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가 선거인데, 그래서인지 이번 9권의 내용이 남다르게 들린다.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차에서 틀어놓은 선거 유세 녹음 방송과 선거 운동원들의 길거리 홍보를 보고 있노라면, 후보자들은 무엇을 위해 선거에 나왔나 싶었다. 개인의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 올바르게 가기 위한 사회를 만들고 싶을 수도 있다. 솔직히 정치인들에 대해 호감은 없지만, 때가 되었고 필요한 자리이니 사람을 뽑는구나 하고 말았는데, 아무리 봐도 선거 운동은 적응하기 힘들다.
학생회 간부 선거를 다룬 9권이다. 아이들은 어떤 학교로 만들고 싶어서 이 선거에 나온 걸까. 아주 단순한 마음이기도 하고, 그동안 쌓여왔던 생각들을 뿜어내는 기회로 만들기도 하는 아이들이다. 후보로 나온 아이들의 마음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품고 나왔다. 자기 꿈을 위해 도전하고, 내신을 위한 목적으로 후보로 나오고, 학생회 자체에 즐거움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른들의 선거판과 다를 게 없는데도 분명 다르다. 아이들은 어떤 계산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솔직하고자 한다. 자기 마음이 가장 원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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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 후보 연설 대회를 통해 아이들의 진심을 볼 수 있었는데, 저마다의 공약을 걸고 간부가 되기 위한 목적을 드러낸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아이, 현재의 선거 방식이 가진 문제를 언급하며 어떤 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지 방안을 내비친다. 무효표가 나오는 이유, 무효표를 인정하느냐 아니냐의 문제, 그로 인해 공개 투표에 가깝게 진행되었던 과거 어느 학교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그래서 지금 선거 방식이 어떤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지 보게 하면서 그때의 일을 대응책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물론 그 아이의 대안이 100% 옳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아무도 현재의 투표 방식에 문제가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아이의 연설은 선거를 목적에 두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 새겨들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의 방식이 옳은 것인지, 문제점은 없는지, 개선해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완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어른들의 선거판 역시 이런 게 가장 필요한 거 아닐까.
현재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 아이의 연설 후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아이들의 마음은 예상외로 흘러간다. 별것 아닌 일을 문제로 만들어 시끄럽게 했다고, 가장 먼저 탈락할 거로 생각했던 후보가 학생회를 이끌게 된다. 다른 간부들 역시 그 역할에 가장 적합하다고 맞는 후보들이 선정되었을 테지.
학생회 간부 선거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게 뭘까 생각해 봤는데, 다양한 사고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부족하고 어긋난 방식이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선거는 분명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지만, 그 방식에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보여주려고 하는 듯하다. 학교 안에서 학교 밖 세상을 먼저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이유를 그대로 드러내는 '학생회 간부 선거 편'이다. 열심히 제 자리에 맞게 일하는 후보도 중요하고 투표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투표가 왜 진행되고 있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를 바란다.
소란스럽지만 현명하게 치러낸 선거. 선거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다가온 건 히자쿠라야마 중학교 문화제다. 각자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분야의 축제를 준비한다. 특히 이 아이들이 준비하는 연극이 주를 이루는 10권인데, 아이들이 직접 쓴 원고로 오르는 극을 준비하는 과정이 볼만하다. ‘이거 정말 아이들이 한 거 맞아?’ 하는 놀라움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누군가가 쓴 원고가 인정받고, 아이들은 그 대본을 바탕으로 오를 연극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준비 과정에서 역시나 불거진 일들이 있는데, 그건 하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내야 할 관문으로 보인다.
특히 스즈키 선생님 지도로 아이들은 연기를 배우는데, 그게 너무 진지해서 숨죽이고 읽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는 문화제, 그냥저냥 빨리 해치우고 지나가야 할 숙제처럼 여겼는데, 막상 이를 대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도 자세가 너무 진지하다 보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십 년에 한 번이라도 잘, 최선을 다해 해야 하는 것임을 간과했던 거다. 공부에 방해된다고 학급 임원도 하기 싫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닌 듯하다. 이게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인지, 아니면 이 만화에서 유독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문화제를 대하는 이들의 태도가 너무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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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한 편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와 과정이 필요한지, 그 한 무대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이 어떻게 ‘함께’임을 배우는지 보여준다. 캐스팅 과정 역시 신중하고 공정하게 하려고 애쓰는 스즈키 선생님의 방식이 맘에 들었다.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역할이 있을 거다. 역할부터 맡기지 않고, 극의 모든 과정과 분위기를 소화하는 걸 지켜본 다음, 그 배역에 어울리는 아이를 캐스팅하는 순서가 긍정으로 다가온다. 배역뿐만 아니라 연극을 올리는데 필요한 스태프 역시 존재감을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무대에 오르지 않아도, 누군 하나 없어서는 안 될 구성원인 거다.
학교 축제가 단순히 아이들의 하루 놀이 정도로 멈추는 게 아니었다. 그 준비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겪을 수 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현실과 조금은 동떨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그런 일이 또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으니 들어주어도 괜찮다.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누구나 겪을지도 모를 일들을 언급한다. 히키코모리가 되어 방황하는 청춘,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과정, 마음이 아픈 병이 왜, 누구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까지. 다양한 소재로 중학교 2학년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모습을 비친다.
공부하기에도 바쁘기 만한 시간이라고 여겼는데, 이런 행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태도에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내가 보는 학교의 분위기가 이 만화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서다. 배우는 목적으로 존재하는 게 학교라면, 그 배움을 끌어주는 게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이 머릿속에 담는 지식 그 이상의 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도 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번 문화제 편에서 줄곧 생각했던 게 그런 거다. 성적을 위한 학습,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지혜와 여유를 배우는 방법을 끌어주는 곳이 학교였으면 좋겠다고...
10권의 문화제가 이어진다. 아직 연극은 상연되기 전이고, 배역도 정해지지 않았다. 스즈키 선생님은 모든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아이들 역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몰라 모든 연습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제들이 있다. 아니, 이건 문제라기보다는 스즈키 선생님이 아이들의 성장을 이뤄내는 교육이라고 봐도 좋겠다. 분명 연기는 잘하는데, 무대 위에 서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대역이라는 역할을 주려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작년에도 거절한 것처럼 이번에도 거절한다. 도저히 할 수 없다면서... 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스즈키 선생님은 그 아이가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도록 부담 주지 않으면서 기회를 잡아보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연극 연습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아이들은 연극에 푹 빠진다. 누군가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그 시간의 매력에 빠진 거다. 실제 무대 위도 아니고 관객도 없는데, 그 연습 시간에 몰입하게 된다. 그 안에 있던, 대역을 맡기고 싶었던 아이. 어느 순간 역할에 빠져들면서 연극 속으로 스며든다. 아직은 완벽하게 용기가 장착된 건 아닐지라도, 그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이미 용기는 시작된 거다.
굳이 이 문화제에서 아이들의 연극을 두 권이나 되는 분량에 담아냈을까 궁금했다. 나의 추측이지만, 그건 아마도 스즈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도 다양한 가치관의 형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극의 흐름은 하나의 인생을 보는 듯했고, 각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살아야 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을 보여주면서도, 그 삶을 이뤄 가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건 연극 준비 과정에서부터 누누이 강조되어 보였던 점이다. 역할 분담에서부터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내용을 서로 주고받으며, 얼마나 몰입하고 이해하면서 캐릭터를 살려내고 있는지 보면, 알 만하다. 극장판 「스즈키 선생님」의 무대가 된 게 문화제 편이라는데, 그럴 만하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이 만화의 주제에 가장 걸맞은 에피소드였다. 함께 이뤄가는 과정을 배우는 일,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가는 시간, 아직은 어리지만 그래서 더 확인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넘쳐나는 기회. 거기에 선생님이란 역할로 함께 하는 스즈키까지 동반 성장하는 시간을 만든다.
궁금하지만 낯설게 다가왔던 이 시리즈가 11권으로 다 끝났다. 다 읽었지만, 여전히 이해 못 할 설정도 있고, 다양한 면을 보게 하는 장점도 있다. 문화의 차이라고 봐도 좋고, 세대 차이라고 봐도 괜찮다. 무엇보다 일어나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요즘은 초등학생도 선생님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데, 어떻게 일어날 일이라고 예상한 일만 생길까. 언제 어디서든 기존의 생각과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당연한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일이라는 건 정해진 대로 일어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이 만화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과감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거. 이 아이들의 행동이나 다른 설정들이 때로 과격하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수용할 수 있게 한다. 그 정도의 마음을 가진 이들을 지켜보게 하면서, 나와 다른 면면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가르침은 계속된다고 말하며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의미도 충분히 전달된다. 그 배움, 그 가르침이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제법 긴 호흡으로, 나와 다른 마음을 알아가는 마음으로, 배우는 시선으로 읽게 된 책이다. 언제 또 시리즈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이제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겠다. 이 아이들과 스즈키 선생님의 성장이 여전히 궁금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