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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 서른셋
하유지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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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많을 것 같지? 안 많더라.” (170페이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다 알 것 같은 마음이었다. 지금 몰랐던 것을 한 살 더 먹으면 잘 알 것 같고, 그렇게 알아가다 보면 나이든 우리는 인생과 세상을 거의 다 알 수도 있을 거로 믿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루하루 보고 배우는 것은 많아질 것이고, 나이라는 건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머리와 가슴에 채우는 것도 늘어나야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저절로 다 알게 되는 것은 없다. 세상살이가 쉬워지지도 않는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인생의 문제는 많아지는데 답이 없다. 세상을 향해 외쳐 봐도 명확한 답을 알 수가 없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건가 보다. 나이를 채우는 숫자만큼 살아도, 살면서 수많은 문제를 마주하면서도 쉽게 답을 찾을 수는 없다는 거.
오영오. 난 너라는 문제집을 서른세 해째 풀고 있어. 넌 정말 개떡 같은 책이야. 문제는 많은데 답이 없어. 삶의 길목마다, 일상의 고비마다, 지뢰처럼 포진한 질문이 당장 답하라며 날 다그쳐. (40페이지)
주인공 오영오에게도 세상은 그랬다. 나이 서른셋, 학습지 출판사 국어과의 편집자다. 제대로 쉬어본 적 없이 야근에 밤을 새우는 게 일상이다. 피곤이 쌓이고 마음은 팍팍하다. 상사를 욕해보지만 이런 일상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따로 살았다. 어쩌다 한번 얼굴을 봐도 데면데면했다. 그런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찾아가지만, 아버지가 남긴 건 오래된 밥통과 아버지의 낡은 수첩뿐이다. 수첩에 적힌 것도 별 것 없다. 이름 네 개가 적혀있을 뿐이다. 자기 딸인 오영오, 한강주, 문옥봉, 명보라. 영오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아버지와 무슨 연관인지도 모르겠다.
한편 영오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있다. 공미지. 처음 영오에게 문제집에 출제된 문제를 물어보려고 전화한 미지는 틈만 나면 영오에게 전화를 하면서 문제 이외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거부하다가 엄마한테 쫓겨나고, 엄마가 버려두다시피 방치한 낡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낡은 아파트의 옆집에 있는 버찌 할아버지를 알게 되고, 미지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해주다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연결해주며, 덩달아 말하지 못한 자기의 상처와 마주한다. 무슨 추리소설처럼 영오 아버지의 수첩에 적힌 이름들의 정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동시에 미지의 심부름센터(?)도 호황을 이루면서 영오와 미지 두 사람의 시선에 비친 세상은 하나로 모인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마무리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삼십대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인물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로 머물지 않을까 하는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더 나은 직장을 구하지 못해 현실에 안주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고, 폐암으로 죽은 엄마의 빈자리를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풀고, 가끔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오는 맹랑한 여중생과의 통화로 한 번씩 휴식을 취하는, 그럭저럭 하루를 버티는 여자의 일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의 등장과 그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하나씩 풀어가는 꼬인 실타래는 영오의 일상에 변화를 만든다. 어둡고 칙칙하고, 팍팍해서 건조하고, 미움과 원망으로 삶을 버티는 것을 들켜버린다. 아버지가 경비로 일하던 새별중학교의 계약직 수학 선생 홍강주의 너스레는 영오의 마음에 깊게 자리한 외로움을 슬면서 꺼내게 한다. 그리고 한명씩 차례로 나타나는 문옥봉, 명보라. 이들의 사연에서 영오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상처 없는 사람 없어. 여기 다치고, 저기 파이고, 죽을 때까지 죄다 흉터야. 같은 데 다쳤다고 한 곡절에 한마음이냐, 그건 또 아닌지만서도 같은 자리 아파본 사람끼리는 아 하면 아 하지 어 하진 않아.” (171페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가시처럼 기억에 박히기도 한다. 어떤 틈은 희미한 실금에서부터 벌어지고, 어떤 관계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죄목만으로도 망가진다. (69페이지)
남들이 볼 때는 왜 그렇게 사는가 싶겠지만, 누군가 그 평온한 일상을 깨트리면서 다가올 때는 두렵다. 가진 게 없어도, 야근이 일상이어도, 믹스커피 한잔에 버티는 오늘의 초라함일지라도. 영오에게 다가온 일상의 침입자들도 그럴까? 영오에게 두려움만 주는 존재일까? 아니다. 오히려 영오의 외로움을 꺼내놓게 하면서 이것 말고 다른 오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약직이지만 담담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자기 미션(?)을 수행하는 홍강주,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지만 제법 잘 흘러가더라고 알려주는 문옥봉, 거기 말고 다른 곳도 좀 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가르쳐주는 명보라. 이들의 집합에 무슨 공통점이 있기에 서로가 스스럼없이 인연이 되었을까. 앞서 간 사람들이 엮어주는 관계가 되어 오늘의 무의미한 인생에 안녕을 고한다.
“톡, 건드리면 터지는 봉선화, 다들 그런 꽃봉오리가 있는 것 같아요.” (236페이지)
“어떤 것엔 두 번째가 있는데, 어떤 것엔 없단 생각을 했어요.” (124페이지)
묘하다. 삶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낸 것만 같다. 타인을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대로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그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기에 외로움을 떨쳐내는 게 또 우리들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죽음은 영오가 처리해야 할 하나의 일에 불과했다.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죽은 후에 발견되는 아버지와 그 연락을 받고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딸 사이의 분위기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수첩에 적힌 이름 세 개는 영오에게 또 다른 세상을 열어주는 거였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보듬는다. 이상하게도,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치유의 힘이 커 보였다. 상처는 상처로만 머물지 않았다. 딱지가 생기고 흉터가 생겼지만, 나아졌다. 나아갔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처까지 고통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유쾌하기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죽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픔이 먼저 다가오는 거 아니겠나. 그런데도 그 죽음으로 시작된 인연과 이야기들이 너무 재밌게 다가온다. 타인의 상처를 볼 줄 알고, 다른 이와 함께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과정이 흥미롭다. 닫힌 마음이 열리고, 모험 같은 시간을 겪으면서 함께 하는 일. 서른셋의 오영오와 열일곱의 공미지가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해 보였던 것, 타인의 삶에 끼어들면서 아픔을 치유해갔던 것이 너무 닮아 보여서 뭉클했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가 모두 이렇게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니 치유해가는 것도 타인과 함께할 때 더 빠르고 덜 아프게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안다는 건 참 어려워. 그렇지? 이해한다는 건 더 어렵고. 그 사람이 나든 남이든 말이야.” (193페이지)
언제나 어려운 게 타인을 알아가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삶은 이만큼 와 있지만, 여전히 다 채워지지 못한 것이 더 외롭게 하는 날들이다. 그렇다고 그 삶을 돌이킬 수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지 않을까. 나 이외의 사람을 알아가는 일, 서른셋에도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고 마흔셋에도 여전히 부족한 사람으로 살아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과의 조화겠지.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를 보는 시간이 들여다보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