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어 줘
이노 지음 / 마루&마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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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봐... 『거기 있어 줘』

 

 

불가능하기에 기적이라 부르는 일. 그중 하나가 시간의 회귀 아닐까. 거스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가끔 우리에게 찾아와주기를 바라는 것들. 늘 '만약에' 라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시간을 움직이고 싶은 순간이다.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가는 시간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시작하는 많은 것으로 현재의 불행을 막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해 본다. 그러기 위해, 그러고 싶어서 가정하는 거니까. 지금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란 가정을 품고 살기도 한다. 이경은 좀 반대였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으로 가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우연(?)한 사고가 그녀를 십이 년 전으로 되돌려 놨다.

 

죄책감과 분노와 사랑을 동시에 품고 살면서, 마음을 어느 하나로 붙잡을 수 없는 상태로 하루를 버티는 이경과 승현. 스물아홉의 두 사람이 같이 살면서 겪는 현재가, 사랑이 불행하다. 보이는 곳에 있어야 안심이 되면서도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와 고통스러운 사이. 열아홉의 겨울, 이경의 오빠 태주가 죽었다. 그 슬픔으로 엄마가 죽었고, 그 사고로 승현의 아버지가 죽었다. 그렇게 십 년을 버텨온 두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마음과 현실이 일치되지 않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눈앞에 펼쳐진다. 스물아홉의 이경에게 사고가 났고, 승현은 울부짖는다. 그리고 눈을 뜬 이경은 열일곱의 봄을 다시 시작한다.

 

이미 한 차례 바뀐 과거부터 시작해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와 돌아온 현재의 상황이 달라지는 만큼 그녀는 안도했다. 이미 바뀌어 버린 과거는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른 미래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59페이지)

 

호기심이 충분히 일어날 이야기의 시작이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펜던트. 소중한 사람이 주고 간 작은 물건 하나에, 그럴 일이 없을 줄 알지만, 아이처럼 동화처럼 바라는 순간 기적은 일어난다. 없었던 일로 해줘... 누군가를 지키고 싶다던 간절함을 이루어진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던 외침을 들은 누군가 그 소원을 이뤄준다. 자, 이제 시점은 되돌렸으니 모든 것은 이경이 하기에 달렸다.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그 장면을 바라는 그녀가 만들어낼, 다시 시작된 시간을 어떻게 그려질까.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처음 보는 소재도 아니 건만, 그 뻔한 설정에 기대를 품게 되는 이유가 있다. 이런 일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한 번쯤은 간절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일이라는 것. 처음 불행의 시작을 놓친 시점으로 돌아가 이경이 되돌려놓을 것들을 궁금하게 한다. 이경이 어떻게 그 불행을 막을 것인지, 이경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로 되진 않을 텐데 이미 한번 만났던 인연들이 서로를 다시 알아볼 수 있을지... 궁금한 것들이 넘쳐났다. 특히 태주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이경과 승현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서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간다.

 

한번 살았던 스물아홉 해의 시간과 다시 살아가는 스물아홉 해의 시간이 비슷한 듯 다르게 흘러간다. 아무도 모르는 일은 이경 혼자만 알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한다. 그에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이경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그동안 불행했던 모두가 제자리를 찾을 거라는 믿음으로 다시 오늘을 산다. 하나씩 변한다. 동시에 변하지 않는다. 삶의 자세가 변하고, 불행에 대응하는 방법을 배운다. 좀 더 현명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안심을 찾아간다. 그 안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또 한 번 그녀를 찾아온다. 이미 한 번 끝난 인연이 당연한 것처럼 시작된다. 정작 이경 자신이 챙기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보게 되는 시작이다. 늘 그 자리에 있어 줄 것처럼 존재했던 사람, 상대의 마음을 듣지 않은 채로 최선이라 여기며 선택했던 일들이 다시 보인다. ‘정말,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을까?’ 싶은 물음에 대한 답을 이제야 얻는다.

 

인생을 두 번 살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 늘 그러지 못해서 우리는 만약을 떠올리며 살아간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가정을 품으며,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떠올리며 잠깐 위로받는다. 그럴 수 없으니까 지금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거나, 추억 같은 시간을 한번 곱씹어 보고 다시 으쌰으쌰 시작하는 다짐의 주문이 필요할 때 만나면 좋을 이야기다.

 

예상하지 못했던 태주와 승현의 브로맨스가 즐거웠고, 걱정스럽고 두렵지만 결국 진심이 이긴다는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진리였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그대로 증명해 보이는 소설이다. 물론, 당연히 설레게 할 로맨스는 기본이다. ^^ 생각해보니 이노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 밝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이야기들이 삶에 스며드는 이야기가 좋았던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다 읽지는 않았을 텐데... 다음에 만날 이야기는 또 어떤 설렘을 줄지, 어떤 감정을 끌어내어 공감을 만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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