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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ㅣ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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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 중독자인가?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듯하다. 잡지든, 소설이든, 다른 장르의 책이든 계속 뭔가를 읽긴 한다. 습관적으로 가방에 읽을거리를 넣어서 다니기도 한다. 벽돌책은 무리지만, 가벼운 시집이나 소설 정도는 항상 가방에 비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읽을거리가 내 옆에 없다고 해서 불안에 떨거나 하지는 않다. 손이 닿는 거리에 책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며 없는 대로 일상을 지낸다. 장서가도 아니고 애서가도 아니다. 궁금한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한다. 구매한 책을 끌어안고 사는 것도 아니고, 중고로 되팔거나 기증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는 책 앞에서 줏대 없는 독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책을 아끼는 것도 아니고 함부로 것도 아니고, 뭔가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한 느낌?
그런 내가 이들이 책을 대하는 자세에 많이 공감한 걸 보면, 독서 중독자까지는 아니어도 중독자 언저리에서 맴도는 독자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책을 읽는 방식에 새롭게 접근하는 것 같아서 신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부담 없이 책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하는 것 같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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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독서 중독자들이 모였다. 제각각의 일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책이라는 공통점으로 모였다. 서로의 실체와 본명도 모른다. 그저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면서 독서 모임을 이어갈 뿐이다. 선생, 고슬링, 슈, 사자, 예티, 신입 회원 형사. 매번 모임에 참가하지만 쫓겨나는 노마드, 소설가 지망생 로렌스까지 개성이 뚜렷한 회원들이다. 이들의 행태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책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지만 은근 사회 부적응자의 아우라를 풍긴다. 저마다의 일상에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책 앞에서만은 중독 수준의 고수들이다. 거실의 중앙까지 꽉 채운 책장들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 장서가는 기본이고, 책을 대하는 저마다의 철칙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이사 가야 할 곳 근처에 도서관이 없으면 이사를 안 한다든지,
책 선택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책부터 선택한다든지,
독서 중독자들은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는 것,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나간다든지,
책의 완독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든지,
저자 소개는 간단해야 하고, 저자보다 역자 소개가 많은 책은 걸러낼 것,
목차만 봐도 전체 구성이나 전개 방식을 가늠할 수 있는 책이어야 좋은 책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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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하게 적기에는 그 항목이나 팁이 너무 많아서 어렵고, 각자의 책 고르는 기준이나 취향에 따라 조금 더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책에 모인 독서 중독자들의 지침을 처음부터 받아들이기에는 무리수가 있을 수 있으니, 차근차근 하나하나 천천히 독서 중독자의 길로 들어서는 게 덜 부담될 것이다. 또 어떤 리스트에 집중한다거나 베스트셀러에 의미를 둔다면 책을 가까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많이 공감했다. 남들이 다 읽은 것 같은 책을 나만 안 읽었다고 생각하면 오는 부담감. 어서 그 책을 읽어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어질 것 같다. 어떤 책이든 자기에게 다가오는 게 있어야 의미 있는 책이 된다는 생각이다. 특히 책장에 넣어두고 방치해도 내 자식.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 많은 자식 중에 마음이 가지 않은 자식이 없다는 말 같아서 듣기 좋더라. 먼지 푹 뒤집어쓰고 내 손길이 닿는 순간만을 기다리는 책일지라도, 내가 너를 잊은 건 아니야, 라는 변명이 통하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해진다.
책은 넘쳐나지만, 모두가 읽지 않는 게 현실이다. 소개 글에 나와 있지만, 책 읽기를 독려하고 동네서점이나 독서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모두가 책을 읽는 건 아니라고... 솔직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도 너무 많았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적도 많다. 여기 모인 독서 중독자들이 전하는 독서 비법으로 나에게 맞는 방식의 책 읽기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게 하는 책이다.
굉장히 웃으면서 읽게 되는데, 그 웃음 안에서도 작가들의 내공이 보이는 순간은 독서 목록이다. 각 인물의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언급되는 다양한 독서 목록이 고수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게다가 로렌스가 쓰는 소설의 제목은 에쿠니 가오리 소설의 제목을 패러디하기까지 했다. (친절하게도 책의 뒷부분에 이 책에 언급된 책들의 제목을 알려준다.) 은근 추리소설 분위기를 내면서 독서 중독자들과 책에 관한 이야기로 남는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다양함과 매력들이 재밌고 엉뚱하면서도, 책 앞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은 고퀄리티의 독자들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별거 없다. 그냥 들고 읽어라. 그렇게 읽다 보면 자기만의 취향과 목적에 맞는 책을 고르는 눈을 가지게 될 것이고, 독서가 흥미로운 취미가 될 것이며, 이들에게 뒤지지 않은 독서 중독자가 되어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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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장을 하나 마련하고 책을 넣어두고, 점점 늘어나는 책으로 인해 또 다시 책장을 들여오게 되고... 그렇게 하나씩 늘어가는 책장은 처음 것과 달라서 크기나 색이 달라서 다 제각각인 모습의 책장으로 진열된다. 뭔가 맞춰지지 않은 높낮이와 색이 다른 책장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들의 표정이 압권이다. 아마도,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하나씩 채워가는 책장과 책이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보는 그 감동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