 싶다. 남선은 더 밀어붙이고 싶었다. 중독되어가는 걸 알고도 남선은 멈출 수가 없었다. (299페이지)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김혜자의 마지막 대사가 기억난다. 드라마를 본 당시에도 뭉클했지만, 백상예술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배우의 소감 역시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였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중략) 후회만 가득한 과거의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열심히 사느라 놓친 순간들을 아쉬워하며 지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 아쉬움에 사로잡혀 살아가야 할 순간의 많은 것을 다시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세대의 갈등은 언제나 있어왔지만, 세대의 차이와 변화를 인정하지 않아서 그 갈등을 심화시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니까, 내가 이렇게 너를 키웠으니 부모의 뜻에 따라주어야 한다는 강요 같은 권위를 행사하는 게 관계를 악화시키는.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당신은 완벽하게 조종당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간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소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은 타인의 인생을 조종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이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믿음을 갖고 살아왔는지 증명한다. 누군가가 만들어주지 못하는 인생이다. 준석이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며 자기 존재감을 확인해나가는 삶이 진짜 인생이듯, 그렇게 조금씩 쌓아가는 게 답인 거였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오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배우가 전하는 드라마의 대사는 이 소설에서 보는 욕심들을 한방에 무너뜨린다.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자기가 쌓아 올린 것만이 자기 인생이 된다. 그게 비록 슬픔의 눈물을 뿌리는 시간이었을지라도, 누군가 대신 설계하듯 만들어지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전한다. 내가 이루지 못한 많은 것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서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간의 욕망이 끌어내는 과함은 언제나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작가의 전작을 몇 편 읽었는데, 그때도 페이지 터너의 힘을 대단하게 보여주더니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설정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 독자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하다. 상상 가능한 만약으로 시작하고,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무너뜨리듯 주저 없이 달리기하더니, 불가능한 시도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절망하여 넘어지게 한다. 스토리가 탄탄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뭐가 또 나올지, 다음 작품도 저절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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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도 - 우리의 습관과 의지를 결정하는 마음의 법칙
이인식 지음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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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마음은 내 건데, 이상하게도 그 마음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도, 사람을 대하면서도 그 마음을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도 많다. 도대체 우리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기에, 어떤 요소들을 품고 있기에 마음의 행방을 알기가 어렵단 말인가. 이 마음을 주관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 인간의 마음은 너무도 복잡하여 알아도 끝이 없을 것 같다. 그런 우리의 궁금증을 알아서일까. 저자는 '마음의 지도'라는 안내서를 통해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을 정의하기에 이른다. 그렇다고 저자의 정의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궁금해서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관한 호기심은 공통적이었던 듯하다.

 

저자는 30여년의 조사 기간, 500여명의 학자의 말과 저서를 인용하고, 200여 편의 참고문헌으로 250년 마음 연구의 성취를 이뤄냈다. 그렇게 마음의 본질을 연구하여 집대성한 책이다. 어느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학문에서 마음에 접근했다. 그렇게 다양한 학문의 협조(?)로 연구된 내용이라고 하면 어려울 것도 같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말로 들려준다.

 

1부에서는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물으면서, 보통 사람의 마음, 특별한 사람의 마음, 행복한 마음을 말한다. 역마살이 창의력을 키운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시야를 넓혀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건 당연하게도 다른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갇힌 곳에서 보는 것은 너무 익숙하다.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때 생각도 다양해진다는 건 자명하다. 처녀들이 봄을 타는 이유 역시 흥미롭다. 겨울의 우울증이 실재하는데, 그 때문에 봄 열병 역시 실재한다. 물론 증명하기에는 학문적 근거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아는 마음 아니던가. ^^ 1부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는 '행복한 마음을 만드는 것'은 학문적 근거만큼이나 보편적으로 아는 내용이다. 경제적인 행복은 금액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행복은 커다란 덩어리 하나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행복을 부른다. 매 순간의 작은 마음들이 모여 행복한 마음을 만든다.

 

확장 및 구축 이론은 여러 차례 실험에 의해 입증되었다. 기분이 좋아지면 뇌가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므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것으로 밝혀졌고,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이 개선된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또한 프레드릭슨은 일시적인 긍정적 정서로 인해 인지능력이 확장되면 오랫동안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가 구축되는 것을 밝혀냈다. (94~95페이지)

 

2부, 3부는 우리가 겪는 사회와 세상에 관해 반응하고 생기는 마음들을 말한다. 첫인상으로 친구와 적을 알아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순식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기술을 알기 위해 마음을 읽기도 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측면도 강하지만, 페어플레이할 때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강하다. 그런 인간의 선한 마음에 반대되는 폭력적인 마음도 있는데, 인간의 폭력적인 성향은 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착한 사람도 폭발할 때가 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에 관한 선입견 중에 폭력적일 거라는 게 있는데, 실제 사이코패스가 다 폭력적인 건 아니다. 오히려 신사적이고 친절한 얼굴을 하곤 한다. 인간에게 키스는 몸 냄새를 교환하는 행위이며, 사람마다 애착 성향이 달라서 사랑의 모습도 다르게 나타난다.

 

명품에 지갑을 여는 이유는, 생물학에서 과시적 소비에 해당하는 개념은 장애 이론으로 설명된다. 장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로맨틱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과시적 소비인 셈이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과도한 선물, 과도한 웃음 공세, 과도한 외모 가꾸기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시적 소비 본능은 명품으로 상대방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할 수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한다. 인간의 신뢰나 사랑을 얻으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손실에 의한 심리적 효과는 이득에 의한 심리적 효과보다 적어도 두 배는 큰 것으로 여겨진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재적 이득이 잠재적 손실보다 최소한 두 배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돈을 벌거나 잃을 확률이 50대 50으로 전망될지라도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밑지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설명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무책임한 아버지 때문에 지능 발달도 더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은 도박이나 범죄에 휩쓸리기 수비고 바람을 피울 가능성도 크다. 아버지가 가출한 가정에서 자란 소녀는 성적으로 조숙에서 어려서 임신을 하기 쉽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지능 발달도 더디다. (215페이지)

 

4부의 우리가 모르는 불가사의한 마음은 초심리학이나 유체이탈, 예지 능력을 말하며,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긍정적인 면도 보인다. 가령, 심령요법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는 등 과학이 증명하거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들 말이다. 학문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죽음이나 신앙에 관한 것도 인간 마음의 아이러니를 말하는 부분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 몸이 나아지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인간의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려운 것 같다. 5부에서는 마음의 미래를 말하는데, 조금 더 먼 미래의 우리 마음 작동법을 듣는 것 같다. 과거를 생각하면 현재도 미래의 시간이었고,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가능한 것으로 미래를 채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의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마음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미래에는 인간의 마음도 통제될지도 모르고, 인간의 뇌를 컴퓨터가 그대로 읽게 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들이 실제 우리의 미래에서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2010년 4월 중순 펴낸 『자살에 관한 신화』에서 세계적 자살 이론 전문가인 조이너는 자살의 뜻을 이룬 사람은 공통적으로 두려움을 모르고 고통에 무감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아무리 자살하고 싶을지라도 겁이 많거나 숨이 끊기는 순간의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에 끝내 성공한 사람은 제3자가 중경상을 입거나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으로 밝혀졌다. (327페이지)

 

마음을 아는 것이 인간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간주하였던 인간의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는데, 우리 일상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들이어서 편하게 읽힌다. 그 질문들의 답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동안 알 수 없던 마음의 이야기들을 재밌게 듣게 된다. 우리가 가진 못 마땅한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성격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성격을 바꿀 게 아니라 그 성격의 단점을 드러나게 하는 환경을 바꾸는 게 낫다는 것. 그러니 그 어렵다는 성격 바꾸기를 시도하려고 힘들게 애쓰지 말고, 성격 주변의 것들을 바꾸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사회 시스템과 개인에게 모두 영향을 주고, 사람으로 인한 내적 갈등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좀 더 잘 알고 있다면 혼란보다는 대처에 능숙해질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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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봄이 짧게 지나가려나 보다...
여긴 남쪽 지방이라 그런지
지난 주말에 꽃구경 하기에 딱 좋을만큼 벚꽃이 피었다.

오늘 오후부터 계속 바람 불고 비가 내리는데,
이 비가 그치면 꽃잎도 다 떨어져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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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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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많을 것 같지? 안 많더라.” (170페이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다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 몰랐던 것을 한 살 더 먹으면 잘 알 것 같고, 그렇게 알아가다 보면 나이든 우리는 인생과 세상을 거의 다 알 수도 있을 거로 믿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루하루 보고 배우는 것은 많아질 것이고, 나이라는 건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머리와 가슴에 채우는 것도 늘어나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저절로 다 알게 되는 것은 없다. 세상살이가 쉬워지지도 않는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인생의 문제는 많아지는데 답이 없다. 세상을 향해 외쳐 봐도 명확한 답을 알 수가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나이를 채우는 숫자만큼 살아도, 살면서 수많은 문제를 마주하면서도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다는 거.

 

오영오. 난 너라는 문제집을 서른세 해째 풀고 있어.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 삶의 길목마다, 일상의 고비마다, 지뢰처럼 포진한 질문이 당장 답하라며 날 다그쳐. (40페이지)

 

주인공 오영오에게도 세상은 그랬다. 나이 서른셋, 학습지 출판사 국어과의 편집자다. 제대로 쉬어본 적 없이 야근에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다. 피곤이 쌓이고 마음은 팍팍하다. 상사를 욕해보지만 이런 일상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따로 살았다. 어쩌다 한번 얼굴을 봐도 데면데면했다. 그런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찾아가지만, 아버지가 남긴 건 오래된 밥통과 아버지의 낡은 수첩뿐이다. 수첩에 적힌 것도 별 것 없다. 이름 네 개가 적혀있을 뿐이다. 자기 딸인 오영오, 한강주, 문옥봉, 명보라. 영오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아버지와 무슨 연관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영오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있다. 공미지. 처음 영오에게 문제집에 출제된 문제를 물어보려고 전화한 미지는 틈만 나면 영오에게 전화를 하면서 문제 이외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하다가 엄마한테 쫓겨나고, 엄마가 버려두다시피 방치한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낡은 아파트의 옆집에 있는 버찌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미지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해주다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며, 덩달아 말하지 못한 자기의 상처와 마주한다. 무슨 추리소설처럼 영오 아버지의 수첩에 적힌 이름들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동시에 미지의 심부름센터(?)도 호황을 이루면서 영오와 미지 두 사람의 시선에 비친 세상은 하나로 모인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마무리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삼십대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인물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로 머물지 않을까 하는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더 나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현실에 안주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고, 폐암으로 죽은 엄마의 빈자리를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풀고, 가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는 맹랑한 여중생과의 통화로 한 번씩 휴식을 취하는,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는 여자의 일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의 등장과 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하나씩 풀어가는 꼬인 실타래는 영오의 일상에 변화를 만든다. 어둡고 칙칙하고, 팍팍해서 건조하고, 미움과 원망으로 삶을 버티는 것을 들켜버린다. 아버지가 경비로 일하던 새별중학교의 계약직 수학 선생 홍강주의 너스레는 영오의 마음에 깊게 자리한 외로움을 슬면서 꺼내게 한다. 그리고 한명씩 차례로 나타나는 문옥봉, 명보라. 이들의 사연에서 영오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상처 없는 사람 없어. 여기 다치고, 저기 파이고, 죽을 때까지 죄다 흉터야. 같은 데 다쳤다고 한 곡절에 한마음이냐, 그건 또 아닌지만서도 같은 자리 아파본 사람끼리는 아 하면 아 하지 어 하진 않아.” (171페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가시처럼 기억에 박히기도 한다. 어떤 틈은 희미한 실금에서부터 벌어지고, 어떤 관계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목만으로도 망가진다. (69페이지)

 

남들이 볼 때는 왜 그렇게 사는가 싶겠지만, 누군가 그 평온한 일상을 깨트리면서 다가올 때는 두렵다. 가진 게 없어도, 야근이 일상이어도, 믹스커피 한잔에 버티는 오늘의 초라함일지라도. 영오에게 다가온 일상의 침입자들도 그럴까? 영오에게 두려움만 주는 존재일까? 아니다. 오히려 영오의 외로움을 꺼내놓게 하면서 이것 말고 다른 오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약직이지만 담담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자기 미션(?)을 수행하는 홍강주,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제법 잘 흘러가더라고 알려주는 문옥봉, 거기 말고 다른 곳도 좀 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가르쳐주는 명보라. 이들의 집합에 무슨 공통점이 있기에 서로가 스스럼없이 인연이 되었을까. 앞서 간 사람들이 엮어주는 관계가 되어 오늘의 무의미한 인생에 안녕을 고한다.

 

“톡, 건드리면 터지는 봉선화, 다들 그런 꽃봉오리가 있는 것 같아요.” (236페이지)

 

“어떤 것엔 두 번째가 있는데, 어떤 것엔 없단 생각을 했어요.” (124페이지)

 

묘하다.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낸 것만 같다. 타인을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대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그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기에 외로움을 떨쳐내는 게 또 우리들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죽음은 영오가 처리해야 할 하나의 일에 불과했다.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죽은 후에 발견되는 아버지와 그 연락을 받고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딸 사이의 분위기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수첩에 적힌 이름 세 개는 영오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거였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보듬는다. 이상하게도,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치유의 힘이 커 보였다. 상처는 상처로만 머물지 않았다. 딱지가 생기고 흉터가 생겼지만, 나아졌다. 나아갔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처까지 고통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유쾌하기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픔이 먼저 다가오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도 그 죽음으로 시작된 인연과 이야기들이 너무 재밌게 다가온다. 타인의 상처를 볼 줄 알고, 다른 이와 함께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닫힌 마음이 열리고, 모험 같은 시간을 겪으면서 함께 하는 일. 서른셋의 오영오와 열일곱의 공미지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해 보였던 것, 타인의 삶에 끼어들면서 아픔을 치유해갔던 것이 너무 닮아 보여서 뭉클했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가 모두 이렇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니 치유해가는 것도 타인과 함께할 때 더 빠르고 덜 아프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어려워. 그렇지? 이해한다는 건 더 어렵고. 그 사람이 나든 남이든 말이야.” (193페이지)

 

언제나 어려운 게 타인을 알아가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삶은 이만큼 와 있지만, 여전히 다 채워지지 못한 것이 더 외롭게 하는 날들이다. 그렇다고 그 삶을 돌이킬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지 않을까. 나 이외의 사람을 알아가는 일, 서른셋에도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고 마흔셋에도 여전히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과의 조화겠지.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를 보는 시간이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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