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 달 동안 책을 300권쯤 내다 팔았고, 200권쯤 버렸다. 팔아도 판 것 같지가 않고, 버려도 버린 것 같지가 않은 이 이상함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지금 방에는 15칸 책장 하나뿐이다. 거기에 채워진 책이 내가 가진 책의 전부이고, 조금 더 정리해야 할 책들이 방의 한 구석에 쌓여있을 뿐...
그리고 지금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쌓여있는 책은 두 줄 정도?
한 줄은 읽어야 ‘할’ 책, 다른 한 줄은 읽고 ‘싶은’ 책... 당연히 읽어야 할 책보다 읽고 싶은 책의 탑이 더 높다. 읽고 싶으나 읽을 수 없었으니 탑은 줄어들지 않았고, 그 사이에 읽고 싶은 책은 더 늘어났으니 탑은 더 높아졌다. 다행히도 읽어야 할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몇 권이 빠지면 몇 권이 다시 채워지는 정도... 하지만 분명한 건,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것. 서평도서 먹튀한 것도 있고(미안), 약속한 날짜보다 많이 늦은 것도 있고(이것도 미안). 그런데도 책이 사고 싶다. 일주일 동안 책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의 목록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사고 싶다, 사고 싶다, 사고 싶다... 싶은 간절함으로...
결국은, 지금 결제해야만 했다. 피츠제럴드 에코백도 갖고 싶고, 사고 싶은 책은 많으니 5만원이 넘는 건 기본이고... 정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계산하고 구매하는 마음. 그러니까, 읽자... 읽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장>
2년쯤 전에 출판사 이벤트로 도서 3권을 받았는데, 다른 도서는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이 책만 눈에 보인다. 그나마 이 책은 바로 눈에 보여서 다행이다. 서평 때문에 2년 만에 꺼내어본 이 책의 모습이 참 안습이다. 책의 삼면이 바래져버렸다. 나머지는 양호해서 안심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나이 들어가는 모습, 그에 따른 뇌의 퇴화나 기억력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인이라고 할 나이는 아닌데, 정말 기억력 때문에 심하게 스트레스 받고 있는 요즘, 이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뇌의 이야기나 기억력에 대해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싶다. 저자의 전작,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와 함께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이 책도 빨리 책장 어디선가에서 찾아내야겠다.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을 읽고 한동안 쇼크 같은 멍함이 있었다. 아주 짧은 단편들이었는데, 너무 시간이 없던 와중에 읽었던 상태였던지라 이야기들이 전하고자 하는 게 뭐였지? 하는 의문으로만 가득한 채 그 시간을 지나왔다. 분명 책의 내용에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나는 그 이후의 시간을 <어젯밤>이란 책에 할애하지 못했었다. 안타깝게도... 한참 전에 읽었던 터라 지금에 와서 다시 들춰볼 부지런함을 찾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장편이라니 조금은 안심하고 만나볼 수 있겠다 싶다. <가벼운 나날>... 제목이, 표지가, 작가의 전작으로 만난 느낌을, 이번에는 제대로 즐길 수 있기를...
출간 때 잠깐 고민을 했더랬다. 배수아 번역으로 사야할지 공경희 번역으로 사야할지... 같은 시기에 같이 나온, 출판사와 번역가와 디자인을 달리해서 나온 이 책을 보고 잠깐 놀웠고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가 원서를 읽을 수준이 안 되니 나는 전문 번역가의 손을 거친 <눈 먼 올빼미>로 빠른 선택을 했다. 소설가의 번역이란 맛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소설가의 분위기가 들어간 느낌 보다는 깔끔한 느낌을 맛보는 걸로!
역시, 이정명! 하는 감탄사가 나올까? 작가의 전작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니 기본적인 신뢰감을 준다. 특히나 이번 책의 내용은 참 매력적이고,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믿음으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소년이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함을 나도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읽어 보고 싶어진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마음속으로 깊게 들어오는 작가의 글이 그리워질 무렵, 딱 맞춰서 나온 듯하다.
<28>
숫자만 바라봐도 손이 저절로 가게 하는 정유정의 신간이다. <이별보다 슬픈 약속>을 읽을 때는 잔잔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더니, <내 심장을 쏴라>에서는 심장의 떨림과 울림을 같이 주더라. 그리고 <7년의 밤>을 읽을 무렵, 나는 아마 정유정의 전작들을 읽지 않았다면 작가가 남자인줄 알았을 것이다. 그만큼 어떤 힘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여자 작가니까 힘이 없다, 하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고정관념처럼 가져왔던 남자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나는 <7년의 밤>에서 느꼈었다. 그래서 이번 신간 역시 성별을 떠난 어떤 파워를 느끼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어울릴 듯하다. 예판 기간인데 계속 미루던 것을 알사탕 준다니까 저절로 책바구니로 들어간다. 날짜 잊지 말고 챙겨 구매해야겠다.
구간 몇 권 더 넣었더니, 책값이 후덜덜... 그래도 이 녀석들로 하여금 마음이 놓아진다면, 처방받은 약이라 생각하고 물과 함께 넘겨보련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을 펼쳐봤더니, 쩍벌이다. 그냥 지나쳐도 될 것을 끝이 뾰족한 목공풀로 틈새를 곱게 발라주고 두꺼운 사전으로 몇 시간 눌러주었다. 새책처럼 반짝이지는 않아도, 더 이상 쩍벌이로 그 모습을 험하게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아진다. 내 책도 아닌데, 가끔 도서관 책에 이런 시술을 해줄 때가 있다. 곱게 살아야지 싶어서, 이렇게 해놓으면 다른 이들도 잘 해놓을 것 같아서...
5월만 지나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몸도 마음도 좀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네...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고, 오른팔은 거의 마비 직전까지 간 상태로 너무 아프고, 잠은 자는데 자는 것 같지 않은 몽롱함 역시 계속이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뭘 하는지 모르게 하루는 금방 가더라. 밤에는 머리만 닿으면 잠이 쏟아질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괜찮아지겠지 싶은 주문을 넣어본다. 괜찮아지겠지...
살던 대로 살자. 평소에 안 하던 짓 하면 그것도 오지랖이다. 원래대로, 나 하던 대로, 게을렀던 나 그대로, 살자고...
다섯줄의 결과물 앞에서 책을 즐겁게 읽고 싶다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밤을 만나면서 오늘을 마무리... 내가 읽고 싶은 책과 내가 읽어야 할 책들 사이에서 여전히 허우적대더라도, 적어도 내가 선택한 이 책들 앞에서 미안해지지는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