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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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가까운 곳에 박물관이 생겼다. 기존에 박물관 비슷한 전시실 정도로 운영하던 곳에 국립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을 한 거다. 조금씩, 그 시대의 유물과 생활 흔적을 마주하는 기분은 묘했다. '저걸로 고기를 잘랐다고? 이런 옷을 입고 살았다고? 그 시대의 무덤은 이랬구나.' 싶은 눈앞의 것들은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찾아내고 그 시대를 확인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는데, 보면 볼수록 그 시대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인간의 생활이 진화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하나씩 찾아가는 생활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었다. 어쩌면 그 시대에 살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이미 문명의 맛을 알아버렸으니...), 한 번쯤은 모험하듯 여행하듯 다녀오고 싶은 마음도 든다. 영화에서 보던 시간 여행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이니까 가능한 설렘과 모험일 테고, 현실의 시대 발굴은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작업이라는 것을 이 책으로 알게 됐다.

 

저자는 고고학이란 학문을 경건하게 대하면서도, 그 유물들의 발굴에서 느끼는 시대의 흔적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발굴 과정에서 직접 겪은 체험을 이야기하듯 들려주면서, 그것들을 바라보며 확인하는 그 시대 삶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감정이 인간미 넘쳤다. 때로는 슬픈 현실을, 때로는 즐거운 한때를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류의 과정이 그대로 담긴 흔적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박물관이나 전시관에서 봐왔던 많은 것이 새삼 더 다르고 깊게 다가온다. 생활의 흔적들이기도 하지만, 그 흔적들의 발전은 오늘의 우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게, 구석구석 삶의 지혜들이 쌓여있다는 게 보인다. 사용하다 보니 불편한 것들은 점점 생활에 편리하게 업그레이드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차근차근 인류의 생활은 더욱 편하게 발전해왔을 거라는 사실의 증명 같은 거. 그러니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유물들은 단순하게 화석이나 골동품 바라보듯 신기함으로만 느끼면 안 될 것 같다. 인류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이고 흔적들일 테니까.

 

 

 

고고학자를 '시간여행을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유물을 찾고 과거를 경험하면서 보이는 것들에 많은 상상과 실제를 더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가 역사책이나 수업 시간에 간략하게 배우던 과거의 이야기를 좀 더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색을 입힌다. 어떻게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20여 년의 시간을 고고학자로 활동하면서 돌아다니던 곳, 중앙아시아와 중국, 몽골과 시베리아 등의 발굴에 참여하고 거기서 발견한 유물들에서 본 것들을 말하는데 느껴지는 놀라움과 자부심 같은 게 있다. 본인이 택한 학문에 대한 존경, 경험으로 확인한 시간여행에 대한 흥미로움, 인류 역사의 흔적들이 만들어낸 현실의 모습까지 보면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시간을 연결한다. 특히 고고학 자료의 절반 이상이 무덤이라면서, 무덤은 죽은 이를 묻은 곳이면서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곳이라는 게 인상적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치르는 장례식 자체가 남은 이들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지만 죽은 이를 잘 보내기 위한 방식이 아닐까?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서 느끼는, 언젠가 나에게도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이기도 할 듯하다.

 

 

고고학 발굴에서 시간의 무게를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이 바로 시각적인 아름다움, 색채이다. 사진이나 책은 가장 먼저 색부터 바랜다. 아무리 아름다운 옷이라고 해도 땅속에 버려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다. 때문에 색이 잘남아 있는 유물을 발견하면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된다. (117페이지)

 

지나간 것들, 죽은 이들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시대를 읽기도 하지만, 음식이나 냄새 같은 것들의 자취를 찾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에 그 흔적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고대의 악기를 발견했을 때 어느 시대를 규정하면서도 같은 악기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니 음악의 흐름, 유행 같은 것을 찾아낸다. 사실 유행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과한 것 같긴 한데, 어떤 붐이 일어나는 것처럼 음악의 분위기나 사용하는 악기도 널리 퍼지는 것 아닐까 싶다. 구금이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이 즐기던 악기였다고 했는데, 발해 유적에서도 구금이 발견된 것을 보고 동아시아 전역에서 발해 음악이 유행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쉬운 것은 그 당시의 악보나 다른 흔적들이 남아 있지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이 유행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음악의 복원도 할 수 없다는 것도.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이듯이 유물의 완전한 형태를 예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이렇듯 물리적인 흔적을 다 찾아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안타깝다. 어떤 향기나 음식, 맛 같은 것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우리가 먹는 건 우리 몸속에 쌓인다. 고고학은 살아 있을 때 우리가 먹은 음식을 밝힌다. 거기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아마 수천 년 뒤에 한국의 요릿집이나 정육점 자리를 분석한다면 지금의 한국인들이 좋아했던 고기 부위와 숨겨진 식성도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수많은 뼈들을 부위와 종류별로 일일이 분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먹는 것으로 당신을 밝히겠다는 사바랭의 말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고학은 너무도 흥미로운 학문이다. 그러니 한 끼 먹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길. (159페이지)

 

토기의 바닥에 곡물의 찌꺼기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5000년 전에는 중국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걸 알아내기도 한다. 음식의 흔적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하던 우려는 이렇게 뭔가를 찾아냄으로써 그 기우를 덜어낸다. 특히 보리가 섞여 있던 곡물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보리가 중국에서 자생하는 곡물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동서의 교류가 만들어낸 곡물의 이동이라는 것까지 알아낸다. 생각해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쉬운 방식의 '흔적 찾기' 같은데, 신기하면서도 하나하나 그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시대의 모습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고학이란 학문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 싶다. 알고 싶은 것, 찾아가고 싶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에 계속 활동하고 발굴하면서 그 흔적들을 찾아내는 희열을 느끼고 하는 거 말이다. 발굴된 유물을 통해 인류가 이뤄낸 삶의 지혜를 발견하면서도, 어떤 흐름으로 현재에 이르렀는지 파악하면서, 조금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나온 과정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찾아내고 유추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상상하는 재미까지 더해진다. 인류의 진화에 관한 욕망은 '직립보행이 목숨을 건 진화'였다고 말하는 것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인류의 두뇌는 더 커지고 지식을 얻으면서 동물적인 장점은 서서히 퇴화했듯이. 과거의 인류에서 시작된 인간 세상의 흐름은 앞으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기대된다. 그 기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고고학이란 학문과 고고학자의 역할이 클 것 같다. 비록 고된 하루의 끝이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되는 게 소박하지만, 그 맥주 한 잔의 힘으로 또다시 인류의 흔적을 찾아가는 모험을 마다할 수 없다. ^^

 

 

어렵게 우연처럼 찾아낸 작은 흔적들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로 확인하게 되는 것들을 마주한 것 같다. 마음으로 보이는 것들이 불러오는 감정이 대단했다. 발굴에서 시작된 인류 역사를 확인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누구나 쉽게 읽으면서 고고학을 만나는 재미를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실제 발굴의 이야기에서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는 듯하면서도, 발굴 이후의 시간 추적 같은 이야기는 신비롭다. '아, 우리가 이렇게 발전해왔구나. 인간이 이렇게 진화해왔구나. 너무 다른, 때로는 너무 비슷한 생활에 인간미가 여기서 나오는구나.' 싶은 공감과 감동까지 만든다.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문화를 밝히는 과정인 고고학이, 이 책에서 들려주는 것처럼 인류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시간을 계속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고, 하나의 학문을 알아가는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과거의 유물이 우리가 미래를 열어 가는데 더 현명해질 수 있도록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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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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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고양이
모자쿠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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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옆을 돌아보게 된다. 바로 옆에서 귤을 들고 계시는 엄마가 변신술을 하여 이 책 속의 고양이로 둔갑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는 없다는 확신에 자꾸만 돌아본다. 설마? 아니야. 혹시? 아닐 거야.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를 않는군, 흠...

 

모자쿠키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만화가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교감을 상상하다가 이런 만화까지 그리게 된 게 아닐까 싶다. 표정은 심드렁, 간식 이외의 관심사는 없을 거로 보이는 고양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고양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나를 걱정하고 그 걱정을 못 이겨 잔소리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 말로 통하지 않으니 표정으로라도 대화하고 싶은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고, 그저 눈빛만으로 '우리 이런 마음 나누고 있지 않니?' 하는 마음을 풀어놓는 순간을 캡처한 듯한 네 컷. 저자는 트위터 계정을 열고 이 네 컷 만화를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한 달 만에 10만 팔로어를 모으는 관심을 일으켰다. 독자들이 공감하지 않고서는 절대 이루어낼 수 없는 팔로어 숫자 아닌가? 혹시 당신의 고양이도 이런 마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관심 두고 살펴보게 하는 계기까지 이뤄냈을지도 모른다.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조차도 이제는 길에서 마주치는 이 녀석들을 달리 보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여러 상황이 그대로 들려와서 웃음이 난다. 매일 반복하는 시행착오를 옆에서 매일 듣는 잔소리로 채우는 시간 말이다. 어질러놓고 다닌다고, 알람이 몇 번을 울리도록 일어나지 않는다고, 오늘 하겠다는 일을 계속 미룬다고,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나 숙제를 한다고, 살 뺀다더니 또 간식과 야식을 앞에 두고 있느냐고,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러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사 오고, 스마트폰 중독에, 계획 없는 쇼핑에, 매사에 끈기 없이 중단하는 일들에, 제자리에 두지 않고 찾아다니는 일에, 정리하지 않아서 쌓여가는 물건들에, 언제나 작심삼일에 멈추는 운동에... 하, 이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 끝이 없어서 다 말을 못 하겠다. 퉁퉁거리면서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말하는 이 잔소리 고양이에 대꾸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지. 엄마가 옆에서 이렇게 잔소리하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면서 뭐라고 해도, 엄마가 미운 건 아니었잖아?! 아끼고 잘되라는 마음에 계속하는 말들이잖아. 언제까지나 옆에서 지켜봐 주고 알려줄 수 없으니까, 계속 그 자리에서 나의 부족한 것들을 채워줄 수 없으니까. 내가 혼자 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들이라는 걸 안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쓰고, 옆집까지 들리도록 큰소리로 잔소리를 하고, 찬바람이 휙 들어오라고 창문을 활짝 열어버리는 이 겨울의 어느 날의 엄마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고로, 이 잔소리 고양이는 우리 엄마가 쓰고 있는 탈이 분명하다. 흐음...

 

 

재밌게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검은 고양이는 잔소리 고양이의 가르침에 딴지를 놓는다. 조금 늦으면 어때, 간식 좀 더 먹으면 어때, 알람 좀 몇 번 더 울리면 어때, 숙제 좀 몰아서 하면 어때, 하는 말들로 옆에서 깐죽댄다. 그런데도 잔소리 고양이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츤데레 삘의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 그렇지. 그게 바로 애정이지. 암만. 까칠하고 성난 목소리로 잔소리를 넘어선 공격을 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이면의 진심을 알아서일까. 그 잔소리가 그냥 잔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 조금 천천히 하지 뭐, 실패했어? 다시 도전하면 되는데 뭘. 실컷 등짝 두들겨 패는 말을 쏟아내다가도 결국에는 그 마음 이해한다는 진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인간 세상에서, 더는 인간만이 교감하는 건 아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애완견 애완묘를 키우는 걸 보면, 인간과 다르지 않은 마음을 나누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고양이의 잔소리가 사랑스럽게 들리기까지 한다. 내 귀가 이상해진 건가, 아니면 지금 엄마가 하는 말들이 이 고양이의 말을 녹음해서 들려준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인가는 모르겠지만.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정말 화들짝 놀란 게 있었는데, 전자레인지 안에 음식 데운다고 넣어놓고 깜빡했다가 나중에 전자레인지 사용하려고 열어보고 기함을 했다. 이미 그 안의 음식은 상해있었고, 나는 그때까지 내가 거기에 음식을 넣어두고 데우려고 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고양이가 했던 잔소리와 똑같은 말을 엄마에게 들었다는 건 당연했다. 에휴... 이래서 잔소리가 필요한 걸까? ㅠㅠ

 

 

감히 고양이가 집사에게 잔소리하면 되나 싶겠지만, 읽어보니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는 고양이였다. 그러니, 잔소리해도 된다. 응, 된다.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느낀다. 집사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런 잔소리 나오지도 않는다. 애묘인들, 한 번쯤 내가 키우는 고양이의 눈빛이나 행동을 잘 지켜봐 주길 바란다. 혹시 당신이 놓치고 있는 고양이의 진심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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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작품을 잘 읽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확인한다. 이 책으로 처음 만난 '양 사나이'는 하루키의 초기 작품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조금은 특이한 캐릭터가 분명하다. 언제부터 생각해서 세상에 내놓은, 왜 '양 사나이'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키의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인물이라고 하니 하루키와 상당한 인연을 만들어낸 인물임은 틀림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우일의 일러스트와 함께라고 하니,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는지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을 배경으로 양 사나이의 일화를 만들어낸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막상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양 사나이의 이야기 하나가 탄생했고, 동화 같은 이야기에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어다.

 

양 사나이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 양 사나이 협회에서 선택받은, 성 양 어르신 승천일을 기념하며 음악을 작곡할 대상으로 선정된 것. 크리스마스에 맞춰 음악을 내놓으면 되는 것을 여름에 의뢰를 받았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양 사나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음악을 만들 수가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슬럼프인가? 모르겠다. 우연히 만난 양 박사의 말로는 저주가 걸렸다고 하는데, 저주에 걸렸다면 그 저주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이야기는 저주에 걸렸다고 여긴 양 사나이가 양 박사의 말대로 시작한 여정에서 출발한다. 크리스마스 날 오전(새벽 아니고?)1시 16분에 성 양 어르신이 빠진 구덩이에 빠지면 되는데, 그걸 양 사나이가 직접 파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건 뭐냐? 무슨 세트 지어서 재연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저주를 풀 방법이라니 안 할 수도 없고, 참... 그렇게 열심히 판 구덩이로 들어가기만 하면 저주가 간단히 풀릴 줄 알았는데, 인생사 어디서나 밖의 변수는 있는 법.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서 양 사나이의 저주 풀기 계획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데... 이거 어떻게 잘 풀리기는 하겠어? 내가 다 걱정이구먼.

 

예정에 없던 모험인지 여행인지 모를 일들은 양 사나이의 저주를 풀기는커녕, 뭔가 자꾸 모호하고 이상한 곳으로 흐르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인물과 사연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로 거듭나고, 느리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양 사나이는 특이하게 등장하는 여러 인물에게 사기당하는 캐릭터처럼 엉뚱하고 순박한 느낌에, 결국에는 그들의 진심이 나쁘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아하~!' 하는 감탄사와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바다까마귀 부인, 208 209 쌍둥이 소녀, 오른 꼬불탱이 왼 꼬불탱이(처음에 나는 이들을 꽈배기라고 불렀다는...), 양 박사와 성 양 어르신, 그리고 그 저주가 시작된 구멍 뚫린 도넛까지. 어느 것 하나 특이하고 개성 없는 것이 없어서인지,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까지 더해진 책이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양 사나이를 비롯한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 보였던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또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상상력과 더해진 크리스마스라는 즐거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짜잔~ 서프라이즈~!' 뭐 이런 느낌? ^^ 단순한 이야기로 머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우일의 그림과 어우러져 완성된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다. 우연히 마주한 인생의 저주와 그 저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 사나이의 노력이 눈물겹지만, 결말에서 마주한 즐거움은 그 노력의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웃음이리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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