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작품을 잘 읽지 않았다는 것을 이렇게 확인한다. 이 책으로 처음 만난 '양 사나이'는 하루키의 초기 작품부터 등장하는 캐릭터라고 한다. 조금은 특이한 캐릭터가 분명하다. 언제부터 생각해서 세상에 내놓은, 왜 '양 사나이'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하루키의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인물이라고 하니 하루키와 상당한 인연을 만들어낸 인물임은 틀림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우일의 일러스트와 함께라고 하니,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는지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날을 배경으로 양 사나이의 일화를 만들어낸 이유가 분명 있겠지만, 막상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저 양 사나이의 이야기 하나가 탄생했고, 동화 같은 이야기에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할지어다.

 

양 사나이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 양 사나이 협회에서 선택받은, 성 양 어르신 승천일을 기념하며 음악을 작곡할 대상으로 선정된 것. 크리스마스에 맞춰 음악을 내놓으면 되는 것을 여름에 의뢰를 받았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양 사나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음악을 만들 수가 없었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슬럼프인가? 모르겠다. 우연히 만난 양 박사의 말로는 저주가 걸렸다고 하는데, 저주에 걸렸다면 그 저주는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이야기는 저주에 걸렸다고 여긴 양 사나이가 양 박사의 말대로 시작한 여정에서 출발한다. 크리스마스 날 오전(새벽 아니고?)1시 16분에 성 양 어르신이 빠진 구덩이에 빠지면 되는데, 그걸 양 사나이가 직접 파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건 뭐냐? 무슨 세트 지어서 재연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저주를 풀 방법이라니 안 할 수도 없고, 참... 그렇게 열심히 판 구덩이로 들어가기만 하면 저주가 간단히 풀릴 줄 알았는데, 인생사 어디서나 밖의 변수는 있는 법.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서 양 사나이의 저주 풀기 계획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데... 이거 어떻게 잘 풀리기는 하겠어? 내가 다 걱정이구먼.

 

예정에 없던 모험인지 여행인지 모를 일들은 양 사나이의 저주를 풀기는커녕, 뭔가 자꾸 모호하고 이상한 곳으로 흐르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인물과 사연들은 상상 속의 이야기로 거듭나고, 느리고 어수룩하게 보이는 양 사나이는 특이하게 등장하는 여러 인물에게 사기당하는 캐릭터처럼 엉뚱하고 순박한 느낌에, 결국에는 그들의 진심이 나쁘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아하~!' 하는 감탄사와 함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바다까마귀 부인, 208 209 쌍둥이 소녀, 오른 꼬불탱이 왼 꼬불탱이(처음에 나는 이들을 꽈배기라고 불렀다는...), 양 박사와 성 양 어르신, 그리고 그 저주가 시작된 구멍 뚫린 도넛까지. 어느 것 하나 특이하고 개성 없는 것이 없어서인지,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까지 더해진 책이다.

 

사실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양 사나이를 비롯한 그동안 그의 작품에서 보였던 캐릭터들이 등장하면서 또 한 편의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을 보는 게 즐거웠다. 상상력과 더해진 크리스마스라는 즐거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짜잔~ 서프라이즈~!' 뭐 이런 느낌? ^^ 단순한 이야기로 머물 수도 있었을 텐데, 이우일의 그림과 어우러져 완성된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흥미롭고 재미있다. 우연히 마주한 인생의 저주와 그 저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 사나이의 노력이 눈물겹지만, 결말에서 마주한 즐거움은 그 노력의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웃음이리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즐기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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